危世之說 鬼神篇 第一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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危世之說

鬼神篇

그러하니, 비록(秘錄)이 뭇 세상 사람들에게 밝히 알려 말하지 못할 것들을 기록한다고는 하나, 그조차도 모든 것을 다 풀어 쓰지는 않은 것이다. 이에 비록에서 숨겨지고 감추어진 어두운 그림자를 기록할 필요성이 있으니, 그 사명(使命)을 맡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이 위세지설이라. 소위 이금위(異禁衛)라 하는 이곳은 상(上)께 충성하나니, 직제(職制)를 지닌 관리(官吏)들로써 그 한계가 명확한지라. 이리하여, 위세지설을 통해 이를 보완하지는 못할지언정, 그들에게 얽히어 부득불(不得不) 희생된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의 이야기만큼은 남기고저 한 것이다. 생각하건대, 만일 이금위가 민간(民間)에서 결의(結義)된 집단이었더라면, 이런 일이 과연 있을 수 있었겠는가?

위세지설(危世之說) 귀신편(鬼神篇) 제일장(第一章) 5:11

"오오, 마침 여기 있었군 그래."

무영 선생이 휘적휘적 걸어 들어온다. 비광이 예를 갖추었으나 무영은 그가 항상 그렇듯 본 체 만 체다.

"이제 비록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성되는지는 대충 감을 잡았나?"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허허,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겸손도 지나치면 독(毒)이 되네. 조만간 그대에게 비록 저장고도 좀 보여주어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러던 무영은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얼른 덧붙인다.

"사실 저번에 그 거북이 일 말일세. 그 건은 자네가 내려가기 전에 이미 다른 사람이 미리 가서 감찰(監察)을 한 경우일세. 그가 서장(書狀)에 이르기를, 향후(向後) 민심이 자칫 동요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기에 내가 자네를 보냈던 것이지."

"그 말씀은…"

"보통 이곳의 일은, 처음으로 이물의 존재 가능성을 보고한 자(者)가 직접 민심의 수습까지 맡아서 하게 되어 있네. 그리고 일의 경중(輕重)이나 정황(情況)을 미루어 보아서, 추가 조치가 필요할지를 판단하게 되는 것이지."

"그렇다면 제가 저번에 갔었던 것은, 선생의 말씀대로라면 추가 조치에 해당하는 것입니까?"

"바로 그걸세. 그래서 말인데, 오늘 맡게 될 일은 자네의 실질적인 첫째 임무가 될 걸세."

비광은 저도 모르게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무엇입니까?"

"귀신(鬼神)으로 의심되는 제보가 들어왔네. 장소는 춘천도호부(春川都護府)일세.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머리가 둘 달린 괴물이 민심을 혼란케 하고 있다는 제보뿐이니, 일차(一次)로는 그에 대한 정보를 취합(聚合)하여 이물 여부를 숙고(熟考)한 뒤, 우리에게 서장으로 알리게. 그 일이 끝나거든, 계속 남아서 민심에 대하여 탐문(探問)을 하여도 좋고, 다시 복귀하여 추후(追後) 명령을 기다리는 것도 좋네."

"알겠습니다."


푸른 호수를 낀 이곳 춘천은, 강원감영(江原監營)이 소재(所在)한 원주(原州)에 비견(比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다. 비광은 저 앞에 커다란 느티나무와 평상이 있고, 불과 이십척(二十尺) 정도 떨어진 곳에 아낙네들이 우물물을 긷고 있는 것을 본다.

"어허이고, 이거 날이 꽤 덥군 그래. 노인장, 지나가던 선비인데 실례 좀 하겠소이다."

하릴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던 노인은, 비광을 보더니 이내 평상 한쪽을 내어준다. 비광은 평상에 앉아서 짐짓 우물 쪽을 바라본다. 웬만큼 거리가 있어서 아낙들의 재빠른 말이 잘 들리지 않을 수 있기에, 입이 움직이는 형상(形像)으로 미루어 짐작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아낙들의 이야기는 그저 박 참봉(參奉)네 외동딸이 어젯밤 소박(疏薄)을 맞았다느니, 김 진사(進士)댁 이대(二代) 독자(獨子)가 오늘도 서당에는 그림자도 없고 그저 천렵(川獵)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가 지나가던 사냥꾼에게 발각되었다느니 하는 것뿐이다.

그 때.

"……어린것이 저희들끼리 산을 타고 댕기니, 그러다가 변고(變故)라도 생겨서 그 괴물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대요?"

