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바_01

이름, 성동준

출생 성분, 1990/03/16 06시 12분 부산 성모 병원

학력, 부산대학교 외과대학 법의병리학 전공, UPMC 정신 외래&범죄 심리학 박사 학위 취득

경력,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관 3년, 프랑스 정신병리학연구소 외상 후 심리 장애 자문 인단 1년

비고, 지하 공포증

“괜찮네… 에니!”

예, 박사님.

“그 남자 있지? 부검 병리학 부서로 배속, 부탁해.”

본부대로 하겠습니다.

“새로운 커피 메이커가 생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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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도대체 어디야…”

자욱이 낀 안개를 뚫고 택시는 끝없이 비포장 도로 위를 달렸다. 한국에 귀국한 지 3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 ‘친구’ 녀석은 공항에 수속한 즉시 득달 같이 달려들더니 급하게 자문역을 구하는 게 아닌가?

불러 둔 콜택시를 타고 오면 된다고 해서, 냅다 짐을 싣고 탔더만. 1시간 동안 앉아서 가고 있었는데도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말도 안하고 용건만 말하고 끊었으니까.

“저기, 기사님. 콜택시 요청한 사람이 어디로 가 달라고 하던 가요?”

택시 기사는 내 말을 흘깃 듣더니 백미러로 눈을 맞춘다 “내가 뭘 알겠어~ 나도 여기 찍히는 데로 따라가는 건데. 지루하면 라디오 틀어 드릴까?” 말을 끝내고는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아뇨… 아, 사실은 노래라도 틀어주세요.”

내 요청을 들은 기사는 재생 버튼을 누르고 볼륨 노브를 돌렸다. 천천히 키워진 음성은 택시 안에서 울려 퍼졌다. 잔잔한 발라드 곡은 요즘 유행을 알려주며 구슬픈 사랑 노래를 반복한다.
어느새 가을이다. 내가 프랑스로 떠났을 때가 1년 전 봄의 막바지이었을까. 그 때는 벚꽃 타령하는 차트 곡들이 어딜 가건 울려 퍼질 적이었다.

‘시간도 무섭게 흘러가네.’

정말 폭발처럼 정렬적이더니, 무너져 내리는 건물처럼 가라앉은 1년이었다.
프랑스의 최고의 연구 회의에 가면 커리어라던가, 새로운 흥미꺼리라도 쌓일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는 에스프레소 타는 법만 늘었으니 말이다. 무너지는 건물처럼 드높게 쌓였던 내 기대도 말끔히 사라졌지.

모든 게 절박했다. 난 일이 아니라, 무언가 이루고자 하는 성취감이라는 갈증에 목이 탔을 뿐이다. 범죄 현장의 비린내에도 만족감은 없었고, 아무리 실적을 쌓고 상담을 해봤자 더욱더 허기와 갈증은 심해졌다.

결국, 고행 길은 모두 허사였고, 돌아온 고국의 땅은 한 없이 쓸쓸하다. 역시, 만족을 모르는 나 같은 놈에게 알맞은 자극 따윈 없겠지.

“손님은 금방 한국에 오셨나? 공항에서 부터 트렁크가 묵직하던데.” 넉살 좋게 묻는 기사 아저씨는 좌우로 흔들리는 운전대를 꽉 붙잡는다.

“네, 1년 정도 유럽에 있었어요.”

“이야~ 멀리도 갔네. 한국 돌아와서 김치찌개 같은 얼큰한 거 먹고 싶지 않어?”

그러고 보니 위장이 텅 비었네. 귀국한다는 꿀꿀한 마음에 입에 물도 안 댔으니. 공항에서 패스트푸드라도 사올까 싶었으련만. 택시 기사의 말처럼 오랜만에 찾은 한국에서 각별한 식사도 그립긴 하다.
근데 지금처럼 내 행선지 조차 모르는 시점에서 적당한 한식당을 찾을 수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시간이 있어야 말이죠.”

너스레 답해주곤 창 밖으로 지나는 숲에 시선을 뒀다.
내 적당한 말을 듣던 택시 기사는 석연치 않은 투로 중얼거렸다.

“어 그래? 앞으로 한가할 시간은 없을 텐데.”

“예?”

