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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나는 꼭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좌절당해 왔다.

"호호호, 준이 말도 재미있네요. 아무튼 다들 선생님이 해 오라는 대로 내일까지 준비해 오세요. 알았죠?"

"그래, 오늘 토론수업은 시간도 없고 하니 일단 여기까지. 장준 얘기하는 것만 마지막으로 듣고 끝내지."

"자네 조원들보다 자네만 유독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를 모르겠다고? 아니 바쁜 사람 붙잡고 그런 걸 왜 물어보나?"

그나마 이렇게 답변이 돌아오는 경우는 많이 양반이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뭐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적, 맥락적, 암묵적 이유로 인해 좌절당하고, 그 좌절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침묵하거나 기껏해야 자기들끼리 잠깐 수군거리고는 곧 잊어버리기 일쑤다. 나중에 혹시 캐물어 보더라도, "아 그건 그냥… 좀 그래." 같은 식의 시원치 않은 주관적인 답변만이 돌아오곤 한다.

내가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놈이라서 그런 건 아니냐고? 사회성이 부족한 건 아니냐고? 절대 그렇지 않다. 나는 대학교 시절에도 그랬고 군 시절에도 그랬고 사람들과 융화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고 장담한다. 적어도… 내가 뭔가를 제안하거나 입장을 피력하는 경우만 아니라면 말이다. 사회적으로 눈총을 받을 만한 질문을 한 것도 아니었다.

옛날 생각을 하니 갑자기 그 생각이 난다. 내 중학교 국어선생님이었지? 내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다. 그때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인가?

"장준 친구가 얘기한 건 사실… (멋쩍게 웃으며 학생들의 호응을 구하는 과도한 몸짓) 그렇고 그래서 응 ~ 응 ~. 무슨 말인지 이해하죠 여러분?" (뒤따라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반 친구들)

아무튼 나는 그래서인지 컴퓨터가 좋았고, 컴퓨터 관련 학과에 들어갔다. 적어도 컴퓨터만큼은 내가 명령한 무언가를 거부할 때 그 이유를 알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내 전공 지식을 관심있게 여긴 재단 인원에 의해서 격리 기술자로 들어왔다.

물론 재단에서도 내 처지는 역시 변하지 않았다.


"으음… 그러면 이번 월간 격리 회의는 여기까지. 다들 수고해. 김 팀장은 오늘 저녁까지 보고서 올려."

"자자, 시간도 늦었는데 회의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너무 늦지 않게 맡은 자리로 제때 돌아가 주세요."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는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반장님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쩌면 아주 어릴 적부터 풀리지 않던 의문이 나를 이끌었던 것 같다.

"최 반장님!"

"응?"

"아까 왜 제가 제안한 격리 아이디어를 거절하신 겁니까?"

"허 참."

반장님이 피곤해하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창 밖을 슬쩍 내다보았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쓸면서 그가 대답했다.

"자네 여기 들어온 지 얼마나 됐어?"

"…8개월 되어 갑니다."

"이 기지에서 자네가 맡은 역할이 뭐야?"

"5번 보조 통제실의 격리지표 모니터링입니다."

"여기서 3년 5년 구르는 인원들도 햇병아리 취급 받고 있고, 자네보다 한참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들도 격리 제안은 쉽게 못 꺼내는데, 까놓고 말해서 말이야, 자네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런 제안을 하나?"

"……"

재단 생활도 어쩔 수 없는 사회생활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한 마디가 더 튀어나왔다.

"…그렇다면 제가 반장님 정도의 서열이 된다면 그때 그 격리 제안을 실행에 옮기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장님을 노려보면서 그렇게 말이 나왔다. 말하고 나서 나도 놀랐다. 반장님은 적잖이 놀란 눈치더니, 이내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허어, 이거 봐. 자네가 그렇게 뻗대면 어떻게 자네랑 같이 일을 하겠어? 사회생활에 아직 감이 안 잡혀? 자네가 그렇게 나와서야 어디 무서워서 자네한테 무슨 격리 작업이라도 맡기겠나? 응?"

반장님이 내 곁을 그냥 스쳐 지나가는데, 울적하기도 하고 조금 화도 치밀어서, 반장님의 등에 대고 쏘아붙였다.

"정 그러시면 감독관님께 인트라넷으로 한번 문의나 해 보죠."

