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스페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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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의 눈 앞에서 실버 스페이드는 참으로 평온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이름처럼 은빛으로 반짝이는 비늘과 삽날 모양으로 뭉툭한 삼각형의 생김새를 가진 이 물고기는, 마치 자신을 수백 센티미터 두께의 무지막지한 아크릴판 너머로 관찰하고 있는 사람이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유유히 자신이 담긴 통 속을 주유하는 중이었다. 그 사람은 앞으로 실버 스페이드의 모든 것을 담당하게 될 사람이었으므로 말하자면 자신의 주인이 될 사람에게 퍽 무례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오늘부로 이 시설에 근무하게 된 신임 어류연구소장 조지 테일러 박사는 실버 스페이드의 그러한 태도를 지적하는 대신 온 몸이 굳은 채 관측실 한가운데 멍하니 서 있었다.

"테일러 박사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팔을 뻗어 박사의 어깨를 쳤다. 테일러 박사는 마법에서 풀려난 듯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퍽 놀라셨나 보군요." 전임 연구소장이었던 쿠모이 박사는 막 인수인계를 끝낸 해방감 때문이었는지 테일러 박사보다는 훨씬 안색이 나아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아, 이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저도 처음 저 녀석을 봤을 때는 그랬거든요." 쿠모이 박사는 이렇게 말하며 실버 스페이드를 바라보았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저희 연구소의 걸작이죠."

그 순간 절묘한 타이밍에 실버 스페이드가 관측실의 창 바로 앞을 보여주듯 지나갔다.

처음에는 세로 3미터, 가로 10미터의 관측창의 왼쪽에서부터 검은 거대한 첨단부가 마치 항구로 들어오는 배의 머리처럼 나타났다. 그런 다음에는 여느 물고기가 그렇듯이 흐리멍덩한, 하지만 웬만한 컨테이너 박스 크기의 눈동자가 관측실 내부를 훑었다. 이윽고 실버 스페이드의 거대한 몸통이 관측창을 모두 가리더니, 한참 뒤 몸통이 사라지며 똑같이 거대한 꼬리지느러미가 아크릴 판을 진동시킬 정도로 강력한 물살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몸 길이 100미터입니다." 쿠모이 박사가 말했다. "꼬리지느러미까지 치면 120미터가 되고요. 흰긴수염고래 따위는 명함도 못 내밀 해수의 괴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