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거대한 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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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에게 있어 혁명은 불가피한 요소인가.

최근 끓어오르는 분위기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음지 속에 숨은 강대한 권력인 재단. 음모론에서 흔히 나오는 어둠의 조직이자, 영화에서는 주인공에게 격파되는 대상이다. 그렇다면 혁명은 오히려 기피해야할 대상이 아닌가.

“이 사람들은 우리가 반혁명적인 걸 알고 있었을까요?”

이런 생각을 선배에게 말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헛소리 말고 여기서 나갈 방법이나 생각해라.”

선배가 뒤로 묶인 손을 꼼지락거리면서 말했다.

하긴, 골방에서 묶인 채 할 소리는 아니었다.


언젠가 터지리라는 예감이 들기는 했다. 역사는 언제나 그렇게 흘러갔으니까. 하층민은 상층민에게 불만을 가지고 키워가며, 어느 순간 하층민을 한데 모을 사람이 등장하면 그대로 윗부분을 향해 달려드는 것이다. 세상의 축소판이 이곳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으리라.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태어난 게 죕니까? 태어난 게 죄라면 저 위의 사람들도 죄인입니다! 태어나기는 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습니까! 그 따위 층이 저희를 비참하게 만든다면! 그런 차이 따위 올라가서 뒤집어 버립시다!” 

어쩌면 축소판이라서 더 쉽게 터진 걸지도 모르겠다. 지구와 같이 거대한 곳이 아닌 작은 세계와 작은 세계 속 한정된 자원은 사람을 더욱 미치게 만든다. 이런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을 감독들은 영화에서 많이 표현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왜 저들에게서 음식을 받아먹어야 합니까! 음식물이 저 위에서 내려오나요? 저희 밑에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옵니다! 음식을 원하면 저희가 마음대로 내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러지 말아야 하죠? 왜 저들은 우리가 가는 길을 막는 거죠? 그 건방진 명령에 우리는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상류층과 하류층이 전복되었을 때에 어떤 오류가 생길지 몰라 재단은 최대한 막아보려고 했을 뿐이다. 이번에는 실패했을 뿐.

“저기를 보십시오! 우리를 못 올라가게 막는 윗분들의 개가 저기 있습니다. 우리의 혁명은 저들부터 시작입니다! 총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희는 저분들이 가진 총보다 많습니다! 목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피는 혁명을 고귀하게 만듭니다! 자! 저 개들을 잡아 처넣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혁명은 시작되었고, 우린 그 첫 번째 희생양이라는 이름으로 결박되어 G구간의 골방 하나에 처박혔다. 이들의 계획은 개인 엘리베이터로 내려오는 상류층을 노려 내부부터 헤집어 놓겠다는 생각이었다.

“근데 연설 진짜 멋지지 않았어요, 선배?”

“속편한 소리가 나오냐고, 지금.”


띵 우우우우우웅 띵

콰당탕! 우당탕탕!

“오, 시작했나 봐요 선배.”

꼼지락꼼지락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 보니 관리인도 저항 중인가 봐요.”

띵 우우우우우웅

“아, 졌나 보다. 아쉽다.”

띵. 꼼지락꼼지락

“근데 그만 좀 움직여요 간지러워요.”

꼼지락꼼지락

“안 풀린다니까요. 제가 진작 해봤어요. 제가 설마 그런 것도 안 해봤을까.”

“해 봤다고? 언제?”

“처음 묶였을 때부터요. 묶이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다 했는데, 정말 심상치 않은 로프였어요.”

추욱

“아, 시발. 뭔가 방법이 없을까?”

“음, 구조대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생존한다?”

“너 그걸 지금 말이라고—”

츠팟

“에” “어?”


푸르스름하고 몸에 딱 붙는 전투복을 입은 인간 형체 두 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 명은 여자, 한 명은 남자였다. 눈에는 슈트와 같은 색의 고글이 끼워져 있었고, 팔목에는 수갑과 비슷하게 생긴 고리가, 귀에는 블루투스 이어폰 같은 게 떠있었다. 마치 SF 영화 속 평범한 전투원 1 같은 복장이었다.

어두운 창고였지만 전투복과 고글에서 나오는 빛 때문에 우리에게 두 사람은 잘 보였다. 아직 우릴 발견하지 못했는지 나와 선배를 내버려두고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가장 큰 오류가 나타난 데가 여긴데… 평범한 창고잖아?” 여자가 말했다.

