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박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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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은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멀리 보이는 전화박스로 향했다. 다리를 끌 때마다 하얀 눈밭에 핏자국이 남고는 했다. 추적자가 도착하기 전에 아직도 내리는 저 눈이 핏자국과 발자국을 가려주기를 기대하지만, 어림도 없는 기대인것을 잘 알고 있다.

간신히 도착한 전화박스에 선 톰은 한쪽 벽에 비스듬히 기대 다리에 가는 부하를 조금이라도 줄이려 노력했다. 동시에 손을 주머니에 넣어 지갑을 찾았다. 아무리 재단까지 가는 직통 라인 번호라도 동전은 있어야지 전화를 걸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데, 주머니에 지갑이 없었다. 아니, 주머니가 아예 없었다. 자켓 주머니는 이미 찢어진지 오래라는 것이 톰의 머리를 스쳤다. 총을 피하면서 비껴 맞아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이 박살남과 동시에 자켓이 찢어져 공중전화까지 찾아온게 아니던가.

톰은 바지 주머니에 무엇인가를 넣고 다니는 습관은 없었기에 한숨을 쉬고 털썩 주저앉았다.

"보고도 못하고 이렇게 죽는거려나"

이대로 가다가는 추적자에게 살해당하는 수 밖에 없을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다른 방법이라도 찾으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중, 전화기 아래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톰의 눈에 들어왔다.

눈을 살짝 찡그려 자세히 보자, 다행히 동전이었다.

톰은 아픈 다리를 움직여 자세를 바꾸었다. 좁은 전화박스에서 다리는 모아서 굽히고 업드려서, 긴 손가락을 그 아래로 뻗었다.

"으…이익…이거 왜 이렇게 안닿아…"

누군가 저기에 동전을 떨어뜨리고 줍지 않은데는 이유가 있다며 동전이 비웃는 듯 했지만, 톰은 억지로 손가락을 넣어 동전을 꺼냈다.

꺼낸 손가락은 심하게 긁혀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디야." 톰은 그리 말하며 동전을 집어넣고 재단의 직통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예 행복한 피자입니다. 전화주문은 15배의 가격이 청구되며…"

재단 직원이 통상 위장 정보를 읇자, 톰이 말했다.

"기밀이 아니면 어쩔 수 없고, 기밀이라면 엿이나 처먹으라 그래."

정해진 암구호가 톰의 입에서 나오자 수화기 저편에서 상대가 투덜거림과 함께 되물었다.

"암구호가 왜 이모양인지 모르겠다니까 진짜…매번 기분 더럽네. 그래서 어디로 연결해드려요?"

"어디다 연결해야 하는지 모르겠는데… 내부에서 배신자가 나왔으면 어디다 연결해야 할까"

수화기 저편에서도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녹음 시작했습니다. 우선은 일차적으로 여기 얘기하시면 됩니다."

"현 위치 런던 뒷골목. 도망가느라 자세한 위치는 모르겠고, 기동특무부대 세타-26 -26 소속 제리가 배신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요원은 사살되었으며, 현재 남은 생존자는 톰, 내가 유일하다. 이 통화 이후로 이 라인을 포함한 기동특무부대 세타-26이 가지던 비상라인 폐기를 요청한다"

"세타-26이면…미친 잠시만요"

수화기 저편이 소란스러웠다. 상대가 상급자를 찾는 모양이었다.

"우선 녹음되고 있으니까 자세한 사정은 이야기하고 계시면 될듯 합니다"

톰이 어쩔수 없이 지친 목소리로 사정을 읇는 동안, 수화기 저편은 더더욱 소란스러워졌다. 이제는 수화기 저편에서 톰을 말을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니까 작전지역 A-23에서…"

"에? 뭐라고요? 하나도 안들립니다! 조금만 더 크게 말해주세요!"

톰은 한숨을 내 쉬고는 결국 있는 기운 없는 기운 다 끌어 모아, 전화박스 내에서 홀로 소리질렀다.

"그러니까! 작전지역! A! 다시! 23에서!…"

"아 잠시만요! 상급자 바꾸어 드릴께요!"

"아니 듣던 설명은 마저 듣고 가야지! 저기요! 저기?"

수화기 너머에는 다시 소란스러움만이 가득 찼다.

"후우…오늘따라 더럽게 담배가 땡기네."

담배를 찾으러 주머니를 뒤적거리던 톰은 자신에게 담배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사실은 주머니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거기, 들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