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에서

ㅇ(에하라 시점)그 방 안에 있었던 아홉 사람은 서로에게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어떤 유대감마저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홉은 서로에게 간격을 갖고 있었고 그 간격 자체엔 어떤 성분도 함유되어 있지 않았다. 간혹 서로를 바라볼 때도 있었으나 그들이 서로에게 던지는 시선은 무의미하고 무감각했으며, 동시에 끔찍했다. 같은 것을 빼앗긴 사람들이라곤 생각도 못할 모양새다. 종국에 그들이 서로에게서 느낄 수 있던 것은 서로의 존재였다. 잠시라도 집중을 않으면 일렁이다 사라질 그런 미약한 존재감. 젊은 교도관 에하라의 눈에는 적어도 그리하였다.

57호실 안에는 아홉 명의 불령선인이 갇혀 있다. 가끔 그 구 인중 한명이 목을 길게 빼어 밖을 내다보면 오른쪽으로 쭉 뻗은 복도 저편에 第12科라고 적힌 팻말을 볼 수 있었다. 복도는 차디차고 조용하다. 가끔 신음소리가 들리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간수 한 명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면 신음도 사라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에 동조하듯 옥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아무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아홉 명이 갇힌 그 방은 본디 옅고 푸른 쪽빛의 페인트로 칠해진 것도 같았다. 그러나 이젠 역겨운 동색으로 떡칠이 되었다. 아흐레 전에 박이 바로 창 아래 벽면에서 매맞다가 분을 못이겨 제 스스로 터져버린 까닭이다. 에하라 역시 그 일을 기억한다. 십 인이었던 그들이 구 인이 된 순간 남겨진 자들은 그 귀천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모두 비명을 질렀다. 지옥도였다. 창 밖으로 살풍경한 빛이 스산하게 스며들었으나 이내 실내의 공허함에 저물고 마는, 어떤 프로세스에서 그들은 일말의 희망을 얻었는지도 모르나 결국은 스러질 헛됨이었다. 마치 쪽빛에 오물이 들러붙듯.
오랜 정적 후에 한 조선인이 말을 꺼냈다. 웅얼거리는 소리인데도 뜻은 명확했다. 허기를 호소하는 것이다. 그러자 다른 조선인 하나가 받아친다.

"거 조용히 좀 하슈! 아직 줄 시간두 안 되었는데 무슨."

"아이고… 배고파. 거 정형은 이틀을 굶다시피 했는데두 허기치 않소?"

"그렇다고 빌겠남?"

"살라믄 뭐든!"

이때 다른 조선인이 끼어들었다. 앞서 말을 나눈 조선인들보다는 젊고 기력이 남아보이는 치다. 에하라는 재빨리 기억을 훑었다. 아무래도 대학에서 붙잡혔다고 들은 것 같은데.

"미친 사람. 왜 그런 분이 여기 계시오? 진즉에 나라 팔아 잘 살고 잘 쳐먹질 않고." 대학생의 얼굴은 꾀죄죄하고 볼이 움푹 들어갔다. 형무소에 갇힌 불령선인들의 기준이 될 만한 행색이다. 그러나 모두들 가진 절망감이 그에겐 없다. 분노가 있을 뿐이다.

"아아니, 이 자식이!"

하며 허기를 호소한 조선인이 대학생에게로 달려든다. 그러나 화를 발칵내는 투가 제 신념이나 생활 신조 따위의 것을 모욕당해서라기보다는 무안함을 감추려는 투가 완연히 묻어난다. 그러나 그런 류의 분노가 가장 버겁고 힘든 법이다.

허기쟁이가 어느새 대학생의 늘어난 멱살을 잡으며 뭐라뭐라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다. 그제야 에하라는 57호실로 초점을 뚜렷히 맞추고는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다. 구 인은 흠칫 놀라 제각기 몸을 피한다. 그것이 인간의 최소한의 품위를 함유했다기보다는 어떤 동물적인 감각에 의해 제정신을 깨달은 모양이다. 에하라는 머릿속으로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을 떠올린다. 종을 울리면 먹이를 주는 줄 아는 그 개가, 인간으로 변신해 구타만 당하면서 살게 된다면 저런 양을 띄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까 에하라는 지금 종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때 이 종은 양식과 즐거움의 전조라기엔 고통과 구타의 알림음이다. 힘을 얻은 것이다. 위협감을 줄 수 있다. 그게 얼마나 큰 능력인가, 하며 에하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얻는 게 있는 것이다. 이름을 버려가며 무언가를 드디어 얻은 것이다. 저 안의 치들과 그를 구분하는 무언가.

