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 양치기, 파수꾼

오늘 아아무는 만족스럽게 손을 채우고 자신의 동굴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의 사냥은 어느 때와 달랐다. 오늘 사냥한 사슴은 온가족이 먹을 수 있을 것이며, 잘 보존해도 이토록 더운 여름날엔 결국 어느정도는 버려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사냥꾼은 더 이상 사냥하지 않고 돌아가도 된다는 기쁜 마음과 웃음을 지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의 어깨에 얹혀진 네발짐승의 목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고, 피는 그의 어깨를 적시고 있었다. 아아무는 이렇게 피를 흘린다면 그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을 가진 것들이 이끌려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피를 씻기 위해서 물가로 향하고 있었다. 물가에 도착한다면 피 뿐 아니라 온몸을 적신 땀도 닦을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쯤 걸어갔을까 아아무의 발이 무언가 날카로운 것을 밟고 말았다. 그는 어깨에서 사슴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그의 오른쪽 발에서 붉은 빛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기뻤던 마음이 사라앉고 그의 얼굴에 조금의 짜증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그는 길을 마저 가야만 했다. 다시 사슴을 어깨에 얹자 아픔이 느껴졌고, 얼굴은 찌푸려졌다.

그렇지만 어찌하겠는가, 자신이 부주의했던 것을. 아아무는 이내 불편한 발걸음을 다시 옮겼다.

발에서는 고통이 느껴졌다.


아이작은 지루했다. 양을 치는 일은 그의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양치기에게 필요한 것은 많은 것이 있었다. 양들에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 길을 찾는 능력, 양을 먹일 풀을 찾는 능력, 양을 노리는 늑대를 쫓아낼 능력. 아이작은 자기가 그 모두를 가지고 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로운 때를 견디는 능력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벌써 자기가 치는 양을 세 번이나 다시 세어 한 마리도 사라지지 않았는지 확인했고, 주위에서 맹수가 나타나지 않을지 열심히 감시했지만, 그의 오랜 경험은 그럴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결국 가시금 지팡이에 손을 올리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 한 점 없었다. 구름을 찾으려면 하늘이 아니라 양 때를 보는 것이 빠를 지경이었다. 양 때는 온순했고, 조용하지만 멈추지 않고 풀을 뜯고 있었다. 저 멀리에서는 산과 나무들이 보였기, 귀를 기울이면 개울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불어오는 산들바람이 더위를 씻어줬고, 태양은 온 대지를 비춰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모든 것이 지루했다.


존은 망루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상태였고, 그 이유는 적군이 이미 성문 앞까지 진군해 코앞까지 다가와 진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동료인 찰스는 그와 다르게 별달리 긴장한 기색 없이 여유로웠다. 존은 그의 그런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고, 애초에 이해하려고 노력하기엔 그의 머리 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가족에 대한 걱정 그리고 모든 것이 머리 속에서 뒤죽박죽이었다.

이제 곧 동이 틀 것이고 그러면 공격이 시작될 것이다. 바깥에서 들리는 분주한 사람들의 고함소리와 바람 소리가 계속해서 귀를 매웠다. 멀리서 보이는 적군의 깃발과 모닥불이 계속해서 눈을 채웠다. 평소와는 다르게 하늘에서는 별이 빛나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잠시간 생각하던 존은 이내 다시금 머리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다른 생각 때문에 그 생각을 저 멀리 미뤄두었다.

더이상 무언가를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아무는 물가에 도착했다. 마침내 도착했다는 기쁨과 함께 어깨에서 짐을 내려두고 고개를 숙여 한 모금의 물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주저앉아 오른쪽 발 밑을 살폈다. 온통 피와 진흙으로 더러워진 상태였다. 아아무는 우선 발을 물에 집어넣었다. 차가움과 함께 고통이 느껴졌고 물에는 붉은 빛이 돌았다. 아아무는 무언가 묶을 것을 찾았지만, 조금 커다란 나뭇잎이 구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아무는 발 밑에 나뭇잎을 묶어서 고정하고 자신의 몸과 축 늘어진 네발짐승을 닦았다.

