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의 사정

모니터 1개

“이것 봐, 내 말 맞지?”

녀석이 날 쳐다보며 말했다. 어두운 방 안에 모니터의 빛이 은은했다. 화면에는 교수님이 과제를 정리하는 장면이 나왔다. 교수님이 다 정리하고 과제를 옆에 끼고 나가려는 순간, 종이 하나가 빠져나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운 나쁘게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탁자 밑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자기가 제대로 확인도 안 해놓고 ‘자넨 F라네’라고 말하는 건 무슨 심보냔 말이야.”

“어떡할 거야?”

“어쩌긴, 교수실로 쳐들어가서 직접 찾아줘야지. 이런 교수들은 눈앞에 직접 떠먹여줘야 된다니까.”

녀석은 의자에 몸을 웃고 키득거렸다. 나도 괜히 웃겨서 헛웃음을 흘렸다.

“너도 참 대단하다. 교수실에 몰래카메라를 꽂아놔? 교수님이 찾으면 어쩌려고?”

“절대 못 찾을걸. 내 솜씨를 뭘로 보고. 미국 대통령이 와도 못 찾아 이거.”

웃음을 머금으며 우리는 서로 간단하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 얼마나 거대한 한 걸음을 떼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했다.


모니터 5개

“이게 되네.”

모니터 5개가 교수실 5개를 비췄다. 그 중에는 맨 처음 설치했던 그 교수실도 있었다. 녀석과 나는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네 지도교수님은 무슨 죄가 있어서 도촬을 당하고 있냐.”

“내 지도교수가 된 죄? 아니면 저 사람의 죄가 아니라 내 호기심이 죄가 되겠지.”

“이걸로 뭘 어쩌게?”

“감시해야지. 꼬투리 잡을 만한 게 없나.”

“협박하게?”

“수틀리면?”

“수업 있을 땐 못 보잖아.”

“그러니까 저장할게 필요하지. 그래서 당장은 감시안할 거야. 필요한 것들도 있으니.”

“뭐 나한테 부탁할만한 건 없어?”

나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녀석도 똑같은 눈빛으로 날 올려다보며 말했다.

“외장 하드 여러 개 정도?”


모니터 7개

“맙소사……”

모니터가 비추고 있는 화면을 보고 나는 숨이 멎었다. 거기엔 교수실은 더 이상 없었다. 영화에서 보던 광경들이 거기서 나오고 있었다. 나온 사람의 모습만 아니었다면, 드라마를 녹화해 놓은 거라 믿었을 것이다.

“왔어? 취업은 잘 되고?”

“너 저거 설마.”

“맞아, 대통령 집무실. 그 외 국회나 기타 등등. 우리나라 정치의 윗부분이지.”

“저게 돼?”

“되더라.”

모니터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키보드 옆에 봉지를 내려놓았다. 안에는 외장 하드가 여러 개 들어있었다.

“오늘도 사왔네, 고마워.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 많이 할 텐데”

“취업했어. 그거 기념으로 간식거리도 사왔고.”

나는 봉지 안에서 과자 봉지 하나를 꺼냈다. 녀석의 눈이 반짝였다. 녀석이 내 손에서 과자를 슬쩍 빼낸 다음에 기쁨의 몸짓으로 의자를 앉아 한 바퀴 돌았다.

“오, 축하축하. 어디 들어갔어?”

“나 입대해.”

녀석이 입꼬리가 다시 수평선으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진지한 입과 반대로 눈은 여전히 은은하게 빛나고 있엇다.

“군인? 프로 군인?”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젠 눈과 입이 모두 아쉬움을 드러냈다. 나와 녀석은 잠깐 먼 이별에 슬퍼하는 악수를 나눴다.

“살아 돌아와라. 돌아오면 멋진 걸 보여줄게.”

나는 모니터를 올려다보았다.

“여기서 어떻게 더 멋지게 하려고.”

평생의 약속이 이렇게 이루어졌다.


모니터 200개

“오랜만. 전보다 손에 든 게 많네.”

“정말 더 멋지게 만들어놨네. 뭐 이리 많아?”

“여기서 과자 먹기는 힘들어. 예민한 기계라서 부스러기 날리면 안 되거든. 일단 나가자고.”

“내 질문에는 대답 안했어. 이거 다 어떻게 만든 거야?”

“야이씨, 나도 직업 있어. 내 능력과 돈으로 이정도 만드는 건 일도 아니라고.”

“외장 하드는 어쨌어? 포맷하고 계속 돌려쓰는 거..”

근처에서 덜그럭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전에 없던 기계가 있었다. 예전에 줬던 외장 하드와 똑같이 생긴 물체가 떨어졌다. 뭐냐고 묻기도 전에 녀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외정하드를 가지고 오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자동 생산 자판기야.”

“저건 또 어떻게 만든건데?”

“대충 절단된 인간의 신체의 재생력을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응용해서 만들어낸 거지. 이걸로 박사논문 쓸 걸 그랬네.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내용이라 자세히는 말 못해.”

이번에는 무슨 개소리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녀석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 녀석의 왼쪽 새끼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있는 걸 발견했다. 녀석의 얼굴을 봤다. 녀석은 다 알고 있다는 미소를 지었다.

“왜 이렇게까지 해?”

“재밌잖아.”

녀석은 화면을 쳐다봤다. 얼굴에는 말한 대로 즐거움이 나타났다. 하지만 다음 말과 동시에 일말의 두려움도 나타났다.

“그리고 파고들수록 뭔가 있어.”


