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 세계 해결사 필그림6

제 6화:빙산의 일각으로

"잠깐, 거기까지 해라. 우리의 목적은 그놈을 끝내는게 아니니까."

바로 그때, C.V.의 리더 헤이글​이 필의 머리통을 아작내려는 톰을 막았다. 그리고는 곧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는 의뢰방으로 다시 들어가 대타 필기 의자를 가지고 나왔다.

"이것 이외에도 주인님께서 회수하라는 물건이 있었는데 깜빡했다. 여기서 잠깐 대기해주길 바란다."

잠시 후, 대타 필기 의자를 가지고 나온 헤이글은 이제 철수 하자고 말하고는 부하들과 함께 필의 사무소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톰은 필을 이 자리에서 끝장내고 싶었는지 필을 죽일듯이 노려보다가 헤이글의 부름에 짜증을 부리며 필의 복부에 발차기를 한번 먹여주고는 운 좋은줄 알라고 말하며 필의 사무소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이 나가자 필은 잔기침을 하며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소화 분말 세례를 맞아 쓰러져 있던 헬렌에게 황급히 다가가며 일으켜 세워주며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다행히도 헬렌은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때마침 조수 피오나와 정인하가 도착했다. 두 사람은 도착 하자마자 난장판이 된 사무실을 보며 당황한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예요? 도대체 누가 이런거예요?"

피오나가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걱정스럽게 물어보았다. 필은 이렇게 대답했다.

"미스터 캘빈의 경호원들과 톰의 짓이야. 예기치 못한 습격을 받았지 반격할 겨를도 없더라."

"톰? 포이즌 히드라의 톰 드레드 프레스콧이요? 그자는 필씨와 리처드씨가 같이 감옥에 보내셨잖아요? 아니 도대체 왜 그자까지 이곳에 온거죠?"

"내가 알겠니? 그건 미스터 캘빈이 더 잘 알겠지. 경호원들과 함께 행동하는걸 보니 모종의 이유로 협력하는거 같더라. 내가 목표가 아니라 의뢰 물품과 예전에 훔쳐갔었던 대타필기 의자를 회수하려는게 목표였기 때문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톰에게 그대로 머리가 깨졌을거야. 내 머리를 계란 마냥 으깨고 싶어 하더라고? 여전히 비열한 녀석이야."

톰이 언급되자 깜짝 놀란 인하가 필에게 그자가 어째서 감옥에 나와 이곳에 왔는지 의문을 표했지만 필은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의뢰 물품만해도 그래. 도대체 그걸 왜 가져간걸까? 경매장에서 나왔을때 경매로 가져갔어도 됐을텐데 말이야."

필은 이어서 혼잣말 하듯 중얼거리며 그들이 의뢰 물품을 가져간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때 인하는 무언가 떠오른 듯이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꺼내 필에게 건네 주며 말했다.

"참, 우체통을 보니까 중앙관리 본부에서 편지가 왔어요. 혹시 이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필은 편지를 받자마자 허겁지겁 편지봉투를 손으로 뜯어보았다. 급하게 뜯느랴고 살짝 편지지가 뜯어지긴 했지만 못 읽을 정도는 아니였다. 안에는 간단하게 적힌 편지와 누군가의 프로필이 적힌 서류 한장 같이 동봉 되어 있었다. 필은 그것들을 속독하여 읽어내고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의뢰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아까 헤이글의 개머리판 공격으로 인해 쓰러졌다가 힘겹게 일어서던 조셉을 똑바로 일으켜 세우고는 이글 거리는 눈빛을 내뿜으며 그에게 한가지 의미심장한 질문을 던졌다.

"당신 도대체 뭐야? 처음부터 계획 된거였어?"

조셉은 필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 최대한 차분히 설명해줄테니 진정하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필은 조셉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 않고 냅다 두들겨 패서 기절 시켜 버렸다.

