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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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벌어졌을 때 국가들은 서로를 적과 아군으로 나누어 싸우지만, 어쩌면 의미 없는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구분이 의미 있어지는 순간은 전쟁이 끝났을 때 뿐. 그마저도 국가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군인들에게 남는 것은 트라우마 밖에 없을 것이다. 이긴 곳이든, 진 곳이든.

내가 바라던 전쟁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내가 바라던 군인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내가 바라던 전우의 모습도, 내가 바라던 일본의 모습도 이게 아니었다.

그날의 광기 속에서 서있던 나는 미친놈 소굴에는 정상인이 미친놈이라는 간단한 논리를 증명당하고 있었다.

그 날, 아수라 속에서 머리 위로 날아가는 포탄 소리와 폭발음이 꿈 언저리에서 들릴 때 잠에서 깨어난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지팡이를 겨우 잡는다. 전쟁이 끝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멋모르고 전쟁에 뛰어든 소년이 이제는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든 몸이 되었다. 하지만 눈은 전우의 시체를 보던 그때처럼 깊은 곳에서 뒤틀린 구멍의 모습이다.

고개를 들자 아내의 사진이 보인다. 행복했던 결혼 생활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아내는 불행했을 것이다. 밤마다 악몽에서 깨어나고 낮에도 악몽 속에 잠겨있는 남편을 봐야 했을 테니 말이다.

조용히 옷을 갈아입는다. 아니, 솔직히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가지고 ‘조용히’라는 말은 조금 무리다. 손자가 방에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일로 부를 순 없다. 겨우 늙은이의 밤산책일 뿐이니까.

옷을 다 갈아입고 중절모 하나 쓴 채 거리로 나선다. 악몽으로 일어날 때마다 어디로 떠나고 싶어졌다. 도쿄역 근처에 사는 이유가 이것이다. 어디로든 가고 싶을 때, 플랫폼에 앉아있으면 안정이 되었다.

현란한 밤거리를 걷는다. 이 강한 네온사인만 보면 우리는 혼란의 시기를 잘 넘긴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난 여전히 고통 받고 있고, 이 나라는 고통에서 해방되는 데 쉬운 길 보단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하고 있다.

여러모로 마음이 편치 않다.


플랫폼은 한산하다. 냉기가 조용히 뼈 속을 쑤시며 지나간다. 왼쪽과 오른쪽에 뚫린 구멍을 보면 플랫폼 자체가 어디로 흘러갈 거 같다. 조용할 때마다 멀리서 들려오던 폭격의 소리도 여기선 바람소리에 묻혀 흘러가 버린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가끔씩 인기척이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슬슬 막차 시간대가 다가오나 보다.

그러다 갑자기 모든 게 팟하고 사라진다.

눈을 떠보면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구석진 자리까지 역무원은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가끔씩은 이런 고독이 싫으면서도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 듯한 이런 시간이 좋다.

그렇게 약간의 불이 켜진 플랫폼에서 고독과 고통을 씹으며 조용히 내 마음을 찢어발긴다.


덜컹덜컹

갑작스레 정적을 깨는 소리에 눈을 뜬다. 아직도 다니는 기차가 있는 건가? 그러기엔 안내 방송 하나 없었다. 그냥 잘못 들었나 하는 순간 저 멀리서 불빛이 플랫폼으로 서서히 들어온다. 그리고 뭔가를 자각하기도 전에 눈 앞에 열린 문이 들어온다.

문 앞에서 쏟아지는 불빛 앞에서 잠시 머뭇거린다. 어떻게 일어나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 잠시 허리에서 통징이 느껴진다. 계단을 올라가면 더 아플 것이다. 하지만 왠지 기차가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나도 모르게 내가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던 걸지도.

뒤를 돌아본다. 뒤는 여전히 똑같다. 어둡고 뒤틀리고, 고통만을 주었던 세상이다. 다시 열린 기차 문을 바라본다. 조명이 유난히 밝게 느껴진다.