모니터 약 250 이상

전역하고 새로 취직할 때까지는 잠깐 녀석에게 신세를 졌다. 전에 왔을 때보다 모니터가 추가되는 속도는 더뎠다. 카메라를 설치할 대상을 물색하는 데에 시간이 더 걸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녀석의 눈은 이 세계의 상류층이라 하는 사람의 눈을 보게 되었다. 그래도 녀석은 여전히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마침내 새 직장을 구하고 온 날, 녀석은 새로운 모니터를 설치하고 있었다. 녀석은 전선을 연결하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며 축하해줬다. 나도 간단하게 손을 흔들어주고 녀석이 주로 앉아있던 자리에 앉았다. 전선이 연결되었는지 지지직거리는 화면이 나왔다.

“됐어?”

“아직 화면은 안 나오네”

녀석은 모니터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가 모니터를 몇 번 툭툭 쳤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다른 모니터를 살펴봤다. 모두 생각보다 평범한 업무와 평범한 생활을 보냈다. 여기 평범함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사람이 자기를 보고 있는 줄 모른채.

이제 보니 키보드도 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 녀석의 약지를 통해 커진 걸까? 녀석이 두드리는 왼손을 보니 그럴 법도 했다.

의자에 몸을 묻었다. 오늘따라 여기 있기가 불편했다. 단순히 오늘따라가 아니라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는 취직을 했으니까. 지금 녀석의 행보를 보면 곧 나조차도 타겟이 될 수 있었으니까.

모니터의 화면이 켜졌다. 평범한 사무실이었다. 누군가가 앉아서 서류를 앞에 두고 볼펜을 놀리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다른 누군가의 기업인가 싶었다. 하지만 서류를 덮는 순간, 표지에서 익숙한 문양이 보였다. 검은색 원에 세 개의 화살표. 오늘 오리엔테이션한 강당에도 있었던 문양이었다.

“…이만 갈게.”

자랑스러워하는 녀석의 표정에 대고 나는 냉담하게 말했다. 걱정스레 내려오는 녀석을 뒤로 하고 나는 짐을 싸러 머물던 곳으로 돌아갔다. 회사 기숙사에 있기로 했다.


모니터 세는 건 그만뒀다.

녀석은 텅 빈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언가 잘못됐는지 손을 한데 모으고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전에 추가된 화면에는 이제는 익숙한 푸른색과 보라색 빛이 나는 사무실이 보였다.

순찰 구간이 겹쳐서 의도치 않게 여기를 자주 다닐 수 있었다. 저 두 개의 사무실이 켜지는 순간에도 내가 있었다. 녀석은 시스템이 조금 노후화되어서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새로 설치한 이 순간은 언제나 긴장된 모양이었다.

화면에 살짝 노이즈가 생겼다. 녀석은 자세를 바로세웠다. 나도 팔짱을 끼고 문 옆에서 지켜봤다. 중간에서부터 시작된 노이즈가 가운데를 찢고 거대해지면서 또 다른 사무실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나는 축하한다는 의미로 주먹을 내밀었고, 녀석은 고맙다는 의미로 주먹을 툭 쳤다. 오래 머물 수 없었던 나는 동시에 작별인사를 했다. 녀석은 그냥 웃었다. 못 본 새 얼굴이 많이 헬슥해졌다. 전에 비해 말도 많이 없고, 미소에도 생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나만큼이나 녀석도 변해버렸다.

군생활하면서 이런 모습을 많이 봤었다. 장기간 긴장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얼굴이었다.

순간, 녀석이 모니터로 날 보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모니터 2개 손실

두 눈에는 생기를 잃었다. 눈을 뺀 얼굴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가 난자했다. 피로 생생한 얼굴과 달리 몸은 말라비틀어져 생기가 보이지 않았다. 내 생애 이렇게 자살한 시체는 처음이었다.

이제는 누워도 될 정도로 널찍한 계기판에 두 개의 유언장이 있었다. 하나는 두렵다는 얘기가 두서없이, 불규칙적인 글자로 마구 적혀있었다. 공포 영화에서 미친 자들이 남기는 경고장 같이 보였다.

다른 하나는 아마 자신의 최후를 처음으로 볼 나를 향한 유언장이었다. 여기는 다른 유언장과 다르게 논리정연하고 절박해보였다.

첫째, 모니터를 통해 보니 더 반가웠다는 내용. 둘째, 모니터를 통해 너희 뒷세계를 관찰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내 이해를 한참 넘어섰다는 내용. 셋째, 그리고 그 규모가 큰 세계를 지켜보고 있자니, 내가 얼마나 엄청난 물건을 만들었는지 이제야 자각했다는 내용. 넷째, 내가 이해하지도 못할 세계 위에 있는 게 너무 부담이 되었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어쩌고저쩌고.

마지막, 결국 자신은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으며, 이걸 그나마 믿을만한 너와 네 조직에게 맡기겠다는 내용.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받아들이기엔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무슨 생각이냐, 왜 그러고 있냐는 심정에 습관적으로 녀석의 시체에 손을 올렸다. 시체는 아주 낡아버린 책처럼 그대로 바스러져 버렸다. 그나마 살아있던 핏빛 얼굴까지도.

가루는 의자에 앉아있지 않고 여러 군데로 흩어졌다. 몇 움큼은 모니터 안으로, 몇 움큼은 나에게로 들어왔을 것이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의자 위엔 핏자국 말고 아무것도 없었다.

무전기를 들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무전기를 키고 말했다.

“여기는 세타-5 구역, 수상한 변칙 개체 발견. 반복한다. 여기는 세타-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