"아유, 말도 마오. 하마 지난 봄에 개똥이도 잡혀 먹혔는데, 그 이후로 통 기척이 없다가 요즘 갑자기 또 드문드문 나타난다니…"

"이애, 이애. 그 말 마라. 내 헤어 보니 장부(丈夫)들이 걱정이라. 아직도 그저 규방(閨房)의 뜬소문으로만 여긴다 하니, 우리 갑순이 때문에 나도 밤마다 잠을 들지 못하겠구나."

비광이 가만히 듣고 있는데 문득 옆의 노인이 말을 걸어 온다.

"다 임자 있는 몸이오, 껄껄."

"…색(色)을 탐하는 것이 아니올시다."

"무릇 계집들의 실없는 훤화지성(喧譁之聲)은 날이면 날마다 끝이 없는 법이지요."

다른 노인이 한 마디 하자, 비광이 몸을 돌려 묻는다.

"듣자하니 이 동리(洞里)에 이상한 소문이 떠도는 것 같구려. 괴물이라니, 그건 무슨 말이오?"

주름이 깊게 패인 진홍(眞紅)빛 피부, 번들거리는 광대뼈가 인상적인 얼굴에, 문득 주름이 더욱 깊게 패인다. 노인은 인상을 쓰며 더욱 급히 부채질을 한다. 수심(愁心)인 듯 보이기도 하고, 경멸(輕蔑)처럼 보이기도 하고, 아니면, 어쩌면 그냥 이 노인장의 평소 습관인 듯도 하다.

"계집들 사이에 으레 떠도는 소리요. 거, 머리 둘 달린 괴물이 저 산에 살고 있다는데……"

그 즈음에서 그 다른 노인이 끼어든다. 눈이 저 무영(無影) 선생의 그것만큼이나 작다.

"저기 저 산, 금병산(金屛山) 산자락이올시다. 머리가 둘인데 가끔 민가(民家)에 출몰(出沒)하기도 하지요."

그러자 인상을 쓰던 노인이 발끈한다.

"예끼, 이 사람아. 세상에 그런 괴물이 어디 있나."

"아니, 이 사람이? 저번 봄에 거, 거… 김가(金家) 둘째아들하고 같이 봤어!"

"허! 내 육십년 인생에 저 금병산이 내 손금 보듯 훤하거늘!"

분위기가 이상해져 가자 비광이 황급히 그들을 제지한다.

"자, 자… 진정하시구려. 그것 참, 떠도는 소문이라 해도 흥미가 동하는구려. 계속해 보시오. 아이들을 잡아먹는다고 하던데?"

그러자 자신이 괴물을 보았다고 주장하는 눈 작은 노인이 나선다.

"계집들이 흔히 하는 말이긴 한데 저도 본 적은 없소이다마는, 좌우간(左右間) 그 괴물은 십팔 년 전에 제 아비와 같이 춘천에 들어온 아녀자의 태(胎)에서 나왔다고 하더이다. 아마도 저 공성현(功城縣)에서 왔다던가, 그럴 거올시다. 또 듣자하니, 제 어미의 태에서 나오자마자 그 괴이(怪異)한 생김새 때문에 제 할애비에 의해 곧바로 버려졌는데, 그게 저 금병산 산자락이라고들 하지요. 그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 같소이다."

"그 괴물이 본디 계집의 태에서 나왔단 말이오? 그 계집은 어디로 가면 만날 수 있소이까?"

그러자 광대뼈가 튀어나온 노인이 멀리 한 곳을 가리킨다.

"저 산비탈 끝자락에 다 쓰러져 가는 초가(草家)요. 애비는 몇 해 전에 세상을 떴고, 바깥양반은 집을 나갔고, 지금은 그 혼자 근근이 삯바느질을 하고 있다고 들었소이다."

"알겠소이다. 노인장들, 오늘 고마웠소."


"아녀자 혼자 사는 이 누추한 곳에 선비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내 확인할 것이 좀 있어서 왔느니라."

괴물을 잉태(孕胎)한 사람치고는 별다를 것도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람이다. 비광은 이런 그녀가 과연 어떻게 괴물을 잉태하였을지 짐작할 수가 없다. 다만, 먼저 그 괴물의 실체(實體)에 대해 확인할 필요성은 있다.

"듣자하니, 그대가 십팔 년 전에 저 금병산 괴물을 잉태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예,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저는 단 한 번도 만복이를 괴물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사옵니다."

"허, 만복이라. 그러하다면, 그 만복이란 자는 과연 태어날 때부터 머리가 둘이던가?"

"…차마 믿을 수는 없었으나… 진실로 그러하였습니다."

"허면, 지금도 금병산 기슭에서 남몰래 살고 있는가?"

"그렇사옵니다."

