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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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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신, 호구별성(戶口別星),
추방된 다에바, 두술사(疱術師), “약한 자들”1

개요

東京明期月良
夜入伊遊行如可
入良沙寢矣見昆
脚烏伊四是良羅
二兮隱吾下於叱古
二兮隱誰支下焉古
本矣吾下是如馬於隱
奪叱良乙何如爲理古

서라벌 밝은 달 아래
밤 늦게까지 놀다
집에 들어와 잠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어라
둘은 내 아내 것인데
둘은 누구 것인고?
본래 내 것이었는데
빼앗아 간 것을 어찌 하리오

일연(一然), 『삼국유사』 제2권 「기이」 처용랑 망해사 중에서.

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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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손님 김철현의 방.

지식

특징: 손님네는 한국 설화에 수록된 질병 조정자들이다. 천연두의 한국 북부 방언이 '큰 손님'이라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들은 예・맥・한 계통 국가의 판도 전역에서 천연두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현재까지 수집된 자료에서는, 그들이 통일신라인들 및 고려인들과는 차이를 보이는 외모나 복식을 가졌다고 묘사된다. 『반야록』(般野錄)에서는 그들이 "이방인임을 여실히 드러내었다"라고 서술하는 대목이 있다. "그들이 지나가면 아낙들은 수다를 멈추었고, 사내들은 나무 하기를 멈추었다"하고, "서둘러 제 아이를 숨기기에 바빴다"라는 손님네들을 언급하는 또 다른 대목은 그들과 현지인들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이질적인 의복 문화적 차이를 암시한다. ‘손님굿’에서는 압록강의 사공이 손님네의 일원인 각시손님에게 반해 희롱하였다는 대목이 나오기도 하므로, 당대인들의 기준으로 혐오스러운 외모는 아니었던 듯하다.

성질: 구성원은 총 네 명으로, 각각 한국 설화에서의 명칭은 ‘각시손님’, ‘호반손님', ‘문반손님’, ‘작은 손님’이다. 그들은 사르킥 혈술2과 기적학적 행위로 천연두 바이러스3를 생성해내고 이를 조종할 수 있었다.4 이들이 한국 민간 설화에서 역신, 마마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이들 특유의 사악한 성정으로, 그 심성이 변덕스러워 민간에 크고 많은 양의 피해를 줬다고 전해진다. 특히나 그들에게 해를 끼치거나 무례한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반드시 피해를 보았고, 그러하지 않은 이들조차 천연두를 앓게 하는 등 손님네들은 무분별한 공격을 자행하였다.

 특히 구성원 중 ‘작은 손님’이라는 자는 그 무자비한 공격의 대표적인 희생자이다. 본디 그는 약 879년경에 태어난 통일 신라인으로, 상술한 두술로 천연두를 앓게 됨과 동시에 사르킥적으로 신체적으로 변이5한 것으로 추정된다. 많은 목격담에서 그는 다른 손님네를 모시는 종 내지 제자로 묘사되었다.

 흔히 사르킥 고위 계급이 그러하듯, 손님네들의 수명은 상당히 긴 것으로 보인다. 신라 땅에 도착했을 때의 이들의 나이를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행적이 남아 있는 점, 또 명확하지는 않으나 그 이후에도 이들이라고 추정되는 삽화가 출현하는 점을 미루어 볼 때, 두술사들은 장생족의 평균 수명과 비슷한 정보의 수명을 가지고 있다는 설이 유력하다.

추가로 수집한 정보에 의하면, 이들의 수명은 현재까지 생존하고 있는 인원이 있는 만큼, 장생하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이들의 두술 능력은 시간이 갈수록 약해졌다. 우리가 서천 CC에서 조우한 ‘작은 손님’을 대상으로 검사해 본 결과, 현재 그에게는 단순한 감기에 걸리게 할 정도의 기적학적 능력밖에는 남아있지 않았다.6 이것이 본(本) 두술사에 의해 변형된 작은 손님 스스로의 특성 탓인지, 아니면 두술사 특유의 두술력 감퇴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78

내력 및 관계: ‘작은 손님’ 김철현을 제외한 나머지 세 두술사의 이름은 각각 야카르엔Jakarren, 포우루샤스파Pourushaspa, 아슐링Aisling인 것으로 밝혀졌다.9

