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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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침."

나는 오늘 아침에 들은 이 인사를 듣고 한동한 멍하니 그 의미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저 인사를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을까? 그보다도, 저 사람은 그 말을 진심으로 하고 있는 걸까?

오늘도 역시, 도저히 뭔가 좋은 일이라곤 빈말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침이다. 서울 하늘엔 언제나처럼 돌가루 섞인 흙먼지가 휘날리고, 태양이 비추어야 할 대지엔 밤이나 다름없이 어둠이 깔려 있다. 아직 거리에 남아있는 한 줌의 사람들은 부질없어진 화폐를 그러모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무리와, 죽지 못해 살기 위해 생필품을 주워모으는 부류 정도였다.

당연한 풍경이다. 인류, 아니 지구의 종말이 바꿀 수 없는 미래로 확정된 다음부터는 매일이 그저 오늘과 같다.


리히터 규모 8.5의 강진이 몽골 전역과 중국 내몽골 지방을 덮친 것은 약 2년 전이다. 고비 사막은 지각 째로 둘로 찢겨졌고, 울란바토르는 궤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300만 몽골 시민의 절반이 사상자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내륙에서 발생한 역대 최대 규모의 지진 소식에 세계 각국 역시 술렁였다. 저명한 학자들이 분석에 나섰지만 연구는 지지부진했고,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은 요원해 보였다. 성금 열풍까지 끝을 보이자 고생물학의 성지를 잃은 일부 매니아를 제외한 사람들은 자신과 크게 관련도 없어 보였던 이 사건을 금세 잊어갔다.

그 착각은 오래 가지는 않았다. 3개월 후 카자흐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거의 동시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러시아 동남부와 카자흐스탄 서부를 세 차례나 연달아 강타한 카자흐스탄 대지진은 서부의 대도시 악타우와 아티라우를 소멸시키며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었고, 카스피 해에 연결되어버린 이 구덩이로 엄청난 양의 물이 이동하면서 인근 국가들에게도 다대한 피해를 입혔다. 아프가니스탄은 정치적 혼란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맞은 대지진으로 인해 국가 붕괴 상태에 빠져버렸다. 두 지진을 합쳐 직접 피해로만 1,500만 명을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을 것으로 국제기구들은 예측했지만, 지나치게 넓은 피해 범위 때문에 정확한 실상은 집계조차 할 수 없었다.

심상치 않은 목격 정보가 조금씩 보고되기 시작한 것이 대략 이 무렵부터였다. 아프간에서 탈출한 생존자 일부는 땅이 쪼개진 틈으로 거대한 바위산이 치솟아 올랐다고 말했다. 한동안 무시되었던 이 증언은 점차 많은 생존자들 사이에서 긍정되었고, 유튜브에 지진 당시 촬영된 영상이 올라오면서 사실로 확인되었다. 학계는 지각 내부에서 화산 활동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급작스러운 융기가 일어났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 와중에 지진 후 미국으로 이주했던 한 생존자가 자신이 충격적인 진실을 알고 있다며 기자회견을 요구했지만, 교통사고로 급사하면서 회견은 무산되었다.

회견 취소 소식이 한국에 알려졌을 때 우리는 제2차 카자흐스탄-아프가니스탄 대지진의 속보 또한 동시에 받아들었다. 1차 지진과는 정 반대로 카자흐스탄의 지반이 융기되고 아프간 지반이 침하되어 큰 피해가 발생했다. 융기된 산지와 그 주변에 자리잡았던 아프간 지진 난민 캠프가 지반 째로 무너지면서 해외로 도피하지 못한 수많은 생존자들이 추가로 목숨을 잃었다. 카자흐스탄 쪽은 악타우해로 명명되었던 크레이터가 다시 메꿔지면서 카스피해로 물이 되돌아갔고, 기록적인 규모의 해일이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 지역을 덮쳤다. 계속되는 초대형 지진은 이 시점에 이미 전세계적으로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그 두 배 이상의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파괴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까지도 이 지진들의 원인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

대재난에 대한 공포와 함께, 솟아오른 바위산에 대한 소문 역시 살을 붙여가며 빠르게 퍼져나갔다. 몽골 대지진 당시에도 바위산이 목격됐다는 뒤늦은 정보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세 차례의 대지진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이 바위산들에 대한 가설들이 우후죽순으로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