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세계의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재단은 격리해서는 안 될 것을 격리했습니다. 인간이 신과 동등해지기 위해 바벨탑을 쌓고, 결국 그것이 무너지듯이. 인간이 쌓아온 모든 마천루가, 결국은 무너졌듯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바벨탑을 쌓아온 것입니다. 바벨탑의 멸망은 신이 불러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탑을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있지 않았던 것이고, 우연의 일치로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탑이 예측 불가능하게 무너진 것에서 우리는 그 가능성을 '신'이라고 불러왔던 것입니다.
바벨탑은 작은 부분에서부터 부서졌습니다. 제19기지의 격리 실패 건이 그 시발점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만, 저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일어났던 사건을 가장무도회가 부서지게 된 가장 첫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인지, 세상은 더욱 많은 SCP를 생산해냈습니다. 재단의 격리시설은 과포화상태가 되기 일보직전이었죠. O5 평의회에서는 정말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일부 SCP를 무효화한다."
충격적인 결정이었고, O5 내에서도 치열한 토론 끝에 가결 선언이 내려지게 됩니다.
이것이 충격적이였던 이유는 이것이 재단의 가치관 상의 무효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국가가 전염병에 걸린 시민들을 치료하는 단계로는, 처음으로 모든 이를 치료하려 하지만, 의료 시설이 과포화되고 나서는 증상이 경미한 이들을 수용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 단계에 임박했고, 일련번호가 비교적 앞쪽에 위치하고 안전 등급으로 치부되는 이들을 변칙개체 수용소에 모조리 갖다 버렸습니다. 이는 인간형 개체나 동물 개체 등 많은 개체들의 무효화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인공적인 무효화 과정 이후, 제19기지의 격리 파기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상하리만치도 행동했던 이 변칙 개체들은 자의적으로 격리 파기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순히 격리 조치에 응하는가 하면, 아예 격리 과정에 살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케테르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곧 그 어떤 요주의 단체도 아닌 내부 재단 직원의 소행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제19기지의 모든 인원이 강등당한 이후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제19기지의 이사관이며, 재단에 불만을 가진 그 인원이였습니다.
어떤 변칙 개체에 밈적 영향을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는 분위기이고요. 하지만 그것 역시 저의 자아입니다. 저의 생각은 완고했습니다. 재단은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이것은 부서진 가장무도회가 진행되기 위한 초석에 불과했고요.
저는 경고를 하고 싶었습니다.
재단의 본질을 잊는다면 모든 것이 잊혀질 것이라는 걸, 재단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에게 그 일이 닥쳐온다는 걸.
제19기지는 황폐해졌습니다. 별 볼일 없는 것들을 격리하던 탓에, 이곳은 곧 변칙개체 수용소로 지정되었으며, 저와 부하 연구원들은 수용소 직원으로 강등되어 쓰레기장을 치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쓰레기 사이에 케테르 도마뱀이 들어왔습니다.
부하 직원 80명이 썰려나갔고, 그것을 제 눈으로 지켜만 봐야 했습니다.
그리고 녀석의 적응성을 보며, 저것을 재단이 격리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고찰을 나름대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682의 경우, 염산에 담가놓으면 무력화됩니다. 3000의 경우, 그냥 자기가 있던 곳에 처박아두면 됩니다. 그리고 저 녀석은, 우리가 굳이, 굳이 지하 10km에서 발견한 알을 가져다가 부화시키고 나온 새끼 괴생명체를 쓰레기장에다가 처박아놓았기에, 비극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격리 절차의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이제는 '격리' 자체에 문제가 있던 겁니다.
그것은 무럭무럭 자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재단의 다양한 시설을 타격했고, 재단의 자본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때 밑이 없는 독에 물을 붓는 형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 어떤 행동도 지원받을 수 없었기에, 재단은 대외적으로 돈을 벌어오고 인원을 양성해야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모두 바닥나버린 것입니다.
그럼 이제 가장무도회가 부서지냐고요?
아니요, 재단은 가장무도회의 파괴가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것이라고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재단은 자신들의 세계의 비밀스런 수호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어떻게든 외부와의 마찰 없이 모든 문제를 내부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요주의 단체들 역시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고요.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만약, 재단이 이때 대외적으로 사태를 알리고 다양한 단체들과 함께 협업하여 문제를 해결했다면 조금 나아졌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게 지금의 가장무도회 사태보다 덜 심각할 지도 모릅니다. 재단의 인원이 이따금씩 청문회에 불려나가겠지만, 지금의 상황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재단은 무너졌습니다.
가장무도회가 무너진게 아닌, 재단의 존재 자체가 무너졌습니다.
O5는 개체 무효화와 자금난에 대한 의견 차이로 뿔뿔이 흩어졌고, 각각의 직속 기지를 중심으로 폐쇄적인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때 많은 변칙 개체들이 탈출했고, 민간과의 본격적인 접촉이 시작되었습니다. 재단이라는 것이 민간에 알려지기도 전에 재단은 사라졌고, 기지들은 비활성화된 채 무책임하게 방관했습니다. 딱 하나, 제 19기지만을 뺴고요…
당시 유일하게 자금난의 타격을 받지 않은 기지는 제19기지였습니다. 지리적 특성상 변칙 개체 저장소로 지정된 이후에도 외부의 접촉이 크지 않았던 제19기지는 이전에 이미 이사관에 의해 대부분의 시설이 지하화된 상태였습니다. 쓰레기장은 지상에 지어졌고, 괴물의 습격을 받아 무너진 곳 역시 지상부였습니다. 지속적으로 재단의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 자립한 제19기지는 유일하게 재단의 이름을 붙인 기지였습니다.
이때 인원은 총 20명. 이전에 괴물에게 습격당한 이후 남은 전 인원입니다.
그 사이 기지의 장치들로 괴물의 염기서열 분석이 끝났고, 타이밍 좋게 괴물이 800km 반경 민간인 구역에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재단의 마지막 임무를 담고 출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