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urch-of-the-broken-god-hub-history

GoI-004는 오랫동안 분열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단의 주요 사건의 명확한 시간대를 파악하긴 어렵다. 교단의 기원, 최우선 정책, 중요 인물과 역사적 발전에 관한 상반되는 정보들이 여러 공격적 조직의 공격에서 수집되었다. 재단 사학자들은 교단과 관계없는 종교를 교회의 전신으로 소급적으로 인식하기도 하는데, 이는 재단 사학자들의 큰 문제이다.

Given the fragmented nature of GoI-004, a clear timeline of events involving the Church is difficult to determine. Contradictory information regarding its origins, primary doctrines, important figures and historical development is collected with every raid on hostile cells. The retroactive recognition of unrelated cults as predecessors of the Church represents a significant problem for Foundation historians.

다음은 재단이 현재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료로 추출한, 교단의 역사에 관한 간략한 설명이다. 재단이 교단의 일원이나 교단의 것으로 의심되는 유물을 다룰 땐 이 자료를 지침으로 삼아야 하지만, 언제나 이는 새로운 사실이 발견될때마다 수정 또는 확장될 수 있는 불완전한 정보임을 기억해야 한다.

The following is a brief summary of information regarding the Church's history, from sources the Foundation presently considers the most reliable. It is to be taken as a guideline when dealing with members of the GoI or suspected artifacts, though Foundation agents and researchers must always remember that it represents incomplete knowledge, subject to expansion or amendment with every new discovery.

하 변칙 문화군

Xia Anomalous Culture Group

최근 고고학계에서 이루어진 고대 변칙 유적지의 발견은 고대 하나라(기원전 2100년에서 기원전 1600년까지 중국을 지배했다고 전해지는 전설속의 왕조, 왕조가 존재했다는 비변칙적인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부서진 신의 교단의 연결성을 증명한다.

Recent archeological findings of ancient anomalous sites have established a link between the ancient Xia Dynasty (a legendary dynasty which ruled China from 2100 to 1600 BCE, of which there is no non-anomalous evidence) and the Cult of the Broken God.

하 변칙 문화군은 이원적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아버지 뱀 복희와(부서진 신과 같다) 어머니 용 여와(샤르킥의 신과 같다)라고 알려진 존재를 다른 모든 신들 위에 두고 숭배했다. 학자들은 "뱀의 도"라고 알려진 수행을 했으며, 하 문화군의 아이들은 12살이 되면 '화형' 이라고 알려진 의식을 치뤄 자신의 몸을 바꿔 "용의 몸"과 유사한 뱀인간이 된다. 이러한 변칙적 신체개조의 기록은 유적에서 발굴된 기술들과 함께 하 왕조가 역사 이래 최초의 변칙적 문명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하나라의 우주론에 따르면, 복희와 여와는 인간을 창조한 후 싸웠으며, 결국 복희가 자신을 대동롱(大铜笼)Great Brass Cage으로 만들어 여와를 가두고서야 싸움이 끝났다고 한다. 복희에 대한 숭배가 여와보다 우선시되었음에도, 하 변칙 문화군은 복희의 재조립을 어떻게든 막아야 할 일로 보았는데, 여와가 대동롱에서 풀려나면 세상이 멸망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The Xia culture group practiced a dualistic religion, worshipping entities known as Father Serpent Fuxi (equivalent to the Broken God) and Mother Dragon Nüwa (equivalent to the Sarkic deity) above all gods. Scholars were said to practice "The Way of the Serpent", and members of the culture underwent at age twelve transformations into serpentine bodies, said to resemble "the Body of the Dragon". These anomalous transformations, along with the anachronistic technology recovered from archeological sites, confirm the Xia Dynasty as one of the first anomalous civilizations in historical record. According to Xia cosmology, Fuxi and Nüwa fought after creating humankind, eventually culminating in Fuxi transforming himself into a "Great Brass Cage" to imprison Nüwa. While the worship of Fuxi took precedence over worship of Nüwa, the Xia culture group saw the rebuilding of Fuxi as an event to be prevented at all costs, since it would free Nüwa from her cage, and lead to the end of the world.