"……"

반장님은 잠시 멈추어 서서 듣더니, 곧 짤막한 탄식을 내뱉으면서 문을 열고 나갔다.


"여어~ 간만이야."

"얼굴 보기 힘드네. 잡혀먹힌 줄 알았는데 아직은 멀쩡한가 봐?"

옆 격리팀의 기술자 C다. C는 눈 밑으로 다크서클이 한참 내려온 퀭한 모습으로 자판기에 동전을 집어넣었다. 그는 피곤한 와중에도 나를 보면서 곧잘 이런저런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혹시… 시간 좀 돼?"

"무슨 일인데?"

"후우… 격리절차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거든."

C와 나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C가 자판기에서 뽑은 콜라 캔을 땄다.

"…넌 격리 회의에서 무슨 격리 보완점 같은 걸 얘기해 본 적이 있냐?"

"보완점? 나도 뭐 이래저래 생각은 있는데 아직 눈치보느라 입 밖에 꺼내진 못하고 있지. 왜?"

"아니, 내가 오늘 아침에 최대한 에둘러서 그걸 길게 설명했거든.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으니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몇 마디 했는데, 무슨 별 말도 없이 그냥 뭉개고 넘어가지 뭐야."

"어떻게 생각하시느냐고 여쭤보지 그래."

"당연히 여쭤봤지. 근데 계급이 깡패다? 넌 여기서 얼마나 오래 있었냐, 너한테 맡긴 권한이 얼마나 되냐, 이딴 소리 들으면서 나만 사회 부적응자 취급 받았다구."

"본전도 못 찾았구만."

말 나온 김에, 나는 C에게 조금 더 내 이야기를 해 보기로 했다.

"근데 말이야, 나는 이런 일이 내 인생에 꽤 흔한 것 같아."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들어 봐,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사람들에게 내가 뭘 주장하거나 제안하면 꼭 시답잖은 이유로 무시되거나 거부당해 왔어. 예전 고등학교 때 토론수업에선 어땠는지 알아? 앞 사람들 서로 주장하고 반박하고 하는 거 듣느라 시간이 다 가 버려서, 나는 그냥 주장만 짤막하게 하고 끝내라고 했다고. 나는 무슨 소리를 할 때마다 매번 대답 없는 메아리가 된단 말이야. 피드백을 전혀 받질 못해. 그렇다고 내 생각이 어디에 반영되는 것도 아니고."

"아까 있었던 일도 그런 경향의 연장선상이라는 말이야?"

"내 말이! 그래서 아까 일부러 우리 감독관님 운영하시는 직통 문의게시판에다가 직접 건의를 올려 봤다구. 그것도 이렇게 격리하고 싶어요, 가 아니라, 이렇게 격리하면 혹시 문제는 없을까요, 이렇게 쓴 거야. 정말이지 이번만큼은 어떻게든 확답을 받아야겠어. 내 주장이 거부당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매번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거부되니까 그게 짜증이 나는 거지. 마치 이런 식이야. 나만 빼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요청의 문제점을 훤히 알고 있는데, 그걸 자기들끼리만 히히덕대고 나한테는 알려주기 싫어서 대충 둘러대는 느낌?"

그러자 C는 뜻밖에도 정색을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거 봐, 그건 개인의 인지적 편향에 불과해. 너는 지금까지 분명 수없이 많은 제안들을 알게 모르게 해 왔을 거고, 그 중에는 분명히 합당한 이유로 거부되거나 전적으로 수용된 것도 있었을 거야. 가족끼리도 보통 그렇잖아? 네 부모님에 대해 내가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부모라면 자기 자녀에게 뭔가를 숨기려 하지는 않을 거고. 하지만 너는 일단 네 삶의 잘못된 신념을 만들어 낸 후, 그것을 위협하는 삶의 경험에 있어서는 전부…"

"…그런 게 아니야! 내가 그런 정도의 판단을 안 해 봤을 것 같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지금 나는 네 궁금증에 대해서 성실하게 피드백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잖아? 그런 엉뚱한 인지적 신념은 스스로에게 해만 될 뿐이라고. 생각을 고쳐 봐."

C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고, 나 역시 C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경험이, 내 직감이, 내 본성이 이건 그런 종류의 문제가 아니라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나도 물론 내가 때때로 틀리기도 한다는 점을 알기는 하지만, 이번만큼은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는 것이 매우 강하게 느껴졌다.

