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별들의 노래

이야기 정리: 주인공(나)는 음악가를 꿈꾸는 백수, 돈이 떨어질 때마다 무진에 있는 친척 집에 가서 돈을 꾼다. 찾아올 때마다 해변에 들려서 노래하는 불가사리들(SCP로 쓸 예정)을 본다. 처음 봤을 때는 이상하게 여겼지만 아름다운 노래에, 아님 무진의 꿈같은 분위기에 홀렸는지 지금은 그냥 그려려니 하고 있다.

친척은 이제 돈 못준다고 하고 할 일도 없는 주인공은 무진에 며칠 더 머물다 가기로 한다. 불가사리들은 꿈에 대한 다섯스런 노래를 부른다. 주인공은 해변에 누워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면서 눈을 감는다. 꿈에 대한 꿈을 꾼다. 무진은 꿈이고 불가사리들도 꿈이다. 그들은 추락한 별, 그리고 꿈. 더이상 빛나지 않지만 언제나 차가운 바닷속에서 꿈을 꾸며 노래를 한다.

주인공은 눈을 뜬다. 꿈을 이룰 순 없지만 꿈을 꿀 순 있다. 바닷속으로 걸어들어가 불가사리로 산산조각난다.

상위 문서: mujin-yarn
태그: 이야기 ko 무진 다섯째

수정할 점들:

  1. 너무 긴 문장들이 많으니 짧게 다듬자
  2. 각 장들마다 노래를 하나씩 넣어두자 (참조)
  3. 좀 더 다섯째주의스런 내용을 넣자
  4. 기회가 된다면 무진 태마를 만들어보자

버스문이 열리자마자, 나는 도망치듯이 차에서 내렸다. 공기는 차고 습했다. 아주 희미하게 바다냄새도 났다. 버스기사의 분노섞인 함성이 들리자, 내리기 전에 돈을 내지 않은 것을 기억하고 재빨리 주머니에서 교통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갖다 댔다. ‘삑’ 하고 듣기 나쁜 전자음이 울린 후, 버스기사는 툴툴거리며 문을 닫았다. 버스는 나머지 승객들을 태우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다음 정거장을 향해 매연을 뿜으며 달려갔다. 지독한 매연냄새가 사라지자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느낀 것과 별 다를 게 없었지만, 기분은 조금 달랐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택시를 탈 걸 그랬다, 라고 후회를 해도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하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갈 만큼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못했다. 30분 거리를 2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한 게 문제지. 아직 날씨가 제법 쌀쌀한데도 등에서 땀이 난다. 수십 번은 찾아왔으니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이 놈의 마을은 어떻게 된 것인지 올때마다 새로운 기분이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기분이다. 그냥 두터운 안개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아무튼 무사히 도착했으니 빨리 볼일이나 끝내고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그곳에 한 번 들렸다가 가기로 했다. 바닷가. 올때마다 내가 꼭 들르는 곳이다.

바닷가는 내가 도착한 곳 바로 앞에 있다.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날씨는 추웠지만, 바람은 불지 않아 바다는 잔잔했다. 천천히 밀려오는 파도가 해변에 부딪혀 하얀 거품으로 산산조각이 난다. 정류장에서는 희미했던 비릿한 바다 냄새가 이젠 확실하게 느껴진다. 계속 바다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바다 구경을 하러 여기에 온 것은 아니다. 바다 말고, 다른 것을 보기 위해 왔다. 불가사리. 나는 불가사리를 보기 위해 바닷가에 왔다. 몇 년 전, 이곳만의 특별한 불가사리를 알게 된 이후로 매년, 어쩔 때는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올 때마다 이곳 해변에 들른다. 불가사리를 보기 위해서. 그리고 노래를 듣기 위해서.

 (대충 불가사리 다섯째 노래 흥얼흥얼)

그래, 이곳의 불가사리는 노래를 한다. 가끔은 재즈를, 가끔은 블루스를, 아주 가끔은 록을 부른다. 한 번은 힙합을 부른 적도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극피동물들의 합창에 상당히 놀랐지만 이 축축하고 부드러운 안개 속에서는, 모든 게 꿈같아서, 아름다운 동화책 속 이야기같아서, 그냥 즐기기로 했다. 어쨌든 참 듣기 좋았다. 불가사리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막 영감이 샘솟을 때가 있어 나도 노래를 만들고는 한다. 사람들 반응은 영 별로였지만, 나는 마음에 들었다.

노래는 끝났지만, 가만히 서서 조금만 더 여운을 즐긴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음악의 메아리처럼 귓속에서 울린다. 한참을 더 서있다가 여기까지 온 진짜 목적이 떠올라 발걸음을 옮겼다. 막 노래를 듣고 난 뒤라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다. 왠지 오늘따라 일이 술술 풀릴것만 같은 기분이다.