“사소한 데서 튀어나오니까 버그를 버그라고 하는 거야.” 남자가 말했다.

“정말?”

“나도 몰라. 나도 개발자는 아니라고.”

남자가 손목에서 스크린을 띄워 무언가를 작업하는 동안 여자는 나갈 문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팀원들은 잘 불러올 수 있는 거지?” 여자가 말했다.

“위치만 제대로 잡으면.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니니까 우린 우리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남자가 대답했다.

“성난 군중을 진압하는 게 위험하지 않다니.”

“난 누나의 팀을 믿어.”

“개새끼.”

여자는 문을 찾아 열었다. 한 줄기 빛이 우리에게 쏟아졌다. 여자는 내 발을 본 듯 흠칫하더니 문 옆에 있는 스위치를 켰다. 우리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자 남자도 이쪽을 쳐다봤다.

“안녕하세요.”

그냥 능글맞게 웃었다.


“외부인 있어서 오류로 인식되었다니, 도대체 얼마나 관리를 안 한 거야?”

“워낙 바쁠 때 완성되었으니까. 좀 오랫동안 방치될 수도 있는 거지.”

좀 풀어주고 말해주면 좋을 텐데, 두 사람은 우리를 앞에 두고 태평하게 대화를 나눴다. 여자는 고리에 입을 대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남자는 마침내 우리에게 다가왔다.

“와, 세상에 이거 고르디온의 매듭이네? 누가 장난삼아 추가해놓으셨나? 이걸 찾아서 구현한 사람도 참 대단하네요.”

“풀 수 있는 거죠?”

“전 못 풀어요. 누나! 칼 있어?”

여자는 날이 투명한 칼을 남자에게 던져줬다. 남자는 그걸 받고 우리를 묶은 로프를 잘라내기 시작했다. 한 번 잘라내자 로프는 그냥 사라져버렸다.

“자 이제 됐습니다. 당장은 좀 위험하니까 나가지 마시고. 일이 다 끝나면 저희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향해 밖으로 나가자고 고개를 까닥였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선배와 나는 그냥 망연히 앉아있었다.

나는 선배를 바라봤다. 내 눈이 너무 초롱초롱했는지 선배는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안 돼.”

제가 언제는 말을 들었습니까.


밖은 마치 프랑스 혁명이 막 끝난 중세 프랑스 같았다. 사람들의 옷이 그 때의 프랑스 사람들 보단 현대적이긴 했지만 여튼 그랬다.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시체들과 드문드문 흩뿌려진 피들. 흠, 프랑스 혁명보단 덜 잔인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는 혁명이 프랑스 혁명 밖에 없으니 무슨 비유를 하지 못해서 살짝 아쉽기도 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조용한 G구역을 발랄하게 뛰어다니는 나를 선배는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러는 동안 어디선가 삼단봉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에게 작은 목소리로 보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먼지로 변하는 소리도 들렸다.

복잡하게 얽힌 창고 사이사이를 지나가자 엘리베이터가 있는 중앙 통로가 보였다. 상위층의 부자들만 쓰는 엘리베이터가 밀집한 곳이자,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었다. 아까 봤던 두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남자는 혼자 앉아 투명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고, 여자는 옆에 그냥 서있었다.

순간 두 사람과 같은 복장을 입은 것들이 남자 앞에 나타났다. 개중에는 인간과 같은 체형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인간이라기엔 크거나, 팔이 하나 더 있거나, 머리에 뿔이 달렸거나, 형체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것들도 있었다.

재밌어 보여서 뛰쳐나가려던 나를 선배가 입을 막고 뒤쪽으로 끌고 왔다. 불만의 표시로 말을 하려고 했지만 선배의 분노가 어린 눈빛을 보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습니다. 이곳에서 소환한 이유는 넓어서 좌표 설정하기 편하다는 점도 있지만, 대부분이 올라갔기 때문에 저희 둘이서도 정리가 가능한 사람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인 즉, 이 위는 지금 난장판이라는 거죠.

이번 혁명은 위쪽과의 타협 대신 위쪽의 궤멸을 노리고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작전 시작 전에도 말했지만 혁명 성공의 전적이 로그에 남으면 이후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는 개발부의 확답을 들었습니다.