비광은 고개를 끄덕인다. 광대뼈 노인의 생각과는 달리, 이 괴물은 실제로 머리가 둘이고, 금병산에 살고 있는 게 분명하다. 다음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과연 그녀가 어떻게 이런 괴물을 잉태하였는지다.

"바깥사람은 보이질 않는구나. 어딜 갔느냐?"

"그게 실은… 대략 오 년 전부터 그가 야유원(冶遊園)에 새 사람이 난지라,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박대한 끝에 근 삼 년 동안 소식이 없어, 지금은 저 혼자 동리의 잡일을 하며 연명(延命)하고 있사옵니다."

"……허면, 그 만복이란 자는 과연 그 남자와 통하여 얻은 아들이겠구나."

"그러하옵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 귀접(鬼接)은 아니다. 다음으로 확인할 것은, 이 자가 정말로 아이들을 함부로 납치하여 잡아먹는지에 대한 것이다. 만일 실제로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자는 민심을 흉흉케 하는 귀신이 되어 이금위(異禁衛)가 출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분명히 이 자는 이물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 또 듣자하니, 그대의 아들은 근래에 사람고기 맛을 알게 된 것 같다더군."

그 말에,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혹시… 우리 만복이가 정말로 식인(食人)을 하였사옵니까?"

"나도 아직 본 것은 없느니라. 다만, 적지 않은 소문이 퍼져서 하는 말이니."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다. 모성(母性)임에 분명하다.

"만복이가 식인을 한다는 소문은 이미 동리에 퍼진지라, 간혹 그와 만나면 붙잡고 다그쳐 보기도 하옵니다마는… 정황이 확실치 않은지라, 행여 우리 만복이가 배가 고파 못할 짓을 하지는 않도록, 닭 같은 것을 잡아 가지고 매일 밤마다 몰래 나가 금병산 기슭에 두고 오기는 하옵니다. 다행히 뒷산에서 닭을 좀 치는지라…"

"…그대 역시 알지는 못하나, 혹시나 하여 바라지를 하고 있다는 말이로구나."

"예, 만복이가 말을 배우질 못하여, 물어보아도 대답을 하질 못하기에 이리 하옵니다."

비광은 그녀의 말이 신뢰할 만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무영 선생이나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부족하다. 잠시 고민하던 비광은, 이내 자신이 직접 금병산에 오르기로 결심한다.

"잘 알겠다. 내 오늘 직접 금병산에 올라야겠다. 음식은 보통 어디에다 두느냐?"

"금병산 서쪽 계곡에 높이가 칠척(七尺) 가량 되는 흰 바위가 있사온데, 대개 그곳에다 두옵니다. 만복이가 먹고 나면, 빈 그릇을 그곳에 두고, 저는 밤마다 올라가 빈 그릇을 치우고 새 그릇을 가져다 두옵니다."

"서쪽 계곡이라. 알겠다. 나는 이만 가 보마."


계곡을 오르면서, 비광은 이 모든 정황을 하나로 엮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녹음(綠陰)이 우거진 깊은 계곡에는 햇빛이 들지 않고, 여름을 맞아 간혹 학동(學童)들이 천렵을 하러 오기도 괜찮은 곳이라. 사람이 숨어 살기에도 나쁘지 않고, 반대로 휴양(休養)을 위해 찾기에도 적합하다.

"결국 이물은 아니겠구나.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내 실제로 귀신을 보는가 하였더니, 일이 이렇게 되는군."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다. 이제 비광은 그녀가 일러준 바위를 찾아, 그 위에 놓인 밥그릇을 확인해야 한다. 만일 밥그릇을 발견한다면, 그 바위의 위치를 기억하고 돌아와, 무영에게 직접 이 바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세상 천지(天地)에 대체 어느 괴물이 인간의 태에서 나와 멀쩡히 계육(鷄肉)으로 삼식(三食)을 삼는단 말인가? 이만하면 이금위가 나서서 귀신이라 할 만한 것도 없지 않은가?

문득 저 앞에 하얀 바위가 하나 보인다. 그녀의 주장만큼 크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위에 뭔가를 올려놓을 만큼 평평한 모습이기는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위에 밥그릇이나 다른 무언가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일이로다. 멀리 있는 것이라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비광이 황급히 그 바위로 다가가, 그 위로 올라가 본다. 그러나 과연 아무것도 없다.

"허어, 이 어찌된 일인가. 그 계집이 거짓을 말한 것인가, 아니면 이 바위가 아니란 말인가?"

난감한 일이다. 비광은 주위를 급히 둘러보나 다른 바위는 보이지 않는다.

"…더 올라가야 한단 말인가?"

