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식의 종말
평가: 0+x

재단에는 많은 종말 시나리오가 있죠. 이 중에 어떤 게 가장 빨리 올 것 같나요?

100명의 사람에게 물으면 100개의 답이 올만한 질문이죠. 조금 더 높으신 계급 분에게 물으면 더더욱 다채로운 대답이 돌아올 테고요1.

하지만 대부분은 몰랐습니다. 재단이 만든 대부분의 종말 시나리오들은 철저한 방어를 전제하에 만들어졌고. 따라서 대부분의 종말 시나리오가 실제로 당도할 확률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가장 처음으로 온 저희의 종말의 규모는 생각보다 너무나도 거대했습니다.

영원한 일식. SCP-172-KO의 증식을 막아내지 못했을 때, 지구에 태양열이 도달하지 못하는 최악이라 불리던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 어떤 멸망보다 멸망스러운 멸망이 도래했습니다.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습니다. 일식 두 달 전, 재단은 각 개체의 비상 인력만을 배치하고 모든 인력을 SCP-172-KO에 집중했습니다. 일식 한 달 전, 재단은 부서진 가장무도회 시나리오를 발동, 기존에 있던 인원에 추가적으로 모집하여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저희가 세포 분열을 온전히 되돌릴 수 없듯, 무한히 증식하는 녀석들을 온전히 제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의 실종과 지구의 멸망이 다가왔습니다.

벼랑 끝에서도 저희는 연구를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저걸 없앨 때까지의 에너지원을 만들기 위한 연구를 했습니다. 다행이 더 큰일이 나기 전에 비상용으로 쓰일만한 에너지원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거의 괴멸했고, 지금 인구를 거의 유지할 정도의 에너지였지만요.

그리고 저희를 포함한 많은 인원들이 일식을 끝낼 방법을 계속해서 연구했습니다. 웃기게도 그러면서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SCP-████, SCP-███, SCP-███-KO를 포함한 천 몇 개의 SCP가 해명됨으로 분류되었습니다. 연금술이라는 헛된 꿈이 화학을 발전시킨 거랑 비슷한 상황이려나요.

그래서 누군가가 미친 의견을 내도 일단은 실현시켜냈습니다. 시간 여행까지도요. 네, 어떤 분이 저희를 과거로 보내 과거의 인원들이 저걸 걷어내게 도움을 줘보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리고 해냈죠. 생물체가 시간 여행을 하면 급속하게 화석화가 되는 문제점 때문에 결국에는 버렸어야 했지만. 그거 하겠다고 별 지랄을 다했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웃기는 점은, 아예 도움이 안 된 건 또 아니라는 점입니다. 시간 여행을 제안한 그 연구원이 말했습니다. 저희가 가진 이 기술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면, 저 운석을 연구함을 통해 운석이 저장한 에너지원이 어디로 가는 지, 그리고 그 곳을 향해 역으로 이걸 보낼 수 있지 않냐는 말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릴 엿 맥인 사람에게 통쾌한 복수를 해보자는 거였죠.

미친 소리 같나요? 태양이 없어진 시점에선 모두가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생존의 필수품일지도요.

그렇게 이제까지 수백 번은 채취한 그 운석을 다시 채취해서 다시 찬찬히 뜯어봤습니다. 우리 이렇게 엿먹인 비열한 족속들이 누군지 찾아내겠다는 각오로 모두가 눈에 불을 밝혔습니다. 야근은 기본에 오류는 필수 옵션이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복수심의 광기란 그런 거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이 망할 운석이 온 곳을 찾아내었습니다.

보낸 시간은 2███년 ██월 ██일, 저희가 행선지를 찾아낸 지 한 달 후였습니다.

그리고 출발지는 지구였습니다.

네, 지구요. Earth! 우리를 엿먹인 건 미래의 우리였습니다.

이유요?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에너지는 어떻게든 조달을 해냈지만, 인류의 번성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우리에겐 태양 에너지가 무조건 필요했다고요.

“빌어먹을 패러독스!” 여러분이 해줄 말을 우리의 영웅께서 대신 해주셨습니다. 시간 여행을 성공시키고, 복수극의 막을 올린 우리의 천재께서는 이 말을 마치고 연구실을 뛰쳐나갔습니다.

인류의 수뇌부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한 달 뒤에 어떻게 할 것인가.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 우리의 불안정한 삶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 망할 순리에 맞춰서 이전의 영광을 되살릴 첫 걸음을 뗄 것인가.

결정은 다시 우리 영웅의 몫이었습니다.

약속된 한 달이 되기 딱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연구소에서 격리 중이던 SCP-172-KO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연구원이고 요원이고 상관없이 운석을 찾으려고 기지가 뒤집어졌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찾았습니다. 시간 여행 장치에 있었 아니 있었다고 추정이 됐거든요. 장치 옆에는 목을 맨 그 분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시간 여행 장치의 최대 오차는 1주일입니다. 나중에 실험을 해보니 장치가 의도적으로 일주일의 오차를 내도록 설계되었더군요. 여전히 상상을 뛰어넘는 분이었습니다, 그 분은. 시간 여행자, 우주적 복수자인 그 분은 지금 저희에게 세기의 천재, 영웅, 그리고 몇몇 분들에겐 악당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서에는 별 말 없었습니다. 후계자격인 제가 유서를 받았으니, 복사본이라도 여기에 부쳐 보내겠습니다.

Damn us all to hell

아무튼 인류는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이걸로 여러분께 용서를 구합니다. 제 전임자의 뒤를 이어 바빴기에 이제야 용서를 구하는군요.

살날이 머지않았다는 걸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걸 제 유언으로 남깁니다.

과거의 재단 분들에게.
답을 찾아냈습니다. 채점 부탁드립니다.

p.s. 현재 시간 여행 관련 기술은 온전히 에너지를 받아들이는데 쓰이고 있어서 이 편지를 보낼 수가 없군요. 이 점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