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

바람이 불어와 창문을 때린다. 파란 빛이 방을 비추는 것을 보자니 아무래도 날이 좋지 않은 듯하다. 듣고 있으면 음산하다. 혹은 즐겁다. 마냥 침대에 누워 듣고 있으면 꼭 누군가의 바쁜 노크 소리처럼 들리기 일수다. 마치, 그 시퍼런 철문의 타음처럼. 옛날이 떠오르기도 한다. 꼭, 예전의 어느 순간처럼 다시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안다. 더 이상 나를 찾아올 사람은 없다. 내가 찾는 이도 없다. 진정으로, 내 자신 말고는.

재단 일선에서 물러난 지 20년 정도 되었나, 아마 그 즈음 되었을 것이다. 마침내 내가 물러났을 때 주변인들이 하는 말이라곤 대체로, 그동안 재단을 위해 많은 일을 해주었다느니, 감사하다느니 따위의 것들이었다.

개소리였다.

결국 내 종착역이 이곳임을 생각해보면 진실로 말에 실체란 없는 것이었다. 완전히 모든 권력을 내려놓기까지 참 길고도 더러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 정보국이 뭐라고 했더라? 가장 위대한 과학자의 퇴장? 정말 나도 그런 줄 알았지.

정보국, 더럽고 개같은 황색 언론 새끼들. 그 할 일 없는 새끼들이 내 자그마한 문제를 걸고 넘어진 뒤로 되는 게 없었다. 적어도 윤리위 그 좆같은 놈들이 내부보안부에 제소만 안했어도… 아니, 적어도 면직만 면했어도… 이런 골방 늙은이는 되는게 아닌데.

이런 병실 한 구석에 처박혀서 꼴에는 원로랍시고, 안부 편지나 툭 던져주는 것도 다 지겹다. 나는 과학자다. 저 현장에서 뛰어다니면서, 아랫것들을 지시하면서 내가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되풀이하는 그 일련의 아름다운 과정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나란 말이다.

나였다. 그래, 그게 나였다. 그러나 지금은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고 툭툭 떨어지는 링거액 소리만이 자욱할 뿐이다.

지극한 고독, 이 지극한 외로움.

어제는 간호병동에 처음 들어왔는지 생면부지의 간호사가 링거액을 갈아주었다. 이전에 교육 받을 때도 없었는지 영 처음 보는 얼굴이라, 뻔히 쳐다보자 녀석은 나를 불쌍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어디 불편하냐고 물었다. 옘병, 공식 행사에는 빠져도 소문은 다 주워듣는다 이거지.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라 궁시렁거리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들리지 않았다. 이젠 귀도 먹는 건가.

몇 년전에 현장에 있었을때는 뭐든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자고 있건 정신이 딴 데 팔려 있건 간에 내 눈과 귀는 항상 도처에 있었고 나는 그저 내 차례일때나 잘 신경만 쓰면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항상 힘이 있었다. 어떤 것이던 숨통을 쥘 수 있을 정도로.

예레미야 51:40, 내가 그들을 끌어내려서 어린 양과 숫양과 숫염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게 하리라

정확히 52년 동안, 150102마리의 실험쥐와, 11503마리의 토끼와, 29101마리의 개, 2671명의 사람, 452개의 변칙 존재가 내 손 안에서 죽었다. 내가 그랬다고, 윤리위원회가 그랬다고, 정보기록과의 문서가 보여주고 있었다. 정말 그랬을까? 하긴 어제 먹은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

파란 옷을 입은 여자가 늘 그랬듯 식사를 챙겨 온다. 그 옆을 또 다른 파란 옷의 여자가 뒤따르고 있다. 녀석은 나를 짐작할 수 없는 눈빛으로 치어다보고 있다.

식사를 확인한다. 프렌치 토스트에 우유. 늘 먹던 거다.

식사를 가져온 여자는 재빨리 나가고, 쳐다본 여자가 방을 정돈하기 시작한다. 녀석의 얼굴엔 왜인지 모를 당혹감과 흥분이 담겨 있다.

— 뭘 그리 좋아해? 노친네 방 정리하면서.

녀석은 내가 말한 것 자체에 놀랐는지, 부리나케 몸을 돌려 나를 본다.

— 네? 아… 방 주인이 바뀐 줄은 몰랐어서요. 전에 계시던 남자 분은 되게 좀, 뭐랄까 무서워서…

— …언제 있었는데?

— 한달 전 즈음인가… 그렇게 돼요.

녀석은 이내 제 할일을 다 하고는 밖으로 나간다.
난 이곳에서 십년째 지내고 있다.


누군가가 여기서 지냈단 말인가. 그것도 내가 있는 이 공간에서… 산책 따위의 것들은 가능하니 그 새에 들어왔을 수도 있는 일이다. 불현듯이 핏줄 속에서 더운 피가 꿈틀하니 움직인다. 옛적 일들이 떠오르는 까닭이다. 누군가가…나를…노린다면.

나를 노리는 일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는 내가 여기 감금되어있는 상황만 미루어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전 감독관이자, 차기 O5가 될 수 있었을 나를 노리는 세력이 당연히 있지 않을까. 당연히… 나를 가두어 둔 세력이 그럴 것이다. 그 세력 — 멀쩡하디 멀쩡한 나를 십년이나 이곳에서 썩혀 이젠 죽을 날만을 바라보게 만든 이들이. 그리고 이젠 나를 죽이려고 사람까지 보내려고 한다. 맞서야만 한다.

여자는 아침에 또 나타났다. 이곳에 거처하는 시간 동안 처음으로 녀석과 대화하고 싶었다. 녀석이 방을 정리하러 가까이 올 때가 기회다.

— 이봐, 저번에 말한 그 놈 어떻게 생겼어?

정적. 녀석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 어떻게 생겼냐니까!

또 정적. 나는 녀석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본다. 미동도 없는 입술에 당혹스러움만 가득한 눈동자. 녀석은… 모르고 있다.

— 누구요?

나는 전에 없던 비참한 한 줄기 희망에 걸어보기로 한다.

— 그 왜, 여기 있었다는 놈. 네가 그랬잖아!

녀석은 얼굴을 찡그린다.

— 저는 그런 말 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다. 이 녀석이 맞는데.


혹시 그놈들이 기억 소거를 한 건 아닐까. 내게 정보가 이미 새어나갔다는 걸 알고…

그럴만한 가능성은 충분했다. 어떤 방식으로 그 일이 진행되는 지도 잘 알았다. 내가 즐겨 썼으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 일은 즐거웠다.

나는 딱히 외부 일이 아니더라도 소거제는 잘 썼다. 이를테면… 뭇 SCP가 탈주를 일으켰을때, 그게 어떤 이의 실책으로 일어난 일인지 아는 놈들에게나, 실험 결과가 엄청난 손실을 초래했을 때, 그걸 주도 한 이가 누구인지를 아는 놈들에게, 또 기지에 너무 큰 사고가 났을 때 사고를 일으킨 물건을 반입하도록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놈들에게. 그런 경우에 소거제는 쓰였다.

상부에서는 필경 내게 정보가 유출된 것이 끔찍한 실수라고 판단한 게 틀림없었다. 청부업자의 정보는 영영 알 수 없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 밖으로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