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6월 16일, 선임 연구원 A.███████이 존재를 증명할 순 없으나 분명히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했으나 당시 한국전쟁 이후 중앙기지로 지정된 제02k기지의 과도한 업무처리 과정에서 누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4년 8월 1일, 선임 연구원 A.███████이 정기 정신검진에서 ‘설명하기 힘들지만 분명 무언가가 있다.’고 호소했다. 대상은 3주간의 정신과 치료를 처방받았다.
1954년 11월 22일, 선임 연구원 A.███████이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해당 요청은 반려되었으며, 정신 검진 결과 업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으나, 제02k기지의 인력부족으로 인해 퇴직이 보류되었다.
1954년 12월 10일, 반복된 선임 연구원 A.███████의 과대망상적 발언과 업무효율 저하로 인해 재단 퇴직절차가 이행되었다.
1965년 2월 27일, 소수로 이루어진 비밀 종교 단체의 교주 최██가 체포되었으며, 해당 단체의 신도들은 '존재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악마'를 믿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교주는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으며, 전쟁 과정에서 SCP-???-KO와 관련한 문서를 습득하였거나,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사건은 재단이 개입하여 공론화되지 않고 묻힐 수 있었다. 교주는 진압과정에서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1971년 9월 2일 사망했다.
1971년 9월 3일, 제01k기지가 완공되고 이관된 문서들을 분류하는 초기 과정에서 ???#6. 문서를 발견한 것으로 추정되는 재단 직원 B.█████가 돌연 ‘설명할 순 없지만 분명히 무언가가 존재한다’ 주장했으나 이를 입증하진 못했다. 해당 직원은 이후 주변에 본인이 알게 된 사실을 전파했으며, 기지 내 인원들에게 빠르게 확산되었다.
1972년 1월 2일, 타 기지에 비해 제01k기지에서의 허위 보고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통계자료가 나왔다. 재단은 완공된 지 반년도 지나지 않은 기지에서 그 수준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높다는 점에 주목하여 자세한 조사를 진행했다.
재단은 이후 약 800건의 허위 보고가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고 판단, 제01k기지의 자체 인력으로 SCP-???-KO의 실존가능성을 입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73년 1월 5일, 제02k기지에서 제01k기지에 추가 인력을 파견하여 SCP-???-KO의 실존가능성을 입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74년 1월 3일, 재단 본부에서 추가 인력을 파견하여 SCP-???-KO의 실존가능성을 입증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74년 2월 17일, 05-█의 지시로 SCP-???-KO가 재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었다. 이는 과거 수차례의 대규모 조사에도 불구하고 SCP-???-KO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발생한 물적, 인적 손실에 비해 SCP-???-KO의 위험성이 그리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또한 해당 악마의 증명(존재하지 않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을 믿고 있는 인원들에게 대대적으로 B등급 기억소거제가 처방되었으며, B.█████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SCP-???-KO의 효과에서 벗어났다. 재단은 조사 결과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는 점과 SCP-???-KO이 가리키는 대상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새로운 격리절차를 수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