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게 바치는 장송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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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번호: SCP-291-KO

등급: 안전(Safe)무효(Neutralized)

특수 격리 절차: SCP-291-KO는 제 19기지 고문서 보존용 특수 객체 보관함에 보관한다. 대상을 사용하려는 인원은 선임 연구원의 감독 하에 대상을 사용하여야 한다.

20██/██/██일 이후로, SCP-291-KO는 무효로 재분류되었다.

설명: SCP-291-KO는 약 19세기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피아노 악보이다. 대상은 중간 음과 낮은 음을 주로 사용한 차분하고 장엄한 곡조의 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제목은 극도로 거칠게 휘갈겨 쓴 프랑스어로 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나 식별이 불가능하다. 대상의 표면은 누렇게 변색되어있으며 납이 다량 검출된 신원미상의 인간 남성 혈액이 모서리 부분에 손가락으로 쓸어낸 듯 한 형태로 묻어있다. 대상은 █████ ███ ███의 한 민가의 거실 피아노 위에서 발견되었으며, 발견 당시 이전 소유주로 추정되는 남성의 시신과 수첩이 함께 발견되었다.

SCP-291-KO는 대상을 보고 피아노를 연주할 떄 발현된다. 누군가가 대상을 이용하여 피아노를 연주하려 시도할 경우, 해당 인원은 이전에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더라도 정확하게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게 된다. 이 때의 연주는 어떤 인원이 연주하는가에 상관없이 똑같이 연주하며, 이 때의 연주는 초반에는 조용하고 차분하다가 점점 격양되어 후반부에는 거칠고 난폭한 음색을 띈다.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는 인원은 이러한 변칙성에 영향받지 않는다.

대상을 이용하여 피아노를 연주할 경우, 연주자의 주변에 흰 안개가 깔린다. 이 안개는 미량의 염화나트륨, 알부민 및 글로불린, 리소자임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연주가 끝날 때까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 이 안개는 연주자의 감정 상태에 의해 상태가 변화한다. 연주자가 "무겁고 가라앉는 듯 한" 감정 상태를 보일 경우 안개가 더 진하고 두꺼워지며, "밝고 가벼운 듯 한" 감정 상태를 보일 경우 안개가 밝은 노란색을 띄는 빛을 방출한다.

SCP-291-KO를 연주할 경우, 연주자가 잊고 있던 기억이 안개 속에서 출현한다. 이는 연주자가 기억하고 있던 기억의 형식에 따라 음성, 활자, 영상 등으로 안개 속에서 외부 관찰자에게 목격된다. 이 때 연주자는 안개 속에서 출현한 기억을 직접 관찰하지 않더라도 떠올릴 수 있으며, 보통 이러한 기억의 출현에 따라 극적인 감정 변화를 보인다.

추가적으로, 대상을 연주할 때 때때로 연주자가 아닌 어떤 특정한 누군가의 기억이 목격된다. 이러한 기억들은 아마도 18~19세기경의 작곡가 남성의 것일 것으로 추측되나 해당 기억의 주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대상은 20██/██/██에 격리실에서 연소된 재로 발견되었다. CCTV에서 녹화된 영상을 확인한 결과 대상은 대상의 우측 하단 모서리부터 갑자기 발화하였으며 이후 천천히 타오르며 완전히 연소하였다. 대상이 연소되는 동안 대상에 수록된 곡이 연주되는 소리가 같이 녹음되었으며, 연기 사이로 신원미상의 인원이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대상을 작곡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대상과 대상을 재현한 복제본을 이용한 실험에서는 변칙성이 발견되지 않았기에 SCP-291-KO는 무효로 재분류되었다.

발견 당시 같이 발견된 문서

피아노를 연주할 때마다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약간의 행복했던 추억과 미쳐버릴 것 같이 고통스러웠던 악몽들이다. 환하게 불타올라 내 손에서 빠져나간 추억들을 다시 붙잡으려 할 때마다 땅속에 묻어둔 끔찍한 악몽들과 고통들이 무덤에서 되살아나 내 발목을 붙들고 내 심장을 찢는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 이 고통보다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는 고통이 더 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무관심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무르게 만들었다. 망각은 그런 나를 가차없이 깎아냈다. 친구들과 같이 놀던 기억들, 내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 내 삶의 원천까지. 나는 망각으로부터 내 기억들, 즉 나 자신을 보호하려 그것들을 부둥켜 안고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그는 나를 이루는 모든 것들을 가져가버렸다. 그때 이 악보가 내 손에 들어왔다. 헌책방에서 산 낡은 책 안에 끼워져 있던 악보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연주해보며 나는 내가 이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기 시작한 이유를 되찾았다. 이 이후로 점점 이 곡을 연주하는 시간은 늘어만 갔다.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기억, 처음으로 기르던 강아지가 죽었을 때의 고통, 그리고 부모님이 노환으로 돌아가시던 그 날까지 전부 기억할 때까지 미친 사람처럼 연주만을 계속해댔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떠올릴 기억이 남아있지 않다. 심지어는 어제 뭘 먹었는지, 술집에서 어떤 술을 마셨고 누구와 만났는지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악보가 나에게 그걸 알려줬다.

이 악보의 마지막을 채울 것이다. 그게 내 할 일이다. 다른 이의 기억은 망각에서 꺼내주었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망각 속으로 들어가버린 이 곡의 마지막을 채워주는 것이다. 이 악보의 마지막 빈칸 한 줄을 이 악보가 잃어버린 것들을 위해 쓸 것이다. 이 곡은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에게 바치는 장송곡이다.

내 생에 마지막 와인을 마시며 건배하겠다.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린 모든 것과 모든 이들을 위해서. 이제 지쳤다. 여기가 내 끝이다. 내가 악보에 fin.을 적어놓은 것처럼 내 인생이라는 한 권의 소설도 여기서 끝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