뇌까리는 그 말에 의아함을 느끼곤 무어라 되물으려 했지만. 택시는 이내 속도를 줄여 멈춰 섰다. 손님을 받는 전광등을 키면서, 기사는 창문을 내려 손을 바깥으로 뻗더니, 까맣게 어둠이 내린 어렴풋한 오르막길을 가리켰다.

“다 왔어. 여기가 택시가 가는 길 끝이고. 보이는 저 비탈길로 올라가면 뭐든 나올 걸. 트렁크 열어 줄 테니까 기다려 봐.”

정말 이런 곳에 뭐가 있다는 거지? 한 없이 의심이 들었다.

건물은 물론 전봇대 한 채도 없는 협소한 산길이다. 차 문을 열고 내리자 마자 부쩍 쌀쌀해진 밤 공기가 코트 안을 파고 들고, 소름이 끼치는 와중에 깃이라도 올려서 찬바람을 막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울창한 침엽수와 청색 수풀이다. 찌르르 우는 산 새들은 잠을 자는지 부엉이만이 뜬 눈으로 우웅- 하는 적막한 울음을 스산한 바람에 실어 보냈다.

덜컹거리는 마찰음에 맞춰 트렁크 문이 열리자 택시 기사도 차에서 내리더니, 내 짐들을 함께 내려준다. 내가 괜찮다고 손사래 처도 그는 사람 좋은 웃음만 보이며 힘을 보탰다.

“젊은 사람이 나라 떠나서 고생 많이 했겠구먼.”

“감사합니다. 이건 택시 비…” 내가 지갑에서 오 만원 권 두 장을 꺼내 드리자,

기사 아저씨는 또 한번 손을 내저으면서 돈을 건네는 손을 도로 밀어 보낸다.

“아니, 아니. 됐어! 나도 새파랗던 적에 고국산천 떠나 멀리서 쏘다니던 적이 많거든! 그냥, 늙은이가 괜한 동질감 느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인생 선배로서 싫은 소리 조금 해주겠네. 한국이건 프랑스건 어느 곳이건. 적응하면 편해! 잘 생각해봐.”

“뭐… 아무튼 감사합니다.”

“한국에 잘 돌아왔어.”

영문 모를 충고와 인사를 남긴 기사는 운전석으로 돌아가선 택시를 몰았다. 방금 켰던 전조등은 금방 손님이 생겼는지 다시 전등이 꺼졌고, 빨간 후미등만 남은 택시는 칠흑 속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프랑스에서 있었던 건 어떻게 아신 거지?”

내가 쓴 빵모자 때문인가? 아무튼, 내가 신경 써야 할 건 지금 이 어처구니 없는 현황이다. 친구 놈한테 무슨 호의를 갚아 보겠다고 외진 곳 까지 고생고생하며 왔는지. 이런 음습한 곳에 계속 있다간 엉덩이가 절로 얼어 붙을 것 같다.

“길도 높기도 높지… 어으… 가방은 미어터지네.”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하자 양손에 두 개씩 끌고 있는 캐리어의 무게 때문에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이렇게 생고생을 하게 하면서 부를 만큼 가치가 없는 일이라면 녀석의 머리를 쪼개버려서 부검해버릴테다.

한참을 걷자 이제는 평평한 아스팔트 길이 나왔다. 넓기도 꽤 넓은 수준이 아니라, 그냥 8차선 너비의 거대한 대로였다. 어떻게 보아도 외진 산기슭에 어울릴만한 길은 아니었다. 갓길에는 무슨 군사 시설이라도 근처에 있는지 거대한 표지판과 속도 제한 표지판이 촘촘히 세워져 있다.

!주의!

이 앞 500m 앞으로 민간인 거취 통제 구역입니다. 허가 받지 않은 민간인들은 붉은 전조등 불빛이 있는 곳으로 오셔서 후속 안내를 받으십시오.

주//수원 운송 생산 지부 suwon carrying & production

“…에휴 이게 뭐야.”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기에, 나는 일단 표지판에 쓰인 안내 문구에 따라서 멀찍이 보이는 붉은 잔광을 향해 길을 걸었다. 동시에 전화로 통화 기록에 남아있던 친구 녀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발신음이 한 차례 울리더니, 곧바로 들린 건 ‘이 전화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라는 안내음이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혹시나 하는 바램에 재차 통화를 걸었으나, 결과는 똑같았다.