잠시 후, 조셉은 눈을 떴다. 눈을 뜬 조셉은 제일 먼저 느낀것은 앞이 안보일 정도로 칠흑 같은 어두움이었다. 이어서 역겨운 피 비린내가 어두운 공간을 가득 채우는것을 느꼈다. 미지의 공간에서 눈을 뜬 그는 곧 공포를 느꼈고 심장은 빨리 뛰고, 맥박이 요동 쳤으며 식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누군가 의도적으로 환한 빛을 조셉의 안면에 비추었다! 조셉은 짧은 비명과 함께 얼굴을 찡그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양 손은 물론 두 다리도 의자에 앉은채 이미 결박 당해 있어서 꼼짝 하지 못하고 팬티만 입은 상태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곧 어두운 공간에 불이 켜졌다. 하지만 여전히 약간 어두움을 유지한 상태였다. 조셉은 다음 순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여러명의 그림자들 중 한명에게 당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필씨? 아까의 소동으로 자그만한 오해를 하신거 같은데, 저는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당장 이 속박을 풀어주고 제 이야기를 들어주십쇼."

하지만 필은 들은 척도 안하며 의자에 앉은 채로 아까 편지에서 받은 서류를 흝어 보면서 혼잣말을 내뱉 듯 조셉에게 이렇게 말했다.

"글쎄요? 그건 좀 더 지켜봐야 알 부분 같군요. 지금부터 대답 잘하셔야합니다. 피해자인지, 악당인지에 따라서 대우가 많이 달라질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리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성함이 조셉 아브라함. 본인 맞으시죠? 이집트 카이로에서 온 이민자 출신이고 가족관계에서는 아내는 작년에 암으로 사망, 같이 이민 온 중학생 딸이 한명 있으셨군요. 그리고 전직으로는 '탐정' 이시네요? 의뢰 초기 때 혹시 경찰, 다른 해결사들이나, 탐정 같은 귀찮은 연결고리가 없는지 떠봤는데, 설마하니 탐정 본인이 오실줄이야. 이거 감회가 새롭군요. 그래서 미스터 캘빈이 당신을 고용했나요? 나를 이용해서 의뢰 물품을 손쉽게 얻을려고?"

"차분하게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전직 탐정인걸 숨긴 이유는 그와는 아무 상관 없으며 이미 그만 두었고 굳이 밝힐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하지않은 것 뿐입니다. 오히려 나도 당신과 같은 피해자입니다! 나도 이용 당했다고요!"

이 말에 조셉은 자신도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필은 듣는 척도 안하며 헬렌에게 지지라고 말했다. 헬렌은 씨익 웃으며 한손을 뻗어 조셉의 오른쪽 허벅지에 손을 대었다. 곧 살 타는 냄새와 함께 조셉의 오른쪽 허벅지가 타들어 갈 고통이 시작되자 조셉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 했다. 이어서 필은 헬렌에게 그만 두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헬렌이 손을 떼자 조셉의 오른쪽 허벅지에는 빨갛게 그을린 손바닥 자국이 남아 있었다.

"이용 당했다는걸 제가 어떻게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 생각해봅시다. 그럼 돈은 왜 가짜 돈으로 가져왔는데? 그리고 왜 그렇게 타이밍 좋게 그들이 사무소로 쳐 들어 온걸까? 너무 짜고친 연기라는 느낌이 든다는건 나만 그래? 입이 있으면 말 좀 해보시지요?"

"돈은 진짜로 주려고 했습니다. 내가 말했잖아요? 전에 하던 일의 특성상 의심이 많다고. 그리고 제 마지막 시험에 통과 하셨으니 약속대로 후불을 드리겠다고 말하려는 참에 그들이 들어온거예요. 다시 말해, 난 어차피 당신이 내 마지막 시험에 합격한 이상 줄 생각이었습니다. 당신도 날 떠보려고 많이 찔러 보셨잖아요? 그러니 피차일반인 셈이죠."

"그건 백번 맞다고 칩시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당신이 미스터 캘빈에게 고용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죠? 근거가 너무 빈약하잖아요?"

"나도 그때 같이 공격 당했잖아요? 물건도 강탈 당했고. 못보셨나요?"

"그것만으로 믿으라고요? 만약 그 행동들이 철저하게 계산된 연기라면? 동양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을 속이려면 아군도 속여라! 언제까지 합을 맞춘건지도 모르는 상황에 내가 그걸 덥썩 믿을 거 같습니까? 말로 해선 안되겠군요. 또 고문을 가해야 할 수 밖에."

