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맥킨의 개인 일지

이하 내용들은 SCP-109-KO를 복용했던 것으로 확인된 무명 소설가 리처드 맥킨의 개인 일지이다. 불필요한 내용들은 모두 삭제되었으며, [데이터 말소]를 포함한 부분은 모두 말소되었다.

19██ 3월 9일

오늘은 출판사에 가서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왔다. 말이 부탁이지 사실 무릎 꿇고 울고불며 빌고 왔다. 거기에선 거의 완성되어 간다고 둘러댔지만, 사실은 아직 한 글자도 못 썼다. 단 한글자도.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 나는 왜 작가가 되려 한거지? 그놈의 어중간한 재능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19██ 3월 11일

오늘은 반드시 다섯 페이지 이상의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었다. 쓰긴 썼다. 전부 버려서 그렀지.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인물, 흥미로운 배경,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을만한 글은 도무지 나올 것 같지가 않다. 백지와 나 둘만 있는 기분이다.

19██년 3월 12일

오늘도 한 글자도 쓰지 못 했다. 쓰레기통을 비워야 할 것 같다.

19██ 3월 14일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말했다. 더 이상 못 기다린다나. 어디서 본 듯한 뻔한 시나리오다. 내 글처럼. 망할 년.

19██ 3월 19일

드디어 구했다.

19██ 3월 20일

이 약, 반신반의 했지만 이젠 확실히 믿을 수 있다. 이건 진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는거지?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난 방금 소설 두편을 완성했다.

19██ 3월 21일

오늘 아침 일어나자마자 워드 프로세서를 키고 작업을 시작했다. 믿기지 않도록 글이 빠르게 써진다. 쓴 글을 몇십번이고 다시 읽어봐도 흠잡을 데가 없다. 하나님 맙소사, 그 약이 더 필요하다. 새벽에 당장 출발해야겠다.

(?)

나는 이야기의 왕자요, 세상에 모든 예술가들이 나를 거쳐가야 한다. 그들의 꿈을 관장하고 들여다 보며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존재가 바로 나이며 [훼손됨] 깊은 어둠에 대항하여 파티를 열고, 대학살극이 [훼손됨] 수도 있겠지. [훼손됨] 비평가들의 친목회. 현실 속 어둠의 교인들. 신성모독적 위례와 피로 맺어진 거래. 어린아이를 희생시키고 비평의 미사를 거행한다. 거리가 시간으로 포장된 거리. 말없는 여자들로 가득 찬 영원히 황혼으로 달려가는 기차. 빛으로 만들어진 머리들. 작고 파란 마분지 조각, 달콤하고 또 새콤하며 차가운 자두. 보름달에 늑대로 변신하는 늑대. 금붕어. 휴일에 족제비를 잡은 노파 둘. 흡혈귀는 춤추지 않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출입 카드를 상속받은 남자. 장미 덤불. 나이팅게일. 까만 고무로 만든 개목걸이. 종이 위에 여자와 사랑에 빠진 여자. 파르테논 신전 위로 지는 해. 상어 이빨 수프. [데이터 말소]. 선더랜드에 사는 늙은 남자가 마침내 우주를 손에 넣고 그걸 먼지 쌓인 찬장에 잼병 안에 넣어둬. 거지 행세를 하는 왕. 멈추지 않[훼손됨] 마법과 연금술의 전통. 파라셀수스와 레이몬드 럴리는 같은 사람이었다. [데이터 말소]. [데이터 말소]. 그녀만의 욕망의 노예. 타락해버린 영혼이여. [훼손됨]

방 안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대한 민원으로 경찰이 리처드 맥킨의 방 안으로 진입하자, 거기서 리처드 맥킨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사인은 뇌진탕이었다. 리처드 맥킨의 방 안은 SCP-109-KO로 인해 계속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빼곡하게 적어놓은 종이들 수백장으로 가득했으며, 리처드 맥킨은 잉크가 모두 동나자, 손가락의 피로 벽에 글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맥킨은 책상 모서리에 머리를 여러 번 내려찍고 사망했으며, 수백장의 종이 중 한장의 내용으로 미루어보아 리처드 맥킨은 머리 속에 아이디어들을 "꺼내야" 한다는 이유로 머리를 내려찍은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맥킨이 SCP-109-KO를 얻은 경로는 불명이다. 현재 조사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