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주제: 떡갈나무와 푸른 달

일반적으로 유랑극단이 주관하는 행진에 일곱 개 가지 전체가 참여하는 경우, 행진 순서는 각 가지의 나이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므로 본래 행진의 선두에는 최초의 잎이라 할 수 있는 칭윈츄웨(晴雲秋月, 청운추월)가 서고, 그 뒤를 칭윈츄웨의 쌍둥이 동생이라 할 수 있는 세츠게츠(雪月, 설월)이 따르는 게 된다. 둘에 비하면 굉장히 젊은 축에 속하는 개척자는 행진의 뒷줄에 서게 된다.

하지만 다섯 번째 푸른 벌새의 해에 진행되는 떡갈나무의 날에는 위에서 말했던 원칙을 깨고 개척자가 제일 선두에 서서 행진했다. 떡갈나무의 날 축제의 마지막 순서이자 가장 중요한 순서인 피날레 공연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단장과 단장이 선정한 100명의 '오케스트라'지만, 공연의 성격과 구성을 결정하는 것은 단장이 이 날을 위해 선정한 가지의 몫이다. 이렇게 공연을 주관하는 역할을 맡게 된 가지는 당연하게도 그 해 축제의 주인공 역할을 맡게 되며, 이렇게 행진에서도 선두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이 관습이 극단 단원들 사이에서 논란거리가 되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행진의 선두를 누가 서느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애초에 첫 번째 떡갈나무의 날부터 시작되었던 관습이었으니까. 다만 이번 행사에서는 이 관습에 대해 단원들 사이에서 말이 많았는데, 이번에도 관습 자체는 문제가 아니었고, 바로 단장이 '그' 개척자에게 피날레 공연을 맡겼다는 점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개척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신비한 노래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평가받는 유랑극단 단원들조차 혀를 내두르는 신비함과 미스터리함을 자랑하는 유랑극단 최대의 별종들, 상궤를 벗어난 그들의 노래처럼 기묘한 예술가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이번 축제를 주관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당연히 걱정부터 앞설 수밖에 없다. 들리는 말로는 단장이 개척자의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주제가 떡갈나무의 날에 생기를 불어넣을 것이라며 개척자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다고 하지만, 몇몇 걱정 많은 단원들은 그 '새로운' 노래가 자기들도 즐기기에는 너무 난해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에 벌써부터 빠져 있었다. 물론 음악에 대한 견해야 가지마다, 잎마다 다 다르고 대체로 유랑극단은 각 단원들의 독특한 취향을 존중하는 자세를 취하기는 하지만, 단원들 사이에서는 '그래도 행진이잖아…'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푸른 벌새가 아름다운 단풍 아래에서 노래를 연습하던 날, 떡갈나무 앞에서 행진을 기다리며 모인 여섯 개 가지들은 긴장과 기대 속에 숨을 죽였다. 행진의 선두의 설 개척자가 서서히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과연 그들은 어떤 노래를 부르며 걸어올 것인가? 화산처럼 갑자기 터져나와 모든 것을 불태우며 달려 내려오는 듯한 진군가를 부를 것인가? 눈보라처럼 휘몰아치고 앞을 가리는 동시에 사람들을 떨게 하는 비가를 부를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미래에 찾아올 우주의 열죽음을 애도하듯이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침묵의 장송곡을 부를 것인가?

대부분의 단원들이 예상했던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노래는 단원들이 모르는 노래가 아니였다. 아니, 사실 거의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노래, 단원들 뿐 아니라 떡갈나무의 마법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알고 있는 노래였다. 여섯 가지의 단원들은 예상치 못하게 들려오는 익숙한 멜로디에 혼란을 느끼면서 자기 귀가 이상해 진 것은 아닌지, 아니면 사실 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개척자가 아니라 다른 잎이 아닌지(그럴 가능성은 사실 없다시피 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걱정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저 멀리 지평선에 보이는 사람들은 분명 개척자들이었고, 지금 들리는 이 노래는 한 치의 음도 틀림없이 「Take Me Home, Country Roads」였다.

