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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곡예사 코렐

놀랍고도

기이한

그녀의

기예를

맛보라!



인간의

극한에

도전하는

신비로운

몸놀림!

아름다운 우리의 곡예사 아나스타샤 코렐이 드넓은 허공에서 춤추는 것을 구경하세요! 사르킥교도 순록 아가씨의 공중 곡예! 우리 모두가 경악할 인간의 극한에 도전합니다.

이 주 월, 금 공연.

상트페테르부르크 특설 공연장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구경 오세요, 오세요!

이하는 『서커스의 탄생: 허먼 풀러의 기형쇼』라는 제목의 출판물의 페이지이다. 출판인도 작가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페이지 낱장들이 전세계의 도서관에 소장된 서커스 관련 책들의 사이에 끼워진 채 발견되고 있다. 이렇게 책 쪼가리를 퍼뜨리는 행위의 배후에 있는 사람 또는 조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경이 곡예사 코렐(The Marvel Acrobat Korel)

서커스의 탄생

누구나 한번에 꽂히는 감정을 알 것이다. 누군들 그 엄청난 충격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한번에 밀려오는 감격, 그제야 깨닫는 자신의 힘, 감정, 빛. 불타오르는 지옥도 식히고 모든 걸 얼려버리는 눈보라도 녹일 의식.

곡예사 코렐은 그런 사람이다. 그녀가 공중제비를 한번 돌 때, 관중은 환호한다. 그녀가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에서 줄타기를 할 때, 관중은 비명지른다. 그녀가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다가 어느 순간 사슴처럼 튀어올라 링 위에 걸터 앉을때, 관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손에 땀을 움켜쥔다. 관객의 숭배를 한 몸에 받을 자격이 그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충분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내가 99년도에 이 서커스단에 처음 영입되었을 때, 먼 곳에서 온 동양인 사내를 반겨주는 이는 많지 않았다. 대개는 날 무시하거나 멸칭을 지어부르고, 모욕적인 언행으로 날 당황케했다. 누군가는 폭력과 괴롭힘으로 나를 반겼다. 그때 당시 내가 들었던 말 중에 “칭 총”이 “라자로 ‘짐피’ 첸”보다 많았다는 걸 전달해드리면 독자 제위께서는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아시리라. 지금 와서는 그 모든 게 일종의 통과 의례였다는 사실을 알지만 당시에는 너무나 혼란스럽고 두려워, 마치 세상 끝에 나 홀로 버려진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코렐은 그런 나를 일으키고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어느 눈 내리는 지방의 저녁, 그날따라 단원들의 심술이 몰아치던 날이었다. 나는 저녁 식사를 채 마치지도 못한 채, 내 몫의 빵을 빼앗기고 몇 대 얻어맞은 뒤, 서커스단 뒷켠의 한 우리에 갇혔다. 그들은 낄낄대며 멀어져 갔고, 남겨진 나의 주위에는 곧 죽음 같은 한기와 고요함만이 찾아왔다.

내가 가장 무서웠던 건 얻어맞는 것도, 추위와 굶주림도 아니었다. 그냥 앞으로도 계속 이런 생활을 계속 해야한다는 어떤 예감 — 이는 지옥보다 더 겁이 나는 일이었다. 이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나, 고국에서는 본디 귀한 신분, 귀한 몸으로 대접 받았던 나에게는 이러한 멸시와 모욕이 익숙치 않았던 탓이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울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 두터운 극광(極光)을 보며 한참을 흐느꼈다. 내 신세가 고약해서.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려워서. 극광은 무심히도 요동치고 있었고 쇠창살은 내 육신을 기온으로부터 지켜주질 못하고 있었다. 점점 추위와 갈증이 나를 덮쳐왔다. 몇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한 터라 고통은 강도를 더해왔고, 곧 무릎이 저절로 꺾였다. 시야도 점점 흐릿해지고 있었다…

그때 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깊고 청아한 목소리, 독특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소리. 나는 고개를 힘겹게 들어올렸고, 아나스타샤 코렐, 그 곡예사가 내 앞에 무언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힘들어 보여.” 그녀가 말했다. 맞았다. 나는 힘들었다. 참을 수 없이 배고프기도 했다. 의식이 몽롱했던 탓에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코렐은 이내 들고 있던 수프 접시에서 한 술 떠 입 안에 넣어주었다. 곧 목구멍으로 따스한 기운이 넘어갔고, 나는 잠시 정신을 차리고 내 구원자를 올려다보았다. 코렐이 미소 짓고 있었다. 미안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미소였다.