그리곤 잠시 커다란 바위를 찾아 앉아서 지친 몸을 쉬게 했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아아무의 관심을 끈 것은 토끼였다. 평소에는 보지 못하던 토끼 한 마리가 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토끼는 어째서인지 새하얀 털을 가지고 있었다. 어째서 저렇게 눈에 띄는 모습을 하고도 아직까지 잡아먹히지 않았을까하는 미묘한 생각이 머리 속을 잠시 스치고 지나갔지만, 그는 이미 먹고도 남을 고기를 가지고 있었다.

아아무는 조용히 눈을 돌리고 자신의 사냥감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움직이는 듯하면서도 낮선 이를 경계하지도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해서 조금 가까워지는 듯한 모습은 관심을 안 주고 싶어도 안 줄 수 없었다.

결국 그 새하얀 토끼가 그의 발 밑까지 올 정도가 되자 그는 자신의 돌도끼를 다시금 집어들고는 빠르게 움직여 토기를 내리쳤다. 토끼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한 방에 숨통이 끊어졌다. 아아무는 새롭게 사냥한 짐승을 한 손으로 잡아들고는 이정도면 같이 들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슬슬 다시 돌아가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첫 사냥감이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이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똑같이 생긴 새하얀 토끼였다. 그는 잠시 자기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쪽 손에 들고 있는 토끼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손에는 토끼, 앞에도 토끼였다. 방금 전처럼 다가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경계하고 있지도 않았다. 한 마리 정도는 더 들고 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다시금 움직였다.

이제 그의 손에는 두 마리의 토끼가 있었다. 그러자 다시 토끼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조금 도망가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너무 굼떴다. 이제는 세 마리의 토끼가 있었다. 다음 토끼가 나타났다. 도끼가 토끼를 잡았다. 다음 토끼가 나타났다. 한 번은 도끼를 피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다음 토끼가 나타났다. 이번 토끼는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아무는 이렇게 생각했다. 잠시 이 토끼들은 내려두고 저 녀석만 잡아야지.

그렇게 23번째 토끼를 잡았을 때 아아무는 잠시 물가에서 멀어져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발도 아프지 않았다.


아이작은 돌맹이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곤 아무 생각 없이 집어던졌다. 그러자 캥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토끼 한 마리가 양들 사이에서 뛰쳐나왔다. 아이작은 토끼가 어째서 이런 곳에 있었는지, 그걸 자신의 왜 몰랐는지 생각하다가 그 토끼의 털이 양털처럼 희다는 걸 깨달았다. 토끼치곤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토끼는 돌에 맞아 혼란에 빠졌는지 양들 사이 이리저리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꽤나 우스운 광경이었다. 아이작은 다시 돌은 하나 집어 들고 토끼에게 던졌다. 돌에 맞지는 않았지만 눈 앞에 떨어진 돌의 모습과 소리에 놀랐는지 토끼는 더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아이작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작은 다시 돌을 집어들고 제대로 토끼를 노리고 던졌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토끼는 움직임을 멈췄다. 죽었는지 기절한 건지 모를 모습이었다. 아이작은 토끼를 살펴보려고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러자 토끼는 갑자기 다시 일어나 양들 속으로 숨었다.

아이작은 돌을 집어들었다. 토끼는 어디에 있는지 고민하며 양 때를 살폈다. 한 구석에 모습이 보이자, 돌을 던졌다. 돌은 바닥에 맞았고, 그러자 토끼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양들도 그 소리에 동요하고 있었다. 흥분한 양들의 모습을 보고 아이작은 양들에게 다가갔다. 잠시 양들을 진정시키고 한숨 돌리자, 다시 흰 토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작은 이제 무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다시 누운 곳에서 보는 하늘에는 구름 한 조각 없었다. 눈을 감았지만, 무언가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그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귀를 막았지만, 무언가가 코를 간질렸다. 눈을 떠보자 토끼가 눈 앞에 있었다. 깜짝 놀라 손을 휘젓자 토끼는 다시 양 때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아이작은 손을 바닥에 대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토끼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돌맹이가 있었고, 그는 던졌다. 돌은 아슬아슬하게 토끼를 빗겨 뒤에 있던 양에게 맞았다. 양은 깜짝 놀라 뛰어다녔다.

하지만 아이작은 그것보다 먼저 다음으로 던질 돌에 관심이 가있었다. 어디에 있지, 어디로 갔지, 어디 숨었지 같은 생각이 머리 속을 메우고 눈은 흰색 털을 찾아 해매고 있었다. 이젠 지루하지 않았다.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존의 동료는 창 밖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그는 존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