필 그림은 이렇게 말하고는 헬렌에게 얼굴을 지지라고 말했다. 위기를 느낀 조셉은 다음 순간 다급한 목소리로 속에 감추어져 있던 이야기를 털어넣었다.

"알겠습니다! 다 말할게요, 다 말한다고요! 미스터 캘빈에게 당신을 소개 받았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자가 직접 당신을 추천해주었어요. 내가 찾는 물건을 찾아서 가져다 주는 적합하고 믿을 만한 사람은 당신 밖에 없다고요!"

필 그림은 그제서야 헬렌에게 잠시 물러나 있으라고 말하고는 뒤에 서 있던 부하들과 함께 조셉의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리고는 잠시 뜸을 들인 후 이렇게 말했다.

"왜죠? 왜 그 물건을 찾으려고 했던 것이며, 그자에게는 어떻게 찾아가게 되었습니까?"

조셉은 입을 떼어 말하려고 하다가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필의 부하들이 조셉을 거칠게 몇번 때려주자 조셉은 그제서야 말을 꺼냈다.

"그만! 그만하세요 알겠습니다 말할게요. 딸 아이의 병 때문이였습니다. 말 그대로 입니다 살 확률이 희박한 병인데, 수술이 늦어지면 늦어질 수록 확률이 낮아지는 병이라고 합니다. 지금 병원에서 입원해 있어요.

예전의 나는 전직 탐정이었기 때문에 늘 위험에 빠진채 살아갔습니다. 나는 물론 가족들 조차도요 특히 이집트 카이로에선 더 그렇죠. 그래서 최근 해결한 사건 중 어떤 테러단체와 얽히게 되어 생명에 위기를 느낀 나는 사업상의 문제로 영국으로 이민을 신청했고 어렵게 이민권과 시민권을 얻어 내 딸과 함께 영국으로 이민했습니다.

집사람은 작년에 암으로 떠나버려서 이제 곁에는 하나 남은 내딸을 지키고 싶었던 나는 내가 해결한 사건에 얽히게 되었던 테러단체와 연결고리를 끊고 영국으로 이민을 와 새시작한걸 행운으로 여겼습니다. 딸아이는 장래가 촉망 받는 아이였죠 나와 달리 집사람을 닮아서 똑똑했거든요. 꿈이 의사가 되는거랬습니다 지금은 그만 두었지만 전직 탐정시절에 저는 많이 다치고 돌아다녔거든요.

그래서 딸아이는 어린 시절 늘 밴드와 연고를 몸에 달다시피 사는 내가 불쌍해보였던 모양입니다. 자기가 크면 내가 다쳐서 병원비 낭비할 필요 없이 고쳐주겠다고 말하고 다녔거든요. 그런 하나뿐인 똑똑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내딸이 이젠 내곁을 떠나려고 하니 나는 절박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만두었던 탐정을 시작하여 온갖 위험하고 수익이 높은 의뢰들을 받아 해결해가며 수술에 필요한 거액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저번주 마지막달에 수술비용을 다 모았죠.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의사가 말하길 딸아이는 수술해서 살 확률은 1%로도 안될정도로 희박해진 상태이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않을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져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더군요. 하지만 참담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고 그저 아직까지 숨 붙어 있는 딸 아이의 병실을 지키며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밤에는 딸을 재우고 괴로운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마셨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찰나에 반가운 지인을 만나게 되었죠.

그녀는 과거 카이로에서 살인누명을 썼다가 제가 진실을 밝혀 누명을 벗겨주었던 주술사 아스라였습니다. 의외의 곳에서 서로를 다시 만난 저와 아스라는 가벼운 안부 인사 및 짧은 잡담을 하던 중 아스라는 저의 현재 딱한 사정을 듣게 되었고 그렇게 아스라가 제 딸의 병을 고쳐줄 '태양의 그릇'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던 겁니다. 이야기를 다 마친 후, 자기도 이민 초기에 들었던 옛날 이야기 기믹을 보이는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라 확신은 못하겠지만 들려오는 또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 그릇의 제작도가 전세계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이야기도 같이 해주더군요."

