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부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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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본론으로 들어가기 앞서, 귀가부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온연고 귀가부는 개교 10년차인 1979년에 처음 창설되어 2019년 현재까지 40년간 운영되어온 유서깊은 동아리입니다. 네, 온연고에서 귀가부는 실제로 존재하는 동아리이며, 농담이 아닙니다. 편지를 다 읽으실 즈음에는 학우분께서도 깨닫게 되시겠지만, 귀가부는 온연고에 존재하는 모든 동아리들 중 가장 농담과 거리가 먼 동아리입니다.

혹시 전산 오류로 인해 엉뚱한 동아리에 등록된 것 아닌가 하고 의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는 학우분께서 이번 학기 입부 신청서에 문예부를 1지망으로 적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문예부장이 직접 학우분을 찾아와 문예부에 들어왔으면 한다고 말한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학우분께서는 자동으로 귀가부에 등록되셨습니다. 자세히는 이런 이유입니다. 온연고 문예부는 처음 창설된 바로 그 해에 폐쇄되었습니다. 문예부장을 비롯해서 문예부원 일곱 명 전원이 소담산에 들어갔다가 실종되었거든요. 제 말이 의심되신다면, 게시판에 붙어 있는 입부 안내에서 문예부를 찾아보십시오.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온연고 귀가부가 창설된 이유는 이곳, 무진이라는 도시에 사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길거리를 걷는 것이 매우 위험한 행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무진시는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들 중 가장 기괴하고도 위험한 곳입니다. 학우분께서는 올해 무진시로 이사온 외지인이니, 도시 전체에 가득한 안개에 익숙하지 않으시겠지만 몇 달만 지나면 곧 익숙해지실 것입니다. 그 대신에 안개를 두려워하게 되시겠죠.

해마다 두 자리 수의 사람들이 무진의 무겁게 내려앉은 안개 속에서 사라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돌아왔지만, 몸만 돌아오고 정신이 돌아오지 않아 그 누구도 그들의 증언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사라집니다. 안개가 다음에는 누구를 삼킬지 아무도 모르기에, 사람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안개의 주의를 끌지 않기 위해 무진장 애를 씁니다. 무진시에서는 그 누구도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침도 뱉지 않아요. 후배들을 괴롭히는 일진이나 도둑도 없고. 그건 확실히 좋은 점이기는 하죠. 무진의 안개는 그 어떤 경찰과 공권력보다도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감시자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할 이야기에는 이곳 무진시에서도 극소수만이 아는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진시는 불안정한 곳입니다. 여기서 '불안정'하다는 것은 경기가 좋지 않다거나 사회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진시에서는 그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으며,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운명은 더더욱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무진시의 존재 그 자체도 불확실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국지도들 중 일부에는 무진시라는 도시가 없습니다. 중간에 무진시를 경유하는 구간이 있는 17번 국도를 지나가는 어떤 차들은 마치 무진시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듯 여수에서 바로 순천에 도착합니다. 애초에 도시의 존재부터가 이렇듯 불안정한데, 도시 안에서는 어느 정도의 안정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낚아채가는 안개는 무진의 가장 끔찍한 것들 축에도 끼지 못합니다. 진짜 끔찍한 것들은 안개 속에 숨어서 꿈틀거리고, 중얼거리고, 비틀거리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저 '그것들 때문에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일 테지'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죠. 그것들이 뭐든 간에, 햇빛이 비치는 새벽부터 햇빛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는 그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가정통신문에 안내된 시간표를 보시면 아실 테지만, 온연고의 마지막 수업은 예외 없이 다섯시 사십분에 끝납니다. 그리고 무진시에서는 빽빽한 안개 때문에 다섯시 반 이후로 주변이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는 우리 학생들이 하교하는 바로 그 시간대에 안개 속에 숨어있던 그것들이 행동을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네다섯 명씩 뭉쳐 하교하고 큰 길을 통해 다니기 때문에 안전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