뱸줴

그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가을이 펄쳐지고 있었다. 새들은 잠에 빠질듯이 낮은 자락으로 노래했고, 나뭇잎도 그에 화답하듯 천천히 내려앉았다. 평화로운 나날이었고, 동시에 끔찍한 나날이었다. 누군가 모순성의 한계를 시험하던 시기라고 그러지 않았던가. 벽에 박힌 남자가 발견된 때도 그해 가을이었다. 내가 아슈비나 첸의 기록을 담당하게 된 날 역시 그해 가을의 끝자락이었다. 내가 결코 잊지 못할 날.


"왜 지금 못 들어간다는 거죠?"

뭔가 잘못됐다.

나는 다시 물었다. "왜 지금 못 들어간단거죠?"

말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높고 떨리게 나왔고, 동시에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듯한 이물감이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나는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가 은행의 창구라 내 뒤에 누가 서있어서 그런게 아니다. 혹은, 구청에 어떤 증빙 서류를 제출하다 막힌 건 아니다. 비슷한 상황이긴 해도.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들킬까봐 그런거다. 세상에, 허우대 멀쩡한 놈이 아무도 없는 뒷골목에서 쓰레기통 위에 앉아있는 고양이에게 애걸복걸하는 꼴이라니. 나는 손가락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기며 내 신분 증명 서류와 '탐정 서기'란 글자를 조그마하게 박아넣은 직원증, 그리고 츄르 한 봉을 그러모았다. 고양이의 대답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고양이의 입이 열리더니 언제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바리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나는 이 고양이가 내가 살짝 움찔한 사실을 모르기를, 아님 모르는 척하기라도 해주길 바랐다.

"지금 미리 들어가 있는 손님이 있다. 첸 양에게 알림은 보내놨으니, 면담이 끝나면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젠장. 미리 들어가서 좋은 첫 인상을 보여주려고 했더니만. 일을 그르쳐도 한참 그르쳤다. 고양이는 자기 볼일은 다 봤다는 듯이 그르렁거리며 몸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망할 고양이 같으니라구.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츄르의 포장지를 벗기고 고양이에게 건네주었다. 계획이 틀어졌다, 전부! 첫 업무에, 첫 탐정에, 첫 출근인데 손님-아마 의뢰인이겠지-을 받는 모습도 못 보다니! 나는 멍하니 고양이가 츄르를 핥아먹는 모습을 보며 그대로 앉아있어야만 했다.

무심결 나는 어제 크리스-애덤 룽과의 저녁을 떠올렸다. 인사 책임자인 그와의 저녁 식사 신입 직원들에게만 허락되는 자리였다. 얼른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마다하지 않을 자리였다. 물론 내 고질적인 실수들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있음을 부인하진 않겠다. 나는 사옥이 있는 거리 뒷골목 레스토랑에서 - 그런 데에 뭐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 그를 만났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동시에 대화를 나눴다. 주제는 대부분 내가 해내야 할 일들에 대한 것들이었다. 룽의 말투는 짧고 간결했다. 하지만 그 안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전 지휘관들과는 다른 화법을 가진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그는 내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 이런 일은 결코 조언해주지 않았다고.

몇 분쯤 지났을까, 나는 내 귓전을 때리는 굵은 음색에 기억에서 벗어났다.

"첸 양에게서의 호출이다. 어서 들어오도록."

드디어! 나는 부리나케 가방과 옷차림을 추스르고 고양이 앞에 섰다. 고양이는 자기가 지키고 있던 쓰레기통 위에서 물러나더니 턱짓으로 뚜껑을 가리켰다. 열라는 의미인 듯 싶었다. 뚜껑을 열자 텅 빈 어둠 속에 어떤 물체가 놓여져 있었다.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니체의 말이 불현듯 뇌를 스쳤다. 저게 뭔지는 몰라도 그닥 친숙한 물건은 아닌 듯했다.

내가 머뭇거리자 고양이가 꼬리로 아킬레스건을 쳤고,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어둠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그걸 꺼냈다. 꺼내보니 그냥 책이었다. 이게 뭐람.

<메리 포핀스>

"심호흡을 하고, 책을 열어라."

나는 고양이가 시키는 대로 했고, 곧 심연 속으로 떨어졌다.