"하지만 조사 해본 바에 따르면 제작도 이야기는 루머였습니다. 그래요 그럼 이제 계속 이야기 해보십쇼."

필은 경매장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서 조셉은 헛기침을 한번 하고 말을 이어갔다.

"아스라의 의도는 내가 이 말을 듣고 조금이라도 마음의 위로를 얻길 바랬겠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진짜로 믿었습니다. 아니 믿을 수 밖에 없던 절박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녀에게 어디로 가면 그것을 찾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죠.

하지만 그녀 자신도 그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 이후, 그것의 이야기를 맹신하며 맹목적으로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붙잡고 태양의 그릇에 대한 행방을 캐묻고 다니기 시작했죠. 하지만 당연하게도 다들 알 턱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들 제게 미쳤다고 욕을 하거나 비웃고는 가던 길을 가더군요. 하지만 전 포기하지않고 계속해서 태양의 그릇의 행방을 더욱더 절박한 심정으로 찾아다녔습니다. 딸이 하루하루가 지날때마다 상태가 심각해졌거든요. 그리고 그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저를 찾아내서 불러다가 세우더군요. 정확한 날짜는 내가 당신에게 의뢰를 하기 하루 전날 밤이었습니다."

"아, 그래. 저녁식사 시간에 당신이 찾아오기 전날 밤을 말하는 게로군?"

"네, 그날도 평소처럼 미친 사람 마냥 닥치는대로 아무에게나 태양의 그릇에 대해서 물어보고 다니고 있었던 때의 일 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경호원들이 제게 다가가더니 저항하는 저를 손쉽게 제압하고 차에 태우는겁니다. 저는 근처에 민원이라도 들어와서 잡아가는건가 보다 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제게 검은 복면을 씌우고 어디론가 출발하더군요.

그렇게 몇시간이 지났을까? 어딘가에 도착했는지 차가 멈추더니 조심스럽게 저를 붙잡고 어디론가 끌고 가더군요. 그리고 곧 멀지않아 엘리베이터를 타는 소리가 들리더니 위로 올라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착한 곳은 25층이라는 안내음과 함께 어느 따뜻한 기운이 드는 방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어딘가에 앉히더니 복면을 벗기더군요. 복면을 벗자 보이는 것은 밝은 샹들리에 조명과 함께 양 옆에 아름다운 육체미를 보여주는 전신 조각상들과 비싸보이는 식탁 위에 차려진 그동안 손도 댈 수 없었던 산해진미들, 그리고 맞은 편에 저를 보고 친근한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 어느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긴 매부리코를 쓱 한번 만지고는 반가운 목소리로 저를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디지털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캘빈 비셔스 도라라고 하며 경호원을 시켜 명함을 제게 건네 주더군요. 그리고 자신을 미스터 캘빈으로 부르길 원했고요. 미스터 캘빈은 목을 가다듬고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먼저, 선생님을 갑작스럽게 모시게 된 점에 대해서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직 식사도 안하셨을텐데 천천히 드세요. 일단 먹고 제가 여기로 모셔 온 이유에 대해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아픈 딸이 눈에 아른거려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지않았던 저는 정중히 거절하며 미스터 캘빈에게 나를 이곳에 불러 온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혹시나 의뢰 관련 이야기라면 사절 할 생각이었죠. 하지만 그는 저를 탐정으로써 고용하려고 부른게 아닌 듯 했습니다. 그는 제가 정중히 거절을 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약간 무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자신이 사실 남들이 모르는 은밀한 취미가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희귀한 물건 수집이라고 합니다. 그는 최근 이상한 그릇에 대해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다니는 미친 남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흥미가 생겨 이렇게 저를 데려오게 되었다고 말했죠.

저는 이때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도 그릇에 관심이 있구나. 그래서 저는 저의 사정을 그에게 털어놓았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존재하는지도 모를 그릇을, 혹시라도 그가 가지고 싶다면 제게 양도 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통했을까요? 그는 제 딸을 가엽게 여기며 저에게 당신이 찾는 그릇 같은 그런 기묘하고 희귀한 물건을 잘 찾는 사람을 한명 아는데 그 사람을 찾아갈 것을 추천한다고 말하며 그 사람에 대한 주소와 이름을 알려주더군요. 그게 바로 당신, 필 그림이었습니다."

