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 내 편집자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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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일
날씨 모름. 밖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름.

오늘도 평소처럼 업무를 진행했다.
박사까지 딴 사람들, 최소한 고등교육 이상을 받은 최고의 두뇌들을 가진 사람들이지만 생각보다 국어는 잘 못한다. 오타, 문법적인 오류도 잦다.
그나마 연구원들이 보내는 문서면 차라리 낫다… 현장 요원이 쓴 보고서 고치다보면 미칠꺼 같을 때도 있다. 가끔 보면 고등학교는 나왔을까 싶은 글들이 있고는 한다.
오늘도 그런 문법이고 오타고 엉망인 보고서를 붙잡고 말이 되게 바꾸는 작업을 하다 보니…오늘도 머리가 아프고 모니터 처다보느라 눈이 아프다.
괜히 이것저것 너무 찾아봤나. 오늘 몸 상태도 별로 안좋은데 말이다.

지금 일기를 쓰고 있는데도 내 손끝이 두개로 보인다. 손 끝이 두개면 손가락이 몇개지…손가락 20개…발가락 20개…내가 변칙개체인가…

내가 한글 지킴이 문법 지킴이 이런건 아닌데, 이 일을 하고 있으면 자연적으로 문법에 트라우마라도 생길 기분이다.
되다 와 돼다 는 좀 구분해 줬으면 하고 바라고, 그치만 같은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알았으면 좋겠다. 박사라는, 연구원들이라는 놈들이 인터넷 드립은 왜 써먹는거지. 갓치만은 개뿔이.
외않된대? 쓴 새끼는 분명 그냥 엿먹이려고 쓴것이 틀림없다.

그렇게 이것저것 고치고, 덤으로 이것저것 참고하고 둘러보는 와중에 옆옆옆자리에서 비명이 들려왔었다.
똑같은 일을 하던 ███가 "니들은 양변기의 기분을 알아? 마! 내가 양변기 일을 하면서! 응?" 하면서 발광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려니 하면서 내 일을 하려고 했는데, 멱살잡이를 당했다. 왜 하필 나인거였을까. 오늘도 할일이 많단 말이다.
결국 내 멱살을 잡고 한참을 탈탈 털다가 보안팀에 끌려갔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SCP-234-KO 을 교정하다가 첨부된 링크에서 밈적 재해에 오염되었다고 한다. 부주의하게 밈적재해를 그대로 보낸 이름모를 연구원씨도 그렇지만, 그걸 링크가 있다고 클릭하는 행동도 참으로 비효율적이다.

물론 연구원들이 조금만 더 신경썼더라면 내가 멱살을 잡히고 시간을 쓸데없이 써먹는 일 같은건 없었겠지. 분명 모든 연구원들에게 따로 주의사항이 가 있는것으로 안다.

"교정을 보낼때는 보안등급 3등급 이상의 정보가 포함되지 않도록 하며, 혹시 필요성이 있을 경우에는 문의 후 해당 등급 교정이 가능한 인원에게 보내도록 합니다. 또한 밈적 재해등이 포함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 주세요"

그 "해당 등급 교정이 가능한 인원" 은 우리같은 말단이 아니라, 제대로 밈적인 훈련까지 받은 사람들이다. 연봉도 우리랑은 비교도 안된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별로 부럽지는 않다. 여기서도 종종 죽어나가거나 미쳐나가는데, 거기서는 2,3일에 한번은 죽는다는 이야기를 건너건너 들었다.
물론 거기 가면 보안등급 3등급 이상의 정보를 열람하고 교정할 수 있을테지만, 안전이 우선이다.

아무튼 나가지도 못하고, 숙소라고 주어지는 방한켠에서 자고, 인터넷도 보는것 외에 올리거나 쓰거나 하는 소통이 허가가 안되니 지루할것 같지만, 다들 각자 생각보다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현실도피일지도 모르겠지, 본걸 잊고 현실을 잊고 싶다는. 그걸 아니까 재단에서도 한사람에게 지나친 일을 주지 않는것이라 생각된다. 하루에 6~7시간 정도면 일을 끝내는 게 대부분이다. 내 경우는 조금 넘기지만.

할 수 있는거라고는 만화보거나 소설보거나 방송 보거나 하는 게 전부지만, 나름 다들 괜찮게 살고 있다. 드립을 친다더나 드립을 친다던가 드립을 치면서.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왜 나루토 분신술을 하고 앉아있는걸까. 군대보다 더 지루하다는건 이해하지만. 그 와중에도 문법적인 드립은 안치더라. 하긴 다들 지겹겠지.
아무튼 그렇게 노는게 괜찮은건지, 괜찮은 척 하는건지,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건지는 본인들만이 알고 있겠지만.

다들 그렇게 현실을 잊으려 노력하는 동안, 나는 차라리 사색하는게 낫다고 느낀다. 그 쓸데없는 방송이나 책, 인터넷 사용으로 얼마나 많은 전기가 낭비되는지나 알까. 그딴짓을 하기 위해서 몇그루의 나무들이 희생되고 환경이 오염되고 자연이 망가지는걸까.
오늘따라 되게 우울해진다.

계약서 쓸때 2년 이상 일해야 한다는 독소조항이 없었으면 당장이라도 나갔을 것이다.
기억소거를 받는다고 해도 상관 없으니.

근데 내가 계약 기간 끝날때까지 살 수는 있으려나.
살아도, 미치지는 않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고생했어

내일도 힘내야지

-재단 내 계약직 편집자 ███의 일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