“그새 전화번호를 바뀔리가 없고.”

그렇게 두어 번 정도 시도하며 걷자, 어느새 붉은 전조등의 불빛이 보이는 곳으로 도달했다.
가까이서 본 그곳의 전경은… 목적을 가진 군사 시설? 이해 못할 형태의 정부 시설임은 틀림 없었다.

5 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높은 펜스에 얼기설기 엮인 철조망이 걸려 있고, 군대에서나 볼 법한 3층 높이 망루와 참호처럼 파진 해자 장애물, 움푹 패인 전차호 안으로 기갑 장비가 잠행한 듯 했다. 펜스 가까이 테두리를 비추며 정신 없이 돌아다니는 손전등 불빛 또한 눈에 띄였다. 빼곡하게 들어선 수풀림을 넘어 하늘 전경에서 산발적으로 적,녹색 항공등을 붉히는 비행체를 볼 수 있었다. 낮은 고도를 날아다니는 저소음 정찰 드론이 확실했다.

결론적으로. 여긴 군사에 준하는 보안 시설이다.
대한민국은 현재도 전시 국가이다. 이런 군 시설은 지방과 시도를 막론하고 설립되어있다. 비록 산업특례요원 출신인 나에게 군부대란 익숙하진 않지만, 삼엄한 경비와 수많은 인력이 동원된 특징을 보면 단편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다.

“도로 중앙에 거수자-!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리고 벌써 걸렸네.
멀뚱히 보고 있는 동안, 길의 구석에 위치한 검문소에서 군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확성기로 소리쳤다. 난 그 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고 큰 목소리로 신분을 밝혔다.

“길을 잃어서 헤매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밤중에 하이킹을 하다가 무심코 왔습니다!”

그 군인은 어깨에 견착한 무전기로 어딘 가와 회신하더니, 빠름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는 겉모습만 봐도 국군 신분이 아니다. 검고 생소한 패턴의 위장복. 서방제 특수 장비. K계열이 아닌 독일의 H계열 소총을 매고 있는 걸 보면, 군사 분야에 관심 있는 정도면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양 어깨 견장, 어딜 보아도 태극기가 달린 패치도 없었다. 군인은 아이 스캔을 돌리는 나에게 대뜸 손을 내밀면서 쏘아 댔다.

“신분증 보여주십시오.”

참 웃기시는 분이네. 국군도 아닌 무장 단체가 신분 검사를 할 권리가 있나?

“그전에 여기가 무슨 시설인지 알려주시죠? 척 봐도 대한민국 국군은 아닌 걸로 보이는데, 민간인 신분 검사는 헌법 12조 1항에 따르면…”

“헌법 전에 제 말에 따르지 않으시면 명령 불이행자로 즉시 체포, 혹은 사살할 수도 있습니다. 신분증 보여주십시오.”

그 군인의 손은 어깨에 걸친 총에 닿아 있었다. …총기 앞에서 헌법 12조 1항은 그리 중요하지 않겠지.

천천히 코트 안에 넣어둔 지갑을 꺼내, 신분증을 뽑아 군인의 손으로 놓았다. 그는 눈대충으로 신분증을 보며 내 얼굴을 한번씩 흘겨보더니, 끌고 왔던 캐리어 가방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이킹 하는데 저렇게 많은 짐이 필요합니까?”

“음… 사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산을 다니다 보면 의도치 않게 며칠을 산자락에서 묵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여긴 마티슨 요원이다. ‘게스트’가 도착했으니 후속 조치 바란다. 짐은 놔두시고 절 따라오십시오.”

지령을 주고받는 듯 무전을 끝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군인은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왜 이리도 불친절한가? 군인이 게스트는 나를 지칭하는 것인가? 물어보고 싶어도 대답해주리 만무한 실정이니, 묵묵히 군인이 가는 그림자를 따라 갈 뿐이었다.

철조망으로 가까워지자, 건문소 너머에 세워진 차량 통제소가 보였다. 일행이 가까워지자 통제소는 도로와 시설 내부를 가로 막은 문을 개봉했다. 거대한 철문이 옆으로 빗겨지며 매서운 마찰음을 자아낸다. 길 안쪽을 따라서 걷자, 예상했던 풍경은 전혀 아니었다. 눈에 걸쳐진 시설은 어느 작은 건물 하나 만을 둘러 보호하고 있을 뿐이지, 군부대의 거대한 막사라던가 유류 창고나 군사 장비가 정차 중인 대형 시설은 어딜 둘러봐도 없었다.