하 왕조는 중국 문명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전설속의 인물인 황제1이 당대의 복희와 여와의 숭배자들을 복속시킨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나라는 앞서 말한 교단들, 오로토산 문명, 상나라, [데이터 말소됨]과 다수의 충돌을 빚었다.

The Dynasty is said to have started with the Yellow Emperor, a legendary figure considered to be the initiator of Chinese civilization, who defeated contemporaneous worshippers of Fuxi and Nüwa. Throughout their history, the Xia civilization would enter conflicts with other civilizations, such as the aforementioned cults, the Ortothan civilization, the future Shang dynasty, and [REDACTED].

하 변칙문화군은 그 당시의 어떤 문명보다도 훨씬 진보해있었다. 하나라는 후기 상 왕조보다 훨씬 발달한 쓰기 시스템과 인공지능까지 가동 가능한 컴퓨터와 유사한 기계, 심지어는 현실 조작 기계까지 개발했다. 그들은 뛰어난 대장장이였으며, 특히 청동과 베릴륨 청동을 여러 변칙적 물체를 만드는데 많이 사용했다. 이 합금들의 특징은 현재 연구중에 있다. 몇몇 기록들은 하나라가 성간 여행 기술을 보유했음을 시사하지만, 실제로 제작되었는지, 아니면 그저 이론상에만 존재하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The Xia culture group was significantly more advanced than any other civilization of their time, having developed structures similar to computing devices, up to and including artificial intelligence, as well as a writing system more developed than the future Shang dynasty and even reality warping devices. They were accomplished blacksmiths, particularly of bronze and a beryllium-bronze alloy, present in several anomalous objects. The properties of this alloy are currently being researched. Records suggest the Xia culture developed methods of interstellar travel. Whether these were constructed, theorized only, or something else entirely has not been determined.

하나라는 "금까마귀"로 명명된 이들과의 충돌끝에 멸망했다. 둘 사이의 충돌은 몇몇 변칙적 장소, 물체, 단체를 제외한 이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모든 물리적인 증거를 파괴했다. 이들에 대한 정보는 주변과 후속 문화의 전설로 전해져 내려왔으며, 생존자들이 잊혀진 역사의 수호자로서 계속 존재해왔다는 기록또한 존재한다.

The Xia Dinasty came to an end following a conflict with creatures identified as "Golden Crows", which destroyed all physical evidence of their existence outside of a few anomalous sites, objects and organisms. Information on them persisted through legends of the surrounding and succeeding cultures, and there are accounts of the continued presence of survivors as guardians of forgotten history.

하 변칙 문화군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문서 2481참조.

For more information on the Xia Anomalous Culture Group, see Document 2481.

The Mekhanite Empire

메카네 제국

그리스에서 기원전 1600년~1100년경에 존재했던 미케네 문명에서 발견된 여러 증거는 이 지역에서의 부서진 신의 교단의 존재를 뒷받힘한다. 부서진 신은 이곳에서 ‘메카네,, Mekhane,,’2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다. 시간이 지나며 교단은 점점 강해졌고, 기원전 12세기에서 10세기까지 존재하는 메카네 제국을 세우기에 이르렀다.

Ample evidence has been collected of the presence of Broken God cults in Greece, a Greek civilization spanning the years 1600-1100 BCE. The Broken God came to be known as Mekhane3, and over time the cult grew powerful enough to establish a Mekhanite Empire, existing roughly from 1200 BCE to 1000 BCE.

메카네 제국은 정치, 종교, 군사의 구분이 전혀 없는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신정 국가였다. 제국은 생산활동, 특히 야금산업을 성스러운 기술로 여겨 지속적으로 통제했다. 제국에선 이집트, 아시리아, 가나안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들의 공격적인 상업 정책과 전도행위, 그리고 강력한 해군력은 그들을 당대의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로 만들어 주었지만, 당시 국가들 사이에서 평판을 낮추기도 하였다.