“나, 나는…” 목소리가 갈라져나왔다. “나는… 미안합니다.”

“왜?” 코렐은 웃음기가 묻어나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당신이 미안하다는 거야.”

“괜히 내게 신경을 쓰게 했기에…” 목소리가 떨렸다. 몇 번의 헛기침 이후에도 어느 결에 쉬어버린 목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한 일을 하게 해섭니다. 그대는… 날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신경 쓰고 싶었어.”

코렐은 입꼬리를 조금 끌어당기며 미소를 지었다. 밤과 어울리지 않는 미소였다. 오직 나만이, 철창 안에 갇힌 이 비루한 사내 혼자만이 받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미소였다.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는 멍하니 그녀의 말을 음미했다. 신경 쓰고 싶었다, 라는 말이 얼마나 내 입술을 깨물게 했는지.

나는 코렐이 몰래 가져온 열쇠로 풀려났다. 얼음장 같이 차갑던 철창 안에서 밖으로 나와, 드디어 자세를 바로 한 채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예의 장난스럽던 미소는 여전히 그 얼굴에 걸려 있었다.

그 밤, 나는 그 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 고향, 내 가족들, 내 주인들과 그간의 행적들. 그 이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노서아(露西亞)의 원낼캐 고을에서 나서 어린 시절에 서커스단으로 와,(그녀는 사실, “팔려 왔다”고 했다.) 공중 곡예를 배워 공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이의 삶의 궤적이었다. 자기도 처음에는 낼캐교도라는 이유로 그렇게 따돌림 당했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아무 탈 없으니 나도 괜찮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언젠가는 지나가게 될 거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문득 어딘가 불편해보여, 나는 물었다. 아니, 확정지었던 것 같다.

“지금도 당신은 버티어내는 일이 있군요.”

그 이는 내심 놀란 듯 했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단장이 추파를 부리거든, 요새.”

“추파라니.”

“자기 침대로 끌어들이려는거지.”

내가 무슨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단지 그녀가 이렇게 말했기에, 그랬겠거니 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지을 필요는 없잖아.”

필요 있었다. 서커스단에 대한 단장의 지배력은 절대적이었으니까. 그 자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든지 할 수 있을 인간이었다. 코렐은 분명히 강한 사람이었다. 나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한 인간에 가해지는 권위의 부정(不正)은 개인의 힘으로는 이기기 버거울 따름이다.

이날 이후로 나는 그 이와 부쩍 친해졌다. 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 그러니까 날 괴롭히지는 않았으되 조치하지 않았던 이들과도 그럭저럭 사이가 좋아져, 나의 서커스단 생활은 어느 정도 고약한 티를 벗을 수 있었다.

내 삶, 그리고 마음이 나아지면서 더 많이 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전과는 달리 색다르게 받아들이게 된 것 중 하나가 코렐, 그 이의 곡예였다. 낼캐교도의 특성을 이용한 것인지, 그녀의 곡예는 평범한 곡예사들과 대비하여 특이한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정말 허공(虛空)을 걸을 수 있다는 점. 이따끔 코렐은 부러 링을 놓고는 낙하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관객들은 이때 가장 놀란다. 영문 모르는 이들이 보기엔 갑자기 곡예사가 투신하는 것으로밖에는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 공포를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전이(轉移)시킨다. 바로 떨어지다 말고 공중에서 앞구르기를 하며 튀어오르는 등, 관객의 관념에 충격을 주는 것이다.