필은 그제서야 미스터 캘빈이 경매장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깨달으며 분통을 터뜨리며 고문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제길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었군! 아무것도 모르는 당신을 이용해서 내가 그릇을 찾아내게 하고 덤으로 내가 그에게서 훔쳐갔었던 대타필기 의자까지 되찾으려고 했던 거였어! 이 능구렁이 같은 개새끼가 역겹게 당신에게는 자신은 깨끗한 취미를 가진 척 연기까지 하면서 말이지. 뭐? 희귀 물건 수집? 웃기고 있네! 그자가 정확히 어떤 취미가 있는지 아십니까? 이상 현상을 일으키거나 하는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리지않고 모조리 수집해서 장식하고 부려먹는 고약한 취미입니다! 나가뒤져도 시원찮을 녀석이죠."

필은 눈을 부릅 뜨고 핏대를 세우며 조셉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당신이 한 말이 진실이라고 치고, 다시 한번 확인 들어가겠습니다. 딸이 아픈거 맞습니까?"

"네, 못 믿으시겠으면 병원 이름과 병실을 알려줄테니 찾아가보십쇼."

"좋아요. 그리고 계약서 하나 작성해주셔야 할거 같습니다. 당신을 아직 완전히 신뢰 할 순 없으니까요."

"절 도와주신다면야 당연히 하겠습니다."

"착각하지마십쇼. 언제 돕는다고 했습니까? 난 그저 내 의뢰 보수금이 미스터 캘빈의 개입으로 인해 허무하게 날아가는 꼴을 볼 수 가 없다는 의도 겸에 당신의 딸이 환자든 아니든 간에 혹여나 딸의 안위를 위해 미스터 캘빈과 손잡고 나를 칠 생각일 수도 있으니 일종의 보험을 들여놓겠다는 겁니다."

"도대체 뭘 들은겁니까? 나도 당신과 같은 피해자라고요! 내가 아직도 당신을 배신할 것 처럼 보입니까?"

"이 바닥에선 흔한 일이죠. 자신의 안위를 위해, 가족을 위해, 사랑을 위해, 명예를 위해 남을 배신하는건 지극히 당연하고 또 정상적이니까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 고집 부리고 시간 낭비 하시겠습니까? 전 물론 시간 낭비하는걸 찬성하는 바입니다. 왜냐하면 굳이 당신이 아니여도 난 애들 데리고 미스터 캘빈을 치러 갈 생각이었고 마침 심심했거든요. 고문 시킬 만한 '악당'이 없어서 말이죠."

조셉은 불만 가득찬 표정을 짓다가 이내 포기하고는 마지못해 계약서를 작성하겠다고 말했다. 필을 기뻐하며 부하들에게 조셉의 속박을 풀어주라고 말했다.

조셉이 결박으로 인해 빨갛게 부은 손목과 발목에 생긴 끈 자국에 정신 팔려 있을때 필의 부하들은 서둘러 탁자 하나와 의자 두개, 볼펜, 도장, 계약서 한장을 뽑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조셉은 이를 보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앉고는 그들을 경계하며 계약서를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다음 순간 화를 내며 계약서의 내용 중 말도 안되는 한줄의 글을 읽으며 필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약에 을이 갑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배신을 했을 경우 을의 소중한 존재를 을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죽여버린다.' 내가 경고하는데 난 어떻게 해도 좋지만 내 딸의 털끝 하나 건드리는 날에는 당신을 가만두지않을겁니다!"

"만약에 잖아요? 만약에. 왜 그렇게 화를 내시죠? 당신은 나와 같은 피해자잖아요? 그러니 당신 말대로 라면 미스터 캘빈과 뒤가 구린 무언가를 꾸미는 것도 아닐텐데요? 내말이 틀립니까? '일종의 보험'이라고 했잖아요? 당신도 그런 쓸데 없는 짓만 안한다면 그런 일은 없겠죠? 저도 개인적으로 그런걸 바라질 않는 입장이랍니다. 어린아이는 괴롭히거나 죽이는 취향은 없어서요."

