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ktus iii fragment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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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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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좁은 우중중한 모텔 방에 낑겨 있었다 - 애덤은 구석에 앉아 노트북으로 느긋하게 아나키즘 블로그를 들여다보고 있었고, 올리비아는 침대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었으며, 캘빈은 창가에 앉아 아래쪽 어두운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들을 보고 있었고, 앤서니는 다른 침대에서 쉬면서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그들은 텔레비전을 켜 놓았지만, 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끔씩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들은 하던 일을 일제히 멈추고 그 소리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이렇게 또 한 번 멈춘 뒤 애덤이 침묵을 꺴다.

"앤서니." 그가 노트북을 닫고 발을 쭉 뻗으며 말했다. "분열 당시에 살아 있었다고 했죠, 맞죠?"

앤서니가 툴툴거렸다.

"가장 먼저, 그건 여전히 미친 소리에요. 둘째로, 애초에 왜 분열이 일어난 거죠?"

노인이 그만 씹고 삼켜버렸다. "이념적으로 옥신각신한 거지."

캘빈이 눈을 굴렸고 애덤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아뇨, 진지하게요." 애덤이 말했다. "재단이 그렇게 오래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 걸요 뭘. 그렇게 짧은 기간 동안 어떻게 그 정도의 균열이 생길 수 있었던 거에요?"

앤서니가 샌드위치를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처음부터 재단이 뭘 제공해야 할지에 대해서 심각한 의견 불일치가 있었어. 그 당시 우리에게는 적이 있었지, 그러니까 - 우리는 아바돈이라고 불렀어. 아바돈이 우리가 가진 인공물을 약탈하려 우리 창고를 공격해대는 절박하고 적대적인 현실 조정자들이라고 믿고 있었고. 아바돈의 위협이 매일매일 문가에 나타났기에, 우린 변칙개체를 그냥 연구하고 격리하는 데에서 넘어갔지 - 갑작스레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거야. 한계를 넘어서."

그가 탁자에 있는 캔에 든 걸 한 모금 마셨다. "우린 이 고유무기(eigenweapon)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개시했지, 아바돈을 영원히 끝장내 버리는데 써먹을 수 있을 걸로. 펠릭스 카터, 열세 번째 감독관이 오컬트 연구를 주도하면서 전대미문의 힘을 한 단어에 결속시키는 의식을 개발해냈지. 그냥 생각만 하더라도 즉각적으로 우주의 어떤 것이든 말살해 버릴 수 있는 단어였어. 우린-"

또다른 발소리가 별다르게 특이한 점 없이 문을 지나갈 때까지 그는 말을 멈췄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가 말을 이었다. "그 무기를 개발하던 도중에, 정말로 극악무도한 뭔가를. 난 우리가 그 완벽한 총을 만들면서 지은 죄보다 더 큰 죄는 없다고 믿어. 그리고 감독관들이 죽음과의 거래에 서명한 건 그저 우리 모두가 떨어질 지옥의 불길을 피하기 위함이라고도 반쯤 믿고."

그가 다시 말을 멈추고 한 모금 더 마셨다. "어쨌든, 우린 속았어. 아바돈은 감독관이 자행한 핑계였지. 처음으로 변칙개체를 창조하려고. 우리가 출범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뭔가에게 형태를 준 거지. 우린 성공했지만, 끔찍한 대가를 치렀어. 그 사건 이후 두 분파로 갈려 있다가 분열이 일어났지 - 그 무기를 창조한 게 순수 선이라고 믿는 자들과, 순수 악이라고 믿는 자들. 머무른 자들은 목적이 우리가 한 일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했고, 그 무기를 만듬으로써 더 안전한 세계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지. 나와 다른 여럿은 우리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짓을 했다고, 재단이 더 이상 존재해선 안 된다고 제대로 생각했지. 재단이 중심부까지 썩어 있다고."

애덤이 이 말을 잠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 무기는 어떻게 됐어요?"

"그들이 묻어 버렸어." 그가 망설임 없이 말했다. "그 단어를 가지고서만 활성화할 수 있는데, 뭔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망명했거든. 아론 시걸, 엔지니어, 지금은 첫 번째 감독관인 자. 더 이상 이용할 수 없다는 걸 깨닫자마자, 그들은 혹시라도 활성화되는 걸 막으려 그 부속품을 분리해 버렸고, 다시는 쓸 수 없을 거야 - 단어로든 뭐든 간에."

"망명은 왜 일어난 거죠, 그럼?" 올리비아가 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물었다. "아론 시걸은 왜 돌아간 거고요?"

"오만과 욕정이지." 그가 내뱉었다. "그자들이 더 나은 제안을 했고 그는 전화기를 집었어."

그가 얇고 칙칙한 베개에 등을 기댔다. "우리가 망명했을 때 아론 시걸은 관리자를 죽였고, 이로써 재단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관리자는 그저 한 사람일 뿐이고, 재단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분권 체제였거든. 당시와 지금의 차이는 규모의 문제야. 오늘날의 재단은 완전히 각성했고, 그 중심부는 혈관 몇 개가 연결되어 있는 거라기보다는, 피를 흘리며 뛰고 있는 심장에 가까워. 이사관들하고 기타 등등에 권력이 주어져 있지만, 진정한 권력은 감독관들에게 있지. 그들이 없어지면, 재단은 머리 없는 뱀 꼬라지가 될 거야."

그가 담배를 꺼내고 불을 붙였다. 캘빈이 화답하듯 창문을 살짝 더 열고 그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그것보다도," 그가 말을 이었다. "모든 재단 기지와 창고는 핵폭탄 장치 위에 앉아있는 거라는 얘기는 아마 들어봤을 거야 -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을 때 최후의 수단이지. 모든 기지 아래에 있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지 아래에 있어. 제01기지에는, 딱 한 명의 감독관만 남게 되면 활성화되는 시스템이 있지, 그 모든 폭탄을 무장시킬 명령어가. 만약 우리가 거기 가서 아론 시걸을 죽인다면, 그 시스템을 이용해 모든 걸 파괴할 수 있을 거야 - 기지들, 변칙개체들, 전부 다. 여전히 할 일은 남겠지만, 그놈들을 능가해 버릴 수 있어."

캘빈이 곁눈질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존재한다는 건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내가 그걸 설계했지." 앤서니가 말했다. "내가 설계했을 당시에는 핵무기가 없었지만, 개념적으로는 동일해. 그자의 책상에서도 할 수 있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 전부 다 사라지는 거지." 그가 다시 샌드위치를 집어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우리 방식이야. 그렇게 하면 되는 거라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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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은 총을 내밀고 험비에서 두 발짝 나와 있었다. 올리비아가 그의 뒤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도로 한가운데 서 있는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가 양 손을 들어올리고 손바닥을 보이고선, 그들에게 살짝 흔들어 보였다.

"보게, 보이지?" 그가 양쪽 손등을 보여주었다. "총은 없어. 폭력을 쓰려고 온 게 아니야."

"넌 누구지?" 캘빈이 물었다.

남자가 허리를 크게 숙여 절했다. 그는 약간 곱사등이였고, 그가 몸을 숙이자 척추가 어긋나 있는 것이 보였다.