비광은 다시 계곡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면 오를수록, 둥글고 반듯했던 바위들이 점차 모나고 거친 돌조각들로 바뀌어 간다. 오히려 그녀가 일러준 그 바위와 비슷한 것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큰일이로다… 이미 꽤 많이 올랐거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응?"

그 순간 비광의 눈에 한 인영(人影)이 든다.

"…으허어업!"

비광은 자기도 모르게 일순 숨을 들이마신다. 몸뚱아리는 분명 하나이건만, 그 위로 똑 닮은 머리가 둘이나 있는 괴물이다. 봉두난발(蓬頭亂髮)을 한 외모도 혐오스럽기 그지없고, 그 눈빛은 성정(性情)을 지닌 인간의 그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몸에는 시커먼 누더기 같은 거적을 덮어 대충 가리어 놓았다.

"어… 어어……"

그 괴물이 낮은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한 손을 들어 이쪽을 가리키며 다가온다. 비광은 저도 모르게 몇 발짝 뒤로 물러난다. 중간에 돌을 잘못 밟아 미끄러질 뻔하였다.

"그… 그, 그대가 저, 정녕 만복인가?"

"어어…… 어어어……!"

비광이 만복이라는 이름을 꺼내자 괴물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하게 커지며 목소리가 커진다. 이제 괴물은 두 손을 치켜들고 비광을 향해 성큼성큼, 그러나 불안한 걸음걸이로 다가오고 있다. 그가 별안간(瞥眼間) 비광에게 달려들어 해코지를 하려는 것은 아닌가?

끔찍하게도, 괴물은 머리가 둘인지라 입도 두 개라, 서로 다른 두 입에서 서로 다르게 웅얼거리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듣자하니, 흡사 자신이 두 명의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 것만 같다. 비광의 입술 사이로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신음이 흘러나온다.

"으으… 으으으……"

"어… 어어어…"

비광은 자신의 짧은 생이 눈앞을 스치는 것을 느낀다. 이제는 촌음(寸陰)도 지체할 수 없다. 그는 다급히 부채를 꺼내어, 그것을 펼치고 괴물 쪽을 향해 휘휘 내젓는다.

"저, 저리 가라, 훠이, 훠어이! 이 괴물! 이 요망한 것!"

"어어… 어어……"

"어딜 감히 사람을 해코지하려 드느냐! 어서 썩 물러가라! 네 이 놈! 물러가지 못할까!"

괴물이 겁을 먹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괴물의 걸음이 점점 느려지다, 이내 비광의 십오척(十五尺)쯤 되는 앞에서 멈추어 섰다는 것이다. 비광은 그 상태로 계속 부채를 휘두르다가,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고 느껴지자 몸을 돌려 있는 힘껏 계곡을 내리달아 도망친다.

금병산 계곡을 돌아나온 비광은, 그 길로 뒤도 보지 않고 즉시 말을 타고 한양으로 향하였다.


"오, 돌아왔는가."

"서책(書冊)을 찾고 계시온지요."

무영은 책상 위에 이런저런 책들과 문서들을 잔뜩 쌓아 놓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읽고 있던 상태였다.

"서장은 챙겨 왔겠지?"

"예, 오는 길에 제가 듣고 본 바를 모두 기록하였습니다."

비광은 무영의 책더미 위에, 자신이 쓴 서장을 조용히 올려놓는다. 무영은 그것을 슬쩍 바라보고는, 다시 자신이 들고 있는 두루마리로 시선을 돌린다.

무영은 들고 있던 두루마리를 읽다가, 조용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읽어나간다.

"……모 판서 댁의 노비가 쌍둥이를 낳았는데 둘의 배가 서로 붙어 있는지라, 낳은 지 불과 나흘만에 죽었다…… 충주(忠州)서 퇴역 기생의 딸이 쌍둥이를 낳았는데 다리가 넷이요 볼기도 넷이라, 산모와 쌍둥이 모두 출산(出産) 중에 죽었다…… 영흥부윤(永興府尹)의 질부(姪婦)가 쌍둥이를 낳았는데 등이 붙어 있는지라, 나이 열넷에 죽었다……"

무영은 천천히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비광에게 다가간다.

"이 모두 우리 이금위에 접수된 제보이나, 귀신으로는 분류되지 않은 사례들이네. 그대가 본 것은 어떠하던가?"

"과연 몸 하나에 머리가 둘이요, 산자락에서 남몰래 살고 있었으나, 소생이 운이 좋아 다행히 직접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무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실로 운이 좋았군. 고래(古來)로 이런 자들이 간혹 있어 왔으나… 이번 사례의 경우, 만일 그 자가 정말로 민심을 혼란케 하고 있다면, 마땅히 이금위가 나서야 할 일일 터. 민심은 어떠하던가?"

