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감각

어느 날, 문득 내가 물고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바깥 세상이 보이지만 나아갈 수 없는 어항 속에서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면 그대로 물에서 숨이 막혀 죽어버릴
썩은 물 위로 둥둥 떠오르면 그제서야 아차 싶은
곧 그 빈자리가 더 작고 예쁜 열대어로 채워질
물고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애들이 모여서 그런 숭한 짓을 했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어머니의 목소리가 귀를 찌른다. 아마 최근에 일어난 그 일 때문일 것이다.

앉은뱅이 물고기라고, 암암리에 퍼져있는
공부도 그럭저럭하던 애들끼리, 한 데 모여서 [][]질을 해댔다ㅡㄴㄴ

'좋은 건 우리 아이들한테만!' 이라는 신념 아래 뭉친 학부모들에게 비상이 걸릴 법 했다.

분명 다른 아이들처럼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하루를 방탕하게 노는 걸


콱 죽어버릴까도 생각해보았다.
몇 년동안 애지중지 공들여 키운 난을 뽑아버리듯이, 그렇게 죽어버릴까도 고민해보았다.

나는 분명 높은 곳을 향해 오르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앉아서 너희를 바라보는 내가, 너희보다 더 처량할까.
고작 우리 사이에는 창문 하나일 뿐인데

물에 갇힌 물고기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시간이 흐르고 자라면 자랄수록 숨이 막혀오고 갈 수록 시야가 어두워져.
지칠 대로 지쳐버려서 이제는 내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원했던 햇살은 희미해져가고 거세져만 가는 물살에 끌려가기만 해.


나는 작은 바가지에 담겨있는, 이제 제법 자라있는 구피들을 바라보았다.
…이건 내가 아니야.


몇 백만원을 들여가면서 소위 '우등생'이라는 내가 여기서 이런 짓거리를 한다니. 미친건가?
다리 밑의, 축축하고 딱딱한데다가 더럽기까지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분명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손을 멈추지 않았다.

더더욱 무언가가
내 안에 억눌려져 있던 무언가들과 함께 엉망진창으로 뒤섞여버린 채로, 그대로, 그대로-


이제 지긋지긋해.


눈을 떴다. 오랜 악몽에서 깬 기분이다.
다리는 저려서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고, 팔은 후들거린다. 그래도, 기분이 상쾌하다.

왜인지 웃음이 배시시 새어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기만 하다.
나름 우등생이라고 자부하고 다니던 내가 사타구니를 훤히 드러낸 상태로 다리 밑바닥에 누워있는 것이 너무나도 웃기다.
18년이라는 길다면 긴 삶 속에서, 내가 배워온 모든 것이 한낱 빗줄기에 씻겨나간다는 것이.

손에 희미한 감각이 느껴진다.

태어나서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나.. 있었던 것도 같다. 언제였더라.

눈시울이 뜨거워질 새도 없이, 눈물이 터져나왔다.
이게 삶이다.
손등으로 느껴지는 거친 바닥이. 나를 향해 책망하듯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가.
얇은 초승달조차 떠있지 않은 저 밤하늘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내가.

아. 아하하. 아하하하-
나는 한참을 웃어댔다. 울었던 것도 같다.
기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온전히 내가 만들어낸 이 감정.

잠시 숨을 고르고 몸을 일으켰다. 하반신이 움직여지지 않지만, 뭐 어때.
나는 바닥에 살이 쓸리는 아픔을 참으면서 필사적으로 기어갔다.
갑작스레 내린 거센 빗줄기로 더러운 강물이 불어있었다.

강을 들여다보니, 물에 비치는 내 얼굴 너머로 형형색색의 꼬리를 가진 구피 몇 마리가 눈에 띄였다.
아마 내가 절정에 다다른 그 순간 곳곳에 튀어오르다가 운좋게 물에 닿았겠지만, 곧 죽어버리겠지.
물 속에서 처절히 몸을 뒤틀어대다가, 결국 숨이 막혀 죽어버리겠지.

살 자신이 없었다.
매일 밤을 저 위에 있을 누군가에게 살려달라고 간절히 빌어대며 책에 밑줄을 긋고 싶지 않다.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아니 이제는 꿈에서조차 박제된 물고기마냥 정좌로 앉아 몇 시간을 저들이 원하는 '공부'에 쏟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것들이 잔뜩 있었음에도, 물에 갇힌 물고기마냥 그저 바라만 보며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를 향해 치켜올려질 비난의 손가락질을 견디고 싶지 않다.

서로가 별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들과 밥을 먹고 싶다.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더운 바람을 보내는 선풍기를 켜두고선 뒤척거리며 잠에 들고 싶다.
커다랗고 하얀 도화지에 의미없는 낙서를 가득 채우고 싶다.
서투른 발길질로 공을 다루면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
책을 읽다가 형용할 수 없는 영감이 떠올라 노트를 펴고 글을 쓰고 싶다.
고요한 새벽에 영화를 보고 진한 여운을 느끼며 영화관을 나서고 싶다.
몇 시간이고 밖에서 심장이 터질 듯이, 숨이 차올라 더 이상 뛰지 못할 때까지 뛰어보고 싶다.
…하하.

나는 너희가 풀어놓은 물고기고, 너희가 만들어놓은 이 거센 물줄기에서만 살 수 있다면,
너희가 원하는 대로 비늘과 살점이 격류에 찢겨나감에도 저항하지 않는 물고기가 되지 않겠다.
온몸을 비틀어 할 수 있는만큼 튀어오르겠다. 날아오르겠다.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한들, 차라리 숨이 막힌 채로 말라죽겠다.
너희가 만들어놓은 틀에 스스로를 끼워맞추려 살을 베어내지 않겠다.

구피가 육지로 튀어오르듯이, 나는 한없이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