"난 모티머 J. 데닝 폰 크로네커일세."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자네들의 다음 감독관이지. 5번이야, 알겠나." 그가 그들에게 다 알고 있다는 듯 잘라 말했다. "자네들이 숫자를 거꾸로 타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네. 아주 독창적인 접근 방식은 아닐지 모르지만, 서사적으로 일관성 있다는 건 인정하지."

올리비아가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네가 찌르레기라고?"

그 남자는 무시하는 듯한 손짓을 했다. "제발, 찌르레기는 내 직업 상 암호명이야. 난 일 때문에 여기 온 게 아니야, 당연히, 하지만-" 그가 그들 둘을 쳐다보았다. "-자네 둘은 그런 것 같긴 하지만."

캘빈이 쏴버릴 듯이 총을 들어올렸다가 망설였다.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나?" 모티머가 손을 입가로 가져갔다. "왜긴, 자네들을 만나러 왔지! 정말 놀라운 일들을 봐왔지만 - 정말 많지,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얘기하는 이야기를 반 정도만 믿어도, 하지만 난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여덟 명의 감독관을 죽인 사람은 만나본 적이 없어. 그런 일을 해낸 적은 한 번도 없었네, 심지어 감독관들 자신들조차도!"

"만약 우리가 여기 왜 있는지 안다면, 왜 우릴 찾아온 거지?" 올리비아가 물었다. "우리가 널 죽이려고 하는 걸 알면서."

그 남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음, 나도 그건 알았지. 하지만 그래,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날 죽이는 건 말하자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거든, 설령 너희가 첨탑에서 펠릭스를 데리고 거지 같은 짓을 벌인 뒤에도." 그가 캘빈을 가리켰다. "그럼, 내가 보여주지. 규칙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거야. 날 쏴." 그가 이마를 두드렸다. "바로 여기, 할 수 있다면 눈 사이 정중앙에다."

캘빈이 총을 다시 들어올렸으나 멈췄다. 그가 올리비아를 쳐다보았고, 그녀 역시 잘 모르겠다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모티머가 눈을 굴리고 소매 속에서 칼을 하나 꺼냈다.

"그래, 그래." 그가 말했다. "이렇게도 할 수 있으니까."

왼손으로 칼을 쥐고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받치고서, 모티머는 칼날을 목을 뚫고 머리 속에 박아 넣었다. 피가 땅 위로 튀었고 즉시 그의 눈이 한 곳으로 모였고 입술에선 꺽꺽거리는 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가 오른손으로 한 번 더 눌렀고 칼끝이 두개골에 완벽하게 박혔다. 그가 뒤로 비틀거리더니 쓰러졌다.

셋은 충격에 휩싸여 땅에 쓰러진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건 또 무슨 염병할 짓거리죠?" 애덤이 그들 뒤쪽에서 말했다.

그러자 갑작스레, 그들 앞의 도로가 어두운 보라색 빛으로 빛났다. 빛이 두 번 깜빡이더니, 딱 소리와 짙은 오존 냄새와 함께, 찌르레기가 그들 앞에 멀쩡하게 다시 나타났다. 그가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팔을 뻗고서는, 땅에 있는 시체를 가리켰다.

"봤지?" 그가 말했다. "짜잔. 새것처럼 훌륭하지."

"넌 변칙적이군." 올리비아가 말했다.

모티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말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가 한 손가락을 턱에 가져다 댔다. "있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린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항상 그 점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 알겠어? 그 여자에게는 온갖 술책이 있었지만-" 그가 과장되게 손짓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더라면 훨씬 쉽게 해냈을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뭔데?" 캘빈이 총을 낮추며 말했다.

감독관이 한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 그거 좋은 질문이군! 더 나은 것부터 시작하자고 - 내가 어디서 왔느냐부터." 그가 떠나려는 듯이 돌아서더니, 걸어가다가 중간에 멈춰서는 돌아서서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이봐, 가자고. 소지품은 놔두고 가도 돼, 뒤에 오는 사람은 당분간 아무도 없을 테니까."

그들 셋은 머뭇거리며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보조를 맞추자, 하늘이 바뀌는 게 보였다. 아까는 밤이었는데 지금 하늘은 깊고 짙은 보라색이었고, 가끔씩은 멀리 어딘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문이 하늘을 어지럽혔다. 그들 주변의 풍경 역시 변하기 시작했다 - 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은 사라지고, 그들은 이제 알 수 없는 도시 한가운데의 조약돌이 깔린 거리를 걷고 있었다. 머리 위의 하늘은 다시 한 번 변하기 시작했고, 보라색에서 음침한 회색으로 물들었다. 보슬비가 내렸고 한기가 그들 뒤를 때려댔다.

"이곳이," 모티머가 몸을 돌려 그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바로 내 집이야 - 내가 온 곳이지, 어쨌든. 난 이곳에서 태어났다네, 런던이라는 도시 안에서. 런던은, 인구 이백오십만의 도시로써, 지구상의 마지막 도시다. 대단한 일 아닌가?"

그들은 아연하게 주변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어둡고 거대한 것이 머리 위로 지나갔고, 그들은 잠시 동안 그 그림자에 잠겼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애덤이 물었다.

감독관이 어깨를 으쓱했다. "흑사병을 기억하나? 아마 역사책이나 어디에서 읽어봤을 테지 - 자네들 세계의 역사에서 아주 비극적인 사건이고. 뭐, 알고 보니 흑사병이 이 세계를 아주 심하게 강타한 거지. 최악에 이르렀을 때 그걸 알아차리고 일어나서는, 자기한테 치료약이 있다고 모두에게 떠벌린 친구가 저 바깥에 있었어. 상상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그 사람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안달이었지. 유일한 문제는,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자가 치유한 건 흑사병이 아니었다는 거야." 그가 눈썹을 흔들었다. "내 말을 이해할지 모르겠는데."

그가 칙칙한 거리를 내려다보려 몸을 돌렸다. 반대편 끝에서, 말 한 마리가 끄는 마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 그 말은 해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자네들 세계에는, - 곧 자네들이 태어난 곳에는 이 독립체가 존재하지. 우린 그자를 격리했어, 실은 - 무슨 격리실에 쑤셔넣었지. 그곳에서 그자의 모습은 여기서 그자의 모습과는 꽤 달라서, 친구를 막으려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 있나 모르겠군." 그가 말을 멈췄다. "어쨌든, 도시들은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어, 전 세계 곳곳에서. 하지만 런던은 아니었지. 선조들께서 벽을 튼튼히 하고 방어 시설을 굳건히 하셨으니. 잠시 동안은 우리에게도 동맹이 있었어 - 파리, 뮌헨, 로마. 좀 더 멀리 떨어진 곳도 있었고. 천천히, 시간이 흐르자 그들 모두 조용해졌지. 남은 건 런던뿐이야."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고, 그들은 뒤를 따랐다. 그는 거리 아래쪽으로 그들을 안내해 널찍한 뻥 뚫린 간선 도로로 들어갔다.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럼, 내가 뭘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틀림없이 어느 정도는 이해했을 거야 - 현실 사이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는 건 유용하기도 하고 너무 빤하기도 하거든. 하지만 어딘가를 갈 수 있으려면, 가는 곳이 어디인지 봐둬야 하지."