또, 낼캐인들 특유의 육체적 특성에서 비롯된 차이점 역시 있다. 코렐의 몸놀림을 보면 필요 이상으로 꺾이는 관절, 기이하게 늘어나는 팔 등, 상당히 극한으로 치닿는 동작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묘한 술법은 바로 순록으로 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녀의 재주 중에는 간혹 공중제비를 돌며 불타는 링 안으로 낙하하는 것이 있다. 이때 그 이의 육체는 링 안으로 낙하하는 순간 변이하여 한 마리의 영락 없는 순록으로 변이한다. 이 어찌 신묘한 재주가 아닐 수 있겠는가. 일찍이 내 주인께서는 낼캐교에서 전해지는 술법에 대해 강론하신 적이 있는데, 이를 혈술, 또는 육공예라고 한다고 하시었다. 이 혈술이란 피를 주재료로 하여 술자(術者) 자신 또는 술법에 당하는 이의 육체를 변형하는 술법이다. 이를 알고 그녀의 곡예를 본다면 이것이 필히 그 술법에 의지하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으리라.1

그 이가 천막 가운데의 허공을 가르는 모습을 보면, 나 역시 그 정열적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고, 탄성을 지르며 그녀를 숭앙한다. 다음 차례가 내 차례인 것은 상관도 하지 않는다. 코렐은 마치 마법처럼 관중을 매혹시켰고 이는 같은 단원이었던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말 그렇다. 나는 코렐의 마법에 가장 많이 매혹된 사람이다. 그 이와 함께하는 이 모든 생활이 내게 감사한 일일 따름이다.

혹자가 말하길 연(戀)한다는 것은 서커스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걸 구경하고 있을 때는 순전히 그 안에 몰입하여 그 공연의 규모는 가늠하기는 힘들다. 막이 내리고 공연장에서 나왔을 때서야, 정말 엄청난 쇼였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이때 혹자는 만족하여 돌아가기도 하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다시 돌아가서 계속 그 쇼를 감상하고 싶어하고 싶어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이들에게는 재관람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미 막이 내렸으니까.

어쩌면 내게 재관람의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엄습한다. 그렇다면 나는 쇼를 어떻게 봐야하는 것인가. 고뇌의 불꽃이 내 앞에서 너울거리고 있다. 이때 불꽃은 다시 바람이다. 흙이다. 육(肉)이다.

나는 후회하지 않을 작정이다.

— 라자로 바누야트 “짐피” 첸Lazarus Vanuuyart “Zympy” Chen


1 이는 실제로 그 이도 인정한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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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당신이 내게 나스챠 코렐에 대한 글을 대신 적게 하니,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적어도 한 가지 말은 하고 떠나야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스챠에게서 들었습니다. 위에서 쓴 바와 같이 당신은 욕망에 빠져 그 이를 희롱하고 당신의 첩으로 만들려고 했지요. 십 년도 전에 당신이 돈으로 부모에게서 빼앗은 그 어린 아이를, 이제 장성하여 취하려 하는 꼴입니다. 이 어찌 비난 받아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당신이 그 이에게서 강제로 부모를 빼앗았다면 응당 당신이 부모 노릇을 했어야 할 일이요, 그 이에게서 친우들을 앗아갔다면 응당 이 험악한 부류들 사이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할 일입니다. 단지 낼캐교도란 이유 하나만으로 따돌림을 당하던 그 이를 당신은 모른 척한 겁니다. 이와 같이 어린 시절 내내를 육체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착취당하던 그 이가 이리 강인하고 재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난 것은 분명 천운이 따른 바일테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그래서는 안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도 그리 하지 말아야할 진저, 감히 당신의 천막으로 불러내어 그 이를 강제로 취하려 들다니. 이것이 단장으로써의 도리입니까? 사람으로써의 도리입니까? 그녀의 굳센 심지와 명석한 판단으로 벗어났기에 망정이지, 그러하지 않았다면 하늘이고 땅이고 모두 당신의 죄를 부르짖었을 겁니다.

내가 이리 말한다 한들 당신은 그저 동양의 한 개가 짖는구나, 하며 무시하겠지요. 그리고는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당신은 만족할 때까지 그 이를 계속 몰아붙일 것이며,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다다르면 당신은 끝내 나스챠를 노리개로 삼든 영영 내쫓아버리든 둘 중 한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나는 좌시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그 이의 뜻이 확고한 바, 나는 최대한 그녀를 도와 이곳을 빠져나갈 방도를 마련해냈습니다. 이미 모든 건 착착 시행되고 있으며, 당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무리마저 이 일에 대해 아는 바 없으니 당신이 무얼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때즈음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서커스단에서 나가 그 드넓은 들판 위를 달리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라는 존재도, 서커스라는 존재도 없이 해와 밤이 서로를 추격하는 그 벌판 위에서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