The Mekhanite Empire was a highly centralized theocratic state, with no distinction between the position of political, religious and military leader. The State maintained control over the production of goods, particularly of the metallurgic industry, considering it a holy craft. The Empire had strong trading relations with Egypt, Assyria and Canaan. Their aggressive commercial policies, evangelization practices and naval strength made them one of the most powerful states at the time, though they also gave them an unpopular reputation among contemporary states.

메카네 제국은 교단 신학에 여러 중요한 개념들을 제시해 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서진 신의 재조립을 교단의 최종 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기원전 1154년까지의 여러 사료들이 초기의 자연신교에서 현재의 신격화된 교리로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이러한 교리를 제시하는 가장 오래된 문서에서 부서진 신을 “Wan” 이라고 부른 것이다.4.

The Mekhanite Empire introduced several important concepts to the Broken Church theology, most importantly the establishment of the rebuilding of the Broken God as the ultimate goal of the Church. Written accounts document the change from a primarily deistic religion to the current Apotheosis doctrine as far back as 1154 BCE. Of important notice is that the earliest known document that proposes this doctrine called the Broken God "Wan"5.

메카네 제국과 당시대의 여러 문명들과의 관계, 특히 다에바 문명과 샤르킥과의 관계는 대부분은 긴장 상태였지만 아디툼 제국의 침공이 시작되자 메카네인과 다에바인의 동맹이 성립되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메카네 제국과 아디툼 제국의 긴장관계는 기원전 11세기 중반에 절정에 이른다. 이 시기에 전쟁을 위해 건설된 거신은 아랄쿰 사막에서도 발견되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났는가에 of 관한 기록은 다양함에도 결국 메카네 제국이 전쟁에선 이겼지만 심각한 피해를 받고 얼마 못가 멸망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이 시기의 유물들은 훗날 7차 오컬트 대전에서 히후 부상한 다양한 변칙적 단체들에 의해 발굴된다.

Relationships between the Mekhanite Empire and contemporaneous civilizations, primarily the Daevites and the Sarkics, was often fraught with tension, though proof of alliances between the Mekhanists and the Daevites against the Adí-üm Empire has been encountered. Tensions between the Mekhanites and the Adí-üm Empire reached an all-time high around the end of the 11th century BCE. Evidence of colossus constructed for this war has been found as far away as the Aralkum desert. Accounts on the end of the war vary, though it is agreed that, while the Mekhanites ultimately won the war, it dealt significant damage to the state, leading to the collapse of the Empire shortly afterwards. Artifacts from this time period would be salvaged by various anomalous organizations over the years, surfacing as recently as the Seventh Occult War.

아모니 시국(市國)

The City-State of Amoni

메카네 제국의 생존자들은 제국의 멸망 이후 분열되었다. 많은 이들이 새로운 땅에 대한 희망을 품고 외부세계로 떠났으며, 나머지는 전쟁에서 거의 피해를 받지 않은 작은 땅인 아모니에 머물렀다.

The survivors of the Mekhanite state experienced a schism after the fall of the empire. A significant portion traveled to other lands, hoping to find new territory in which to settle. The rest stayed on Amoni, a small settlement mostly undamaged by the war.

제국이 멸망한 직후엔 두 단체 모두 최대한 비밀성을 유지하려 했다. 주변 국가들은 제국이 멸망하자마자 곧바로 제국의 영토를 점유했고, 제국의 기술의 비밀을 찾고자 했다. 마찬가지로, 제국의 이전 인원들은 중요한 정보원으로 취급받아 사냥당했다. 생존자들은 그들의 출신을 숨기고 숨어 살 곳을 찾아 비밀리에 신앙을 지속하거나 다른 종교와 합쳐지기도 하였다. 이 시기 대부분의 생존자들은 신앙을 버리고 사회에 흡수된것으로 보인다.

For both groups, the period immediately after the collapse of the empire was defined by the need for secrecy. The surrounding states immediately claimed dominion over the Empire's former territory, hoping to find the secrets to the Mekhanites' technology. Similarly, the former members of the Empire were hunted, considered a valuable source of information. Survivors looking for new places to live hid their origins, often practicing their religion secretly or conflating it with other deities. It is believed most descendants of these survivors eventually abandoned their faith to facilitate integration with society.