그가 하늘을 가리키고 눈을 감았다. "내 좋은 옛 친구 회계사는 벌써 만났겠지. 그는 숫자에 능숙하고, 그가 미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실제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야, 나도 /실제로// 볼 수는 없는 것처럼.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더 낫지. 자, 사람들은 무한히 많은 우주가 있다고 말할 테고, 비전문가에게는 그것 또한 사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엄밀한 사실은 아니야. 모든 창조에는 기능적인 끝이 있는 법 - 분명한 한계지, 말하자면. 원자의 수에도 제약이 있는 거고 상호작용의 수에도 제약은 있는 거야. 길거리에 나다니는 평범한 사람에게야 무한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난 그 차이를 볼 수 있지 - 하나하나 전부 다. 만약 어떤 것들이 다른 것들보다 더 많다면, 어느 한 우주에서 그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걸 알 수 있다는 거야.”

그가 다시 멈춰섰다. "이제 자네들이 어린 모티머 J. 데닝 폰 크로네커이고, 세계의 종말에 이른 거지 같은 섬의 거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고 상상해 봐. 하늘은 항상 회색이고, 공기는 항상 유독하고, 이 벽들 반대편 해협은 심장이 딱 한 번 뛸 사이에 자네들을 죽여버릴 수 있는 악몽과도 같은 거고. 꿈이 있다고도 하자 - 자네들 세상과 비슷한 곳에 대한 꿈이지만, 좀 더 다른 곳. 더 밝고. 더 행복하고. 곧 죽을 확률은 더 작고.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아주 명명백백하게. 그러다가 이 장소에서 자네들을 소리쳐 부르는 목소리를 듣게 되는 거야 - 그런데 그게 바로 자네들 자신의 목소리고. 그자는 자네들이 아니지만, 자네들이기도 한 거고."

그가 몸을 돌렸다. "난 그 목소리를 들었고, 내가 속해있지 않은 곳으로 첫 발걸음을 떼었지. 이 곳, 이 런던은 죽어가는 세계의 일부야. 앞으로 6개월만 더 살아남아도 기적같은 일이겠지. 내겐 가족도, 친구도 없어. 목소리를 듣는 장애인 고아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서 난 떠난 거야."

"잠깐만." 올리비아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넌 다른 현실들을 볼 수 있다고?"

모티머가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마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까… 아니지. 내가 눈을 뜨면 볼 수 있다는 건 아냐, 그렇진 않아. 내가… 들을 수 있다는 거에 가깝지."

그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텅 빈 정육점, 텅 빈 은행, 텅 빈 아파트를 지나쳤다.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한 거 기억하나?" 그가 물었다. "그건 사실이야. 거기에 도착했을 때 난 또다른 나를 찾았어, 그리고 함께 또다른 나를 찾았지. 우린 모든 나를 찾아낼 때까지 계속 서로를 만났고, 그 다음 우리는 그냥 뭐랄까… 합쳐졌지. 통일되었다는 거야, 말하자면. 이 안에는 여전히 아주 많은 내가 있어." 그가 머리를 두드렸다. "하지만 우린 이젠 거의 호흡이 맞아. 아주 잘 돌아가고 있어, 만약 나 중 하나가 죽는다 하더라도, 다른 나들은 그냥 그놈만 분리하면 멀쩡해지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어? 일종의 양파 같은 거지. 한 층을 벗겨내도, 그 아래 더 많은 양파가 있는 것처럼." 그가 턱을 문질렀다. "이건 뭘 인용한 거 같군."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데," 올리비아가 말했다. "만약 지금 네가 전부 다 똑같은 장소에 있다면, 어떻게 이 다른 차원을 들을 수 있는 건데?"

"현실이란," 그가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리며 말했다. "차원과 다른 것이고 난 그걸 장난삼아 건드리는 게 아니야. 그게 좀 까다로운 일이지만, 때론 그냥 일이 알아서 풀리기도 하는 법이잖아. 여행 중에 난 나 같은 사람을 또 찾았어, 내가 그랬던 것처럼 체계화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대로 자기가 존재하는 곳에서 자기 목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었지. 그 여자 이름은 앨리슨이었어, 재단 선임 직원 한 명 딸이었는데. 그녀하고 그… 자매들? 아니지. 그녀하고 그녀의 다른 버전들은 나와 거래를 맺었어. 난 그녀가 '근력'이 좀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주고, 대신 그녀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정보를 주는 거지… 모든 곳에서. 이해가 가나?"

캘빈이 걸음을 멈췄다. "그래서 왜 우릴 여기 데려온 거지? 원하는 게 뭔데?"

모티머가 말을 멈추더니 돌아섰다. 그는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으나, 어딘가 좀 더 엄숙했다.

"자네들이 뭘 하려고 하는지는 알아." 그가 말했다. "그리고 난 공감하네, 정말로. 자네들이 강경하게 목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걸 바꾸기 위해 내가 뭐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도 알아 - 그건 괜찮아. 문제는, 난 자네들이 맞는지 틀린지, 자네들의 십자군이 거대한 계획을 아주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을지 모르겠거든. 생각이 좀 있기는 한데, 확신은 못 하겠어. 혹시 모르니까 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막고 싶네. 혹시 어떤 이유에서든 너희가 성공하고 내가 이 안에 있는 모든 와의 접촉이 끊기면, 그럼…" 그가 말했다. "난 그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몰라, 솔직히 말해서. 그게 좋을 거란 생각은 안 들지만."

"그래서 자네들에게 뭔가를 주려고 하네!" 그들의 얼굴이 바뀌는 걸 보자 그의 미소가 약간 사그라들었다.
"오, 아니, 다른 자들이 제시했던 그런 거래와는 다른 거야. 특히 그자들이, 누구더라, 발레리하고 루퍼스였나? 그 둘은 고약하지." 그가 고개를 저었다. "자네들을 막으려고 끔찍한 것에 의존했겠지만, 그 결과 그들이 어떻게 됐는지 좀 보게! 난, 하지만, 그것보다는 잘 할 수 있지."

그들은 문이 세 개 있는 또다른 텅 빈 상점 앞에 멈춰섰다. 멀리 어딘가에서 불길이 순간적으로 타올랐고, 그들은 잠시 동안 붉은 빛에 휩싸였다. 뒤를 돌아보자, 서로 똑같이 생긴 세 개의 문 앞에 서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자네들에게 탈출구를 제안하려고 하네." 모티머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일사분란했다. "거짓말쟁이가 제안했을 법한 머리 속에만 있는 탈출구도 아니고, 사실은 탈출구가 아니고 대체로는 그냥 죽어나가게 될, 루퍼스라면 좋아했을 그런 것도 아니야. 아니, 이건 진정한 거야, 100% 보증하지. 만약 선택한다면 자네들 걸세. 내가 모든 서류를 준비하고 현실로 만들 수 있지, 하지만 자네들이 원해야만 쓸모가 있을 거야."

