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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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큐빅은 제11기지의 기지 지휘관이다. 사실 그는 재단에서 일하면서 이 정도 되는 자리까지 올라오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연구원으로 들어와 퇴직할 때 까지 평생을 연구원으로 일하게 될 줄 알았건만, 정신을 차리고보니 현실은 기지 지휘관이었다. 물론, 절대로 그가 직책에 걸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아니다. 큐빅은 유능한 사람이었다. 책임감 있고, 추진력도 있으며 포용력 또한 있었다. 한 단체를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지 지휘관이라는 직책을 얻는다고 달라질 것은 별로 없었다. 여전히 서류 작업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많았다. 선임 연구원 때와 다른 점이라면 더 이상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큐빅은 자신에게 이 직책을 물려주고 퇴직한 백해더 영감의 말을 이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장난 아니게 많은 업무량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는다.

그렇지만 큐빅의 습관은 여전했다. 그는 SCiPNET에 접속해, 격리 대상들의 보고서를 훑어보는 것을 즐겼다. 이상한 취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고서들을 읽다보면 새로운 연구거리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이미 진행중이던 연구의 방향이 생각나기도 했다. 보고서를 더 체계적으로 작성해 문서 관리소에서 교정 클레임이 들어오는 일도 줄어들고 말이다.

오늘도 큐빅은 습관대로 SCiPNET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어있는 보고서들을 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방금 전 까지는 SCP-525-KO의 보고서를 읽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SCiPNET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끄고 보안 접속을 해제한 큐빅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침착하자. 그렇게 중얼거리며 큐빅은 습관적으로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가지고 미간을 문질렀다. 최대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어렸을 때 외워두었던 주기도문을 외워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포기했다.

큐빅은 떨리는 손으로 다시 SCiPNET에 접속했다. 재단 권한 코드와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니 모둔 격리 대상 보고서 데이터베이스에 접속되어 있었다. 그는 기지 지휘관의 권한을 이용해 SCP-525-KO 보고서의 업로드 날짜를 확인했다. 그가 기지 지휘관이 된 이후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말이 안돼.' 큐빅은 생각했다. 그는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기지 지휘관은 5등급 인가가 필요한 일이 아닌 이상 담당한 기지의 모든 일에 대해 보고받는다. 물론 사소한 일들은 하위 부서에서 처리하지만, 언제 어떤 것이 격리 대상으로 규정되어 기지에 보관되었다는 보고 정도는 올라온다.

하지만 큐빅의 기억 속에는 자신이 기지 지휘관이 된 이후에 제11기지에서 발견된 변칙 개체 따위는 없었다.

큐빅은 다시 SCP-525-KO 문서를 다시 불러왔다. “SCP-525-KO는 제11기지의 앞뜰에서 플리처 박사가 발견했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잘못 본 것은 역시 아니었다. 그는 몸에 힘을 빼고 의자에 등을 쭈욱 기대어 눕다시피했다. 재단이라는 기관에 있으면서 연구원으로써는 산전수전 다 겪다시피 했다고 나름 생각했었지만, 사무직이나 다름없다고 여기고 있던 기지 지휘관이 되니까 이상한 일이 딱 터지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하고 있었다.

올바른 기지 지휘관이라면 당장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거나 상층부에 알릴 것이다. 하지만 큐빅의 감이 그것을 말리고 있었다. 위험하다고, 더 이상 캐내면 안된다고 끈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에 퍽 자신이 있었다. 연구팀에 소속되어있던 시절에 감 덕분에 진전이 없던 연구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내기도 했었다.

이번에도 감을 믿어야 할까? 큐빅은 잠시 고민했다. 그냥 무시할 수 있다. 이대로 데이터베이스와 접속을 끊고,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으면 된다. 지금까지의 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그렇게만 한다면 모든 것이 완벽한, 언제나의 삶이 계속된다.

하지만 그 놈의 호기심, 연구자의 정신이 그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되어 있는 것일까?

눈을 감고, 양 손을 깍지를 낀 상태로 큐빅은 고민했다. 어떡할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방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 고요의 공간 속에서 그는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마침내 모든 생각이 정리되었을 때, 큐빅은 눈을 떴다. 그리고 행동했다.

제대로 된 절차를 거쳐 SCiPNET과의 접속을 종료한 뒤, 그는 한 손으로 책상 오른쪽에 놓인 수화기를 집어들고는 숫자를 몇 개 눌렀다.

"아, 여보세요? 과학부죠? 제11기지 지휘관 마크 큐빅, 재단 권한 알파-알파-브라보-113입니다. 플리처 박사에게 연결해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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