혁명을 막아야 하긴 하지만, 상류층들도 함께 없애야 한다는 것도 기억해두십쇼. 이따위 혁명을 일으키게 한 윗분들을 남겨둘 바에야 차라리 리셋하는 게 낫다는 최고 관리자와 프로그래밍 팀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작전에 대해서 다시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곧 있으면 본부에서 엘리베이터를 없애고 반중력장치를 배치할 겁니다. 각각의 장치는 출력을 달리하여 각각 다른 층에 도착하게 되어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1번 엘리베이터는 혁명이 한창인 중앙부분으로 통할 겁니다. 혁명 세력을 정면돌파 하는 거죠. 이쪽은 군중저지력에 능한 우둔 서버와 이드그라스 측이 맡으시면 좋겠습니다.“

덩치가 큰 사람들과 팔이 더 달린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분 뒤쪽의 2번 엘리베이터는 H구역 제일 아래층으로 통할 겁니다. 이쪽은 후방을 기습하여 꼬리를 끊는 역할입니다. 병력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저희 쪽에서 맡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 3번 엘리베이터는 H구역 최상층으로 통할 겁니다. 이쪽은 상류층을 처리하시면 됩니다. 대신 층이 넓은 만큼 저희 본부과 지속적으로 연락하여 반중력장치를 이용하시면 되겠습니다. 여기는 보안이 삼엄하기도 한 만큼 암살에 특화된 애쉬버그 측이 맡아주시면 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버로드 분들은 저와 여기에 남아 전체 통솔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뿔이 난 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뭐라 말했는지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대충 영어인 듯 했다. 여자는 또 어떻게 알아듣고 말했다.

“아뇨, 여기 복도의 시체들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혁명 도중 개인 경비원들에게 살해당한 모양입니다. 이번 리셋이 끝날 때 함께 치울 생각입니다. 말 나온 김에 얘기하지만 이번 작전에서는 대부분 제압하는 선에서 마무리지어주십쇼. 고통 없는 삭제를 위해서입니다.”

팔이 추가로 달린 이가 왼쪽 팔 두 개를 들고 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여자는 놀랍게도 대답을 해냈다.

“네, H구역 이상의 부분은 혁명으로 인해 종업원들이나 소비자 분들은 없으리라 추정했기에 저희 작전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리셋할 때 함께 소멸할 겁니다.”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가 손을 들고 말했다. 역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여자는 곤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렇긴 합니다. H구역의 개인 경비원들이 여러분에게 상해를 입힐 수 있겠죠. 하지만 애쉬버그 서버 사람들의 특기로 대충 흘려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당장은 개인 경비원보단 상류층 돼지들을 없애는 데 주력해 주십쇼. 나머지 경비원들은 종업원들처럼 리셋할 때 소멸할 겁니다. 더 질문 있습니까?”

“그래도 문 앞을 지키는 사람 둘은 있을 걸요. 암살은 조용하게 처리하는 거니까 그 경비원들도 처리는 해야 하잖아요.”

여자가 쳐다봤다. 남자도 쳐다봤다. 인간 같은 뭐시기분들도 쳐다봤다. 선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내 입은 언제나 그렇듯이 저지르고 봤다.

“그 역할, 제가 할게요.”


“선배랑 같이 오면 좋은데.”

가볍게 투덜거리면서 여자가 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 옆에다가 띄웠다. 작전을 앞두고 소란스러운 준비 과정이 귀에 속속들이 들렸다.

“아무래도 빨리빨리 처리해야하는 일이니까요. 둘이면 오히려 거추장스럽죠.” 함께 가는 형체가 없는 이 중 한 명이 말했다.

“방해가 된다는 말을 돌려하신 건가요?”

“비꼬는 말을 잘 하시는군요. 당신을 마음에 들어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얼굴에 대고 살짝 웃어보였다. 그 얼굴은 웃는지는 몰랐지만 대충 웃는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더욱 찢어졌다.

“저희는 기체로 동화할 수 있으니 통풍구를 통해 잠입 가능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엘리베이터 문을 부수고 진입해야죠.”

“경비원들에게 들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않게 기도해주세요.”

이번엔 미소와 함께 키득거리는 소리도 붙였다. 형태 없는 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반중력 장치는 깔끔하게라는 말이 모욕적으로 들릴 정도로 작동했다. 엘리베이터 문을 앞에 두고 둥둥 떠있는 동안 기체 인간들과 진입 타이밍을 쟀다. 앞으로 3초.

2초.

문 반대편 벽에 발을 올려놓았다. 수평으로 서있는 꼴이 웃겼지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1초.

준비 완료 무전이 들린 순간.

제로.