세 사람은 옆으로 물러났고, 그들 뒤에 이제는 열려 있는 문이 드러나 보였다. 한 사람당 문 하나씩.

"우리가 여기로 들어가면," 캘빈이 느리게 말했다. "그럼 뭐, 우린 바로 살해당하는 건가? 이거 장난하는 거지?"

모티머의 얼굴이 부드러워졌다. 처음으로 그는 무한히 상냥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 대신 그는 피곤해 보였다.

"아니, 장난이 아닐세 - 되도않는 짓거리를 벌이지도 않았고. 난 그저 우리 모두 다 이득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것뿐이야."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1분 뒤 올리비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게 뭐가 있는데요?" 그녀가 말했다. "저자를 쏘기라도 해요?"

캘빈과 애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고, 그들 셋은 각자 따로따로 문으로 들어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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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은 복실복실한 카펫이 깔려 있고 따뜻하게 불을 피운 방에 서 있었다. 아래쪽 거리 어딘가에서, 한 사람이 색소폰으로 뭔가를 연주하고 있었다. 작은 벽난로가 있었고, 안에서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옆방에서는 뭔가가 조리되는 중이었고, 정말 좋은 냄새가 났다. 애덤은 익숙한 게 뭐라도 있나 방을 훑어보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저쪽에 있네, 만약 그걸 찾고 있는 거라면." 찌르레기가 갑작스레 그의 옆에 나타나 말했다. "저쪽 구석에, 그러니까. 노트북 찾는 거지, 맞나? 그걸 찾고 있는 거 아닌가? 항상 그걸 몸에서 떼어놓질 않는 걸 알아차렸다네."

"이건 뭐지?" 애덤이 혼란에 차 물었다. "내가 어디 있는 거야?"

"여긴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라네. 주소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군. 사실 자넨 여기 한 번 와본 적이 있어, 더 어릴 때. 자네 부모님이 잠시 여기로 망명하려고 했거든."

애덤이 방을 돌아보았다. "맞네."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 다음에 그 산속 마을에서 살았지."

찌르레기가 창문으로 걸어가 거리를 내다보았다. 애덤은 계속해서 방을 훑었다. "왜 여기지?"

"왜냐하면 이 세계에서는, 자네의 망명이 승인되었거든." 찌르레기가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자랐어, 부모님과 형제자매와 함께. 그들 모두 아직도 살아있네, 물론. 자네 부모님은 로스앤젤레스로 이사했지만, 자넨 하고많은 곳들 중에서도 여길 좋아해서 말야. 여기가 자네한테 집처럼 느껴져서."

애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곳은 정말 집처럼 느껴졌다. 그는 아주 약간 퀴퀴한 냄새가 났던 두꺼운 카펫과 휘장을 기억했다. 그 멍청한 작은 벽난로도 어릴 때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완벽한 곳이었다,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이지만 더 나아졌고, 없는 게 있다면-

"애덤." 부엌에서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어둡고 거친 목소리였지만 - 익숙했다. 소파 가장자리를 돌아 방 중앙으로 몇 발짝 떼어놓으면서, 애덤은 심장 박동이 약간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잠시 뒤, 캘빈이 모퉁이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저녁 먹어." 그가 말했다. 그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누구랑 말하고 있는 거야?"

애덤은 주춤했다. 목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는 몸을 돌려 뭐라도 답해달라고 찌르레기를 쳐다보았으나, 그자는 정면을 빤히 응시하면서,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놀랐나?" 감독관이 말했다. "내게서 숨을 수는 없어, 애덤 이바노프." 그가 한 손가락을 머리 옆쪽에 대고 두드렸다. "나도 한때 그런 안락함을 갈망했던 때가 있었지. 육체적인 쾌락이라, 알겠지만. 앨리슨이란 아가씨 그런 면에선 쓸모가 있었지만, 나보다는 자네 취향이 훨씬 더 성취감이 있을 거라는 건 인정하지."

애덤이 더 이상 움직이고 있지 않은 캘빈에게 돌아섰다. 세계가 아주 고요해졌다. 몸이 조용히 떨렸고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으며, 지금 거실에 서 있는 곳에서 캘빈의 손가락 하나에 끼워져 있는 은반지를 볼 수 있었다. 얼굴에 피가 쏠리는 게 느껴졌다.

"여기도 골칫거리는 있어." 찌르레기가 방 뒤쪽의 희미하게 빛나는 보라색 문을 향해 다시 걸어가며 말했다. "어려움을 겪을 거야, 다른 모든 이들이 그러듯이. 하지만 그것도 기회야, 정상적인 일이기도 하고. 자네가 공포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이고. 자네 것이고,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인생이지."

그러더니 캘빈이 그를 향해 걸어왔고, 움직일 수가 없었다. 캘빈의 얼굴은 딱딱했으나, 그의 눈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담겨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애덤의 머리 뒤쪽에 한 손을 얹었다. 따뜻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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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가 문으로 걸어들어가자, 갑작스레 짭짤한 물이 한 줄기 밀려들어와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 뒤로 나자빠져 눈을 뜨자, 그녀는 자기가 지금 서 있는 배 가장자리에서 거의 바다로 걸어들어갈 뻔 했다는 걸 깨달았다. 배라고 하면 정확한 용어는 아닐 수도 있다 - 그녀가 나타난 곳은 요트였다. 머리 위 하늘은 파랗고 구름 한 점 없었으며, 주변의 바다는 대체로 평온했다.

그녀는 갑판 중앙으로 걸어갔고, 그곳에는 이젤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여러 미술용품을 담은 받침대 하나가 옆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몸을 움직여 앞에 섰고, 눈앞의 지평선을 그려놓은 반쯤 완성된 그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림 속에는 태양이 하늘에 낮게 걸려 있었다. 그녀는 몸을 숙여 그림에 있는 태양이 움직인다는 걸, 천천히 지평선 아래로 내려앉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와 함께 반쯤 완성된 그림이 어두워졌고, 하늘은 보라색과 파란색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뒤로 물러났고, 찌르레기가 근처에 서서 배 옆편에 보이는 인근 해변을 무심히 응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여긴 어디지?" 그녀가 물었다.

"자네가 있고 싶어한 곳이지, 내가 보기엔." 그가 태평하게 손가락으로 배의 난간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 세계에서, 이 배는 자네 거야. 저 이젤과 저 물감도 자네 거고. 이젤과 바다 말고는 걱정할 게 아무것도 없어. 시간은 필요한 만큼 있지."

올리비아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괜찮은 보트 하나하고 새 물감 약간에 만족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찌르레기가 그녀를 바라보고 미소지었다. "아니, 절대 아니지."

그녀의 뒤로 또다른 소리가 들렸다 - 누군가 올라오는 것이. 몸을 돌리자 아래 갑판에서 나타난 남자가 있었다. 그의 피부는 거무스름하고 매끄러웠으며, 긴 머리카락은 굵게 땋은 상태였다. 그는 흰색 반바지 말고는 거의 아무것도 입지 않았고, 근육은 연마한 다이아몬드처럼 선명했다. 그를 보고서 올리비아는 헉 하고 숨을 들이쉬었다.