광장 앞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에는 들려오는 음악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가, 그 다음에는 익숙한 멜로디를 알아차리고 안도하고는, 약간의 실망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개척자의 행진을 지켜보았다. 그 이상한 사람들의 선두에는 목청껏 노래를 부르는 젊은 청년이 섰고, 그 뒤를 검은 코트를 입은 노인과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그들은 모두 합쳐 서른조차 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대부분의 잎이 참가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다른 가지들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였다. 수수한 옷을 입고 평범한 노래를 부르며 내려오는 개척자의 모습은 그들에 앞서 광장에 닿았던 소문에 비하면 당황스러울 정도였고 축제 참가자들을 당혹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를 듣고 그들의 행진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서는 이미 신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심장은 뛰기 시작하고, 피는 달아오르며, 온몸이 잠에서 깨어난 듯한 각성의 감각을 경험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고조감을 느끼며 자신의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고개를 들어 개척자의 행진을 바라보고, 개척자들의 노래가 그들의 마음에 거는 마법의 근원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 전 미지의 세계에 발을 내딛으며, 개척자들은 자신의 고향을 등졌다. 고향을 떠난 이유가 슬픔 때문이었든, 모험심 때문이었든, 피치 못할 사정 때문이었든, 그들은 오랜 유랑의 세월 동안 그들의 고향에 대한 모든 앙금을 내려놓고, 순전히 그들이 떠났던 곳으로서 그리워했다. 수십 하고도 수 년 더, 그들은 귀향의 때를 기다려 왔다.

그리고 이제 그 때가 온 것이다. 이제 개척자들은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눈을 빛내며 그들의 고향, 떡갈나무의 그늘 아래를 향한다. 그 순수한 기쁨과 환희는 경쾌한 노랫소리로 터져나오며, 그들의 노래는 고향에 돌아온 것을 기뻐하며 고향의 추억을 되새기는 노래이다.

개척자가 광장 앞까지 다다르자, 여섯 가지들 사이에서 그들의 노래에 응답하는 음이 솟아난다. 귀향의 노래를 부르는 그들을 격려하는 환호와 동시에 그들의 귀환에 기쁨이 가득하기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온갖 악기들이 연주되는 소리를 통해 광장에 가득 울려퍼졌다. 이윽고 여섯 가지들이 즐거움으로 가득한 멜로디와 함께 개척자의 뒤를 따라 열을 맞춰 행진했다.

유랑극단의 노랫소리는 이 위대한 행진이 광장 한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떡갈나무 아래에 다다르기까지 멈추지 않았다.


문게이저Moongazer는 광장 한가운데 있는 떡갈나무를 바라보았다. 열 번도 더 보았던 나무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아도 위풍당당하고 동시에 평화로운 그 모습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언제나 건강하고 튼튼한 모습이지.' 문게이저는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뒤틀린 버드나무 영감이 되어 있군.'

사실과는 약간 거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문게이저의 나이는 이미 70을 넘겼지만, 비슷한 나이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젊고 건강해 보였다. 방금 있었던 행진에서도 잘 어울리는 검은 코트와 모자 차림으로 행진의 선두에 서서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참이었다. 그에게는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을 수 있겠지만, 그는 '늙어 보인다'라는 표현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늙었다. 단순히 오래 살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시들어 가고 있었다. 문게이저는 음악가였고, 동시에 개척자였다. 그는 많은 세계를 여행했고 많은 곡을 연주했다. 수십 년에 걸친 음악과 함께 하는 삶에서 그는 지혜와 기쁨을 얻었다. 하지만 그 모든 여행과 연주가 주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심지어 떡갈나무조차도 문게이저가 제일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다. 오래 전부터 여러번에 걸쳐 확인했던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가 얻지 못한 바로 그것이 그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는 마치 뿌리가 반쯤 드러난 나무와도 같았다. 그는 시들었다. 그는 늙었다.

그래도 이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떡갈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가 이곳에서 일구었던 행복을 되새기면서 지금 겪고 있는 불운의 현실보다 과거에 누렸던 행운의 추억 속에 잠겨, 잠시나마 삶의 짐을 내려놓고 떡갈나무가 만들어내는 조용하지만 동시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치유의 선율 속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여러번 있었으나 별 볼일 없었던 성공과 드물었으나 치명적이었던 실패로 점철된 그의 삶이었지만, 문게이저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어떤 순간을 떠올리면서……


어느 더운 여름이었다. 방황하다 지친 소년은 밤이 된지 오래인데도 그늘을 찾아 나무 아래 앉았다. 밤하늘 위에 높이 뜬 달조차 소년에게는 자신을 차가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엄격한 교사 같았다. 감히 그늘 바깥으로 나갈 용기를 내지 못했던 소년은 몸을 웅크리고 나무 둥치에 기대 앉아 훌쩍였다.