그대로 벽에서 발을 박차고 문을 부셨다. 약 10m 앞 쪽에 경비원이 보였다. 미끄러지면서 진입한 다음에 한 경비원의 다리에 소총을 쏘고 개머리판을 휘둘러 얼굴을 쳤다. 다른 한 명이 반응하기도 전에 달려들어 총으로 목을 짓눌렀다. 남은 건 시간이 해결해준다.

축 늘어지는 순간에 방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다른 층에서도 ?”

“그래도 문 앞을 지키는 사람 둘은 있을 걸요. 암살은 조용하게 처리하는 거니까 그 경비원들도 처리는 해야 하잖아요.”

여자가 쳐다봤다. 남자도 쳐다봤다. 인간 같은 뭐시기분들도 쳐다봤다. 선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내 입은 언제나 그렇듯이 저지르고 봤다.

“그 역할, 제가 할게요.”


“선배랑 같이 오면 좋은데.”

가볍게 투덜거리면서 여자가 준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 옆에다가 띄웠다. 작전을 앞두고 소란스러운 준비 과정이 귀에 속속들이 들렸다.

“아무래도 빨리빨리 처리해야하는 일이니까요. 둘이면 오히려 거추장스럽죠.” 함께 가는 형체가 없는 이 중 한 명이 말했다.

“방해가 된다는 말을 돌려하신 건가요?”

“비꼬는 말을 잘 하시는군요. 당신을 마음에 들어해야할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얼굴에 대고 살짝 웃어보였다. 그 얼굴은 웃는지는 몰랐지만 대충 웃는다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더욱 찢어졌다.

“저희는 기체로 동화할 수 있으니 통풍구를 통해 잠입 가능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엘리베이터 문을 부수고 진입해야죠.”

“경비원들에게 들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지 않게 기도해주세요.”

이번엔 미소와 함께 키득거리는 소리도 붙였다. 형태 없는 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반중력 장치는 깔끔하게라는 말이 모욕적으로 들릴 정도로 작동했다. 엘리베이터 문을 앞에 두고 둥둥 떠있는 동안 기체 인간들과 진입 타이밍을 쟀다. 앞으로 3초.

2초.

문 반대편 벽에 발을 올려놓았다. 수평으로 서있는 꼴이 웃겼지만, 소리 내어 웃지는 않았다.

1초.

준비 완료 무전이 들린 순간.

제로.

그대로 벽에서 발을 박차고 문을 부셨다. 약 10m 앞 쪽에 경비원이 보였다. 미끄러지면서 진입한 다음에 한 경비원의 다리에 소총을 쏘고 개머리판을 휘둘러 얼굴을 쳤다. 다른 한 명이 반응하기도 전에 달려들어 총으로 목을 짓눌렀다. 남은 건 시간이 해결해준다.

축 늘어지는 순간에 방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다른 층에 소식이 닿아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빨리 다음 층으로 가야했다. 어차피 이 경비원 둘만 신경 쓰면 됐다.

제빠르게 엘리베이터 통로로 뛰어내렸다. 공중에서 중력이 느껴지는 순간, 인공 중력에 맞닥뜨리지 않도록 바로 벽을 차고 엘리베이터 문을 박살냈다.

생각보다 빨리 미끄러져서 소총은 진입하면서 던져서 제압하고 다른 한 놈은 권총으로 처리했다.

기체 인간이 기다리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미 엘리베이터 통로에 몸을 던져버렸다. 이어폰에서 툴툴거리는 소리와 함께 결이 다른 바람이 손을 스쳐 지나갔다. 중력이 다시 느껴지기까지 시간은 약간 걸렸지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벽을 차고 엘리베이터를 박살냈다.

이번엔 가속도가 꽤나 빨리 붙어서 날아간 엘리베이터 문짝만으로도 제압이 가능했다. 시시하다고 생각한 순간 머리를 향해 날아온 총알을 피했다.

이 층에 있는 사람은 두 명이었다. 연인인가? 생각할 틈도 없이 다른 총알을 본능으로 피해버렸다.

치열한 총격전이었다. 사람 두 명을 모시려면 실력이 상당히 좋아야 했나 보다. 그런 두 명이 판때기에 깔려 운명한 건 안타까운 일이다만.

재장전 하려는 순간, 눈앞에 총알이 보였다. 못 피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총알이 보인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았다. 결이 다른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순간 두 녀석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좀 오래 걸리길래 걱정돼서 나왔습니다.” 기체 인간이 말했다.