"테빈." 그녀가 말했다. 목메인 목소리였다. "난- 난 이해가 안 가, 어떻게?"

세계가 멈췄다. 찌르레기가 그녀 뒤편으로 걸어와 잠시 동안 남자를 멈춰세웠다.

"자네에 대해 항상 궁금한 게 있었어, 올리비아. 그 모든 열정에도 불구하고 진실된 감정은 일체 보여주지 않았던 것 같거든. 날것이나 진짜 감정은 전혀." 그녀가 쳐다보자 그는 환히 웃었다. "그래, 난 자네를 오래도록 지켜보고 있었어. 이 일이 닥쳐오는 걸 봤거든, 거의, 그리고 오래 전에 자네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예의주시하기로 마음먹었지."

그가 계단을 올라오는 남자를 가리켜 보였다. "이건, 하지만, 깜짝 놀랐네. 자네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잘 숨겼는지, 정말 경탄했다니까. 하지만 놀라운 아이보리에게 환상적인 에보니가 없다면 뭐가 되겠어, 엉?"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별명이 왜 오래가지 않았는지 이제 알겠군. 그건 괜찮아, 나도 그런 경험은 해보았으니까."

찌르레기가 바다를 향해 돌아섰다. "이 세계에선, 보트와 물감은 자네 거야, 그리고 테빈 라레도도 마찬가지고. 자네의 변칙예술가 공동체를 재단이 공격해오는 일은 없어, 그리고 추격자들을 막으려고 불길을 그리다가 실수로 테빈을 유리로 바꿔버리는 일도 없을 테고." 그는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걸 힐끗 바라보았다. "그래, 심지어 그것도. 재단의 모든 것을 보는 눈은 그리 많은 걸 놓치지 않아, 그리고 그 일은 절대 놓치지 않았지. 틀림없이 아주 끔찍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하네, 정말로. 난 자네 고통을 이해해 - 나 역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은 끔찍한 선택들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니까."

그가 갑판 의자에 앉아 코트에서 잔을 하나 꺼내, 마찬가지로 코트에서 나온 플라스크로 채웠다. 그가 한 모금 마시더니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이 세게에서는, 올리비아, 자넨 그 끔찍한 선택을 할 필요가 없어. 사고는 없어. 자네와 테빈은 이 배에 머무르면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어, 보고 싶은 건 뭐든지 볼 수 있고. 이곳에서 자네 지평선에 제한은 없는 거야."

올리비아는 외면하려 했으나, 눈물이 이미 얼굴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찌르레기는 한 모금 더 마셨다.

"그게 더 낫지 않겠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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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은 숲 한가운데의 풀이 무성한 들판으로 걸어나왔다. 공기는 상쾌했으며 얇은 이슬이 떠오르는 햇빛 아래 풀 위에서 반짝였다. 그는 몇 발짝 떼어놓고 주변을 쭉 둘러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자기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다.

찌르레기가 그의 옆에 나타났고, 그들이 서 있는 작은 언덕 아래 숲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잠시 동안,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건 이상한 선택이군." 캘빈이 마침내 말했다.

찌르레기가 그를 곁눈질했다. "뭐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건가?"

캘빈이 어깨를 으쓱했다. "난 여기 와본 적이 있거든. 어떻게 될지 알아."

찌르레기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자, 그건 사실이 아닐세. 자넨 1인칭 시점에서 그게 어떻게 될지를 보았지, 그날 숲속에서 일어난 일은-"

캘빈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이건지 자네가 항상 원했던 거야. 자네 어머니를 구할 기회가 있는 거지."

그들은 어린 캘빈과 어머니가 숲에서 나타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들이 호수 옆편을 지나갈 무렵, 시체 하나가 물 속 저 아래 깊은 곳에서 떠오르며 나타났다. 그러더니 하나 더, 하나 더, 그리고 갑작스레 수백 개의 시체들이 점액처럼 수표면을 뒤덮고 있었다. 그들은 다가가다가 캘빈의 어머니가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는, 호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린 캘빈은 그녀 뒤에 움직이지 않고 서 있었다.

"자네한테는 시간이 아주 넉넉했어." 찌르레기가 말을 이었다. "달려가서 어머니를 막기에는 아주 넉넉한 시간이지. 하지만 자넨 하지 않았어, 어렸고 겁먹었으니까. 지금은, 하지만, 자네한테 아주 많은 시간이 있고-"

그가 멈췄다. 어린 캘빈이 둘을, 정확하게 캘빈의 눈을 되쏘아보고 있었다. 자기도 알아차리고 있다는 듯한 시선이었고, 어떤 일이 일어났고 일어날지 이해하고 있는 듯한 시선이었다. 어린 캘빈이 어머니를 되돌아보고, 다시 수목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수풀과 나뭇가지 속에 몸을 감춘 형체가 은빛 용기를 하나 들고 있었다. 캘빈이 그자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찌르레기는 그 광경에 흠칫했다. "자네가!?" 그의 목소리가 컥컥거렸고 캘빈은 그 어조 아래에서 무언가 부자연스러운 걸 들을 수 있었다. "자네가 이랬다고?"

캘빈이 형체에 다가가 용기를 받아들었다. 형체는 손가락 한 개를 자기 입술로 가져갔다.

"이건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 그 형체가 말했다. "가져가서 보렴."

캘빈이 용기를 열고 그 안에 든 걸 손에 쏟았다. 와이어프레임으로 된 안경이었고, 가장자리에는 금빛 룬이 새겨져 있었다. 한쪽 안경 다리의 끄트머리 근처에 검은색으로 새겨진 이름이 있었다. A. 브라이트. 캘빈이 들어올리자 안경은 아침 햇살 아래 반짝였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찌르레기가 들판 맞은편에서 울부짖었다. "우리가 들인 모든 노력이 무너졌어, 너희 모두는 그저 공포와 무능력만 보여줬을 뿐이고. 최소한 문제를 바로잡으려고 했어. 도우려고 했단 말이야. 저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려고 했어, 설령 이 자는 만족시킬 수 없다고 하더라도."

캘빈이 멈췄다. "네가 나한테 이곳을 보여줬지, 안 그래? 그러면 다른 둘에게도 비슷한 뭔가를 보여줬겠군. 뭐야 - 이상적인 세계나 뭐라도 되나?" 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만약 이게 내 이상적인 세계라면, 왜 난 행복하지 않은 거지?"

찌르레기가 엄지를 콧날에 찔렀다. "왜냐하면 그 둘이 원하는 것들은 합리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거였으니까. 자네는, 반면에, 그들의 이기적인 본능에 호소하는 폭력적인 선동꾼이지. 그들은 모두 곤경을 겪어본 적이 있어 - 모든 사람들이 곤경을 겪으니까. 자네와 자네 동류의 무리들은 그저 재단을 손가락질하면서 그들에게 증오를 쏟아낼 배출구를 준 것뿐이고. 난 그들에게 좀 더 나은 걸 제공하려 했네. 하지만 자네가 원하는 건 죽이는 것뿐이군. 이게 다 이 순간 때문이야, 바로 여기."