"예, 뭇 계집들 사이에서 그 괴물이 어린것들을 납치하여 잡아먹는다는 뜬소문이 파다합니다. 그러나 소생이 알아본즉, 그 낳은 모친(母親)이 남의 이목(耳目)을 피하여 바라지를 하고 있는지라, 식인을 하고 있다는 판단은 믿기가 어렵습니다."

무영은 미세하게 미간(眉間)을 찌푸린다.

"그렇군. 여하간(如何間)에 우리 이금위에서 수사반(搜査班)을 꾸려 직접 갈 것이네. 가 보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 그때 나도 갈 터인데, 그대도 동행하는 게 어떤가."

"예, 저도 가겠습니다."


삼일(三日) 후.

비광의 생각과는 달리, 수사반은 뜻밖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실제로 귀신을 제어(制御)하는 이금위군(異禁衛軍)으로 편성(編成)된 것이 아닌가. 이금위군 특유의 검은빛 복식(服飾)에, 손에는 대나무 막대기와 감로수(甘露水), 부적 등등을 들고 있다. 선두에 선 자는 검은 깃발을 들었는데, 그를 중심으로 하여 군세(軍勢)가 북두칠성(北斗七星)의 세를 이루었으며, 그 뒤로는 각각 깃발에 탐랑(貪狼), 거문(巨門), 녹존(祿存), 문곡(文曲), 염정(廉貞), 무곡(武曲), 파군(破軍)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수색을 하기 위함인지, 군데군데 몇 마리 개들도 보인다.

비광은 실제로 이금위군을 목격한 것이 처음이나, 그보다는 당황스러움이 먼저다. 춘천에 당도하여 지휘소(指揮所)를 차린 후, 금병산을 둘러 포위망을 전개(展開)하던 차에 무영 선생을 만난 비광은, 황급히 그에게 달려가 따져 묻는다.

"아, 아니… 무영 선생!"

"왜 그러나?"

"부… 분명 이금위군이 출동할 만한 사건은 아닙니다만…!"

"이금위군은 내 소관이 아닐세. 나는 지금 그들과 동행하며 현장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임무를 맡고 있을 뿐. 위에서 정한 일이니 너무 토 달지 말게. 잊었나 본데 자네는 지금 신입이야."

"……"

"그리고 만에 하나 그 괴물이 소동(騷動)할 수도 있을 터. 혹시나 하여 불렀다고 생각하게."

무영은 다시 그 얼마 없는 수염을 쓰다듬다가, 문득 비광을 이끌고 밖으로 향한다.

"자… 그럼, 한번 저 괴물의 소굴, 금병산으로 올라가 보세나."

"…알겠습니다. 제가 길안내를 하겠습니다."

이금위군은 금병산을 포위했고, 그 괴물은 지금 금병산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비광과 무영은 별다른 호위 군사도 없이 삼일 전의 그 계곡을 다시 오르고 있다. 멀리서 수색견의 짖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막 계곡을 오르려던 무영이 멈칫한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뭔가가 보이십니까?"

"…자네, 그때 분명, 그 괴물이 어린것들을 잡아먹는다는 게 뜬소문이라 하였지?"

"예, 그렇게 아뢰었습니다마는…"

무영은 계곡 입구 근처의 한 둔덕으로 가서, 뭔가 하나를 가져왔다.

"이걸 보게. 유력한 증거물이 될 걸세."

"이건……"

흙을 뒤집어써서 누런 빛이 도는 둥근 무언가다. 자세히 보니, 구체적으로 무엇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떤 생물의 두개골(頭蓋骨)임에는 분명하다. 비광은 순간 숨을 들이마셨다.

"무영 선생, 설마 이걸 희생자의 해골이라고…!"

"그렇다네. 괴물이 이를 잡아먹은 뒤, 머리뼈를 이곳에다 버린 것이지."

"하지만… 미천한 소생이 보기에도 이것은 인간의 것이 확연히 아닙니다!"

"……"

순간, 무영이 그 특유의 곁눈질로 비광을 매섭게 바라본다. 순간 비광은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여, 한 발짝 물러서며 고개를 숙인다.

"제가 방자(放恣)하게도 외람(猥濫)되이 아뢰었습니다."

"……간혹 이런 인간의 머리뼈도 있네. 괴물의 소행임이 분명하네. 계속 따라오게."

