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리우스 연작 1편

“이 더러운 유태인 마을을 기억하는 자는 아무도 없게 될 겁니다. 이 마을 이름이 뭐였죠? 오라두르 뭐라고 했었던 것 같았는데.”
그가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는 단어의 잘못된 사용이었다. 부분적으로는 그가 언어를 신성하게 여기기 때문이었고, 부분적으로는 눈앞의 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오라두르쉬르글란입니다, 대위. 프랑스 역도들이 당신네 친위대 장교 한 명을 생포해서 불태운 마을 말입니다. 이름 정도는 기억해 둬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당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고의적인 것이었다.
“거 참. 지나치게 까다롭게 구시면 곤란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모신 것은 모종의 비밀 의식을 진행하는 데 당신이 필요하다는 지령이 내려와서지 당신 비위를 맞춰 주라고 모시는 게 아니니까. 애초에 저는 수리수리마수리 마술 같은 거 안 믿습니다. 알겠나?”
하인리히 대위는 상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동기들은 위대한 전쟁의 최전선에서 총통을 위해 싸우고 있는데, 자신은 이런 한심한 시골 마을이나 정리하고 있다는 자격지심 탓일 것이다. 상위 단계의 힘을 쓸 필요도 없이, 약간의 추리력만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지 않으시는 모양이시군요. 혹시 유물론자이십니까?”
하인리히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지금쯤 그의 머릿속에는 이번 일로 있을지도 모르는 승진 기회가 가득하리라. 그렇다면 그는 조용히 있을 것이고, 마카리우스 사제에게는 그 편이 훨씬 좋았다.
“제 나름대로의 가설입니다만, 유물론자에는 두 가지 종자가 있지요. 물질의 압도적이고 몽매한 힘에 굴복하는 종자와, 자연과 이성의 비밀마저 지배하려 하는 종자. 인간 이성의 신비와 그 너머의 신비조차 저 같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물질적 현상에 불과합니다.”
“허어. 그러면 마술사가 아니라 과학자라 이 말씀이십니까?”
하인리히는 의외로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는 몇천 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오만함과 어리석음을 깨닫는 때가 자주 있었다.
“그렇게도 볼 수 있겠군요. 일로 돌아갑시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고 있으시겠지요. 유럽인들의 피부가 하얀 이유는 하얀 피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두 발로 걷고 두 손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죽음은요?”
“죽음이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바닷가재는 수명에 의해 죽음을 맞을 일이 없습니다. 인간종에게 불사가 유리했다면, 아마 인간은 죽지 않는 쪽으로 진화했겠지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더 작은 쪽을 선택했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세상의 모든 물질과 능력을 커다란 원으로 본다면, 우리는 작게. 작게. 더 작게 진화한 겁니다. 무한히 오래 살며 할 수 있었을 것을 포기하고, 창공을 날며 할 수 있었을 수많은 일들을 포기하고, 손대지 않고도 물질을 움직이며 할 수 있었을 능력들을 포기했습니다.”
“전혀 말이 안 되는군요. 인간이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했으며, 그 정점에는 아리안 민족이 자리하는 것이 아닙니까?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우둔한 열등민족에 비해서 말입니다.”
“이슬람의 경전 쿠란에는 아드 민족이라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지상을 자신들의 증거인 비석으로 덮고 알라를 모독한 신장 45m의 거인들 말입니다. 모래폭풍에 전멸당했지요. 그리스 신화의 황금시대 이야기. 지금은 놋쇠시대입니다. 먼 옛날 황금시대의 인간들은 위대했지만 후손인 우리는 이렇다고 하지요. 세계의 신화에는 먼 옛날의 인류는 강대했지만 후손인 우리는 이 꼴이라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 이야기들에는 공통원인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위대한 선조들이 신을 모독했기 때문이라고들 하지요.”
참으로 자비로운 신들이시지. 악덕이 금지되었던 이유는 신들이 그것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대한 관음증 환자들이여! 그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아야만 했다.