그가 호수를 가리켰다. "보이나? 자네의 어머니가, 끔찍한 운명을 향해 걸어가고 있어. 자네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어, 자네가 이런 일들에 간섭하지 않은 결과 무한히 더 나아졌지. 자네에겐 선택권이 있어, 그런데도 여전히 폭력을 선택하고 있군. 그럼 자네는 뭐가 되는 건가?"

캘빈이 안경을 다시 내려다보고, 잠시 뒤 썼다.

"나야 모르지." 그가 말했다. "너도 한 번 알아보자고."

그가 약간 파란빛이 나는 렌즈를 통해 다시 올려다보자, 들판과 호수와 숲은 여전히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찌르레기 대신에 이제는 높이 치솟은 흉물이 있었다. 죽은 눈에 악취가 진동하는 썩어가는 살을 가진, 끔찍한 가짜 새 생물이었다. 그는 가늘고 엉겨붙어 있는 깃털 너머로 소용돌이치는 얼굴들이 울부짖고 욕을 하며, 곧 폭발하기라도 할 것처럼 자기들이 들어있는 몸뚱아리의 옆구리를 각자 밀어붙이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 생물이 말을 하러 역겨운 부리를 열었을 때, 그는 찌르레기의 목소리가 무한히 많은 자기 자신의 화신을 통해 메아리치는 걸, 그 불길한 비참함과 고통의 불협화음을 들을 수 있었다.

"난 자네에게 삶을 제안했어." 그 생물이 말했다. "난 자네에게 자유를 제안했어. 난 자네에게 자네 어머니를 제안했다고."

캘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어머니가 아니야." 그가 이제는 자기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어린 캘빈을 내려다보 았다. "쟤의 어머니지. 내 어머니는 오래 전에 죽었어, 너 같은 역겨운 것들 때문에."

"바보로군." 찌르레기가 까악거렸다. "그건 상관없어. 난 자네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필요가 없어 - 자네는 여기 이미 있으니, 내가 머무를 필요가 없지."

하늘이 다시 보라색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오존 냄새가 났다. 뒤쪽에서 형체가 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려놓았다.

"다시 통을 뒤집어." 그자가 말했다. "빨리."

캘빈은 그렇게 했고, 그 안에서 미끄러져 나온 건 긴 유리섬유로 된 낚싯대였다. 밝은 분홍색에, 옆에는 "원더테인먼트 박사의 차원 간 낚싯줄과 미끼"라는 글귀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그 뒤에는 무언가 다른 것도 있었고, 그걸 보고 캘빈은 씩 웃었다. 손잡이에는 테이프를 감았고 검은 마커로 "다도(dado)의 새들 사라지게 하기"라고 쓰인 평범한 흰색 위플볼 방망이였다.

그가 한 손으로 막대기를 잡고 뒤로 몸을 기울였다가, 찌르레기를 향해 던졌다. 그 끝에서 흰빛으로 희미하게 빛나는 줄이 호를 그려 들판을 지나 찌르레기의 살갗을 파고들어갔다. 줄이 팽팽해졌고, 캘빈은 세계가 보라색으로 바뀌고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호숫가에 서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눈을 떴을 때, 캘빈은 망가지고 박살난 배의 갑판 위에 서 있었다. 그 정중앙에는 휑뎅그레한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고, 그 아래로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뒤, 찌르레기가 하늘에서 그의 뒤로 떨어져 우드득 소리와 함께 배 위에 충돌했다.

"무슨-" 그 생물이 날개와 발톱으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무슨 일이지? 우리가 어디 있는 거야? 여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닌-"

캘빈이 위플볼 방망이를 옆으로 휘둘러 찌르레기의 얼룩덜룩한 얼굴을 후려갈겼고, 금전 등록기가 내는 소리가 나며 그것의 말이 끊겼다. 부딪친 곳에서 깃털이 터져나왔고 그 생물은 울부짖고 으르렁거렸다. 그것이 몸을 돌려 이제는 등에 박힌 낚싯대를 물려고 했으나, 닿기도 전에 캘빈이 다시 한 번 방망이로 때려댔고, 그때마다 찌르레기의 깃털과 피가 터져나오며 금전 등록기 소리가 났다.

찌르레기가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자, 캘빈은 그 줄의 끝을 단단히 붙잡고 보랏빛 하늘로 끌려올라갔다. 연무가 걷히자 그들은 혼돈에 휩싸인 건물 안에 - 재단 기지였다, 보기에는 - 있었다.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고 격리실패 경고가 그들이 서 있는 거대한 곁방에서 급박하게 울렸다. 흰 코트를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복도에서 허둥지둥 빠져나오고 있었고, 그 사람들 뒤쪽에서 으르렁대는 소리가 났다. 찌르레기는 그 소리가 나는 방향을 쳐다보았고, 갑작스레 그자의 눈이 아주 커졌다.

"오 이런 씨발." 그것이 말했다.

복도로 뛰쳐나온 건 그들이 이반네 마을에서 보았던 파충류 흉물이었다. 이번에는 좀 더 작고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칼날로 뒤덮여 있다는 점만 빼면. 다른 점이 있다는 걸 캘빈은 눈치챘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생물이 으르렁거리고 쉿쉿거리다가 돌아서자, 그 등에 서서 소리지르고 웃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찌르레기가 멈칫거리자, 캘빈은 방을 지나 방망이로 후려치고, 다시 후려치고, 여러 번 쉼없이 후려갈겼다. 매번, 점점 더 많은 깃털들이 그 안에 숨겨진 채 소용돌이치던 영혼 덩어리들에서 터져나와서는 소리치며 움찔거렸다. 파충류 생물이 이빨을 부딪치며 그들에게 다가오자, 찌르레기는 날개를 뒤쪽으로 퍼덕거리며 둘 모두를 창공 속으로 이동시켰다.

캘빈은 진흙에 처박혔고, 멀지 않은 곳에서 찌르레기도 똑같은 꼴이 났다. 일어서자 한때는 초원이었을지도 모르는 곳에 서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으나, 식물은 죽어버린 지 오래였다. 사실, 그는 약간의 병적인 놀라움과 함께, 그들 둘 말고는 아무것도 일체 살아있는 게 없는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하늘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멀리서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새 소리도, 벌레 소리도, 사람 소리도 전혀 들을 수 없었다.

무인기가 머리 위에서 윙윙거리자 그의 정신도 거기로 잠시 쏠렸는데, 미풍을 빼면 침묵을 깨는 건 그 모터 소리뿐이었다. 돌아서자 찌르레기가 그를 덮쳤고, 몹시 흥분한 채 부리로 그가 서 있던 곳을 내리찍었다. 그는 옆으로 구르고 낚싯대에 스스로를 지탱하면서, 방망이를 가져와 찌르레기의 부리 옆을 내리쳤다. 부리가 금이 가고 찢어지자 괴물은 울부짖었으나, 계속 밀어붙였다 - 매번 캘빈에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지평선에서 눈부신 불빛이 났다. 그들 모두 멈추고 쳐다보았으며, 북쪽 멀리서 우뚝 솟은 버섯구름이, 천상으로 치솟는 불덩이가 생기고 있었다. 그들은 구름이 점점 커지는 걸 지켜보았고, 열과 죽음의 장벽이 밀려오는 걸 공포에 빠져 쳐다보았다. 찌르레기가 두 발짝 걷더니 하늘로 날아올랐고, 그들은 다시 사라졌다.

