שְׁאוֹל

놈은 긴장해있다. 어딘지 모르게 비굴해보이는 눈, 정처 없이 흔들리고 있는 눈과 그에 못지 않게 부산시렵게 어디에 둘지 모르는 듯이 손을 가만 두지 않고 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어 보인다. 전형적인 간신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이 미숙함과 어벙함, 어리바리함은 제 이익을 위한 가장인가, 아니면 제 본 모습일까.

나는 아마 이 놈이 내 친구가 아니었다면 바로 앉아있는 자리를 박차고 튀어나갔을 것이다. 그러나 놈은 애석하게도 내 친구가 맞다. 그것도 꽤 오랜 지기인 녀석이다. 그러니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수상쩍을 수밖에. 내 기억상으로는, 이 고약한 역사학자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내 친구 박범운이라는 놈은 이런 식으로까지 자신을 가엽게 느낄 때까지 비굴해지진 않는 놈이었다. 심지어 이전에 내게 부탁을 할 때에도 그런 식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범운이 아까부터 몇십 번은 되풀이한 듯한 그 말을 다시 한번 꺼냈다.

"야… 있잖아, 한번만 다시 생각해주면 안되냐 진광아. 그…인력 좀…"

"그놈의 인력, 인력! 아오 개같은 거, 밥 처 먹을때는 좀 치아라 좀. 뭔 스팸 메일이냐, 새끼야? 아, 새끼가 짜증나게 이게 뭔 짓이야?"

나는 한 숟갈 풔 입에 털어놓고는 신경질적으로 숟가락을 식탁에 내던졌다. 철 식기가 공기 뚜껑에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창문이 산산조각나는 듯이 울려퍼졌다. 시끄러웠다. 그래도 놈이 움찔하는 것을 보니 기분이 괜찮았다. 그리 빌빌거릴거면 차라리 겁 먹고 떨어지는 편이 좋을테니까.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신일 돼지국밥집에는 오늘도 사람이 없다. 그게 내가 여기를 자주 찾는 이유이다. 사람도 없으니 식사 중에 근무 일지나 보고서를 몰래 들고 나와 읽어도 괜찮을 것 아닌가. 물론 소리를 질러도 괜찮다. 주인 할매 심기만 안 거스른다면.

"새애끼들 안 닥쳐!"

바로 이런 식으로만 안한다면. 나는 바로 맞받아 소리쳤다. "아, 알겠으니까 할매는 들어가 주무소, 어련히 닥칠테니까!" 할매에게서는 대답 대신 코고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잠 드는 속도는 언제봐도 경이로울 정도였다. 잠깐 방심한 틈을 타 범운이 다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아 있잖어…"

"닥치라고 새끼야!"

이제 범운은 거의 울 듯한 얼굴로 반도 넘게 남아있는 제 국밥의 흰 국물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의 정석이 있다면 바로 녀석일테였다. 하지만 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아무리 내게 부탁해봤자 될 일도 아니었다. 어떻게 민간 차원의 발굴 작업에 재단 인원을 투입해줄수는 없겠냔 말을 하냔 말이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나의 분을 담아 범운에게 소리쳤다. "니가 어? 내 상황을 쪼매만이라도 생각을 했으면 그런 말 못하지. 직장 나가리 먹을 수도 있는거 모르냐?"

"아니… 이번엔 진짜 너희 일하고도 연관 있다니까? 고조선의 무덤이야, 고조선! 그 고조선!"

놈은 이판사판이라는 듯이 도리어 성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좀 들어보기나 하라고!"

"아이고 이놈 보게. 야, 이젠 구라까지 치게? 무진 땅에 무슨 고조선 무덤이야 새끼야. 다른 데도 아니고 무진에? 가장 끄트머리 땅에 무슨 고조선이냐고. 안 그래? 거 진짜. 할매는 나 몰래 저놈한테 막걸리 팔았수?"

마지막 말은 잠은 다 잤다는 듯이 2층과 이어진 주방에서 나오고 있는 할매에게 던진 말이었다. 할매는 대답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만 흔들고 술병을 껴들고는 다시 주방 안쪽으로 사라졌다. 범운은 다시 조용해졌다. 시끄럽게 아씨, 하고 욕설을 내뱉지도, 아쉬운 기색을 내뱉지도 않고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담고는 나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는 놈의 눈길을 피해 국밥만 퍼먹었다. 안 되는 것이 세상에는 있는 것이다. 물론 마음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친한 친구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도 찜찜하건만, 줄곧 녀석의 얼굴에 일렁이는 어떤 공포감과 경악감이 내 맘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진광아, 제발 부탁이다. 들어보기라도 해, 어?"

나는 국밥을 뜨려다말고 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범운이 다신 말을 못 꺼내게 욕지거리를 더 심하게 내뱉을까했지만, 묘한 탈력감이 일었다. 놈은 여전히 긴장해있다. 비굴하다. 저놈도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말해보기라도 해라."

"나 무진대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