야카르엔은 다에바 가모장의 딸이자 그 역시 젊은 가모장으로서, 사비르Sabir라는 도시를 다스리고 있었다.10 포우루샤스파는 고위층 가모장의 아들로, 성년이 되었을 때부터 숱한 여신관들과 가모장들의 조언자로서 일하며 굉장한 사회적 지위를 누렸다고 전해진다.11 아슐링은 중국의 장군 진개와의 전투에서 많은 승리를 거뒀다 여겨지는 전설적인 가모장 트라이타오나Thraetaona의 미망인으로, 그 자신의 학식과 지위로 다에바 상류사회의 당당한 한 축으로 대접받고 있었다고 전해진다.1213 야카르엔과 포우루샤스파는 후기 다에바 태생으로, 당시 다에바인 귀족들과 비교할 때 상당히 젊은 축에 속해 있었다.

이 셋이 추방된 이유는 당시 다에바를 파멸로 몰고 간 주 원인이자 이교였던 낼캐교를 비밀리에 받아들여서라고 추정된다. 도서관에서 찾을 수 있는 다에바 역사서의 작은 파편들에서 이들에 관한 기록을 긁어낼 수 있었다. 하단에 첨부할 문서는 당시 다에바에 거주하던 이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다.

그리하여 이들의 수괴 야카르엔이 쓰러지더이다. 도시 내 가장 깊숙한 곳에서 농성하던 그녀는 다름 아닌 제 어미의 군사에게 붙들려 나와 광장에 엎어졌고, 곧 그들에게 짓밟히었소. 한때 가모장이었다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치욕이었지. 도시의 모든 백성이 돌을 던졌고 천더기들마저 야유했소.

야카르엔을 뒤이어 쉰 세 명의 배반자들이 모습을 드러냈소. 한가지로 붉은 옷과 검은 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자들이 차례로 군사들의 억척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가모장 옆에 꿇어앉았지. 불경스러운 불길이 그들의 눈빛에 이글거리고 있었소. 그중에서도 가장 난폭했던 이는 포우루샤스파였을거요. 그 젊은 조언자이자 야카르엔의 남첩14은 실질적인 전투는 구경도 못 해본 주제에 마치 자기가 일당백의 장수라도 되는 듯이 굴더군. 그러나 결국 붙잡히고, 수 대는 더 얻어맞은 뒤에야 진정했소. 바로 옆의 아슐링이 잠잠하게 끌려 나온 것과는 차이가 있는 반응이었소.

야카르엔도 비록 힘을 소진하긴 하였으나 만만치 않은 존재였지. 열 명이 넘는 군사가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소. 그들 중 누구도 긴장을 풀지 못했고. 한순간이라도 마음을 놓는 순간 이교도의 입이 자신들을 물어뜯으리란 걸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만큼 그녀의 얼굴은 험악했고, 온몸을 옭아맨 오라를 풀기 위해 거세게 몸부림치고 있었소.

그 모든 저항이 위대한 가모장 퀀타리엔Quantarien이 현현하면서 수그러들더이다.

야카르엔의 얼굴은 제 어미를 보자마자 허옇게 창백해졌소. 그자가 그 정도로 두려움과 공포로 얼룩지는 걸 보는 건 처음이었지. 다른 이들도 이를 알았는지, 더욱 조롱하는 소리가 커져만 갔소. 그러나 이 소리도 퀀타리엔이 손을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사그라들었소.

퀀타리엔은 말했소. “내 딸아. 네가 수치스러운 짓을 했구나. 스스로 노예 되기를 자처하고 그 오랜 시간 터득했던 다에바의 지혜를 도랑에 내던져 썩어가게 하였어.”

좌중에 있는 자들은 모두 겁에 질리거나 긴장한 상태였소. 따라서 그곳에는 오직 가모장의 말만 소용돌이치고 있었지. 광장을 울리는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배반자의 우두머리가 자기 어머니에게 대답했소.

“어머니 다에바이시여, 나를 이끄시는 분, 수많은 전투에서 이기시는 분이여. 나를 이제 만나러 오셨나이까. 이 사달이 나고서야, 나를 보러 오실 마음이 생겼나이까.”