한때 소년의 세상에는 많은 노래가 있었다. 소년은 노래를 들었고, 노래하는 법을 배웠지만 어른들의 회초리와 호통소리가 그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 노래를 빼앗긴 소년은 겁에 질려 도망쳤고,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숨을 곳을 찾아 짐승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이 날처럼 조그만 은신처라도 찾을 수 있는 날에는 그 안에 틀어박혀, 누구든 좋으니 그의 고통스러운 한탄을 들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빼앗긴 노래를 돌려달라고 기도했다.

아직까지 그 기도가 이루어진 적은 없었다. 이제 사람들이 소년을 찾으면 소년은 숨어 있던 곳에서 끌려 나와 누군진 몰라도 어쨌든 소년을 때리고 혼낼 사람의 발치에 던져질 것이다. 이 세상에 있다는 그 많은 신들 중에는 단 하루라도 좋으니 편안히 잠들고 싶다는 소년의 소원을 들어 줄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만치 떨어진 곳으로부터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소년은 몸을 더 움츠렸다. 제발 지나가 줘. 부탁이야.

발소리는 더 가까워졌다. 계속해서 커지던 발소리는 소년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소년은 앞에 나타난 커다란 그림자를 보고 눈을 감았다. 어쩌면, 어쩌면 오늘 밤은 어두우니까 지나가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거기서 뭐 해?"

여기서 들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한 산들바람 같은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소년은 고개를 들었다. 여자, 그것도 소년과 비슷한 몸집의 소녀가 소년의 앞에 서 있었다. 소년은 갑자기 여자애 앞에서 잔뜩 움츠렸다는 것이 부끄러워 다리를 뻗고 어깨를 폈다. 소녀는 대답을 기대했던 건지 소년이 말을 하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녕?" 소녀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안녕." 소년이 얼떨결에 대답했다. 소년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겁에 질려 떨었다가, 갑자기 살가운 인사를 하게 된 이 상황이 뭔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지 물었어." 소녀가 다시 말했다.

소년은 어쩐지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달을 보고 있었어."

"나무 아래에서? 잘 안 보이지 않아?" 소녀는 매우 당연한 질문을 했다.

소년은 여전히 사실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답을 회피했다. "그럼 너는 여기서 뭐 하는데?"

소녀는 그냥 사실대로 대답했다. "나도 달을 보러 나왔어. 오늘은 달이 파란색으로 예쁘게 빛난다고 벨이 그랬거든."

"벨이 누구야?"

"어? 아, 내 아빠야. 말하자면 그렇지."

"말하자면 그렇다고?"

"그러니까, 음, 나는 아빠가 누군지 몰라. 엄마도. 두 분이 나한테 남겨준 건 피리 하나뿐이래."

"피리?"

"응, 그냥 오래된 피리인데, 신기한 소리가 나. 그런데 있잖아…" 소녀는 그렇게 말하며 무슨 고대의 비밀을 누설하는 것마냥 목소리를 낮췄다. "그게 사실 마법의 피리인 것 같아."

"말도 안 돼."

"진짜야! 처음 그 피리를 불었을 때 벨이 나타나서 나를 돌봐 줬어. 그리고 다른 착한 어른들도 만났어. 그 어른들이 나한테 노래 부르는 법도 알려줬다고."

이 아이는 진심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소년은 생각했다. 하지만 어쩐지 소녀의 말투에는 한 뼘의 거짓말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소년은 이 모든 것이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어떤 아이들은 마법 피리를 불어서 자기를 돌봐 주고 노래를 들려주는 어른들을 불러내는데 어떤 아이는 못된 어른들 사이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어째서 내 부모님은 피리는 커녕 호루라기 하나 물려주지 않았던 걸까.

소년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좋겠네."

"가끔은 별로 좋지도 않아." 소녀가 말했다. "어른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서 내 노래를 들을 시간이 없어. 심지어 벨도 그래. 참, 너 노래 좋아해?"

"아니, 별로." 소년은 너무 오랫동안 노래를 듣고 싶어 했지만, 남자아이라는 존재는 가끔 아주 멍청한 심술을 부릴 때가 있다. "그러니 만약 나한테 너가 지은 노래 같은 걸 들려 줄 생각이라면-"

"내가 아니라 세이킬로스가 지은 건데."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왜? 너도 지금 바빠?"