50평 즈음 될만할까 싶은 백색 콘크리트 건물이 광활한 지부의 중심에 덩그러니 솟아 있을 뿐이다.

건물 지붕에는 안테나가 세워졌는데, 이전에 본 붉은 전조등이 그 끝에 걸려 빛나고 있다. 그에 동반해서 어지럽게 얽힌 전기줄을 굵은 전신주 하나가 지탱하고 있었다. 정말 중요한 건물일까? 건물 앞에도 스무 명 이상의 군인들이 보초를 서 있다. 모두가 통일된 복장과 무장한 소총을 어깨에 맨 채로 삼엄한 경계 중에 있었다.

건물에 도달하자 청색 칠이 벗겨진 녹이 슨 문이 열리더니, 각 잡힌 베레모를 쓴 군인이 홀로 나온다. 희끗거리는 흰 머릿발이 스고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중후한 얼굴. 그가 입은 반듯한 흑색 장교복. 언뜻 보아도 영관 장교에 상응하는 높으신 신분 같았다. 그는 나를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훑더니 단 한마디를 고한다.

“충분하군.” 그 장교는 고개짓으로 따라오라는 듯이 제스처를 보냈다.

“아까부터 뭐 하나 제대로 대답도 안 해주네.”

불만을 중얼거리며, 녹이 슨 기괴한 문을 따라서. 천천히,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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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거 성동준 아니야? 넌 6년이 지나도 어떻게 뒷통수 하나가 안 변하냐?”

건물 안, 작은 백색 방의 목재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을 때였다. 무언가 어렴풋이 기억나는 익숙한 목소리가 뒷통수로부터 들린다.

“성,동,준. 우리 오버 스팩 나으리~ 어찌나 보기가 어렵던지, 이런 곳에서 다시 보네?”

저 ‘놈’의 재수 없는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네, 작은 감상을 머리에서 흘리며 들은 채도 않고 면을 걸친 젓가락을 입 안으로 쑤셔 넣었다.

“그래. 오는 길은 어땠냐?”

띠꺼운 물음에 나는 입안 가득 있던 면을 제대로 씹지도 않고 목구멍으로 삼켜 넘겼다. 그리고는 고개를 여전히 마주하지 않은 채로 딱딱하게 대꾸했다.

“6년 동안 만날 시간도 없더니, 귀국하자마자 갑자기 무슨 일이야?”

“원래 내가 그렇잖아. 사람은 변하면 죽어 매사에 한결 같아야지.”

“난 여기가 어딘지, 왜 온 건지, 저 사람들은 누군지, 심지어 내가 먹은 컵라면의 브랜드 까지도 모르겠는데 도움은 무슨 도움? 난 해명 받고 싶을 뿐이라고.”

“얼씨구? 깐깐하게 대하지 말고~! 대학 절친을 6년 만에 다시 만나는데, 이렇게 매몰차기냐?”

나는 검은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는 컵라면 곽을 내려 놓고 고개를 돌렸다.

진유성. 내가 외대에 다니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꽤 알쏭달쏭한 놈이다. 회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단정하게 가르마가 나있고, 살이 상당히 빠졌는지 날렵한 외모가 드러났다. 180의 키에 뒤룩뒤룩 붙었던 살은 온데간데 없다. 녀석은 얇아진 팔을 내게 건네면서 악수를 청한다.
솔직히 저 녀석이 변한 외향은 놀랍긴 하다. 6년 전에는 홀연히 어느 시설에 채용 당했다고 말하더니 간혈적으로 전화로만 대화했으니 말이다.
유성은 친족도, 메신저 앱도, SNS도, 개인 이메일 조차 없으니, 근황은 그저 전화로만 들었다.

유성은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멋쩍은지, 악수를 건넸던 손을 도로 되돌리며 목 뒤를 쓰다듬는다.

“새끼… 어지간히도 쌀쌀해졌네. 내가 너 프랑스 행 티켓 끊는 것도 도와줬는데.”

“용건이나 말해.”

“재미없는 새끼.”