“네가 옳게만 나아가고 있었더라도 널 만나지 않았을게다. [해독 불가능]다에바답게 행위하였더라면 내가 너를 만날 이유는 무엇이겠느냐. 넌 다에바의 수치다.”

야카르엔의 얼굴은 입을 뗄 때마다 새파래져 갔지만, 그 간 큰 냉담자는 꿋꿋이 받아쳤소.

"나는 내가 다에바답게 행위하지 않은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나이다. 당신과 닮은 내가 되지 않음을 자랑스럽게 고하나이다. 다에바의 악독한[해석 불가능] 오직 현자께서 이 일을 아시리다.

다에바란 지상에 존재하는 악의 표상이오. 사람의 형(形)을 갖추었으되 사람이지 못한바, 진정으로 이 삶에 기쁨을 느낄 이유 무엇이겠소. [해독 불가능]

지나갈 옛 존재들을 탐하지 마시오. 불필요한 살육과 인신 공양을 멈추시오. '교만은 지독한 추락을 불러오느니, 공허 속을 들여다볼 때는, 공허가 그대가 되지 않도록 하라.'"

온갖 곳에서 분노의 함성이 터져 나오더군. 여러 신도 그 위로 모여 그 모든 사달을 내려다 보고 있었소. 그 허연 거죽, 존재적 공백을 울리는 거대한 비명의 집합이 공개재판정의 공허를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그 이름 없는 자들은 메마른 입술을 축이며 끼익 거리는 웃음을 짓더이다. 얼굴 없는 신은 삼각형 낙인으로 그 광경을 직시하기를 거부하고 돌아서 떠났고, 털 달린 경이는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들의 행태를 관조했소. [해독 불가능] 부루, 그대도 와서 보았다면 좋으련만.

위대한 가모장은 대답하지 않았소. 판결을 의미하는 몸짓을 취해 보였을뿐. 퀀타리엔은 비틀린 왼손의 중지로 이마에서부터 메마른 윗입술 께까지를 문질렀소. 관중 사이에서는 헉하는 숨소리만이 일었지. 소멸형에 처한단 표식이었소. 배반자들 사이에서도 공포에 질린 기색이 역력한 자가 많더이다.

그리고 가모장이 말했소. “배교자들은 들으라. 다에바의 선례에 따라 너희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남아있다.

너희의 어리석은 행위에 통탄하나, 본래 그 신분이 일천하지 않음에 따라 회생 여지가 있다고 보아 한 기회를 너희에게 주니, 이를 잘 헤아려야 할 것이다.

너희의 그 조잡한 사상과 불온한 행동은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조롱할 것일진저, 무얼 그리 집착하여 죽기를 바라느냐.

그 간악한 심성을 버리고 정당한 다에바의 질서에 귀속되어라. 그리하면 생(生)을 다시 얻고 천더기의 신세를 피할 수 있으리라.”

광장은 죽음과도 같은 침묵으로 일렁였소. 누구 하나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지. 관중들은 미약한 흥분이 어린 표정으로 누가 먼저 자신의 사상을 배교할 것인지를 두고 작은 목소리로 내기하더이다.

시간이 흐르고, 하나둘씩 배반자들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가모장의 발아래에 엎드리는 자들이 생겨났소. 처음에는 조금씩이었지만, 나중에는 한 가족 전체가 가서 패배를 인정하기도 했소. 그렇게 모두 떠나고, 마침내 세 명만이 남게 되더이다.

배교한 가모장 야카르엔, 배반한 조언자 포우루샤스파, 동조한 미망인 아슐링.

가모장은 표정 없는 얼굴로 물었소. “정녕 너희가 죽음을 작정하려 하느냐?”

야카르엔은 핏발 선 눈으로 애써 고개를 치켜뜨며 대답했소. "내가 무얼 원하는지 당신께서 아시나이다."

아슐링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포우루샤스파는 조소를 날리며 모욕적인 행위를 해보였소. 다시금 관중들의 야유가 시작되었지.

퀀타리엔은 다시 손을 들어 좌중을 진정시키고는 제 딸을 바라보았소.

그리고는 그녀의 딸이 원하는 대로 해주더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마지막으로 남은 세 다에바인 귀족은 곧장 기록말살형에 처해진 후, 추방당했다.15 왜 그들이 가까운 지역이 아닌 신라로 향했는지는 불명이다.