그들은 바로 착륙하지 않았다. 캘빈이 죽어라고 낚싯대를 잡고 있는 동안, 그는 여러 장소들의 상이 지나가는 걸 보았다. 그는 자기가 들어왔다 사라지는 걸 멀어버린 눈으로 바라보는 세 여자아이가 있는 어두운 시설을 보았다. 그는 일곱 개의 달이 뜬 하늘과 아치형의 금으로 된 입구를 보았다. 그는 눈에 뒤덮힌 재단 기지를 보았다 - 익숙한 곳은 아니었다 - 수많은 박사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들었고, 푸른 빛이 번쩍거리는 걸 보았고, 그러고는 기지는 사라졌다.

매번 시야가 지나갈 때마다, 그는 얼굴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희미했으나, 매번 다른 세계로 갈 때마다 점점 선명해졌다. 그 얼굴들은 가까워졌고, 좀 더 초점이 맞고 있었다. 어느 여자아이였다 - 항상 조금씩 달랐으나, 매번 똑같은 여자아이였다. 매번 마치 말을 하려는 것처럼 그를 골똘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그들 중 하나가 손을 들어 다섯 손가락을 펼쳤다. 다음에는 넷이었다. 그러더니 셋. 둘. 하나.

마지막 여자아이가 손을 뻗었고, 캘빈도 손을 뻗었다. 그들은 서로 닿았고, 그 즉시 소용돌이치는 보라색 연무가 가라앉고 그들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 부딪쳤다.

캘빈이 가장 먼저 느낀 건 압력이었다. 뭔가 근처에 있는 게 엄청난 압력을 내뿜고 있었고, 숨쉬는 것조차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다.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그는 그 근원이 뭔지 알아차렸다. 여러 동심원의 고리로 이루어진 거대하고 엄청나게 복잡한 기계가 있었고, 그 안에는 검은, 소용돌이치는 먼지와 파편이 있었다. 그는 시선을 들어 자신들이 꼭대기가 보이지 않는 수직 통로의 밑바닥에 있다는 걸 깨달았다. 벽에는 기계와 패널, 호스와 받침대, 현기증 날 정도로 높은 저 위를 비추는 조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방 중앙에 있는 그 기계 앞의 무더기에서 날아올라, 날개를 펼치며 맹렬히 비명을 내지르는 찌르레기가 보였다. 그것의 눈이 아래로 향하더니 방에 있는 유일한 또다른 사람을 향했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마른 여자아이였고, 작고 검은 왕관을 아로새긴 은빛 관을 쓰고 있었다. 그 생물이 그녀에게 쉿쉿거리자 그녀가 초조하게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앨리슨?" 그것이 물었다. 분노가 눈에서 불타올랐다. "무슨 짓을 하는 거지? 왜 여기 있는 거야?"

"난 지긋지긋해, 모트." 그녀가 소리쳤으나, 그들 앞 기계의 소음에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건 옳지 않아. 이 일 중에 옳은 게 단 하나도 없다고."

찌르레기가 으르렁거리고 포효했다. "무슨 소리야, '옳지 않다'니? 어떻게 이걸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 있지? 난 네게 네가 원하는 걸 뭐든 제안했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죽음,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 넌 이 될 수도 있다고, 앨리슨."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 그건 자연스럽지 않아. 난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어."

찌르레기가 그녀 앞에 버티고 섰다. "자연스럽다고? 죽음은 자연스럽지. 비참함도 자연스럽고. 내가 제안한 건 도피처야 - 공포스럽지 않은 존재. 도대체 다른 뭘 원하는 건데?"

그녀는 답하지 않았다. 거대한 생물은 크게 까악거리며 날개를 그녀에게 쳐댔다.

"미안하다 앨리슨." 그것이 말했다. 이제는 차갑고 무정한 어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네겐 더 이상 선택권이 없는 것 같구나. 난 검은 왕이다. 네가 뭘 하든 날 막을 순 없어."

"그렇지."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손이 근처의 패널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라면 할 수 있어."

그녀가 열쇠를 돌리고 두꺼운 검은 핸들을 잡아당기자 방의 조명이 붉게 바뀌고 일제히 점멸하기 시작했다. 찌르레기 뒤에서 거대한 기계가 펼쳐지기 시작했고, 고리가 뒤로 물러나며 방은 엄청난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찌르레기는 버텼고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로, 앨리슨?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게냐? 이 안에는 무한히 많은 내가 있다 - 그 중에 하나를 죽이더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캘빈이 방망이를 손에 쥐고 그녀 옆에 섰다. 그가 신발에 대고 방망이를 두 번 톡톡 쳤다.

"무한하지는 않지." 그가 말했다. "딱히 그렇진 않아."

재빠르게 캘빈은 방을 가로질러 찌르레기의 중심부를 겨냥하고는, 꽉 찬 날카로운 소리가 울려퍼질 정도로 그것을 후려쳤다. 찌르레기가 들썩거리고 비틀거리더니, 소용돌이치는 먼지구름 속에 나동그라졌다. 그것이 발톱으로 기계 끝을 잡고 꽉 움켜잡았고, 강철이 휘어지고 뒤틀렸다. 발 밑의 땅이 흔들리고 찌그러지기 시작했고, 수직 통로의 강철 벽이 신음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한 줄기 부드러운 바람과 함께 먼지구름이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인간형의 형체가 있었다. 완전히 새까맸고 가만히 있었다. 그것 주변의 공기는 심하게 휘었고, 먼지구름이 있던 자리는 붉게 빛났다. 강철이 삐걱거리고 땅이 신음하는 소리가 사라졌고, 기계 안의 형체는 고개를 들었다. 앨리슨이 캘빈의 팔을 붙잡고 그를 높은 단 뒤로 끌었다.

방이 진동하기 시작했고, 그 소리 너머로 캘빈은 목소리 같은 뭔가를 들을 수 있었다. 삐걱거리고 금속성이었으며, 허공에서 메아리치는 소리였다.

"감독관…" 그 목소리가 말했다. "넌… 감독관인가?"

"그래!" 찌르레기가 끼익거렸다. "날 풀어줘!"

그 형체가 자신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허공에 꼿꼿이 서 있었다.

죄악이구나… 헤아릴 수 없는 죄악이로다.

"무슨 죄?" 찌르레기가 울부짖었다. "내가 한 거라고는 도피처를 제시한 것밖에 없어! 탈출구!"

그 형체가 빈 손을 뻗었다.

"아니," 그것이 말했다. "이게 유일한 탈출구다."