"아니, 바쁜 게 아니라-"

"그러면 내 노래 들어보지 않을래?"

"-노래 듣기 싫단 말이야!" 소년은 짜증이 났다. 사실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노래가 왜 싫어?" 소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달이 뜬 밤에 나무 아래 앉아 있는 남자애 치고 노래를 싫어하는 애 없다고 벨이 그랬는 걸."

"그건- 쳇, 집어치워. 네 멍청한 노래 불러주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

소녀는 그늘 안으로 들어와 소년 옆에 앉았다. 소년은 아까만 해도 퉁명스럽게 대답했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소녀의 노래를 한 번 들어보고 싶어 그녀가 옆에 앉게 내버려 두었다.

"일단 소개하자면, 아까 말했지만 이 노래는 세이킬로스가 지은 거야." 소녀가 말했다. "세이킬로스는 고대 그리스인인데, 가사랑 음을 비석에 새긴 게 지금까지 내려온 거야. 그래서 그 사람이 지은 노래를 세이킬로스의 비문이라고 불러. 세이킬로스의 아내의 이름은-"

"우, 우." 소년이 짜증스럽게, 그리고 약간은 장난스럽게 야유했다.

"알았어. 흠흠." 소녀는 몇번 헛기침을 한 뒤, 노래를 시작했다.

그 이후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소년은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도 완벽하게 기억해 낼 수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바로 그날 소년은 어른들이 빼앗아 갔던 삶의 노래의 열 배를 돌려받았다는 것이었다. 소년은 마침내 사라진 노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그 어떤 것에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

당신의 삶은 짧으며,

시간이 곧 그 대가를 취할지니.

소녀는 짧은 가사를 여러번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해 불렀다. 그렇게 노래하는 동안 소녀의 목소리는 숲을 지나는 바람소리와 하나가 되고, 마법과도 같은 떨림이 산들바람처럼 나무들을 스치고 지나갔다. 노래를 끝내고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소년 쪽을 쳐다본 그녀는, 소년이 뭐라 말을 걸기도 미안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소녀는 약간 당황해서, 엉성하게 소년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이럴 때 사람들이 곧잘 하듯이 피상적인 위로의 말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소녀의 특별한 삶은 그녀에게 노래 뿐 아니라 이해심과 지혜 또한 가져다 주었기에, 소년을 위해 뭔가 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소녀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소녀는 그에게 뭔가를 주고 싶었다.

마침내 소년이 울음을 그쳤을 때, 소녀는 몸을 일으켜 그들이 앉아 있던 나무에 달린 가지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이윽고 소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떡갈나무네."

소녀는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 듯 하더니 가지에서 잎을 하나 따서는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소년의 눈물 범벅인 얼굴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떡갈나무는 곧 마법이야." 소녀는 말했다. "이제부터는 떡갈나무와 푸른 달이 너의 노래를 지켜 줄거야. 그 어떤 어른도 빼앗아갈 수 없어. 그러니 힘든 날이 오거나 길을 잃게 되면 떡갈나무를 기억해, 알았지?"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타났을 때처럼 갑작스럽게 소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년은 잠시 눈을 감고 편히 숨을 내쉬었다.

소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더 이상 소년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소년에게는 막 되찾은 노래가 있었고, 또 노래를 지켜 줄 떡갈나무와 달이 있었다. 소년은 몸을 일으켜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그늘 바깥에 나왔다. 소년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웃음지었다.

소녀가 맞았다. 오늘은 예쁜 파란색 달이 하늘 위에 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가 정말 하늘에서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주는 건지도 몰랐다.


갑자기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문게이저는 과거의 추억에서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푸른 달과 어두운 밤하늘은 간데 없고 새파란 아침 하늘만 있을 뿐이었다.

"또 나무 앞에서 멍하니 서 계시는 겁니까, 영감님?" 젊은 청년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페레그린Peregrine." 문게이저는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행진의 맨 앞에 섰던 개척자의 젊은 리더라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미안하네, 저 친구를 볼 때마다 어쩔 수가 없어. 슬슬 가볼까, 그럼?"

"'슬슬 가볼까 따위의 느긋한 소리를 하실 때가 아니라고요. 잎들이 공연을 시작하고 있으니 벌써 약속 시간입니다. 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단장님은 커녕 단장님 그림자도 못 볼 겁니다." 페레그린이 투덜거렸다.

문게이저는 미소를 지으며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페레그린을 따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