우태근(優苔根)의 『체사문(諦史文)』과 김거식(金去湜)의 『기물사편(奇物史編)』 「신라사」에서는 공통으로 이들이 한반도에 도착한 시기를 약 889년경으로 서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되어 있는 『기물사편』에 의하면, 이들은 신라 금관경 강주 땅에 배를 통해 상륙했고, 곧장 수도 금성으로 향하여 당시 군주였던 효공왕을 만났다. 효공왕은 그들을 고대 페르시아에서 온 귀빈으로 대접했다. 이는 천연두를 감염시킬 수 있는 그들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행한 일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두술사들은 그가 생각한 것처럼 얌전히 귀화인 귀빈 대접에 만족하지 않았고, 이후 그들은 신라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천연두를 부리기 시작한다.

 두술사들이 그들의 동행을 만난 시기는 대략 895년 안팎으로 추정된다. 동행의 신원은 경순왕의 조부인 의흥왕의 형, 김실흥(金實興)의 아들 김철현(金澈賢)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민담에서는 그들이 만난 이유를 노구 할머니라는 신원 불명의 인간16의 부탁으로 천연두의 면역체계를 형성시키려 접촉했다 전한다. 그러나 김실흥의 반발 및 모욕 등으로 마음이 바뀐 그들은 김철현에게 치사량의 두술을 행하고, 이 과정에서 그의 몸에는 상술한 변이가 일어난다. 이후 김철현은 ‘작은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두술사들과 동행하게 된다.

손님네들이 처용과 조우한 시기가 바로 이 시기 직후라고 추정된다.. 처용은 『삼국유사』제2권 「기이」 처용랑 망해사에 등장하는 인물로, 동해 용의 일곱 아들 중 하나이며 아내와 동침한 역신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방식으로 쫓아냈다는 일화가 있다.1718

『기물사편』의 기록에서는 두술사들의 행보가 “한 기이한 도사”를 만난 직후 수그러들었다고 지칭한다. 이때 이 도사를 지칭할 때 ‘급간’, ‘용의 아들’, ‘제웅’, ‘먼 곳에서 온 자’ 등의 별칭을 부르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는 바로 처용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문집(流文輯)』에서 처용랑의 부인을 탐한 기이한 여인에 대한 기록도 특기할 만하다.19

가장 사료적으로 잘 기능하는 글은 작자 불명의 『객지사』(客之史)라는 서적이다. 이 서적의 확인 가능한 부분을 보면, 호구별성(戶口別星)과 ‘부인’이라고만 표현된 묘령의 여인과의 성관계 묘사, 그리고 그 후 집에 돌아온 ‘부인’의 남편에 대한 묘사를 보면 어떠한 정황을 묘사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게끔 한다.20

 결국, 조합해보면 이들이 한때 처용을 만난 것, 그리고 폭력적 접촉 이후 두술사들의 천연두 전파 행위에 일정 부분 제동이 걸린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접근법: 이전 버전의 문서에서는 손님네들을 어떻게 퇴치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수록되었다. 그러나 현재 손님네의 마지막 일원들이 이전만큼 두술을 잘 다루지 못하는바, 이하의 항목은 그 유용성을 잃었다. 항목은 단순히 학술적인 부분에서만 참고하기를 바란다.21

처용랑 망해사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誓今已後
見畵公之形容
不入其門矣
因此
國人門巾占處容之形
以僻邪進慶

"맹세코 이제부터는 공의 모양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나라 사람들은 처용의 형상을 문에 그려 붙여서 사귀(邪鬼)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운 일을 맞아들이게 되었다.

인발술을 연상하게끔 하는 대목이다. 이에 본 학인은 처용랑의 역귀 퇴치법이 아직 소실되지 않았으리라는 싵날같은 희망을 걸고 수개월 간 도서관을 뒤진 끝에, 『세을가기』(世乙加記)라는 고서적을 한 부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저자가 처용, 혹은 그 후손이라고 추정되는 이 사료에는 다른 글보다 상세하게 그 퇴치법을 서술해놓고 있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 종이, 피22, 붓을 준비한다.
둘째 — 종이에다 피로 처용의 얼굴을 그린다. 이때 중요한 것은 본판과 얼마나 닮았는지가 아니라 본래 처용랑의 얼굴에 서려 있던 상서로움을 얼마나 그려내느냐다.23
셋째 — 문에다 붙인 후, 남은 피로 그 위를 칠한다.