마치 운명과도 같다. 나에게 앞으로의 운명이 있다면, 그것은 앞으로의 삶의 희망을 주는 운명이라 믿어왔었다.

그럼 나에게 희망이 있는가? 너무 바보같은 물음인건가?

조명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출발 시간이 한참 지났을 텐데도 기차는 출발하지 않는다. 이젠 어쩔 수 없다.

기차에 올라탄다.


덜컹덜컹

표도 없어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도 몰라 그냥 가까이에 있던 방에 들어갔다. 다행이 사람이 있던 흔적이 없었다. 침대에 앉아 시린 관절들을 어루만진다. 조용히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기차가 움직이는 느낌이 난다.

덜컹거리는 소리 속에 시간이 지나갔다.

자리에 앉아 잠시 꾸벅거리지만 기차의 진동에 완전한 잠에 들지 못하고 있다. 평소에도 깊은 잠은 꿈도 못 꿨기에 이런 상황은 더욱 고역이다. 좀 더 편하게 침대에 몸을 뉘일까 생각을 했지만, 표도 없이 올라탔기에 그럴 엄두를 낼 수가 없다.

똑똑똑

덜컹거리는 음 사이로 자그마한 노크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대답할 기력도, 생각도 들지 않는다. 역무원이라고 해도 기진맥진한 상태의 노인을 보고 뭐라 야단치지는 못하리라.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역무원이 아니었다.

백인에, 둥그런 머리, 코와 턱에 자란 덥수룩한 하얀 수염은 구레나룻과 이어져 낡은 낚시 모자로 씌워진 머리로 사라졌다. 평범한 티셔츠에 정장 바지, 낚시 여행을 가는 듯한 노인의 한 손에는 낡은 트렁크가 있다. 이상적일 정도로 자애로운 노인의 모습. 책 표지에서 많이 본 훌륭한 노인의 얼굴.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분명 얼굴은 그와 똑같았지만 동시에 어딘가 이질적인 모습도 보인다. 애초에 저 인간이 진짜 헤밍웨이일 리가 없어서 그런가 싶다.

그러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리자 헤밍웨이는 사라지고 없다. 역시 헛것을 봤다고 생각한 순간, 들어올 때 그가 들고 있었던 붉은 표지의 책이 간이탁상 위에 놓여있는 게 보인다. 표지를 짚고 쓸어보니, 예전에 썼던 낡은 공책처럼 꺼슬꺼슬하다.

몇 번째 공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헤밍웨이를 접했을 때가 이런 공책을 썼을 때였다. 역사의 톱니바퀴에 짓이겨진 인간이 다시 흘러가는 톱니바퀴에 쉽게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늘 대학 도서관에 틀어박혀 낡아빠진 공책에다가 전쟁과 관련된 모든 작가의 글을 베껴썼다. 적극적이라면 적극적이고, 소극적이라면 소극적인 저항이었다.

이 때 유난히 헤밍웨이의 글을 많이 베꼈다. ‘무기여 잘 있거라’를 쓴 공책만 해도 5권 가까이 됐다. 아직도 남아있는 공책이 손자의 책장이 꽂혀있는걸 기억한다.

그렇기에 이 감촉과 방금의 만남이 나에게 뭔가 희망을 주려고 하고 있단 생각이 든다. 어처구니가 없이 지은 실날같은 미소와 동시에 역시 조금씩 뛰는 두근거림을 안고 책의 아무 곳을 집어 펼친다.


1945년 5월 1일
오늘 낮에 울렸던 어느 쪽의 목소리일지도 모르는 고함소리가 여전히 귀에 맴돌았다.

바로 책장을 덮는다. 방금 전 기차에 올라탔을 때보다 심장이 더 빠르게 뛴다. 이 내용과 이 글씨체를 알고 있었다. 전세가 잠시 소강상태일 때 녀석이 끼적이던 걸 잠시 훔쳐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게 녀석이 나에게 남긴 유산이었다.

