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소리
평가: 0+x

항공모함이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항구에 정박했다. 마지막을 증명하는 듯이 그 퇴함 방송은 더욱 엄숙했다. 파도소리가 어우러진 잡음 소리를 뒤로 하고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단 한 사람만 빼고.

고든 대령은 갑판 가장자리에 서서 파도자락을 보았다. 아직도 모든 게 끝났다는 게 꿈만 같았다. 멍해진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면, 꽃 한 송이 없는, 아름다운 회색의 부두만이 보였다. 정말로 오랜 시간 끝에, 인류 최후이자 최악의 과제를 인류가 스스로 끝맺은 것이다.

눈을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부르르 떨렸다. 아직도 붕 뜬 기분이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나봐, 대령?”

고든 대령은 뒤를 돌아봤다. 고든과 같은 나이대로 보이는 여성이 휠체어에 앉아 다가오고 있었다. 여자와 닮았지만, 조금은 덜 늙어 보이는 사람이 휠체어를 밀고 왔다.

“오랜만입니다, 십.”

“나도 오랜만이야, 10년 전에 승진 축하 파티 때 깜짝 등장한 이후론 처음이군.”

O5-10은 고든과 함께 나란히 가장자리에 섰다. 한동안 파도 소리가 두 사람의 대화를 대신하든 철썩였다.

“뭔가, 색다르네요. 앞으로도 이런 평화라니.”

“나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이 광경을 볼 줄은 몰랐어. 지금 인류가 가진 폭력의 마지막 역사 위에 있다니.”

“군대 계급도 사라질 테고, 이젠 제가 마지막 대령이군요. 뒤에 언제나 소령 아니면 대령을 붙였는데, 익숙해 질 때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겠는데요.”

“내 직위로 불러줄까?”

“농담도 잘하십니다.”

“고마워.”

헛웃음과 미소가 오갔다. 그러다가 고든은 갑자기 한숨을 쉬고 웃느라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O5-10도 미소를 거두었다.

“믿기지 않습니다. 평화가 아니라, 평화가 온 뒤의 제 미래에 대해서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아무것도요. 이 날을 위해서 스스로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이 날이 오니, 이후에 제 역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제가 살아있는 한 오지 않으리라고 생각을 해서 그랬을 까요. 모든 걸 감수하고 최선을 다했는데 목표가 끝나고 나니깐…이 이상 갈 데가 없군요. 그래서 결국은.. 결국은…”

“여기서 사라지려는 건가?”

퇴함 방송이 파도소리에 섞였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고든은 알고 있었다. O5-10도 마찬가지였다.

고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었다. 무엇 때문에 떠는지는 몰랐다.

“망설이고 있는 거였군.”

…이유를 모른다고 믿고 싶었을 뿐이었다.

“고든, 자네가 올해 몇 살이지?”

고든은 O5-10을 내려다봤다. 이미 알고 있는 걸 왜 묻냐는 눈빛이었다.

“그럼 질문을 달리하지, 난 몇 살일 것 같아?”

고든은 다시 내려다봤다. 이번에는 자기가 어떻게 아냐는 눈빛이었다.

“휠체어 빼곤 지난번에 뵀을 때와 달라진 게 없으십니다.”

“쓸데없이 오래 산거지. 아마 자네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을 거야. 난 모든 전장을 봐왔고, 모든 총성을 들었어. 난 어쩌면 폭력의 역사 그 자체일지도 몰라. 모든 걸 기억하는 자란 그런 존재일 테니.”

고든은 잠자코 들었다.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하고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다.

“죽어야 하는 건 나야, 자네가 아니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쇼.”

“나도 절망에 빠진 줄 아나 보구만. 이봐, 나에겐 아무것도 없는게 오히려 편안해. 폭력의 역사가 끝났으니, 너무 묵은 역사는 슬슬 닫아야 하기도 하고. 그저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싶을 뿐이야.”

“전 어쩌라고요, 저도 죽으려고 여기 있지 않습니까?”

“자넨 어느 정도 살고 싶어 하지 않나. 산 자를 위해 죽는 게 죽고 싶은 사람의 도리지.”

O5-10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평안했다. 고든은 그 평온함에 덮여 더듬더듬 말을 꺼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전 이제 갈 데가 없습니다.”

O5-10에게 다시 미소가 돌아왔다. 그리곤 고든의 손을 잡았다.

“왜 없긴? 지금 자리 하나 남았을 텐데? 자네가 사표 수리를 안 해주고 있잖아.”

“뭐라고요?”

“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어. 역사가 한 페이지 넘어갔으니, 과거의 것과 함께 새로운 것을 생각해야할 사람이 있어야지. 사람들이 미래만 보고 나아갈 때, 발에 채일 과거의 과오들을 경고해줄 사람이. 과거를 아직도 알고 있는 사람이.”

고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O5-10은 이제 사뭇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난 역시 너무 오래 살았어. 이런 역사를 지고 사는 사람이 너무 오래 살면 안 되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일 때문에 악착같이 살아왔는데, 그게 끝나니까 이제 알겠어. 악착같이 산만큼, 갈 때는 미련 없이 가야지.”

파도 소리와 퇴함 방송. 얼마나 남았을까.

"익숙친 않을 거야. 나도 그랬고, 지금의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언젠간 말이야, 언젠가 아등바등 살다가 보면,"

O5-10은 말을 멈췄다. 목소리와 눈빛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

"그래,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군. 이럴 때도 있어야지."

O5-10은 눈을 감았다. 고든의 손도 놓았다. 그리고 이젠 입을 닫고 파도자락만 바라봤다. 고든은 이게 작별 인사임을 알았다.

휠체어 뒤에 있던 여자는 이제 고든의 어깨를 잡고 안내했다. 출구로 나가면서 고든은 다시 O5-10을 향해 돌아봤다. 여전히 담담하고 평온한 모습이었다.


사건기록 7271-███
2███년 █월 █일 SCP-217-KO 내부의 모든 전투기 및 첨단장비가 소멸. 격납고에는 재난 구조용 헬기 1대 만이 생성되어 있었다.

O5-10은 머릿속에 이 내용을 저장했다. 여러번, 또 여러번 곱씹다가, O5-10은 여기에 자신만의 주석을 달았다.

인류가 이제 와서야 폭력에 안녕을 고했다는 것은, 실로 한심하면서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