“좋은 매너네요.”


대충 재밌는 건 여기까지. 나머지는 똑같은 짓이었다. 벽을 박차고, 문을 부수고, 탕탕탕. 그래도 재단에 근무하면서 이렇게나 재밌는 일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작전을 끝내고, 출발했던 장소로 돌아오니, 작전을 정리하는 사람들 틈새로 벽에 기대어 선 선배가 보였다. 조심스레 다가갔지만 선배는 무심한 얼굴에 팔짱을 낀 채 가만히 나를 노려봤다.

“뺨이라도 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너 때문에 골치가 아파서 칠 기력도 없다.”

“보고했어요?”

“했지. 저 사람들이 무전기 찾아줬거든”

“저희 잡힌 것도요?”

“그건 쪽팔려서 말 안했어.”

“저, 징계받을까요?”

괜히 시무룩해져 선배 옆에서 벽에 기대었다. 하지만 선배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모르겠다. 윗사람 생각을 어찌 알겠냐.”

“웬일이에요? 그렇게 까칠하던 사람이.”

“그렇게 놀란 눈으로 보지 마. 작전 하나는 기똥차게 성공했으니까 이런 말 하는 거야. 이렇게까지 잘 날뛰던 놈이 왜 지금까진 투정이나 부리고 있었어?”

“아, 저 그게”

“뭐 재미가 없었겠지. 인정해. 다들 처음 들어왔을 땐 뭔 중2병에 빠져서 열정적으로 일하지만 생각하고 180도 다른 일에 기계적으로만 일하는 얘들이 대부분이야. 지금의 전설적인 인물들은 그런 망할 상황을 뛰어넘은 사람들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임무를 끝마친 이후로 선배가 하는 말이 모두 뜻밖이었다. 다음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넌 아직 도망칠 수 있으니 도망쳐 봐. 미리 말해놨어.”

“네?”

벽 옆에 뚫린 통로에서 아까 지휘하던 여자가 나왔다. 그러고 보니 아까 다들 정리하는 분위기에서 여자만 보이지 않았다.

“반가워요. 아까 싸우시는 거 잘 봤어요. 생각보다 잘하시던데요?”

“감… 감사합니다.”

“보는 내낸 탄성만 지르고 있었더니, 당신 선배가 보고 데려가보시는 게 어떻겠냐고 묻더라고요.”

나는 선배를 쳐다봤다. 선배는 뭐 어떻냐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했다.

“그래도 되냐고 하니까, 어차피 여기 일에 적응도 못했고, 지금이 더 잘하고 있는 거 같으니까 데려가도 손해는 아니라고 했거든요. 이제 당신만 오케이 해주면 되요.”

주변에 있는 존재들이 섬광과 함께 점점 줄어갔다. 이젠 아까 봤던 남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갈 시간이 거의 다 되었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과 뒤로 돌아가는 것, 그 둘 사이에 내가 있었다. 어느 쪽이든 내 앞날은 알 수 없었다.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고, 내일 일에 흥미를 잃을 수도 있었다. 평소라면 3일 밤낮을 고민했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이 문제의 가장 큰 난점은 시간도 얼마 없다는 거였다. 결국 평소에 하던 대로 한다면, 직감에 맡긴다면.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당장은 좀 힘들 듯 하네요.”

여자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는 그저 무표정이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와서 이제 갈 시간이 되었다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아쉽게 됐네요. 그럼 다음에 보도록 해요. 저희 플러그소프트 게임도 많이 이용해주고.”

“안녕히 가세요.”

작별인사와 함께 섬광이 일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다시 선배를 봤지만 선배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저희는 어떻게 복귀해요?”

“구조 팀이 지금 1층에 들어왔데. 엘리베이터도 이제 복구됐으니까 곧 올라올 거야.”

아쉽다는 느낌은 여전히, 그리고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도 느꼈다. 내 직감에 따르면 이건…

섬광.

“아, 죄송한데, 다른 서버에서 같은 상황이 생겼다고 해서요. 지금 지원 요청이 왔는데 같이 가서 도와주실 수 있나요?”

직감에 따르면…

“그럼 거기까지만!”

입이 먼저 움직인 말을 내뱉으며 나는 여자 앞에 섰다.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순간,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의 입꼬리는 아주 조금 올라가있었다. 웃는다기 보단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렴 어때, 임무 중 처음으로 웃어주는데.

섬광이 일자. 선배는 없었다. 새로운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