비광은 마음 속이 복잡하다. 분명 그 때까지만 해도 그 괴물의 정체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자세히 파악했다고 생각했다. 모든 정황과 좌증(左證)이 서로 맞아떨어지고, 분명히 이 괴물은 이금위가 출동할 만한 이물이 아니라고 여겼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밥그릇을 찾지도 못했고, 오늘 와서 보니 무영 선생이 뭔가의 두개골을 찾기도 하였다. 그렇다면 지금껏 자신이 괴물과 그 한패들에게 놀아났다는 말인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뭔가 이상하다. 설령 정말 위험한 귀신이라 하여도 이금위군의 이와 같은 대규모 출동은 너무 급한 감이 있다. 무영 선생도 역시 지나치게 경직(硬直)된 듯한 태도다. 마치… 조사해 보니 귀신이더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괴물은 반드시 귀신이어야만 한다… 같은……

비광과 무영은 계속 계곡을 오르며 단서를 찾으려 하였으나, 처음 본 그 두개골 외에는 별다른 다른 단서를 찾지 못하였다. 비광은 혹시나 하여 흰색 바위를 다시 찾아보았으나, 저번에 보았던 그 바위 외에는 다시 다른 것을 보지 못하였다. 이번에도 바위 위에 밥그릇은 없었다.

산중(山中)의 해는 일찍 저물고, 어둠이 나뭇잎 사이사이를 헤집고 들어오는지라, 수색 중지를 알리는 나팔에 비광과 무영도 옆 나무둥치에 표(標)를 하여 두고 다시 산을 내려왔다. 수색은 이제 내일을 기약(期約)하여야 하는 것이다.


지휘소 옆 군막(軍幕)으로 돌아와서도, 비광은 통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뭔가가 자신의 생각과는 영 다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쯤 그 괴물, 아니, 만복이란 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 사라진 밥그릇은 무엇이며, 그 정체불명의 두개골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만복의 어미라고 했던 그 아낙은 내게 진실을 말한 것인가, 아니면 거짓을 말한 것인가?

갑자기 모든 것이 혼돈(混沌)과 불확실함으로 빠져들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비광은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다. 내일이 되면 아마 정상까지 수색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라 하니, 분명히 내일 정오 즈음에, 아니면 그 전에 이금위군이 그 자를 사살(射殺)하든지 포획(捕獲)하든지 할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내일이 되었을 때 그 아낙은……

비광은 밖으로 나선다. 달빛이라도 좀 비쳤으면 좋으련만, 답답하기는 하늘도 마찬가지다. 찌부드드하게 꽉 끼인 구름에 달빛도 별빛도 일체 보이지 않는다. 여름이라고는 하나 밤에는 좀 선선할 법도 하거늘, 밤조차 후덥지근한 공기가 대지를 무겁게 짓누른다.

지휘소에는 아직도 등잔불이 켜지고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만히 듣자 하니 부분부분 알아들을 만하다.

"…최우선의 목표는… …제(第) 삼호(三號)와 마주쳤을 때… …사로잡지 못한다면 다음은 없으니…"

이 자들은 아무래도 사살이 아닌 포획을 목표로 함에 틀림없다. 아니, 그보다, 지금 그들은 그 괴물을 지금 귀신 병술 제 삼호라고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정녕 이들은 그 괴물이 이물이라 확신하고 있다는 말인가?

"무영 선생께서 오늘… …이것을 통해… …참증(參證)이 될 것이오."

오늘 낮에 발견한 그 두개골 이야기다. 그 이후로는 비광이 귀를 기울여도 잘 들리지 않는다. 무영 선생이 뭐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나, 원체 목소리에 힘이 그리 실리지 않은 소리인지라, 군막 밖으로 잘 들릴 도리가 없다. 군막 근처로는 이금위군이 파수(把守)하고 있는지라, 가까이 가기도 어렵다.

얼마간 기다리자니, 갑자기 군막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저기 무영 선생도 나가는데, 저 혼자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는 모양이다. 비광은 그 군막에 모였던 사람들 중 가장 높은 자로 보이는 남자를 가만히 따라가 보기로 한다. 그 남자의 곁에는 다른 이금위군 복식의 남자도 두 명 더 있다.

"…걱정이올시다. 이번 건으로 귀신이라 하기에는 너무 평범해 보이던데……"

"터놓고 말하자면 다들 할 말이 많을 걸세. 무영 선생께서도 오죽했으면 그런 해골을 가지고 오셨겠는가."