이외에도 ‘손님굿’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사방진을 그리며 달래를 태우는 것, 표적이 된 인물을 현실성 농도가 짙은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 검은 옷을 입히고 짚에다 불을 피워 아래위로 쓸어내리는 등의 행위를 시도할 수 있다.24

기타 상세: 본 논고의 초안에는 의문점 란에 ‘처용은 메카네교도인가’라는 내용이 기재된 바 있었다. 추후 다양한 자료의 조사로 인해 그 의문이 해결되었으므로, 해당 내용을 기타 상세란에 싣기로 한다.

작은 손님이 제공한 자료와 『세을가기』에 대한 심도 높은 연구 끝에 처용랑과 그의 행적에 대한 몇 가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본래 나는 처용을 메카네교인으로, 하의 유민으로 생각한 바 있었다. 이 전제 하에 나는 초상한국사에서의 메카네교와 그 유구한 역사를 탐구해볼 작정이었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그간 초상종교의 불모지로 여겨졌던 한반도에서 갑자기 메카네교의 존재가 확인되다니.

물론 일이 잘 돌아갔다면 그랬으리란 말이다.

『세을가기』의 미해독 부분이 해독되며 전문이 모두 밝혀졌다.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상 술법서라기보단 한 인간의 일대기였다. 처용랑의 일대기.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의 일대기.

처용은 본디 귀산성(貴山城)25 출신으로, 그는 이곳에 자리 잡았던 무역상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879년 그는 교역을 위해 신라에 당도하여, 당시 군주 헌강왕의 신임을 얻었고, 귀화하여 급간의 지위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사르킥교도였다.

 …나도 믿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세을가기』의 기록, 학술회 이후 찾아낸 몇 권의 서적에서 지칭되는 바에 따르면 그는 의심의 여지 없이 사르킥교도임이 틀림없다. 살의 변형, 육의 공예. 제대로 번역된 어구들은 전부 메카네교를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너무나도 확연하게 사르킥교임을 당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태업”(兌業)? 이는 육공예를 지칭하는 것이리라. “제업의 도”(製業之道), “변질의 덕”(變質之悳) 역시… 다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하물며 그를 교조로 모시는 한국 전래 사르킥교26도 있는 마당에 무엇을 부정하리.

『세을가기』와 『나을록』(癩乙錄), 『송을유가』(頌乙流歌)등의 기록에서는 세을진인(世乙眞人)27 처용이 귀산성에 거주할 때부터서 사르킥교 신자였다고 서술했고, 신라에 당도하여 번육익이(繁肉益利)의 정신으로 인민을 교화하였다고 적었다. 다시 말해 한반도 버전의 사르킥 숭배를 처용랑이 일으켰다는 말이리라. 메카네교가 아니라.

하…

이는 비단 세을가 계통의 서적 뿐에만 나오는 기록이 아니라 『반야집』에도 나오는 말이며, 본격적인 사료 조사에 들어가면 이를 은유하는 대목이 다수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한국술법학논총』 통권 25호에서 한국 불교와 사르킥교가 공유하는 모종의 연관성에 관해 기술한 바, 어쩌면 우리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사르킥교는 이미 한국인의 역사 속에 은밀히 녹아들어 있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처용이 사르킥교도였다고 가정하고 그간 모은 사료들을 다시 검토해보면 내심 인지했던 하 유민설의 구멍이 전부 메꿔진다. 복희의 사당… 알고보니 조선 초기에 지어졌었지… 가정한 모든 가설이 산산히 조각나는 순간이다. 여전히 의문점은 남으나 그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면, 이를 어떻게 내가 부정한다는 말인가.

난… 잘 모르겠다. 사르킥교도인 처용랑… 역귀들을 물리친 그 자가 어째서 사르킥교도란 말인걸까. 아니.. 애초에 그럴 수가 있는 걸까?

