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산업 활성화

호루라기 소리 한번 우랑차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솔직히 말해서, 나는 코르크 쪼가리 몇개와 구멍이 만들어내는 음이라곤 믿을 수가 없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머리가 떨어져 나가 소리칠 입이 없는데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소대장의 목에서 호루라기를 벗겨내어 불어봤다. 지랄맞았다. 그의 목에서는 여전히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며 멋들여진 파랑색 군복을 적셨다. 아, 바지는 빨강색이니까 젖어도 괜찮겠지.

저 훈족 놈들이 우리랑 완전히 동일한 무기를 쓸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께는 파브리스가 가슴에 총탄을 맞았다. 지금은 안정되서 다행이지만 어제까지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무리하다 자칫 척추가 무너질 뻔 했다. 지금은 쥐 죽은듯 조용히 바닥에 누워있다. 다행인 점 하나는 저 놈들이 악마의 가스 수류탄을 갖고 있진 못했다. 방독면을 썼는데도 주위 동료들이 발광해 꽁지 빠지게 도망치는 그 꼴하고는. 하! 마지막으로 수행한 교전에서는 수류탄으로 6놈이나 잡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진흙 구덩이를 기어다니는 꼬라지가 볼 만 했다.

무인지대는 아직도 시끄럽다. 몇몇 놈들은 철조망에 쓸렸는지 혼잣말을 하며 돌아다닌다. 우리 중대원 200명 중 아마도 179명 정도는 저기서 피떡이 되가지고는 비명을 지른다. 나머지 20명은 참호에 파여진 임시 병원에서 그러고 있다. 난 이 지역 인근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전투 수행이 가능한 병력이다.

후방에서 보충병과 명령, 지원과 보급은 떨어진지 오래다. 시간은 이미 1919년의 크리스마스를 지났다. 그 이후로는 세보고 싶지도 않다. 뒤에서 새로운 양말이랑 장화가 좀 왔으면 좋겠는데, 참 아쉽다. 뽀송뽀송한 의복은 꿈에서나 봤다. 따듯한 음식도 그립다. 식사를 못한지 정말 오해됬다. 싸우다 보면, 식사를 하지 않아도 죽지 않았다. 배고픈건 어쩔 수 없지만 흙을 파먹어야 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지금 곰곰히 되짚어보니 1918년 11월 11일 이전이 싸우기에는 더 좋았다. 그때는 맛이 구리긴 했어도 그나마 따듯한 음식도 있었고, 훈 족 놈들을 좀 쏴죽인다고 귀 아플 일도 없었다. 총알도 그렇게 아끼면서 쏠 정도는 아니였다. 지금은 내 주머니춤에 남아있는 7mm 5발이 전부다.

나는 영국 육군 소속 보병장교 토마스 카터다. 현재 전 프랑스군 담당 전선을 수색하고 있다. 그 '신무기'의 도입 이후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전열은 급속히 붕괴됬다. 전방은 전혀 통제되지 않고 있으며, 그나마 상부와 연락선이 닿는 부대는 영국군과 벨기에군, 그리고 극소수의 전략 예비로 편성되있던 프랑스군이다. 우리는 그 빌어먹을 신무기 따윈 쓰지 않는다. 이미 독일제국은 붕괴하고,지옥에 대한 처벌을 묻기 위해 개발자들에 대한 수배가 진행됬으나, 뭐… 우린 모르겠다.

당연히 우리는 그 악마의 물건들을 쓰지 않는다. 지금 무슨 꼬라지가 났는데, 감히 누가 어떤 용기로 그걸 쓰겠나? 우리 소대의 목적은 프랑스군이 담당하던 참호를 수색하고, 생존자를 찾아 귀환하는거다. 주둔지에 근접 할 수록 비명소리가 커졌다. 어두침침한 날씨와 맞물려 주둔지의 연병장에선 바로 묵시록의 4기사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아니, 묵시록의 4기사가 부르는 나팔 소리도 들렸다. 알고 싶지 않은 이유로 기상나팔은 반병신인 상태로 가동되고 있었다. 목 쉰 사람처럼 울어대는 나팔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며 우리를 환영했다.

"이거 원, 살아있는 개구리 새끼라도 있겠습니까?"

해리가 내 옆에서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모두 형용할 수 없는 공포에 휩사인 와중에 해리가 그나마 정신을 잡고 말을 이어나갔다.

"소대장님, 저기 야전병원으로 추정되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나는 내 권총을 고쳐들고 야전병원의 문을 걷어 찼다. 내부에는 원래라면 시체여야 될 여러 구의 인간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생명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다. 가운데에는 군의관으로 보이는 한 명의 장교가 넋을 놓고 앉아있었다.

"Sortez d'ici! Voici l'enfer!"

"미친, 뭐라는거야? 불어 할 줄 아는 사람?"

그 군의관은 미친듯이 허공에 팔을 내저으며 우리를 위협했다. 그가 튀기는 분비물에 의료 기구는 이미 오염 될 데로 오염됐다. 그나마 갈색 종이에 적어 온 하나의 불어를 말했다.

"E….Etes vous survivant?"

"Tais-toi! S'il vous plaît, sortez-vous ici!"

갑자기 여러개의 야전침대 너머에서 알 수 없는 물체가 움직이며 내는 소리가 들렸다. 천쪼가리가 순식간에 휘날렸다.

"Oh non. Ça arrive."

그 순간, 사람이라곤 볼 수 없는 살덩어리가 군의관을 덮쳤다. 강철 파편과 혐오스럽게 요동치며 파도를 만들어내는 인상깊음의 조화는 다시는 보지 못할 작품이였다. 피부 곳곳에는 시궁쥐만한 종기가 솟아올라 이미 충분히 어두운 피부를 더욱 더 어둡고 보기 흉하게 만들었다. 나도 볼 건 볼만큼 생각했었으나, 그 생각이 짧았다. 나는 패닉에 빠져 권총의 6발을 모조리 비웠다. 총알은 당연히 살을 찢고 들어갔고, 그 괴물은 빡쳤다.

내 부하들이 생존을 위해 사격하고, 볼트를 당기고, 전진시키고, 조준하고, 사격하는 동안 난 침대 뒤로 빠졌다. 총을 직각으로 꺾어 다시 6발을 집어넣은 후 상체를 들어 너머를 봤으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그 괴물이 정신을 훑어내는 눈빛으로 날 응시했다. 괴물은 입가에서 김을 뿜으며 내 근처로 아주 천천히 다가왔다. 여우사냥에선 여우가 거의 죽어가면 볼 것도 없이 천천히 다가온다지. 총은 내가 들었지만 사냥꾼은 저놈이였다.

심장이 벌렁거리며 생각이 빨라졌다. 가슴에 메달려있던 수류탄 두개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핀을 뽑아들었다. 어차피 죽을거, 동반자라도 있으면 좋을테지.

"와봐라 괴물새끼야! 어디 한번 같이 가보자꾸나!"

밝은 섬광이 눈 앞에서 번쩍였다. 그 놈과 나는 서로 좁디 좁은 야전병원은 너머 반대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 저 자식도 살아 날 수 없을 만큼의 치명상을 입었다. 고개를 아래로 숙여 몸을 확인했다.

맙소사, 죽지 않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