"어쩌다 우리 이금위군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이 정도 군세라면 신장(神將)급의 귀신이라도 대등하게 겨룰 수 있지 않습니까? 헌데 기껏 이곳 춘천까지 왔더니 이런 하찮은……"

"별 수 있나. 그저 이 괴물이 무사히 잡혀 주기만을 바라야지. 그 하나를 금령(禁令)으로 묶어두어야, 더 이상 우리 이금위군의 기세가 약해지지 않을 것이니……"

"우리끼리 말이지만 전하께옵서도 참 너무하십니다. 아무리 올 가을 흉작(凶作)이 우려된다고는 하나, 왜 하필 우리 이금위군의 물자와 군료(軍料)를 줄이신단 말입니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대외적으로 드러난 자들의 군료를 줄이는 것과, 대외적으로 숨겨진 자들의 군료를 줄이는 것 중, 어느 쪽의 일이 더 쉽겠는가? 전하께옵서도 편치 않으셨을 것이네. 우리도 뻔히 그걸 아는 만큼, 이렇게라도 해서 전하께 호소를 해 보려는 것이지. 다른 방도(方道)라고 안 찾아 보았겠는가? 열두 령(令)께서 상소(上疏)를 안 하셨겠는가?"

"…여, 열두 령께서 직접 상소를 하셨음에도 방도가 없다는 말씀이시온지요?"

"그 정도까지는 아마 아닐 걸세. 대신 전하께서 이런 걸 요구하셨을 수도 있겠지."

"어떤 것 말씀이옵니까?"

"……이금위군이 뭔가 계속 활동하고 있고, 해야 할 일이 많고, 잡아야 할 귀신이 많다면… 군료를 깎지 않을 터이니, 뭐든간에 우리가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말일세."

비광은 비로소 모든 것을 짐작하였다. 그리고 문득 참을 수 없는 근심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모든 의문과 혼란이 일거(一擧) 깨끗이 사라졌으나, 오히려 전보다 더한 걱정과 슬픔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금위군 때문에 죄도 없이 희생당하는 괴물, 아니, 만복이는 무엇이 된다는 말인가? 그의 어미는 이제 자식을 가슴에 묻고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군료를 바라지 않아도 된다면, 아니, 이금위가 처음부터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집단이었더라면, 이런 일이 생길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가 비록에 실리지 않는다면, 결국 영영 잊혀지게 된다는 말인가? 그들은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인가?

비광은 자신의 군막으로 어찌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꽤 오랫동안, 비광은 잠을 들지 못하였다.


아침이다.

눈이 뜨인다. 그런데… 너무 밝다.

"헛…!"

비광은 꽤 늦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머리맡에 누군가의 서장이 있는 것이다.

그대가 무영 선생을 새로 보좌(補佐)하게 된 자라고 들었네. 신입이니, 우리 이금위군과 접하는 것도 이번이 아마 처음일 걸세. 허나,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보여주게 되어 유감이네. 나는 이금위의 오호(五號) 금위대장(禁衛隊將)일세. 어젯밤에 자네를 제지(制止)하지 않은 것은, 춘천에서의 이 모든 일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네. 그러하니, 부디 자네만큼은 이 모든 일의 진상(眞相)을 알았으면 하여, 내 필요 이상으로 소상(昭詳)히 밝혀 말했던 것이었네. 자네가 그 어둠 속에서 모든 것을 듣고 꿰뚫어 이해하였으면 하여 말일세. 자네는 다름아닌 보전원(保全院) 소속이 아니던가?

편히 자게. 아침 수색에 자네는 부르지 않기로 하였네. 혹시 수색에 함께할 마음이 들거든, 동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 조(組)와 합류하게.

이금위(異禁衛) 오호(五號) 금위대장(禁衛隊將) 비호(飛虎)

비광은 벌떡 일어났다. 잠이 확 깨는 느낌이다.

"이럴 수가!"

이미 해는 중천이다. 비광은 급히 말을 달려 동쪽 능선으로 향한다.

"결국… 일이 이리 되었단 말인가! 나만 빼고 수색을 재개했다는 것은… 괴물을 만났을 때 내가 어떤 언동(言動)을 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뜻이 아닌가! 그리고… 이건…… 그렇지! 이금위군은 만복이 그 자가 서쪽 계곡에서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 거야! 그래서 나를 동쪽 능선으로 보내려는 것이고!"

비광은 달리던 말을 멈춰 세우고, 방향을 바꾸어 다시 정반대 쪽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그가 탄 말이 간신히 계곡 입구에 도착하였을 무렵, 한 무리의 이금위군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끝났단 말인가…!"

한 이금위군이 비광을 발견하고는 간략히 보고(報告)한다.

"그 귀신이 죽었습니다."

"그리… 되었는가……"

비광으로서는 황망(慌忙)할 따름이다. 저번 거북의 일도 그렇더니, 이번에도 이렇게 되었단 말인가. 아무리 자신이 신입이기로소니…

"오오, 일어났는가. 지금 왔군 그래."