*****


오늘따라 되는 일이 없다. 2시간도 넘게 길을 헤맸을 때부터 알아챘어야 했다. 아니, 버스기사한테 욕이나 퍼먹었을 때부터. ‘더는 안 된다.’ 왜? ‘돈 떨어질 때마다 찾아와서 받아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더 이상은 안 돼.’ 그럼 대체 어쩌라는 건가? ‘넌 아직 튼튼하잖니. 어디 아픈데도 없고. 머리도… 그리 나쁜 편은 아니고 말이야. 아직 늦지 않았으니까 괜찮은 일자리라도 좀 찾아보렴.’ 이미 그러고 있다. 이미 그러고 있다고. 아직 튼튼하고, 건강하고, 머리도 좋은 편이니 꿈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친척 집에서 나와 거리로 갔다. 한참을 떠들었더니 배가 고파졌다. 어디 괜찮은 식당이라고 가볼까 했다가 그냥 편의점에 가서 샌드위치랑 캔 커피로 점심을 때웠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갈까? 원래는 친척 집에 들른 후 곧바로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지만, 그 예정은 방금 전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어디 그럴싸한 목적지도 없이 슬슬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빙빙 헤매던 나는 바닷가 옆의 허름한 여관에 방을 잡았다. 바다가 코앞인 장소였지만 전망도 나쁘고 해수욕장하고는 거리도 먼데다가 건물도 낡아서 값은 저렴했다. 지금 예산으로는 이삼일 정도 머물 수 있었다.

거의 하루 종일 돌아다는 데다가 별 성과도 없어 굉장히 피곤해 곧바로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들어 창문을 좀 열려고 했지만 어디가 창틀이 뒤틀렸는지 열리지가 않았다. 끈적끈적한 느낌도 들어서 그냥 창문에서는 손을 떼고 겉옷을 입었다. 바닷가에 가서 잠시 산책이라도 하고 올 생각이었다. 오늘은 하루 종일 걷기만 하는 날이었다.

짭짤하고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니 좁은 방안에 있었을 때보다는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모래밭에 들어가기도 전에 신발 안에 모래가 들어와서 다시 불편해지기는 했지만. 이곳 날씨는 낮에도 그랬듯이 안개가 두텁게 꼈다. 하늘에는 별 한 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터벌터벌 걸어갔다. 시커먼 바닷물이 파도치고 있었고, 바닷가에는 알맹이 없는 조개껍데기와 이름 모를 해초와 불가사리가 널려있었다.

 (대충 불가사리 다섯째 노래 흥얼흥얼)

옷 안으로 모래가 들어가는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바닥에 편히 앉았다. 언제나 듣기 좋았다. 나는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면서 잠시나마 불가사리 합창단에 합류했다. 이것도 경력으로 쳐준다면 좋을 텐데. 뭐, 말해줘 봤자 어차피 아무도 믿지 않을 테니 상관없었다. 좀 더 편하게 바닥에 누웠다. 캄캄한 밤하늘 아래에서 나는 잠시 눈을 붙였다.


*****


꿈을 꾸었다.

꿈속은 안개로 가득한 해변이었다. 뒤에는 낡은 모텔이 있었고 더 뒤에는 도시가 있었다. 하늘은 캄캄했지만 밝은 별들로 가득했다. 수억 광년 너머에서 화려하게 불타고 있는 거대한 가스와 먼지 덩어리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너무나 멀리 있어 노래는 들리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저들과 함께 하늘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나는 여기에 있고 로켓은 없었다.

별들은 아름다웠다. 경이로웠다. 그러나 모든 별이 그러지는 않았다. 안드로메다은하의 이름 모를 붉은 별의 노래는 형편없었다. 가사는 엉망이었고 박자는 난잡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좋게 들어줘도 노래라 말해주기 힘들었다. 그런 별들은 한둘이 아니었다. 비록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저들은 차츰 흐릿해지더니 결국 꺼져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별들은 추락했다. 하나씩, 하나씩, 하늘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한때 저 위에서 밝게 빛나던 거대한 별들이었지만 이젠 더 이상 거대하지도 빛나지도 않았다. 별들은 바다로 떨어졌고 가라앉았다. 저 밑바닥으로, 빛 한 점 들지 않는 바다 속 깊은 곳으로. 그렇게 별들은 불가사리가 되었다.

불가사리는 빛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차가운 소금물속에서는 스스로를 불태울 수 없으니. 그저 비린내를 풍기며 양식장 주인들이나 괴롭히는 것이 불가사리가 할 수 있는 일이었을 터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빛나지도 거대하지도 않았지만 불가사리들은 별이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고 꿈을 꾸었다. 엉망진창인 노래와 이룰 수 없는 꿈이었지만, 부를 수 있고 꿀 수도 있었다. 불가사리들은, 추락한 별들은 합창을 했다. 역시 형편없었지만 이젠 확실하게 들리는 합창을.

 (대충 불가사리 다섯째 노래 흥얼흥얼)

나는 저들과 함께 꿈을 꾸었다.


*****


 추락한 별들의 노래

나는 불가사리들을 따라 바다로 뛰어들었다. 폐속으로 바닷물이 들어왔지만, 음악을 멈출 순 없다. 흐려져가는 의식과 함께 나는 불가사리로 산산조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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