에하라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제, 식사가 날라져 온다. 점심 때가 다 된 것이다. 식사를 밀어주는 간수가 그를 보고는 고개를 까닥였다. 젊고 영민한 자였다. 창씨개명도 누구보다 우선으로 했다고 들었다. 에하라는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다른 수준으로 올라간 자들의 연대감이다. 그런 그가 점심을 같이 들자고 고갯짓을 했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그럴 수가 없다. 그는 젊은 간수에게 한 손을 들어보인 다음 주먹을 쥐어보인다. 간수 역시 이해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것이다. 간수가 물러간 다음에 그는 고개를 들어 옥 안과 복도 저 끝에 걸린 시계에 시선을 연해 돌린다. 옥 안은 제각각 제 밥을 처박질하느라 분주하다. 곧 무슨 일이 예정되어있는가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가 싶다.

아니다. 한 옥수(獄囚)가 그를 보고 있다. 이전에 두각을 보였던 죄수는 아니다. 아침이 오기 전에 싸웠던 놈들 가운데 하나도 아니다. 죄수는 다리가 부러진 안경을 썼다. 수염 자국은 어지러이 거뭇거뭇하고 얼굴은 더럽다. 하지만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어 함부로 시선을 두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에하라는 놈이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알았을 때부터 덩달아 놈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으나 어쩐지 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서 온 놈이지? 그는 재빨리 머리 속의 인명부를 뒤적인다. 하지만 뭐 하나 기억나는 것이 없이 이내 한 줄기 간극으로 귀결될 뿐이다. 종국에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당돌한 죄수의 묵직한 눈빛을 받아내는 일뿐이었다.

아니, 그는 간수다. 따라서 그는 이 치졸한 권력 구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이다. 에하라는 귀치 않다는 것을 피력하듯이 구둣발로 철창을 한번 후려갈기었다. 그 죄수를 포함한 아홉 사람 모두가 몸을 움츠린다.


(김 시점) 꿈에서 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은 고통이었다. 김은 밤새 꿈을 꾸었다.

눈을 막 떴을 때 다리에 무언가 묵직한 것이 느껴지는 것을 제외하곤 별다른 것은 없었다. 수감자 하나가 그의 다리를 베고 자고 있었다. 김은 금 간 안경을 어둔 구석탱이에서 손을 더듬어 찾고는 눌러 썼다. 얼굴을 얻어맞은 이후로 이상하게 뒤틀려버린 안경테가 관자놀이를 누르듯 거슬렸다. 그는 초점이 맞지 않는 눈을 애써 찌푸려가며 옥실 사방을 이곳저곳 꼼꼼히 눈여겨 보았다. 행여 밤새 누군가가 죽기라도 하면 하고 걱정하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그는 휴머니스트가 아니다. 김은 제 목을 쭉 피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죽기라도 한다면, 그러니까, 수일 전 박이 그렇게 죽었을 때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 닥쳤던가. 남은 이들에게 더 많은 일이 부과되지 않았던가? 김은 그렇게 생각하는 동시에 뿌리깊은 혐오감을 느꼈다. 너무나 역겨운 자기본위적 생각이었다. 최소한의 인간성도 어느덧 말소되어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여기 있어봤자 인간다워질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김과 이외 8인이 수감되어있는 57호실의 옥은 김의 우려와는 달리 고요했다. 하지만 이 고요란 것이, 김이 받아들이기에는 그 옛날, 금성의 밤이 여물어 갈때의 정적이라기 보다는 그 소음 자체를 죽여버린 것만 같은 모양의 침묵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위안이 될 것이라곤 오늘의 새벽이 어제의 새벽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방 구석 구석에 언제나와 같이 무력감, 공포, 절망이 마치 룸메이트라도 되는 것마냥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김은, 어찌보면 그들이야말로 진실된 친구일지도 모른다고 자조적으로 되짚었다. 적어도 죽어 없어질 존재는 아니니까. 죽지 않는단 일이 얼마나 큰지.

그는 몸을 꼿꼿이 세워 벽에 기대고 여직 일렁이고 있는 그 간밤에 꾸었던 꿈의 이미지를 돌이켜 보았다. 꿈은 대체로 무질서한 어떤 광경을 보여주었다. 이 광경은 세상의 질서를 따른다기보단 어떤 카오스적인 무언가의 광기였는데, 언제나 나타나는 요소는 불타는 선산, 사람들의 환호, 광기, 마술을 하나 둘 성공시키는 자신, 그리고…

김은 그저 죽고 싶었다. 그리고 곧 그렇게 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