이금위군의 얼굴들 속에 무영 선생의 지극히 사무적(事務的)인 얼굴도 있다. 비광이 급히 묻는다.

"어찌… 어찌 되었습니까?"

"일이 다 끝났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보고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이지. 자네도 보고 싶거든, 저기 계곡을 따라 죽 올라가서 보고 오게. 기록하는 데 별다른 도움이 되진 않겠지만 말일세."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오겠습니다."

결의에 차서 말하는 비광과는 달리, 무영의 표정은 일순 어두워진다. 그런데 무영뿐만 아니라 이금위군 병사들 대부분의 표정이 그리 밝지 못하다. 마치 뭔가 야심찬 계획이 실패라도 한 듯, 상가(喪家)에서 초상(初喪)이라도 치르듯……


금병산 산 속은 고요하고 적막(寂寞)하다.

아침에 이금위군이 한바탕 휘젓고 가서 그러한가, 무주공산(無主空山)에는 저 흔한 새소리도 없고 동물의 기척도 없다.

"……"

계곡을 한없이 오르다 보니, 저번에 비광이 만복이와 마주쳤던 바로 그 장소도 나온다. 얼마나 더 올라야 할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던 차에, 비광의 눈에 믿기 힘든 뭔가가 들어온다.

"아니… 저것은……!"

비광은 그 높은 비탈길을 허겁지겁 기어올라간다.

벼락맞아 잎사귀도 하나 없고 굵은 나뭇가지만 몇 개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검은 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나뭇가지 중 수평 방향으로 길게 늘어진 가지에…

그가 있다. 만복이다.

"아… 아아……!"

수색조에게 쫓기고 쫓겨서 결국 도망도 치지 못하고, 기어이 이렇게 스스로 목을 매어야 했던 기구(崎嶇)한 신세. 비광의 뇌리(腦裏)에 만복이의 모습이 그려진다. 홀로 이곳에 올라 목을 매고 있었을 그의 모습. 목이 두 개이니 밧줄도 두 개를 매어야 했으리라. 두 개의 목에 두 개의 밧줄을 홀로 걸었을, 그 괴기스럽고도 이상하리만치 슬픈 광경을 상상하니, 문득 비광의 목에서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오르는 듯하다.

"……원통한지고!"

형용할 수 없이 이상하고도 슬픈 감정에 사로잡힌 비광은, 그대로 그 자리에 그만 털썩 주저앉는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나,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만복이의 목매어 죽은 시체는 말이 없다. 압도적인 정적(靜寂)에 비광마저 말문이 막히어 버린다.

비광이 간신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저 이것뿐이다.

"원통한지고! 애석한지고!"

적막한 산에 비광의 목소리만이 살며시 메아리를 불러일으키다 사라진다. 산새 날아가는 소리조차 없다.

"원통한지고! 애석한지고!"

문득 저 멀리서 목탁(木鐸) 소리가 비광의 메아리에 섞이어 들려온다. 비광은 그 목탁 소리가 하도 작게 들려서, 자신이 헛듣고 있는 것인가 한다.

똑, 똑, 똑, 똑……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娑婆訶)……"




귀신(鬼神) 병술(丙戌) 제(第) 삼호(三號)

상(詳) 머리가 둘이요, 동리(洞里)의 동자(童子)들을 잡아먹는 귀신
당(當) 이금위(異禁衛) 오호(五號) 금위대장(禁衛隊將) 비호(飛虎)
결(結) 이금위(異禁衛) 오군(五軍)과의 교전 중 사살
현(現) 비록(秘錄)에 기록 후 종결(終結)

선비가 말한다.

이 이물은 춘천 땅 금병산(金屛山) 산자락에 살면서 어린아이를 채어 가서 잡아먹는 괴물로, 본디 공성현(功城縣)에서 온 한 계집의 태(胎)에서 나왔다. 그 나타난 바는 불명(不明)이다. 이후 이금위군에 동행(同行)하였던 감찰관(監察官) 비사대부(批士大夫) 무영(無影)이 결정적 참증(參證)이 될 만한 두개골(頭蓋骨)을 발견함으로써 이금위군이 제어(制御)하게 되었다. 산중턱에서 만나 귀신과 교전하였으나, 여건상 포획(捕獲)이 불가(不可)하여 부득불(不得不) 현장에서 사살하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이금위군의 피해는 전무(全無)하다.

이 이물에 대한 사건을 근거(根據)로 이금위군의 군료(軍料)를 조정하고저 하였으나, 상(上)께서 귀신이 포획된 것이 아니라 사살되었음을 지적하시며 열두 령(令)의 상소(上疏)를 기각하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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