— Liú

관찰 및 이야기

기존에 우리가 손님네들에 대하여 탐구한 바와 더불어, 지난 서천 CC로의 출입으로 인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손님네즐 중 본(本) 두술사인 세 손님 각시손님, 문반손님, 호반손님에 대한 이야기는 조선 시기부터는 알 수 있는 바가 거의 없으며, 유일한 증인인 작은 손님 역시 이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나마 남아 있는 공적 기록으로는 조선의 초상기관 이금위 문서가 있다.

귀신(鬼神) 신사(辛巳) 제(第) 이호(二號)

상(詳) 마마(媽媽)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들
당(當) 이금위(異禁衛) 감찰관(監察官) 비사대부(批士大夫) 노바(怒貌)
결(結) 귀신사와 교전 중 [某]
현(現) 비록(秘錄)에 기록 후 종결(終結)


선비가 말한다.

이들은 마마를 자유자재로 능히 다루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추정(推定)되는 이물들로, 본디 도가의 선인(仙人)으로 알려진 바 있다. 허나 옛 신라서부터 고려의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이들이 도사가 아닌, 나아가 조선인, 또는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들은 전부 두세 명으로, 둘은 사내이며, 하나는 여인이다. 인간에게 마마를 앓게 할 수 있는 것은 셋 모두 한가지다. 그 나타난 바는 불명(不明)이며, 이들이 옛 신라 때 이 땅에 당도(當到)했던 것만 알 수 있다. 백성들 사이에서는 손님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붙임] 한성 땅에서 이들 중 하나라고 추정되는 사내를 사로잡으려는 목적으로 귀신사가 출두하여 [某]

[붙임] 소위 손님네라는 작자들을 사로잡는 일은 중단되었다. 이는 하등 이익이 될 바가 없고, 나아가 그 특질(特質)마저도 불명확한 사안이어늘, 그야말로 노승발검(怒蠅魃劍)과 다르지 않다. 다른 사안에 힘을 쓰는 것이 옳으리라. 비사대부 노바

그러나 본인인 김철현의 기록은 어느 정도 남아 있으므로 이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늠은 해볼 수 있겠다.

이 중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그로 추정되는 한국계 남성이 1891년 링글링 브로스 앤 바넘 앤 베일리 서커스에 출연한 마술사 짐피 첸Zympy Chen으로 활동한 이야기이다. 그는 1891년부터 1898년 동안 미국에서 마술과 여러 묘기를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898년 후반, 그는 P. T. 바넘과의 계약을 끊고, 종적을 감춘다. 이후는 불온한 서커스에 들어간 것이라고 추론된다.

이후 김철현은 모종의 이유로 1903년 고국으로 돌아왔으며, 1905년 3월경 수집원 연의관 카타누이 후미코方縫 文子에 의해 수집원에 포섭된 것으로 보인다.

아오, 류씨 녀석하고 희지가 동시에 독촉할 줄은 몰랐다. 저 뱀대가리 저거 이번 일만 끝나면 바로 중국으로 쫓아버려야지.

일전에 말했듯 나는 김철현을 알고 있다. 인연은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 줄 모른다더니, 이 자가 여기서 불숙 튀어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나는 조선 시기를 살아가며 역신들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인지하지 못했으나 구한 말,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기의 작은 손님에 대한 사항은 알고 있다.

내가 그의 존재를 인지한 것은 실질적으로 1919년 이후부터였다. 능사사 발족을 준비하던 그 당시에는 아무리 작은 정보라도 일단 염두에 두는 버릇을 들여놨었다. 특히 이자메아에 부역(附逆)하고 있는 요주의 인물에 대한 정보가 최우선 사항이었는데, 그때 건진 이름들 중 하나가 카타누이 한노方縫 般野였다. 출신지는 불명이나 조선인일 가능성 높음. 후일 그 자가 반야 김철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접촉하지는 않았다. 그의 전향이 어떤 의도를 품고 있었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 실제로 일제에 협력한 능력자 가운데에서는 조선의 초상 결사에 잠입하여 이를 내부에서 와해시킨 경우도 존재했으니까. 우린 각자의 노선을 걸었고, 이내 1930년대 말 그가 이자메아에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갔다온 녀석들이 말해주기 전까지는 나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율도에서의 복역, 그 이후 탈출하여 도망다니는 신세였다고 하니 작자도 순탄치만은 않은 일생을 산 모양이다. 하기사 그 시기의 초상 존재들이 누군들 안 그랬겠는가.

