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이 샌드박스는 더이상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후속 샌드박스로 이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샌드박스 2호기

샌드박스 3호기

새로운 샌드박스에 초안 페이지를 생성한 뒤, 이 페이지의 설정 → 페이지 소스에서 내용을 복사해 옮겨붙이시면 됩니다.
이전에 어려움이 있다면 포럼이나 대화방에서 운영진에게 문의하세요.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때린다. 파란 빛이 방을 비추는 것을 보자니 아무래도 날이 좋지 않은 듯하다. 듣고 있으면 음산하다. 혹은 즐겁다. 마냥 침대에 누워 듣고 있으면 꼭 누군가의 바쁜 노크 소리처럼 들리기 일수다. 마치, 그 시퍼런 철문의 타음처럼. 옛날이 떠오르기도 한다. 꼭, 예전의 어느 순간처럼 다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안다. 더 이상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다. 내가 찾는 이도 없다. 진정으로, 내 자신 말고는.

재단 일선에서 물러난 지 20년 정도 되었나, 아마 그 즈음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내가 물러났을 때 주변인들이 하는 말이라곤 대체로, 그동안 재단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었다느니, 감사하다느니 따위의 것들이었다.

개소리였다.

결국 내 종착역이 이곳임을 생각해보면 진실로 말에 실체란 없는 것이었다. 완전히 모든 권력을 내려놓기까지 참 길고도 더러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 정보국이 뭐라고 했더라?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퇴장? 정말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정보국, 더럽고 개같은 황색 언론 새끼들. 그 할 일 없는 새끼들이 내 자그마한 문제를 걸고 넘어진 뒤로 되는 게 없었다. 적어도 윤리위 그 좆같은 놈들이 내부보안부에 제소만 안했어도… 아니, 적어도 면직만 면했어도… 이런 골방 늙은이는 되는게 아닌데.

이런 병실 한 구석에 처박혀서 꼴에는 원로랍시고, 안부 편지나 툭 던져주는 것도 다 지겹다. 나는 과학자다. 저 현장에서 뛰어다니면서, 아랫것들을 지시하면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되풀이하는 그 일련의 아름다운 과정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나란 말이다.

나였다. 그래, 그게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툭툭 떨어지는 링거액 소리만이 자욱할 뿐이다.

지극한 고독, 이 지극한 외로움.

어제는 간호병동에 처음 들어왔는지 생면부지의 간호사가 링거액을 갈아주었다. 이전에 교육 받을 때도 없었는지 영 처음 보는 얼굴이라, 뻔히 쳐다보자 녀석은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어디 불편하냐고 물었다. 옘병, 공식 행사에는 빠져도 소문은 다 주워듣는다 이거지.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라 궁시렁거리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들리지 않았다. 이젠 귀도 먹는 건가.

몇 년전에 현장에 있었을때는 뭐든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자고 있건 정신이 딴 데 팔려 있건 간에 내 눈과 귀는 항상 도처에 있었고 나는 그저 내 차례일때나 잘 신경만 쓰면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항상 힘이 있었다. 어떤 것이던 숨통을 쥘 수 있을 정도로.

예레미야 51:40, 내가 그들을 끌어내려서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

정확히 52년 동안, 150102마리의 실험쥐와, 11503마리의 토끼와, 29101마리의 개, 2671명의 사람, 452개의 변칙 존재가 내 손 안에서 죽었다. 내가 그랬다고, 윤리위원회가 그랬다고, 정보기록과의 문서가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 하긴 어제 먹은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파란 옷을 입은 여자가 늘 그랬듯 식사를 챙겨 온다. 그 옆을 또 다른 파란 옷의 여자가 뒤따르고 있다. 녀석은 나를 짐작할 수 없는 눈빛으로 치어다보고 있다.

식사를 확인한다. 프렌치 토스트에 우유. 늘 먹던 거다.

식사를 가져온 여자는 재빨리 나가고, 쳐다본 여자가 방을 정돈하기 시작한다. 녀석의 얼굴엔 왜인지 모를 당혹감과 흥분이 담겨 있다.

— 뭘 그리 좋아해? 노친네 방 정리하면서.

녀석은 내가 말한 것 자체에 놀랐는지, 부리나케 몸을 돌려 나를 본다.

— 네? 아… 방 주인이 바뀐 줄은 몰랐어서요. 전에 계시던 남자 분은 되게 좀, 뭐랄까 무서워서…

— …언제 있었는데?

— 한달 전 즈음인가… 그렇게 돼요.

녀석은 이내 제 할일을 다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난 이곳에서 십년째 지내고 있다.


누군가가 여기서 지냈단 말인가. 그것도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산책 따위의 것들은 가능하니 그 새에 들어왔을 수도 있는 일이다. 불현듯이 핏줄 속에서 더운 피가 꿈틀하니 움직인다. 옛적 일들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누군가가…나를…노린다면.

나를 노리는 일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는 내가 여기 감금되어있는 상황만 미루어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전 감독관이자, 차기 O5가 될 수 있었을 나를 노리는 세력이 당연히 있지 않을까. 당연히… 나를 가두어 둔 세력이 그럴 것이다. 그 세력 — 멀쩡하디 멀쩡한 나를 십년이나 이곳에서 썩혀 이젠 죽을 날만을 바라보게 만든 이들이. 그리고 이젠 나를 죽이려고 사람까지 보내려고 한다. 맞서야만 한다.

여자는 아침에 또 나타났다. 이곳에 거처하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녀석과 대화하고 싶었다. 녀석이 방을 정리하러 가까이 올 때가 기회다.

— 이봐, 저번에 말한 그 놈 어떻게 생겼어?

정적.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 어떻게 생겼냐니까!

또 정적. 나는 녀석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본다. 미동도 없는 입술에 당혹스러움만 가득한 눈동자. 녀석은… 모르고 있다.

— 누구요?

나는 전에 없던 비참한 한 줄기 희망에 걸어보기로 한다.

— 그 왜, 여기 있었다는 놈. 네가 그랬잖아!

녀석은 얼굴을 찡그린다.

— 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이 녀석이 맞는데.


혹시 그놈들이 기억 소거를 한 건 아닐까. 내게 정보가 이미 새어나갔다는 걸 알고…

그럴만한 가능성은 충분했다.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이 진행되는 지도 잘 알았다. 내가 즐겨 썼으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일은 즐거웠다.

나는 딱히 외부 일이 아니더라도 소거제는 잘 썼다. 이를테면… 뭇 SCP가 탈주를 일으켰을때, 그게 어떤 이의 실책으로 일어난 일인지 아는 놈들에게나, 실험 결과가 엄청난 손실을 초래했을 때, 그걸 주도 한 이가 누구인지를 아는 놈들에게, 또 기지에 너무 큰 사고가 났을 때 사고를 일으킨 물건을 반입하도록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놈들에게. 그런 경우에 소거제는 쓰였다.

상부에서는 필경 내게 정보가 유출된 것이 끔찍한 실수라고 판단한 게 틀림없었다. 청부업자의 정보는 영영 알 수 없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밖으로 나간다.


이 샌드박스는 더이상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후속 샌드박스로 이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샌드박스 2호기

샌드박스 3호기

새로운 샌드박스에 초안 페이지를 생성한 뒤, 이 페이지의 설정 → 페이지 소스에서 내용을 복사해 옮겨붙이시면 됩니다.
이전에 어려움이 있다면 포럼이나 대화방에서 운영진에게 문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