녀석은 내심 삐진 건지 툴툴 거리면서 발을 굴렸다.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더니 손가락으로 창문 바깥을 가리킨다.

“너,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냐?”

난 약간 골똘히 생각하다가, 마지못해 내 방식으로 대답해주었다.

“어딘지는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만한 중요한 곳이라는 건 알겠네. 여기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암호라도 쓰는 곳이야?”

이 정도의 엉뚱한 기밀 시설이라면 충분히 유신 정권 당시 포기했던 전략 핵 개발을 다시 하고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할만 했다. 하지만 유성은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 저었다.

“그럼 다시 질문 해볼게. 넌 지구 상에 우리가 모르는 ‘공포스런 존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예를 들어 흔한 유령이라던가, 한강 지류의 괴물이라던가, 백두산의 수룡이나, 장산범 같은 거 말이야.”

“얼토당토 않는 소리를 하고 있어. 농담 따먹기 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

녀석은 금방 매서운 눈빛으로 돌변하더니 고압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아마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래! 어딘 가에는 있겠지. 어디? 이 지구 속. 멀디 먼 동굴에, 깊은 심해에, 너른 하늘에! 심지어 저 광활한 숲과, 초록빛 들판에서, 아님 우리들이 일궈 놓은 도시, 더러운 하수구, 항구에서, 클럽에서, 높은 빌딩 위와, 저 멀리 청기와집 관사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라. 않그래?”

유성은 속사포처럼 장광설을 쏟아붓곤, 그 말들을 정리조차 하지 않은 채 도취해 있었다. 저 녀석은 해실해실 웃으면서 들뜬 추임새로 테이블 주변을 돌았다. 그를 보고 해줄 수 있는 감탄사는 단 하나 뿐이었다.

“너 정신이 나갔구나.”

“뭐, 아니지! 아니야! 난 그 누구보다도 현실 지향적이야. 확신한다니까? 아님, 내가 살아 있을 이유가 어디 있겠어?”

그렇게 대꾸하더니, 잠시동안 말 없이 눈을 마주쳐본다. 그리곤 의자 하나를 끌어 맞은편에 앉더니. 우리 둘은 턱을 괴고 서로를 마주 보았다.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유성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건, 똥 씹은 표정은 짓지마. 그 표정이 내 하루 일과를 망쳐 놓거든.”

“계속해 봐.”

“만약, 내가 말한 ‘공포스런 존재’가 살아 숨 쉰다면. 우리를 그 혐오스러운 것들을 우리 안에 집어넣는 일을 하고 있어. 유령? 너무 많이 봤지. 괴수? 싱거워, 너무 싱거워. 우린 그 잡것들보다 심오하고 괴리적인 존재들을 이곳에 감춰두고 있어. 어때? 정말 천재적인 발상이지 않아? 그런 것들을 가둬서 세상에서 격리한다니? 누구 두뇌 속에서 뛰쳐 나왔는지 참 기특해!”

“우리들 이라는 건. 네가 속한 집단이겠지? 이 비밀스러운 결사 말이야.”

“맞아, 한국 뿐만이 아니야. 이미 전세계를 잠식하고 있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그저 인간의 절실한 용기와 나약한 지성을 도구로. 그들을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해왔지.
Secure, Contain, Protect.

우리가 바로 SCP 재단이야.”

녀석은 손등을 비비적 거리며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생각해봐. 넌 내가 6년 동안 지체 장애인들이나 차례로 앉혀 놓고 알파벳 나열하게 만드는 연구소에서 썩으며, 한심하게 커피나 타는 처지였을 것 같아? 내가 어느 검사 나리의 명령 아래에서 불귀의 객이 남기고 간 껍데기를 매스로 갈라 가면서 내장이나 들추고 있을 만큼, 따분한 놈으로 보여? 성동준. 넌 너무 순진해. 통 재미가 없어.”

녀석이 말하면 말할수록, 진한 피비린내와 같은 악취가 녀석에게서 풍겨 나왔다. 유성이 말하는 건, 단순히 말을 뱉는 게 아니라 광기에 찌든 호소를 하는 중이었다.

그는 내게 얼굴을 불쑥 들이밀더니. 아주 조심히, 또박또박 읊조리듯 말했다.

“진정한 모험. 여기가 바로 네가 원하던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