필은 입은 가린채 웃으며 이렇게 말하고는 조셉에게 눈짓으로 서명하라고 유도했다. 조셉은 이를 악물며 필을 한참 노려보다가 서명을 한 후, 도장을 찍고 필의 부하에게 계약서를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비열하기 짝이 없군요 해결사가 아니고 악당에 가까워요. 당신 같은 사람도 해결사를 하고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을 따름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필은 부하에게서 조셉이 건네준 계약서를 받으며 진심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계약서를 금고 안에 넣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2시. 만반의 준비를 철저히 갖춘 필과 헬렌은 부하들과 조셉을 데리고 리키의 스페셜 텔레포트를 통해 미스터 캘빈의 저택의 1층 오른쪽 끝자락 복도로 들어왔다. 그리고 곧바로 일정 공간안에 은신장막을 쓸 수 있는 맥의 능력으로 저택의 CCTV를 가볍게 무력화 시킨 상태로 복도에서 곧장 걸어나갔다. 복도에는 평범하게 아름답고 예술적인 그림들과 도자기 병들로 장식 되어 있었다. 이를 걸어다니면서 보던 조셉은 이렇게 말했다.

"그저 그냥 평범한 예술품들만 장식 되어 있는걸 보면 여기는 딱히 별다른 곳은 없는거 같군요. 지하에 숨겨진 방같은 곳에 그릇을 놓은 걸까요?"

"당연하죠. 1층은 대부분 응접실 같은 곳이 있을 텐데 미쳤다고 일반 예술품과 같이 놓여 있을까요? 보는 눈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최대한 은밀하고 자신만 감상할 수 있는 변태 같은 곳에 놓았을거예요. 역시 계획대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필은 미스터 캘빈의 성격을 생각하며 조셉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약 20분 후, 길고 긴 복도를 따라 한참을 지나가던 필 그림 일행은 천장에는 화려한 조명이 매달려 있고 고급스러운 화단과 장식품들이 어우러진 넓은 로비로 나와 대리석 바닥 위에 서 있게 되었다. 곳곳에는 로비를 왔다갔다 하는 하녀와 하인들이 있었다. 필 그림 일행은 누구 하나라도 자신들의 은신장막 안에 누구 하나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그들을 조심스럽게 피해 다니면서 뒷문을 찾아갔다. 뒷문 밖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와 푸른 잎들이 인상적인 정원과 그곳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필 그림 일행은 그들을 지나치면서 정원 구석으로 들어가 일반적인 풀밭과는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가짜 풀밭에 숨겨져 있는 눈동자 모양의 홀 뚜껑을 아무도 몰래 조심스럽게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도착한 곳은 계획의 목표 지점인 지하벙커로 미스터 캘빈이 종류를 따지지않고 수집하는 변칙개체들을 소장하는 곳이다. 원래는 진작에 이곳으로 스페셜 텔레포트를 하고 올 수 있었지만 만일 하나 눈앞에서 경비로봇이나 미스터 캘빈이 부리는 변칙개체 하인들에게 들킨 후에 은신이나 현실조작을 써봤자 아무 소용 없을거라는 필 그림의 판단 하에 일부러 돌아서 오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곳, 지하벙커에서는 평범한 인간 하인, 하녀들이 아닌 철저히 변칙개체 하인, 하녀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나 미스터 캘빈은 가장 악랄한 수집가들 중 하나로 인간형 변칙개체들을 노예로 부리기에 이곳에서의 하인, 하녀들은 미스터 캘빈에게 평생 길들여지고 부려먹히며 살아간다. 그렇기에 필은 예전부터 미스터 캘빈이 무언가를 수집해 오면 수집 해온 물건들과 함께 항상 벙커의 인간형 변칙개체 하인, 하녀들까지 싹다 빼돌려 벙커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온다. 때문에 미스터 캘빈은 이를 악물고 다시 인간형 변칙개체와 물건들은 수집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 되는 것이다.