“네. 그렇지요. 한번 우리가 여기서 더 퇴화하나 시험해 봅시다.
전 이제 죽은 자들을 부활시킬 것이거든요.”

마을의 공터에 주차된 자동차는 어떤 의사의 것이었다. 이 마을 사람이 아닌, 이웃 마을의 의사. 그는 이 조그마한 마을에 왕진을 왔고, 바로 오늘, 그의 육신은 성당 뒤편에서 기능을 다했다.
“유물론의 관점에서 보면 신들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물질이니까요. 하지만 그건 너무 작게 보는 것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들이 물질계 외부에 존재한다고 했고, 칸트는 신이 지각과 의식 밖에 존재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신들이 나름대로의 물질계를 구성한다는 제 이론을 반박할 증거가 되지는 못합니다.”
마카리우스는 근처의 나뭇가지를 들어 커다란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놓여진 수백 구의 시체들은 나란히 정렬되어 있었고, 원은 그들 전부를 포용할 만큼 거대해야 했다.
“저는 땅바닥에 2차원의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원 밖의 사람들은 원 안의 시체들이 보이지 않겠지요. 우리들에게는 둘 다 보이지만요. 상위 차원에 있다는 건 그런 말입니다. 신들의 차원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신들의 차원에서 만들어진 망치를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원이 다 그려졌다. 마카리우스가 막대를 손에 든 지 몇 초 되지도 않았을 때였다. 하인리히는 숨을 멈췄다. 이토록 거대한 원이 이렇게 빨리 그려지는 것이 가능한가? 진정으로 원이 빨리 그려졌다면. 원을 그리는 동안 마카리우스가 긴 혼잣말을 했다는 자신의 기억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마카리우스가 막대를 손에 든 지 몇 초 되지 않았다는 자신의 추론의 바탕은 마을의 시계탑을 근거로 하는데, 그 근거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마카리우스가 손에 막대를 들자마자 원이 그려졌다는 결론이 도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모든 기이한 현상들을 무시하고, 그냥 시계탑이 모종의 이유로 고장났다는 이론을 믿기로 했다.
“우리는 신의 두개골을 박살낼 수 있을 겁니다.”
시체들이 제각각 일어나기 시작한다. 스스로 공기를 빚어 어깨에 댄다. 텅 빈 눈구멍에 무언가를 채워 넣는 시늉을 하자 안구가 생겨난다. 서로가 서로를 치장해 준다. 두 팔이 떨어져 나간 시체에게 다른 시체들이 모여들어 팔을 빚어 준다. 팔을 되찾은 시체가 말을 한다. “고마워.” 곧 이어 “고마워”라는 말이 끊임없이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몸짓과 손짓이 하나가 된다. 그들은 동시에 상대방의 머리카락을 빚어내면서 발가락을 재생한다. 그들은 목소리를 내면서 심장을 쥐어뜯는다. 그들이 쥐어뜯은 공기가 뭉근해지자, 하인리히와 그의 병사들은 숨쉬기가 어려워진다.
곧 이어 그들은 문자를 말하기 시작한다. 본디 문자와 말은 언어의 완전히 상반되는 두 표기 방식이다. 그들은 그것을 무시한다. 문자는 어느새 무너져 뭉근해진 공기 속에 섞이기 시작한다. 공기는 이윽고 질겨지기 시작한다. 하인리히는 생각한다. 저것이 영혼일지 모른다. 저것이 있으면
“아뇨. 저런 건 없습니다. 여기에는 없어야 하는 거에요. 그걸 있게 만드는 것이 제 일이죠. 아까 하다 만 말을 계속하죠. 인간이 왜 과거의 강력한 능력들을 잃었을까요? 그들은 포기한 거에요. 저것으로부터.”
이제는 시체들이 보이지조차 않는다. 질겨진 공기가 벽이 되었다. 벽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빛이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곡선은 넓이가 없었다가, 두께가 없었다가, 뛰어넘지 못하다가, 빛의 고치 안에서 마침내 형태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겁쟁이들이었죠. 신들의 눈길을 견딜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더 나약하게 진화한 거에요.”