한편, 아모니 시국의 생존자들은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외부세계로부터 그들의 위치를 숨기고 외부와의 교역 없이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아모니 시국이 이들의 진보한 기술력으로 다시금 지역 정치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는 것은 기원전 6세기경에 이르러서이다. 제국의 몰락으로 인해 제국때에 비해 전반적인 군사력은 크게 떨어졌지만, 아모니 시국의 엔지니어들은 주변 국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아모니는 그들의 생존을 보장하는 여러 중요한 동맹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Meanwhile, the survivors in the now City-State of Amoni hid information on its location from the rest of the world, living in self-sufficiency while recovering from the effects of the war. It would take them until the 6th Century BCE to regain their status as an influential player in regional politics, primarily due to their advanced technology. While their overall military strength fell significantly with the fall of the Empire, engineers from the City-State were highly prized among other civilizations, gaining them several important allies that guaranteed them a continued existence.

더 이상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거나 해상 교역을 통제하지 않으면서, 아모니 시국은 농업과 독특한 상품들의 생산에 집중했다. 외국인들에게 전혀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도시는 여전히 폐쇄되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교역은 지정된 일부 항구에서만 가능했고 도시의 실제 위치는 여전히 비밀에 부쳐져 있었다. 이러한 고립 상태는 아모니가 기원전 1세기경에 로마에게 복속당하기 전까지 지속된다.

No longer possessing a numerous army nor control over the sea trade, the City-State of Amoni would instead concentrate on agriculture and the production of unique goods. The City-State remained closed to foreigners, not willing to show any sign of weakness to outsiders, with the majority of contact with other states coming from trade in designated ports and the true location of the city remaining a secret. This state of isolation would remain until conquest by the Romans on the 1st Century BCE.

아모니 시국은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많은 영향을 받아 그들의 신앙에 수비학과 조화의 중요성을 합쳤으며 이는 현재 교단 신학의 영지주의적 기조의 뿌리로 여겨진다. 이러한 정신적인 영향은 기원전 5세기경의 문학작품과 예술에 현저한 증가를 가져왔고, 이 시기를 메카네 문학의 황금기로 이끌었다. 기원전 1세기경에는 오토마톤 디자인에서도 여러 진보가 이어졌으며, 유럽 대륙에선 최초의 인공지능으로 여겨지는 발명품이 개발되면서 기술 개발이 절정에 달했다.

The City-State of Amoni was profoundly influenced by the Pythagorean cults, incorporating their belief on the importance of numerology and harmony. It is believed the current Gnostic reading of the Broken God theology may have its roots in this period. These spiritual influences led to a marked increase in the production of literature and art around the 5th Century BCE, marking this the Golden Age of Mekhanite Literature. Similar advances in automaton design would occur around the 1st Century BCE, culminating in the creation of what are believed to be the first examples of artificial intelligence in the European continent.

아모니 시국은 대부분의 군사 분쟁에서 중립을 유지했지만, 샤르킥과 아케메네스 제국의 전쟁에서 제국을 도왔고, 포에니 전쟁에서도 카르타고에게 적어도 군수품을 지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The City-State of Amoni remained neutral in most military conflicts of the time, though they are known to have aided the Achaemenid Empire in war against the Sarkites, as well as have at least supplied military equipment to the Kingdom of Carthage at the time of the Punic Wars.

1세기 경 에페소스에서 있었던 히브리인들과의 충돌이 그들의 군사력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증명한 후, 아모니 시국은 멸망했다. 교단의 신도들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앙집권화된 기구는 형성되지 못했다.

The City-State of Amoni would be destroyed during the 1st Century CE, after a conflict with the Hebrews proved their military strength could no longer be underestimated. While followers of the religion remained, no centralized body would form until the 19th Century.

산업혁명

The Industrial Revolution

산업혁명 시기에 부서진 신의 교단은 다시금 일어섰다. 그들은 기계들과 대량 생산을 메카네의 귀환이 임박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보았고, 당시에 생존해 있던 세포조직들은 오늘날 부서진 신의 교단이라 알려진 교단으로 결집했다.