어째든 지하 벙커로 들어온 그들은 주변을 경계하면서 지하 벙커의 복도를 걸어 다녔다. 얼마 안가 왼쪽 모퉁이를 돌자 양 옆에 겉모습은 아름답지만 알 수 없는 위화감을 풍기는 장식품들이 있는 복도가 드러났다. 그리고 소름끼치게도 몇몇 점의 인물화 그림들과 장식품들은 은신 상태인 그들을 마치 기척만으로 알 수 있다는 듯이 지나가는 그들을 아무 말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신경이 잔뜩 예민해져 있는 필은 복도를 지나가면서 이 벙커에 있는 모든 물건들은 아예 만지지 말라며 반복해서 모두에게 말해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지하벙커복도를 나와 로비로 온 필 그림 일행은 3m 가까이 되는 남성 조각상이 설치 된 분수대와 멋스럽게 바닥에 깔린 레드 카펫, 화려한 내부 모습과는 달리 초퀘한 모습의 인간형 변칙개체 하인, 하녀들이 물건을 옮기는 것을 보게 되었다. 물건들 중에는 철장 안에 갇혀 있는 정체불명의 사나운 짐승, 청나라 시기의 말하는 푸른 도자기, 알 수 없는 제목이 쓰여진 동화책 등 다양한 것들이 운반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로봇들이 감시 중이었다.

"언제봐도 정말 역겨운 장면이군. 지금 당장이라도 나서고 싶지만 일단 계획대로 움직이는게 먼저야. 다들 정신 바짝 차리고 따라와 로봇들한테 걸리면 순식간에 경보가 울려 이곳은 폐쇄 되니까."

필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가다듬고 일행 모두에게 이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럽게 중앙 계단을 타고 내려가 지하 2층 왼쪽 끝 방으로 걸어가 도착했다. 그곳은 미스터 캘빈이 수집한 물품을 보관하는 제 1 창고로 왼쪽 끝방부터 오른쪽 끝 방까지 총 6창고까지 있었다. 필 그림은 4년전에 훔쳤던 마스터 키의 복사본으로 디지털 도어락의 문을 열었다. 제 1창고는 양 옆과 앞에 기다란 커튼이 쳐져 있었으며 그릇 관련 변칙물체들이 가득 보관 되어 있었다. 필 그림은 주위를 둘러보며 CCTV의 유무를 확인 한 후, 맥에게 은신장막을 풀고 잠시 힘 좀 빼고 있다가 회복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같이 태양의 그릇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릇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필은 조셉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이거 이상한데? 꼼꼼한 성격인 그가 종류별로 배치를 안해놓을 리가 없는데? 또 나도 모르는 창고라도 만들었나? 설마 당신, 그새 이중 스파이 짓을 한건 아니죠?"

"아니, 당신한테 그렇게 고문을 당하고 계약서까지 작성한 다음에 점심 되고서도 계속 24시간 고문실에서 당신 부하들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가 여기로 다같이 왔는데 그 사이에 내가 어떻게 미스터 캘빈한테 알립니까? 당신들 온다고? 내가 무슨 당신들 같은 능력자인줄 아나? 심지어 난 오늘 고문 당하면서 능력자가 있는건 처음 알았어요! 이제껏 영화나 소설 이야긴줄 알았는데…어째든 나도 피해자라고요. 그새 잊으신겁니까?"

"내가 어릴때 부터 '사람은 반만 믿고 다녀라.' 라는 가슴에 새기고 다니던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쯤 이런 의심을 해봐야 긴장의 끈을 놓치지않고 계속 경계함으로서 팀원들을 안전하게 이끌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렇습니다. 별로 기분 나빠하지마세요."

이야기를 들은 조셉은 기가 찼지만 필 그림의 너무나도 뻔뻔한 태도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그릇 찾기에 열중했다. 그런데 커튼 뒤에서 누군가가 나오며 이렇게 말하는게 아닌가?

"자네들이 찾는 그릇은 이곳에 없을거야. 내가 자네들이 올걸 예측해서 미스터 캘빈에게 다른 곳으로 치워 두라고 말했거든."

갑자기 들린 누군가의 의문의 말 소리에 깜짝 놀란 일행들은 목소리가 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리고 모두 깜짝 놀라 멍하게 바라 보았다. 필 그림도 누군가를 보고 골치가 아픈 듯 머리를 만지며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이 시발 잡것이 잊을만 하니까 또 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