공학수 박사의 휴가

공학수 박사는 뛰어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휴가"

그의 휴가 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재단에 들어온 지 6년째 되었음에도 지금까지 휴가를 스스로 거부한 지독한 일 중독인 그였지만, 한 달 전에 그는 휴가를 신청했고, 한 달이 지나서야 승인되었다. 그는 지금 기지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짐을 싸고 곧바로 L 동 행정사무실로 달려갔다.

행정실 문 앞에서 전산보안주무관 손인섭 요원이 물었다.
"휴가받았어?"
"예, 주무관님은 어제 복귀하셨다면서요? 휴가 괜찮으세요?"
"이번 휴가? 묻지 마 인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려면 보고서 열 장은 나올 거다. 그나저나, 킬리언 박사가 자네 찾던데, 한번 얼굴 보고 가지그래?"
"아, 제가 지금 좀 급해서 나중에 전화한다고 전해주세요. 휴가 끝나고 봬요."
그는 곧바로 행정실로 들어갔고, 한 시간 뒤 그는 제222k기지 밖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를 기지 바깥으로 끄집어낸 그의 친구가 떠오른 그는 전화기를 꺼내 그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몇번 가더니, 전화기가 꺼져있다는 사무적인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약간의 불안감과 함께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차에 올랐다. 재단 공학지원부 소속답게, 그의 차는-비록 허가되어 있진 않았지만-각종 변칙기술로 개조되어 있어 원래 차종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

차의 시동을 켜고 페달을 밟았다. 그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예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기계 다리는 그때부터 초초한 듯 떨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가 운전을 시작한 지 몇 시간이나 되었을까, 창밖에는 무진 특유의 신비로운 안개로 자욱했다. 그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최근에 본
그는 무진 Mujin 1㎞라고 쓰여진 이정비를 보았다.

라디오에서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무진시 병천읍에 위치한 시체 비누 주식회사의 공장에서 가스 폭발 사고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현재 추정 피해자는…”
"역시 한국의 사일런트 힐이야. 우리 재단도 참 고생한다니까." 무진시에서 터질만한 사건들을 머리속에 찬찬히 떠올려 보며, 대체 어떤게 터졌길래 재단이 나섰는지 상상하던 중,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자네 지금 휴가 나온 거야? 지금 어디야? 왜 말 안 했어?!" 킬리언 박사였다. 꽤 다급한 목소리였다.

"아, 고막 터질 뻔했네. 갑자기 무슨 일이세요?."

"자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네. 당장 돌아와. 자네를 위해 하는 말이야."

"웬만한 일 아니면 절대로 복귀 안 해요. 방금전에 라디오에서 나온 일 때문에 그래요? 아님 혼돈의 반란이 기지 습격이라도 했어요? 아니면 기지에서 케테르급 하나 탈주했어요?"

"아니…. 음..젠장. 설명할 시간 없어. 긴말 할 거 없네. 당장 복귀해."

"하이고, 우리 킬리언 박사님이 또 왜 이러실까. 제가 휴가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잖아요.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죠? 하긴, 무슨 일 있었으면 문자로 복귀 공지 보냈겠지."

"아오, 좀, 제발. 자네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같은 말 하지 않겠네. 당장 복귀해."

"어제까지만 해도 휴가 곧 승낙될 거라고 하시던 분이 왜 이러세요. 2주 뒤에 복귀하면 술 한잔 살게요. 나중에 봬요."

"야, 너 잠ㄲ."

"뚝."

어릴때부터 무진에서 살아온 그는 6년만에 다시보는 무진의 안개가 새삼 반가웠다. 킬리언 박사의 갑작스러운 전화 덕분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친구들, 컴퓨터 몰래 하다 맞아죽을 뻔한 일, 안개, 자신의 집, 무진시,

그는 킬리언 박사가 갑자기 왜 저렇게 성질을 냈는지 생각을 해보기 시작했다. 그는 갑자기 하나의 가능성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갑작스럽게 불안감에 휩싸였다. 킬리언 박사는 재단 내에서 유일하게 그의 비밀을 아는,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페달을 밟고 있던 그의 발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는 제발 아니기를 기도하며, 페달을 밟았다. 차가 안개를 뚫고 달렸다. 그는 안개가 그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불길함은 산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그는 차를 세워두고 어느 폐가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끼어있는 안개에서 즐거운 추억이 새어나와 그를 스쳐 지나갔다. 아무도 없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그가 사두었던 컴퓨터는 홀로 남은 마우스와 키보드만이 그것의 존재를 증명했다. 친구들과 가지고 놀았던 보드게임들의 말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천장에는 거미가 거미집을 짓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각종 상상을 하며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있었지만, 그가 생각하던 최악의 상황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황이 되어있었다. 정신이 멍해졌다. 기절할거같은 두통과 토할거같은 역겨움이 느껴졌다. 기절할거 같던 그의 정신을 깨운건 작은 소리였다.

"툭"

천장 위의 거미가 떨어졌다. 아니, 자세히 보니 거미가 아니었다. 정교한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부서진 신의 교단의 예술품이었다. 이내 거미가 집 밖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머리속으로 어떤 가능성을 생각했다. 희망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처럼 많던 불안감이 불러온 절망감은 희망의 존재를 깡그리 잊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절망감과 불안감으로 거미를 따라 움직였다.

그의 기계 다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톱니바퀴와 태엽이 돌아가면서 똑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다리가 곧 고장날 것을 직감했다. 지금 차로 가면 수리키트로 수리할 수 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늦어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을 거 같았다.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그는 또다시 넘어졌다. 지금까지 몇번이나 넘어졌는지 그도 알 수 없었다. 몇시간동안이나 쉬지않고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달린 덕에 자신이 지금 거미를 쫓아가고 있는건지 허깨비를 보고 있는지도 헷갈렸다. 점차 눈앞이 흐려지더니, 세상이 끝났다.

몇시간이나 지났을까, 또다시 그는 일어났다. 지금까지 몇번 기절했는지 알 수 없었다. 신기한 것이라면, 그 거미는 그가 쓰러졌을 때는 멈춰있더니, 그가 일어나면 다시 움직였다는 것이다. 마치 그를 기다리며, 빨리 따라오라는 듯이 말이다. 그는 그 거미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그말을 다르게 말하자면 거미가 사라진다면 그의 모든 것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그는 필사적으로 거미를 쫓아갔다.

또다시 눈앞이 흐려졌다. 힘들어서 정신이 희미해진 것이 아니였다. 정신은 그 누구보다도 멀쩡했다. 그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그의 눈앞을 가렸을 뿐이였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리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산산히 부서졌다. 주저앉아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마을에 항상 풍기던 매캐한 매연 냄새가 나지 않았다.

밤이던 낮이건 항상 시끄럽게 돌아가던 공장 소리가 나지 않았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그의 공부를 방해했던 어린아이들도 없었다.

눈물은 그의 얼굴을 타고 내려와 땅에 떨어졌다. 아쉽게도, 그에게는 목놓아 울 시간조차 주어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