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001-KO
평가: 0+x

일련번호: SCP-001-KO

등급: 타우미엘

특수 격리 절차: 지나친 사용 탓에 SCP-001-KO가 변칙 능력을 상실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SCP-001-KO는 정규 보안시설 목록에서 제외되었으며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다. 저택 본채와 별채, 지하 동굴 내부는 완전히 비워진 채로 보존되어야 한다. SCP-001-KO의 지상 부지는 무인 카메라로 상시 주시하여야 하며 외부인의 침입이나 이상 징후가 포착되면 즉시 인접한 제02기지에서 무장 병력이 출동해야 한다. 또한 SCP-001-KO 인근 부지에 대한 지질 탐사 시도는 사전에 저지되어야 한다. 해당 지역의 공식적인 지질 정보는 버지니아주와 미 연방기관의 협조를 얻어 조작된 정보로 대체한다.

통상 격리 절차를 제외한 SCP-001-KO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문서는 O5 평의회 또는 평의회의 승인을 받은 인원만이 접근/열람할 수 있다. 영국 왕실 기밀문서 보관소에 존치되어 있는 버지니아 식민지 특별명령부대의 최초 보고서 역시 영국 정부와의 상호 기밀 보호 조약에 따라 동일한 보안 절차가 이루어지며, 전산화 사본을 재단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한다.

만약 인류의 존망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 명백하며, 재단의 능력이 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에 현저히 부족하고, SCP-001-KO 외의 대처 수단이 전무한 변칙 대상이 발견될 경우, O5 평의회의 만장 일치 결정에 의거해 SCP-001-KO를 격리 기지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조치는 잠정적인 것이며,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대체 격리 절차를 개발해야 한다.

설명: SCP-001-KO는 미국 버지니아주 중서부 [위치 정보 편집됨] 영역 내에 위치해있는 일련의 자연 구조물과 인공 건축물을 총칭한다. 그중 특히 지하 동굴은 SCP-001-KO-α, 지상 저택 본채는 SCP-001-KO-β1, 별채는 SCP-001-KO-β2로 각각 지정되었다.

~

이후 18██년 O5 평의회의 의결에 따라 SCP-001-KO는 보안기지로서의 사용이 중단되었으며, 내부에 격리 중이던 변칙 개체는 제19기지로 이관되었다.
 
 
별첨 001-O5-1: 초대 O5-1의 자필 문서

 

 O5-1, 반갑습니다. 나는 당신보다 조금 먼저 O5-1의 역할을 맡았던 남자입니다. 당신이 그 직함을 이어받은 몇 번 째 사람일지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로서는 알 수 없으나, 내가 보지 못할 새 천년기의 재단을 이끌어 나가는 데 부족함 없을 최고의 인재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당신은 아마 이 직책을 인계받음과 동시에 이 편지를 받았을 것입니다. 물론 SCP-001-KO 보고서와 관련 문서를 전부 읽은 다음에 말입니다. 보았다시피 SCP-001-KO 자체는 당신이 상상해왔을 그런 것들 만큼 놀라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늘상 다루는 것들에 비하면 시시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나는 SCP-001-KO의 이야기를, 재단이 탄생한 초창기의 역사와 내가 겪어온 경험을 기록할 것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을 보좌할 O5-2를 제외하면 나와 함께 했던 최초의 동지들은 이미 오래 전에 내 곁을 떠났고, 나 역시 노쇠한 육체가 비로소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부디 이 거대한 조직의 미약한 탄생을 기억하고 거울로 삼아, 언제나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데 작은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1728년, 그때까지만 해도 버지니아 중부의 낙후된 촌동네였던 리치먼드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이어야 할 가업이라 할 만한 것도 없었고 재산도 없었으므로 나는 일찍 독립하여 윌리엄스버그 민병대에 입대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았습니다. 그 부대는 제대로 된 장교진을 갖추지 않았던 탓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에 사병 중에서 제법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자를 사관으로 차출하기로 결정했고, 나는 소위 계급장을 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1754년 총독부에서 버지니아 연대를 창설해 인근 민병대를 편입시킬 때, 이 출신 배경도 보잘것 없고 연줄도 없던 청년은 왕실의 승인을 받은 정식 준군사조직의 중위로 임관된 겁니다. 그것은 그 당시 내가 꿈꿀 수 있던 최대의 성공이었습니다.

 스콧 소령을 내가 처음 만난 것도 그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 스콧은 연대가 창설될 때 영국군 측에서 파견되어 온 정보과 장교였는데, 워낙 조용하고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하는 사람인지라 부대원들 중 그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음침한 소문이 돌았고 다들 그를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누군가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그 쪽에서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며 쫓아냈지요. 업무로 자주 부대낄 일도 없었던 사이였기에 그때는 나나 동료들도 그를 그저 비뚤어진 인간이겠거니 여기고는 더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1751년 3월 31일은 분명 웨일스 공이 타계한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날은 또한 나의 인생이 두 번째 전환점을 맞닥트린 날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맞닥트렸다"는 표현은 아주 적절하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날 오전 나는 행정병 리처드와 함께 결재가 필요한 서류들을 갖고 연대 사령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처럼 동측 출입구로 들어가 중앙으로 향했는데, 갑자기 문이 부서지듯 열리더니 머리가 천장에 닿을 정도의 거한이 튀어나오더군요. 그때 우리 둘은 공포에 질린 비명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입을 틀어막아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문이 복도 쪽으로 열린 덕분에 우린 문짝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고, 동시에 "취사실"이라는 문패도 똑똑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거한이 급양병 퍼디난드라는 걸 퍼뜩 깨달았습니다. 원래 내가 알고 있던 그의 모습과는 완전히 달랐지만

// 

 

1999년 10월 3일,
초대 O5-1
시어도어 호스필드 도지
  dodge_sign_thick.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