The Church of the Broken God experienced a resurgence during the Industrial Revolutions, seeing the proliferation of machinery and mass-production as a signal of Mekhane’s imminent return. The various surviving cells would unify into what is known today as the Broken Church, looking to spread the word of their God in the new era.

동시에, 교단에선 "열반 이후"상태의 사람을 찾기 위한 기계로의 신체 개조의 실현 가능성에 관한 논쟁이 시작되었다.6 신체개조는 메카네 제국의 붕괴 이후로 흔히 행해지는 일은 아니였고, 몇몇 고위 인원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성혈"에 의해 이이루어지는 것 아닌 신체 개조를 부서진 신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종교의 이익을 보면서도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고 싶어하진 않아하는 등 당시 교회의 과두 정치로 인해 교회 내부에서 흐르던 긴장감은 더욱 악화되었고, 1840년대에 신기술의 계몽을 위해 몇몇 파편화된 조직들이 교단에서 떠나면서 결국 이는 교단 근대 역사에서 최초의 분열로 이어졌다.

At the same time, among members of the Church, debates started regarding the viability of conversion into mechanical entities, searching for a "post-Nibbanic" state of being7. Conversion had not been a widespread practice since the fall of the Mekhanite Empire, and several high ranking members considered any conversion different from the one given by the then lost "God’s Ichor" to be a mockery of the Broken God. It is believed the tensions inside the Church were exacerbated by the oligarchy of the time, seeing benefits in the "new" religion but not willing to submit themselves to the Church’s authority. Ultimately, this led to the first great schism of the Church’s modern history, when several splinter cells defected from the main body of the Church to seek enlightenment in the new technologies during the 1840's.

몇몇 중요한 공장주들의 경제적 지원과 파편화된 조직들의 지식으로 신체개조를 위한 여러 실험들이 수행되었다. 파편화된 세포조직은 메카네의 변칙기술의 유용성과 신체개조의 경이성을 과장하여 신체개조의 주요 논거로 사용하였고, 이는 당시 교단의 과두 정치를 강화시켰다. 많은 이들이 종교에 귀의하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그들의 지식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고 초기 조직의 후원자를 자처했다. 변칙 기술에 대한 인식의 증가는 장막 정책을 위협했으며, 이는 당시 신생이였던 재단과 교단 사이의 첫 충돌로 이어졌다.

With the economic support of several important factory owners and the knowledge of the church splinter cells, several experiments on possible paths of augmentation were performed. The splinter cells looked to further evangelize the oligarchy of the time, emphasizing the usefulness of the Mekhanite anomalous technology and spectacle of augmentations as reasons to convert. While few adopted the faith, many would become sponsors of the nascent splinter cells, looking to benefit from their knowledge. The increased awareness of anomalous technology threatened to destroy the Veil, leading to the first conflicts between the then nascent Foundation and the Church.

결국, 19세기 말까지 대부분의 세포조직은 교단에서 중요한 교파들 중 하나인 톱니장치 정통교단의 총대주교 아래에 통합된다.

Eventually, the majority of these cells would be unified under the Patriarchs of the Cogwork Orthodox Church, which became the most important segment of the Church of the Broken God by the end of the 19th Century.

20세기

The 20th Century

부서진 신의 교단은 아모니의 붕괴 이래로 가장 안정적인 상황 속에서 20세기를 시작했다. 톱니바퀴 정통교단이 부서진 신의 것으로 추정되는 몇몇 유물을 발견하면서 많은 이들은 부서진 신이 재조립되는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부서진 신의 교단은 파편화된 조직이 그들의 신을 재조립하는것을 원하지 않았고, 유물을 찾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The Church of the Broken God started the 20th Century in the most stable situation it had been since the destruction of the City-State of Amoni. The discovery of several suspected Broken God artifacts by the Cogwork Orthodoxy led many in cults to believe it was only a matter of time until the Broken God was reassembled. The Broken Church, not willing to let the splinter group be the ones to unite the God, started their own hunt for the artifacts.

