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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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아
32세, 168cm, 62kg
2등급 격리 전문가. SCP-169-KOSCP-812-KO의 격리 절차를 고안함.

한진영
32세, 164cm, 58kg

커피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내 입가로 가져가 한 모금을 꿀꺽 삼켰다. 따뜻함. 씁쓸함. 단맛. 마지막으로 입 안에 남는 프림의 맛. 대부분의 직원은 편의성과 시간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 간단하게 끓는 물만 붓는 인스턴트 커피를 선호했고, 민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매일이 전쟁이다. 매일 아침마다 서류가 쌓이고, 그걸 다 해가나 싶으면 다시 또 비슷한 양의 서류 더미가 생겨났다. 그런 상황에 휴게실에서 마시는 한 잔의 커피는 생활의 활력소나 다름없었다. 세포의 에너지 공장이 미토콘드리아라면, 재단의 대한민국 지역사령부 직원들의 원동력은 휴게실 커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한다면, 차라리 기억 소거를 받고 민간인 신분이 되는 것이 나았다.

“휴식?”

익숙한 인물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민아는 손에 쥔 커피 컵을 살짝 들어올려 보이는 것으로 진영에게 답해보였다. 진영은 그에 작게 미소짓고는 일회용 종이컵 하나를 꺼내고는 뜨거운 물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민아는 벽면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새벽 4시.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거의 다 무의식의 세계가 보여주는 광경에서 허우적거릴 시간이지만, 하필 최근에 커다란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적어도 대한민국 지역사령부 소속 직원들은 혈관에 카페인을 때려부으며 깨어있었다. 아, 카페인이여! 네가 없었으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하지만 아쉽게도 민아는 카페인에 그리 민감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는 것도 카페인을 통해 졸음을 쫓는다기 보다는, 먼저 그 맛을 꽤나 좋아하고, 뭔가를 마시는 행위로 졸음을 쫓는 것에 가까웠다. 그러고 보니, 이게 몇 잔 째더라? 민아는 또 다시 한 모금을 들이키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일어나자마자 한 잔을 마셨고, 오전 업무 보면서 또 한 잔을 마셨고, 점심 먹고 잠시 쉴 때 한 잔을 마셨고, 오후 업무 볼 때 세 잔을 마셨으며, 저녁 먹고 또 한 잔을 마시고, 지금 마시는 것이 새벽에 마시는 두 잔 째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총 9잔이다. 전에 한 사람이 하루에 먹는 커피의 적정량을 알려주는 사이트를 본 적이 있었다. 민아는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사이트를 검색해 들어갔다. 어느새 커피를 다 탄 진영이 옆으로 다가왔다.

“뭐야?”

“내 하루 적정 커피양이 얼만지 보려고.”

보아하니 커피의 종류와 몸무게, 카페인 민감도를 입력하면 적정량을 알려주는 식인 것 같았다. 커피 종류는 인스턴트. 몸무게는 61kg. 민감도는 아주 낮음. 전부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자, 바로 결과가 나왔다. 8.6잔 이상 마시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이런. 민아는 생각했다. 이미 넘어버렸는데.

“어디, 나도 해보자.”

속으로 혀를 차고 있자니, 진영이 손에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뺏어가서는 본인의 정보를 입력했다. 58kg. 카페인 민감도 아주 낮음. 8.2잔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얼마나 마셨어?”

“…13잔.”

많이도 마셨다. 문뜩, 작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236ml 잔을 기준으로 한 것이란다. 아무리 봐도 지금 손에 들고 있는 종이컵은 236ml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종이컵으로 치환하면 도대체 얼마나 먹으면 된다는 말일까…. 민아는 열심히 머리를 굴려보았고, 곧 한가지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걍 신경쓰지 말자.”

“그래.”

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죽기 전에 사령부 안에서 격리 중인 변칙 개체가 탈주하여 날뛰다가 거기에 휘말려 죽을 가능성이 더 높아보였다. 그냥 신경 끄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더 이로울 것 같았다.

발코니로 향하는 문을 열자, 서늘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커피로도 충분치 않았던 것인지 약간의 졸음기가 있었는데, 그게 전부 가시면서 정신이 짜릿하게 깨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연초, 겨울 새벽의 공기는 생각 이상으로 차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