그것이 주먹을 쥐었고, 찌르레기는 그 자리에 굳었다. 다시 한 번 바람이 불었고, 캘빈은 숨이 가슴에서 밀려나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단에 몸을 기댔고 찌르레기가 과열된 점 하나로 압착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보였다. 방이 엄청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앨리슨이 손을 위로 뻗어 단의 손잡이를 때렸다. 조명이 다시 번쩍이기 시작하더니, 기계가 감기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들은 단 뒤에 다닥다닥 앉아있었고, 공기는 가라앉았으며 으르렁대는 소리는 잠잠해졌다.

캘빈이 숨을 깊게 들이쉬고 기침했다. "저건… 저건 뭐야?"

앨리슨이라 불린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일어섰다. 그녀가 한 손을 캘빈에게 내밀었고 그도 똑같이 했다.

"저 존재는 거의 견줄 데 없는 힘 중 하나죠." 그녀가 말했다. 손으로는 자기 목의 점을 문지르고 있었다. "저걸 찾는 데에는 오래 걸렸지만, 몇 년 동안 찾아다녔어요. 이 존재가 존재하는 현실은 여기가 유일했기에, 그래서 당신들이 여기로 와야 했죠." 그녀가 목을 뚜둑거렸다. "불편을 끼쳐드려 미안하네요."

캘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넌 누구지?"

그녀가 미소지었다. "내 이름은 앨리슨이에요. 재단은 내게 다른 이름을 주었죠. 우리 모두에게 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요. 우린 당신이 하고 있던 일의 낌새를 알아차렸고 그가 끼친 피해를 원상태로 돌릴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죠."

캘빈이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피해라고?"

그녀가 손목을 문질렀다. "찌르레기가 우릴 찾았을 때 우린 그와 일종의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그녀가 망설였다. "난 그자가 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 안에는 모티머가 너무 많아서 어떤 때에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어렵죠. 그도 부당한 일을 수는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그걸 피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 말곤 그 일에 대해 거의 신경조차 쓰지 않았어요. 내 생각엔 그 역시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즐긴 것 같아요."

캘빈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윙윙거리는 기계를 바라보았다. "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몰라."

앨리슨이 땅에 놓여 있는 낚싯대를 가리켰다. "만약 저걸 풀면, 또다른 검은 여왕이 잡을 거고 당신을 당길 거에요."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넌 재단을 언급했지. 재단이 이 세계에도 존재하나? 감독관들에 대해 뭐 알고 있는 거 있어?"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랬었죠. 그들도 있었어요, 오래 전에. 하지만 이게-" 그녀가 그 기계를 가리켰다. "-이게 모두를 오래 전에 죽여버렸어요. 여긴 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이젠. 나뿐이죠, 그냥 이 기계가 확실히 돌아가도록 해두려고."

캘빈이 고개를 끄덕이고 낚싯대를 집어들었다. 그가 그녀에게서 돌아섰다가 멈췄다.

"그들에게는 뭘 보여줬는지 알아?" 그가 물었다. "나와 함께 있던 다른 둘에게는?"

앨리슨이 얼굴을 찡그렸다. "알죠."

"그게 뭐였어?"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해줄 수 없어요 - 다만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데려간다면 그들에게는 잔인한 일이겠죠."

캘빈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낚싯대를 끌어올렸다가 하늘에 던졌다. 낚싯대는 위쪽 어딘가에 걸렸고, 세계는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 - —

그들은 작은 공항의 타맥에 서 있었고, 비행기 한 대가 그들에게로 천천히 이동했다. 비행기가 멈추고 계단이 내려오자, 실베스터 슬론이 그 안에서 나타났다.

그가 그들을 꼼꼼히 쳐다보았다. 평가를 끝마치고 그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자네 셋 꼬라지가 말이 아니군." 그가 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애덤은 다른 둘과 거리를 두고 불편하게 서 있었고, 그의 눈은 흐리멍텅했고 풀이 죽어 있었으며 어깨는 살짝 쳐져 있었다. 그는 뒤쪽 불모지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에도 몸을 떨었다. 올리비아는 백지장처럼 새햐얬다 - 눈 주위의 피부는 팽팽했고 숨소리는 얕았다. 캘빈은 그들 맨 앞에 서 있었고, 손에는 반창고가 붙어 있고 목과 얼굴에 큼지막한 멍이 여러 개 있었다. 손에는 부러진 낚싯대가 들려 있었고, 올리비아의 시선이 잠시 동안 그 낚싯대를 스치고 지나가다가, 다시 얕게 숨을 내쉬곤 했다.

캘빈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슬론은 얼굴을 찡그렸고, 더 이상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셋을 비행기로 안내했다. 잠시 뒤, 그들은 떠났다.


다른 곳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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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시걸은 엘리베이터에 서서, 빠르고 조용하게 긴 수직 통로를 내려가 붉은 액채로 채워진 얕은 웅덩이 위에 매달려 있는 복잡한 개구(開口)를 향해 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췄고, 그는 자신 앞의 단 위로 올라섰다. 그가 웅덩이 안에 누워 있는 형체들을 내려다보고는, 제어용 패널을 향해 나아갔다.

그는 패널에 명령어를 입력했고, 아래쪽에서 붉은 액체가 말라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윙윙거리는 긴 강철 팔이 여전히 어둠에 가려진 네 개의 형체를 웅덩이에서 들어올렸다. 팔들은 그 형체들로 강철 판, 긴 와이어와 튜브, 탄약집을 가져갔고, 그들이 조용히 꿈틀거리자 과열되어 빛나는 강철 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애덤은 그 과정을 끝까지 쳐다보았고, 네 형체는 옮겨져 단 위에 놓였다.

"내 말이 들리나?" 아론이 말했다.

가장 앞에 있는 형체인, 유연한 갑옷을 입은 대머리 인간형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습니다."

"강력하고 귀중한 유물에 손을 뻗친 반란 요원 셋이 있다." 아론이 빠르게 말했다. "그들은 이미 다른 감독관 일곱을 죽였다. 나와, 나사렛 사람과, 꼬마는 보호받고 있는 중이고. 대사는 사라졌고, 아마도 그들의 다음 표적일 것이다." 그가 제어용 패널에 뭔가를 입력했다. "이건 마지막으로 알려진 그의 좌표다."

"임무는 뭡니까?" 또다른 형체가 물었다. 이자는 작고 호리호리했다 - 분명하게 여성형이었고, 머리는 바싹 짧게 깎은 머리였다.

"이 셋을 찾아라." 아론이 말했다. "할 수 있다면 내게 데려와. 만약 저항한다면 죽여라. 그들은 아주 귀중한 유물 두 개를 가지고 있다 - 일지와 창. 그 유물들을 내게로 가져와라."

그가 어깨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의 뒤편에는 화면이 하나 있었다 - 빨갛게 빛나는 점 주위로, 검고 어두운 회색의 원과 화살표 셋이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아론이 그걸 알아차리자, 붉은 점이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보여줘라." 그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어디 있는지 보여줘. 그를 찾아."

붉은 점이 두 번 깜빡이더니 사라졌다. 그가 앞에 선 인간형에게 돌아섰다.

"이제 가라 이란투, 문루, 난쿠, 온루." 그가 말했다. "반란자를 찾아라. 유물을 가져와. 내 붉은 오른손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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