최근 교단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로버트 부마로이다. 그는 비밀스러운 인물로 교단과 관련되어 있다고 의심되는 물건들을 수집한 최초의 수집가로 기록되어 있다. 그는 몇몇 집행관들을 모집했으며, 그들을 여러 변칙적 수단을 활용하여 대부분 신과 "소통" 할 수 있도록 강화하였다. 톱니장치 정통교단과 달리 부서진 신의 교단에서는 인공적인 신체개조가 꺼려졌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드문 일이였다.

The most important figure in recent Church history is Robert Bumaro, a mysterious individual who was first recorded as a collector of items suspected of being related to the Church. He recruited several enforcers and, through anomalous means, enhanced most of them until they were able to "communicate" with their God. This was unusual for the Broken Church, as, unlike the Cogwork Orthodoxy, they usually discouraged artificial enhancements.

부마로와 그의 요원들은 1943년에 사라지기 전까지 백여 점에 달하는 교단의 중요한 유물들을 수집했고, 1946년에 교단의 지도자와 "신의 건축가"의 자격을 요구하며 재등장했다. 오늘날, 부마로는 부서진 신의 교단 뿐만이 아닌 다른 교파에게도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

Bumaro and his agents were able to collect close to a hundred artifacts of presumed importance to the Church, before disappearing on 1943. He would reappear on 1946, claiming the title of leader of the Church and "Builder of God". To this day, Bumaro remains a highly respected figure not just inside the Broken Church, but among all other known denominations.

마지막 분열은 1970년대부터 시작한 내부 갈등들을 거쳐 1990년대에 발생했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교단의 많은 인원들은 그들이 교리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느꼈고, 교단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체개조에 전자기기를 도입하는 것은 톱니장치 정통교단 내에서 많은 논쟁을 불러왔으며, 이는 총대주교의 이단 기술의 금지로 절정에 달했다. 이러한 도식의 변화는 수많은 파문과 탈퇴를 초래했다.

A final schism occurred during the 1990's, though conflicts within the Church had started in the 1970's. As technology advanced, many members of the existing churchs felt the dogmas were outdated, and that the Church had to adapt its message to the times. The inclusion of electronic devices in augmentations was the cause of severe controversy in the Cogwork Orthodox Church, culminating in its prohibition by the Patriarchs as a heretical development. This addition to the Schema resulted in numerous excommunications and defections.

19세기의 상황과 유사하게, 다수의 파편화된 조직들이 등장했지만 당시와 다르게 자금 조성의 성공률은 훨씬 낮았다. 그들 중 대부분은 1990년대 후반에 성 헤트비히Saint Hedwig8라는 여성의 지도 하에 통합되어 맥스웰파를 세운다.

Similarly to the situation in the 19th Century, numerous splinter cells would emerge, though with significantly less success at attracting funding. Most of them would eventually unify during the second half of the 1990's, following the teachings of a woman named Saint Hedwig9 to establish the Church of Maxwellism. With commercial links to major players in the anomalous world such as Prometheus Labs, the Church of Maxwellism would soon establish itself as one of the major denominations of the Church.

현재 상태

Current Status

오늘날 부서진 신의 교회는 인원수는 약 30만명에 이른다. 맥스웰파는 다른 두 교파에 비해 상대적으로 군사력이 부족함에도 대충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신세대에게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에 맥스웰파는 정상성에 대한 가장 거대한 위협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로인해 교단 내에서 혼합 신앙이 증가하고 있다.

The Church of the Broken God has an estimated of 300,000 members as of today. There’s an increase in families of mixed faiths, as Maxwellism looks to evangelize newer generations using popular media and the Internet, making them the most important threat to normalcy among the members of the Church, despite a relative lack of military power compared to the other two denominations.

현재 교단 지휘부는 그리스 연안의 한 섬의 수복에 집중하고 있다. 그들이 그 섬을 수복하려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Current Church operations center around the recovery of an island off the coast of Greece. The reasons for this interest are currently unkn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