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졸려쓰기귀차나

세상은 어쩌면 그저 흰색과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거대한 공장처럼 생겼을지 모른다. 그 거대한 무채색의 굴레에서 나는 오늘도 기계에 새로 끼워맞추어질 톱니바퀴가 되기 위하여 끝없이 발돋움한다. 철내음과 기름 냄새를 내 지독한 장미향을 가릴 향수로, 굴뚝에서 뿜어져나오는 검은 연기를 내 볼품없는 붉은 꽃잎들을 가릴 옷으로 삼고 좁은 시멘트 바닥으로 내 몸을 이끈다.

수업을 알리는 요란스러운 종소리가 교사 곳곳에 울려퍼진다. 시끌벅적했던 복도와 교실은 곧 장례식장처럼 씁쓸한 적막함만이 감돈다. 무챠샥으로 물들어가는 이들이 똑같이 생긴 옷을 입고 똑같이 생긴 책과 볼펜을 들고서 차갑고 단단한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칙칙한 녹색 칠판에 시선을 맞춘다. 곧 무채색의 화가가 교실에 들어온다. 화가가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집어든 어두운 빛깔의 분필들이 칠판 위를 바쁘게 뛰어다니며 그림을 그린다. 마치 칠판을 녹색 대신 보다 더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하려는것처럼. 그럴때마다 모두들 딱딱하면서도 둔탁한 분필 소리를 음악삼아 그림의 단 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고개를 앞으로 내뺀다.

얼마나 되었는지도 알수 없을, 온몸의 감각을 녹슬게 만들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한번 요란한 종소리가 교사 곳곳에 울려퍼진다.

그것만은 무언가 달라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