그것은 갈비뼈이다. 안쪽에서 드디어 직선이 형성되기 시작한다. 척추뼈이다. 그 위에 구가 생겨난다. 두개골이다. 나비 모양의 무언가가 형성된다. 골반이다. 여성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자가 떠오르고 있다. 빛의 섬유로 만들어진 드레스가 덮어씌워지고, 마카리우스가 그녀의 문자를 말한다. 문자가 고치에 닿자, 고치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주한 거라고요.”
단단해진 공기가 녹아내린다. 그녀가 마카리우스의 손을 잡고 키스한다. 마카리우스는 딱딱한 웃음을 짓더니, 이윽고 실망한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 돼…아름다워요…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하인리히가 이것을 몰랐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평화로운 삶을 살며, 총통께 봉사하고, 유태인 벌레들을 잡아내고 나약한 자들 위에 서며 빛나는 만신전의 발할라에 함께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인리히는 마카리우스를 바라본다.
그의 피부는 검은색이다. 그의 머리는 아리안 민족의 금색 곱슬머리가 아니라, 검은 색의 직모이다. 그가 자신의 군복과 하켄크로이츠를 뜯어내자 그것들은 흐물텅거리며 사라지고, 대신에 로브가 나타나 그의 나체를 감싼다.
“너…전부 거짓말이었군. 사기였어. 총통께 보고드리겠다. 넌 처벌을 받을 거야.”
“처벌은 당신들이 받아야지요. 이 아이는 아름답지만 실패작이에요. 당신들의 저속한 광기와 폭력을 너무 많이 내포하고 있으니까요. 세계 각지의 전쟁터를 다녀봤지만 역시 안 되는군요. 겁탈당한 체 태어난 아이나 마찬가지에요. 이 아이가 증오에 물들었다는 건 뒤를 돌아보면 알 수 있지요.”
하인리히는 뒤를 돌아보았다. 빛으로 형성된 아이가 손가락들을 늘여 자신의 병사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온몸이 타오르며 폭발하고 있었다.
“대체 왜?”
“실패한 건 알고 있었어요. 타 민족에 대한 증오, 그에 따라 벌어진 학살. 그 결과는 항상 저랬어요. 자신을 죽인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증오와 학살로 대해주고 싶어했지요. 결과를 알고 있으면서도 실험을 강행한 이유가 뭐냐고요? 당신이 말했잖아요. 제가 과학자라고. 독일에서는 이런 실험을 해 본 적이 없거든요. 시간도 남아 도는데 못할 일이 뭐 있겠어요.”
하인리히는 다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빛의 손가락들이 그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를 감싸들며 터뜨리고 있었다.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빛으로 화하자 하인리히의 육체는 태어난 이후 가장 아름답게 보였다.

모든 일이 끝났다. 흐물텅해지고 끝이었다. 승천의 벽은 너무 높았다. 고대 중국의 어떤 자객은 목표물을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다는 증표를 남기고자 침대 위에 단검을 남기고 갔다고 한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객의 능력이 모자라 죽일 수 있었던 척만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런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저들은 이 마을에서 친위대 장교가 살해되었다는 이유로 학살을 저질렀어요.”
빛으로 형성된 여인은 그를 토라진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그녀는 역사의 변방에서 저질러진 작은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존재였다. 빵에는 우유와 달걀이 들어가지만, 닭에게 빵을 들이대며 자식이라고 해 보았자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다. 그녀가 토라진 것은 마카리우스가 그녀를 실패작이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친위대 장교가 살해된 마을은 이곳 오라두르쉬르글란이 아니라 오라두르쉬르베르였는데도 말이죠.”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나는 뭐야?”
마카리우스가 대답했다.
“답장이죠. 저 위의 신들에게 전해 줄. ‘너희들 농담은 조금도 재미있지 않고 오히려 짜증나’. 자, 이제 움직일까요?”
그래서 그들은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