나는 어둠 속에서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발에 닿는 차가움, 눅눅한 습기, 어둠, 그리고 코를 찌르는 비누 냄새가 이곳이 화장실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변기에서 오른발을 빼며 나직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젠장, 되는 일이 없군. 그러자 화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나는 갑자기 내 눈에 내리꽂히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그러나 한 순간이었다. 나는 문 저편의 빛의 영역에서 날 뚫어져라 쳐다보는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었다.

"참 기이한 등장일세, 서기. 어서 올라와."

마침내, 나는 아슈비나 첸을 만났다.


아슈비나 첸은 180cm에 가까이 가는 큰 키에, 회색 빛 머리칼을 지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그렇게까지 나이를 먹은 것 같지는 않다.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지는 연륜에도 그러하다. 이유는 정확히 모른다. 그녀의 움직임과 지성에 그 원인을 기하는 것 같다는 아주 작은 추측만 할 수 있지만.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느낌도 그러했다. 나이를 먹은 듯, 아닌 듯, 모순적인 기묘한 분위기.

나는 화장실에서 나와 그녀를 마주보고 섰다. 내 키와 거의 가까운 나머지 나는 잠시 뒤로 물러서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녀의 눈빛. 사람의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그녀의 세계로 누구든지 들어가게 할 수 있을 만한 그 눈빛, 마술사의 눈빛이었다. 나는 되도록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하려고 애썼다.

"안녕하세요, 첸 양. 저는-"

"시어도어 카프카 윌슨, 오늘 처음 온 서기관. 지금 시각은 7시고, 난 자네를 6시 반까지 오길 원했는데."

나는 경직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가 준비했던 말들이 어느새 내 두개골 너머로 도망치고 있었다. 이때를 되돌아보았을때, 내 표정이 그 어떤 선인장보다도 멍청했으리라는 사실을 나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아까보다 조심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정말 죄-"

"쉿, 서기. 시간은 그닥 중요한 게 아냐. 사과해준다니 고맙군. 정말 중요한 건 자네가 얼마나 능률이 뛰어난가겠지."

"아…어…"

그녀는 회색 머리칼을 잠시 만지작거리더니 재빨리 말했다.

"말은 적을수록 좋지. 이리와, 서기. 자네가 꼭 봐야할 것이 있다네."

그리고 그녀는 내 옷깃을 쥐곤(그렇게 강력한 아귀힘을 가진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디론가로 끌고 갔다.


"어…"

"그래, 나도 알아."

"벽에 이… 신사분이 왜 끼어있는 거죠?"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탐정을 바라보았다. 탐정이 고개를 으쓱하는 걸 봐서는 의도한 무언가가 아님은 확실했다.

"살아있던가요?"

"어, 살아있네. 건강상태도 양호하고, 단지 약간 쇼크 상태가 온 것 같긴하더군."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벽에 박힌 남자가 갑자기 고개를 퍼뜩 떴다. 무척이나 실례됨을 알고는 있으나, 나는 그의 모습에서 죽어가는 자벌레의 형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간신히 한 마디를 내뱉었다.

"으악!"

"깼군." 첸 양은 사무적인 어투로 말하고는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부터 당신의 뻣뻣한 육체를 그 고풍스러운 벽에서 빼낼 건데, 괜찮겠습니까?"

남자는 뭐든 상관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자네가 오른팔을 끌게." 왼팔을 붙잡은 채로,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조금 불쾌하고, 또 걱정되는 마음으로 남자의 오른팔을 끌어내었다. 남자가 벽에서 우당탕 굴러나올때까지 우린 그를 잡아당겼다. 남자는 정신이 영 없는 것같았다. 하지만 누군들 벽에 박히면 그런 반응이 아닐텐가? 나는 힘을 써서 놀란 오른팔을 무의식적으로 붙잡았다. 아슈비나 첸은 전혀 힘든 기색도 없이, 그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남자는 이내 쿨럭거리며 말했다.

"여기가 레이븐 양의 사무실이 맞습니까?"

레이븐? 그 사람은 또 누구야. 나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며 중년의 남성에게 말을 하려다 나를 보고 고개를 젓는 첸 양을 보고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네, 맞습니다. 전 그분의 비서 수잔 보셋이에요. 아쉽게도 지금 출타중이신데, 용건을 말씀해주시면 전해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