녀석의 글을 쓰던 손은 항상 떨고 있었다. 어쩌다 한 번 쯤은 이 일기를 쓰다가 글 쓰는 걸 멈추고 취침시간까지 합장하고 앉아있는 걸 보았다. 후에 녀석의 일기를 읽어볼 때, 멈춘 부분은 항상 부모님 아니면 전우의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녀석은 언제나 전쟁이 지겹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전쟁이 있을 때마다 녀석의 옆에 서면 가끔씩은 한숨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들리지 않곤 했다. 그 때 녀석의 얼굴을 보니, 얼굴의 때가 짠맛이 나는 물에 닦이는 게 보였다.

이 일기장 이 날짜의 다음 구절을 기억한다.

앞으로 얼마나 살아갈 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어쩌면 내일 내 머리 절반이 날아가 작별도 못하고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

조용히 페이지를 펴고 읽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뇌수를 파고 지나갔던 비릿한 화약 냄새가 스친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전쟁에 미쳐버렸는지 모르겠다. 형도 피로에 미쳐버렸다. 나만이 정상인건가? 나만이 눈앞에 죽는 사람을 보고 아직도 벌벌 떠는 걸까?

녀석은 몸 중앙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었다. 조용히 상태를 확인하는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소용없는 짓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어떻게든 지혈을 하려고 군복을 찢으려 할 때였다. 군복의 죽 찢기는 소리와 함께 팔에 무언가 건드리는 느낌이 났다. 녀석이 품 안에서 작은 공책을 꺼내 건넸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공책을 쥐자 녀석의 팔은 힘없이 떨어졌고, 눈은 허공을 향해 풀렸다. 조심스레 눈을 가리자 눈꺼풀도 팔처럼 툭하니 떨어졌다.

옆에서 뛰고 있는 다른 병사들이 보였다. 일어서서 녀석의 시체를 뒤돌아보며 머뭇거리다가 결국에는 뛰고 말았다.

이젠 어떤 것도 상관없다. 그저 죽더라도 여기 있는 형의 앞에서 죽고 싶다.

일기장의 마지막 구절. 난 그날 동생의 시체를 뒤로 하고 뛰었다.


책에는 동생이 쓴 일기의 전문은 아니었다. 주로 동생이 나와 있었던 일을 적은 게 대부분이었다. 처음 펼친 그 부분도 마지막의 그 문장 때문에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주변 풍경은 도쿄와 이질적이다. 하긴 침대차이니 원래 멀리까지 가는 차일 것이다.

차가 역으로 들어온다. 일정에도 없는 막차였으니 아마도 여기 역의 첫차일 거란 예상이 든다. 그 생각대로 플랫폼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플랫폼에 천장도 없는 작은 간이역이 이 열차의 종착역이었다.

마치 증기가 빠지는 거 같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나온다. 책은 안에 그냥 두기로 했다. 어차피 잊지 않으려 아직도 집에 두고 있으니 굳이 또 가질 필요는 없다.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오면서 기차의 올라탈 때를 생각해본다. 그 땐 운명인 줄 알았고, 이 악몽에서 벗어나게 해 줄 유일한 희망일 줄 알았다. 그리고 지금, 악몽에서 저지른 죄는 희망이 비추기엔 너무나도 지독한 죄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곱씹어본다.

오늘도 형이랑 싸웠다. 결국 형도 지친 모양이다. 옆에서 총소리가 더 자주 들렸다. 옆에서 보면 형이 그러면서 웃고 있는 환상도 가끔씩 보인다. 하지만 내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형의 얼굴은 이미 정신을 놓은 모습이다.

내용을 잊으려 하면 할수록 가슴 속에서 더 강하게 살아난다. 동생은 이 나라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그런 걸 구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품고 동생처럼 강인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하지만 괜히 없는 희망을 잡으려 한 걸 보면 영원히 닿을 수 없으려나 보다.

대합실로 가는 입구 앞에서 다시 열차를 향해 돌아본다. 처음에 올라탈 때처럼 아직도 희망이 있는지 속으로 묻는다.

열차는 대답으로 문을 닫고 출발했다가 이내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