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돌던 톱니바퀴

할아버지가 계셨었다.

여느 할아버지와 다름없이 누구보다 손녀를 사랑하시는 그런 분이었다.

한가한 주말이나 특별한 날에는 항상 부모님과 함께 울창한 숲속에 구불구불한 길을 타고가면 나오는 할아버지의 오두막에 찾아가곤 했다.

그 오두막은 빽빽하게 들어차있는 나무의 벽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오두막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아름다운 호수도 있었다. 그 호수에서 할아버지와 엄마는 단둘이 작은 배를 타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하셨다.

할아버지의 오두막은 왠지 숲 밖의 세상과는 달랐다. 아마 시간이 멈춰있는 거 같았다는 표현이 적절하리라.

그곳에 기계는 전부 태엽장치로 작동하는 기계 밖에 없었다. 당연히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실 같은 것도 없었고, 요리는 불을 직접 피워 했다. 부모님은 그걸 굉장히 불편해 했지만 나는 마냥 신기하고 좋아했다.

할아버지의 방 벽은 온갖 크고작은 시계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아마 30개는 넘었던 것 같다. 그 좁디 좁은 방 안에 시계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으니, 그 방에 들어가고 문을 닫는 순간 방 안을 가득 채운 시계의 소음들이 내 머리를 때렸었다.

그 방 안에서만 맡을 수 있었던 금속 냄새. 그 방 안에서만 들을 수 있었던 소음들.

나는 다시는 그 냄새를 기억할 수 없었지만, 그 소음만은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일과 사람에 치여 밤이 다 되서야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쓰러지듯 침대에 몸을 맡기고 캄캄하고 좁은 방 안에서 귓가에 울리는 이명과 시계의 째깍 소리 밖에 들리지 않을 때. 나는 할아버지의 방 안에서 들었던 그 소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태엽이 맞물리고, 초침이 째깍이고, 그 미친듯이 울려퍼지던 불협화음의 합창을 기억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와의 기억에서 유일하게 불쾌한 부분이지만, 이젠 그것마저 그립다.

할아버지는 날 위해 온갖 장난감들을 만들어 주셨다. 가장 처음에 받았던 건 태엽을 감으면 걷기 시작하는 로봇이었고, 그 다음에는 태엽을 감으면 뛰기 시작하는 로봇이었고, 그 다음에는 태엽을 감으면 춤추기 시작하는 로봇이었다. 그 뒤로도 나는 수십개의 작은 태엽 기계들을 받았다.

그것들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한줌 정도 뿐이다. 나머지가 어디로 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날 위해 만드셨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바로 잠수함이었다.

할아버지는 기대로 가득찬 얼굴을 한 나를 호수로 데려가셨고, 호수 옆 물가에 위풍당당하게 쳐박혀있는 잠수함을 보여주셨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완전 방수'와 '조종 가능'을 몇번이나 강조하셨고, 나는 그 태엽 잠수함의 회색 빛깔과 웅장한 자태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잠수함에 완전히 겁에 질렸던 부모님이 그날 밤 몰래 고철 장수를 불러 그것을 해체해버림으로써 그 잠수함이 과연 작동했을지 안 했을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버렸다.

나는 그것이 분명 작동했을 거라고 믿는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와의 기억에는 항상 태엽과 볼트와 너트, 기름 냄새가 함께였다. 할아버지와의 추억 속에는 차가운 금속과 끈적한 기름 냄새가 배어있었다.

그 냄새를 정말 좋아했다. 이젠 기억나지 않는 냄새지만.

할아버지와의 시간의 마지막 즈음은 그해 가을이었다.

할아버지는 점점 서있는 시간이 줄어드셨고, 하루의 대부분을 앉거나 누워서 보내셨다.

더 이상 할아버지는 작업실에 발을 들이지 못 하셨고, 나는 그 마법 같은 태엽 장난감들을 다시는 받지 못 하게 되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몸에서 생명이 서서히 빠져나간다는 것을 느꼈고, 할아버지는 더 이상 죽음과의 사투에서 승기를 잡지 못 하셨다.

그 시절 나는 부쩍 말이 없어졌고, 할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조차 입을 열지 못 했다. 아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리라. 어린 소녀가 죽음에 대해 뭘 알겠는가. 그저 그것이 무섭고 슬픈 것이란 걸 알 뿐이지.

내가 침대에 누워있던 할아버지 옆에서 제자리만 빙글빙글 도는 조그만 태엽 강아지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때, 할아버지가 내게 뭔가를 말하시려다가 입을 다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때 할아버지가 내게 무엇을 말하려 하셨던 건지 지금도 감조차 잡을 수 없다.

끝이 오고있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고 있던 노인이.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작은 존재에게 하려 했던 말을. 입을 뗐지만 소리를 삼키고 묻어둬야 했던 그 말을. 어느 누가 그걸 짐작할 수 있을까.

할아버지가 세상과 내게서 작별을 고하신 건 그날로부터 한달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