- Hx.

현재 각시손님과 작은 손님은 서천 컨트리클럽에 거주하고 있다. 그 상세한 내막은 불명이나, 작은 손님의 증언대로라면 호반손님과 문반손님은 이미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문점

우리가 당초 수집했던 자료 중에는 "『기물사편』 「조선사」에서는 1450년 망해사에서 “쇠를 숭앙하는 자들이 모여 상스러운 놀이를 즐겼다”라는 기록"이 있었다. 망해사가 오랜 기간 세을가의 소유에 있었다면, 쇠를 숭앙한다는 대목이 나오는 것은 어딘가 어폐가 있을 것이다.
세을가에 메카네교적 교리가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이 쇠를 숭앙하는 자들은 별개의 존재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 단체의 정체는 과연 어떤 존재들인걸까?

두술의 능력에는 단순한 질병 조종뿐만이 아닌, 두술사 자체의 권능을 강하게끔 하는 효과도 있었으리라고 추정된다. 조선 기의 기록에 의하면 출입 시에는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두창신에게 고하고, 심지어는 제사마저 지내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고 한다. 이는 비단 하층민의 생활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양반 계층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두창신에 대한 숭배는 아키바 방사선을 증가시켰을 것이며, 곧 두술사, 특히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존재한 손님네들의 권능을 배가했으리라.28

처용이 낼캐교도였다면, 대체 왜 같은 낼캐교도였던 손님네들과 전투한 것일까?

그거야 당연히 NTR 당했으니까. — Y.L.

민담에서는 그렇게 나오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과연 단지 그것 때문에 손님네들과 처용이 싸운 건지 의문이 들어요. — R.D.

근래에도 낼캐 간의 분열이 없었던 건 아니잖아. 신낼캐와 원낼캐 간의 다툼은 극명한 형태든 간접적인 형태이든 오래 존재해왔으니, 그러한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 전투 역시 낼캐교인 간의 분쟁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거야. — B.B.

하지만 이들이 더군다나 신사르킥과 원사르킥으로 나눠지기도 전 세대 사람들이라는 게 걸리네. 그런 시간대에 머나먼 타국 땅에서 만난 같은 종교인들끼리 다툴 이유가 불분명한 것 같아. 더군다나 한 쪽은 이미 그 나라에서 권력을 잡았던 존재인데. — Mrghn.

김철현의 증언을 들어보면 손님네들과 처용 사이의 이념 대립이 그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손님네들은 “신세계의 일원을 일정한 기준을 두어 직접 고르겠다”는 입장이었고, 처용은 “모든 이에게 기회를 주겠다”라는 입장이었으니까요. 『세을가기』 완역본에서도 두술을 사용하는 이들을 “정견(正見)하지 못하고 정념(正念)하지 못하며 정정진(正精進)하지 못하매…”라고 표현하는 대목이 있죠. — H.H.

내 생각엔 앞서 언급한 손님네의 두술 작용과 연관된 것 같은데. 생각해보자고. 손님네가 과연 자기들이 역병을 퍼트릴 때마다 힘이 더 강력해진다는 걸 몰랐을까? — Liú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손님네들이 일부러 자신들의 권능을 강하게 하려고 그 수많은 집단 감염 사태를 일으킨거라고요? 그건… 김철현 씨가 했던 말과 다르잖아요… — R.D.

물론 나도 그들이 어떤 이유에서 두술을 사용했는지는 기억해.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떤가? 손님네들은 변혁을 추구하는 이들이고 변혁이 온 세상은 서로가 서로를 탄압하지 않는 세상이지. 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들은 강인한 이 중에서도 가장 강인해야 했던 거야. 겸사겸사 다른 이들 중에서도 강인한 이들을 가려내고 말야.

그게 맞다면, 처용이 이들을 막은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지. 처용의 사상이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거라면, 역병을 통해 자기들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들을 막지 않을 이유가 없잖나.

내가 진심으로 궁금한 건 이거야. 과연 사르킥교도 중에서도 이렇게 대의를 위해 싸우고… 그런 이가 나올 수 있는건가? 좋은 사르킥이란 게… 가능한가? — Li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