"…뭐, 아무튼 조언해 줘서 고맙다.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가 봐야겠어. 너도 수고하라구."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헤이 준!"

"오우, 하이 맥스! 왓츠 뉴."

우리 기지에 파견 온 M이 싱긋 웃었다.

"준, 5번 격리실 상태는 괜찮아?"

"걱정 말라구. 내가 이래 뵈어도 지금까지 8개월 동안 사고 한 번 안 쳤던 몸이다."

"이야, 미스터 최가 좋아하겠는데!"

반장님 이야기가 나오자 머릿속이 갑자기 우중충하게 헝클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점심 때도 반장님하고는 어색해서 시선도 잘 못 마주쳤었다. 재단에서의 내 대인관계를 희생해야 할 만큼 내 문제가 그렇게나 대단한 것이었던가 싶었었다. 하지만 거꾸로 말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단에서의 내 대인관계가 희생되어야 할 정도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거다.

"맥스, 혹시 말이야, 이런 생각 해 본 적이 있어?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자꾸 내 의견이나 제안에 대해서만 별 이유도 없이 괜히 거부하고, 무시하고, 못 들은 체 넘어가고 하는 거."

"…준, 미스터 최랑 싸웠어?"

"그게 말이야, 오늘 아침에 최 반장님하고 월간 격리 회의를 모처럼 했거든. 근데 내가 내 SCP의 격리에 더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서, 이렇게 이렇게 보완하면 어떻겠느냐, 그걸 구체적으로 얘기했는데 그게 그냥 별 말도 없이 못 들은 체 무시당한 거야."

"미스터 최한테 물어봤어?"

"당연히 물어봤지. 근데 뭐라는지 알아? 넌 여기서 있으면 얼마나 있어 봤냐, 네가 맡은 일이 크면 얼마나 크냐 하면서, 아주 사람을 면박을 주고 같이 일 못 할 사람 취급하더라니까. 듣기에 이상하겠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

그러자 M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했다.

"준, 아무래도 격리 절차에 대해서는 미스터 최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준이 일을 잘 하는 건 알지만, 아직 권한도 부족하고 경험도 부족하잖아. 일단은 미스터 최에게 동의하고 나서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 싶은데. 내 생각에는 미스터 최가 적절한 판단을 한 것 같은데."

정말이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산산조각나는 듯한 발언이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M이라면 절대로 이렇게는 답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맥스, 진심이야? 회의는 민주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해야 한다구."

"하지만, 봐, 모든 회의 참가자들이 동일한 수준의 경험과 숙련도를 갖고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건 나도 알지만, 적어도 설명은 충분히 해 주었어야지."

"경험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 준. 우리는 그걸 흔히 '노하우' 라고 부르고 있지."

이쯤 되자 나는 더 이상은 무슨 말을 할 의욕을 잃었다.

"뭐, 됐다. 바쁜데 조언해 줘서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라구."


정말일까? 정말로 나는 엉뚱한 인지적 신념에 빠져서 외곬수가 되어버린 걸까? 최 반장님은 고급 숙련자의 감과 느낌으로 내 제안이 잘못된 거라고 판단했던 걸까? 나 혼자 엄청난 착각을 한 건 아니었나?

하지만 선뜻 그렇게 판단하기도 어려웠다. 일일이 다 말하기는 힘들지만 내가 살면서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애매하게 거부당하고 좌절했던 경험들을 적자면 종이 한두 장쯤으로는 분명히 부족할 것이다. 고심 끝에 나는 오늘 아침에 회의장에 동석했던 맞선임 기술자 K에게 한 번만 더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최 반장님의 반응 부분은 그냥 덮어두기로 하고.

"…그래서, 오늘 아침의 제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지?"

"네, 생각해 볼 만한 가치는 있지 않나요? 아… 무, 물론, 어디까지나 8개월차 햇병아리의 생각이니까 허점이야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겠지만요."

"흠… 근데 그게 뭐더라?"

"에휴, 주 통제실 컴퓨터를 조작해서 격리실 corbane 확산 억제수치를 30%까지 낮추고, 확산 방향을 격리동(棟) 103호 쪽으로 옮긴 다음에… 1분 동안 기다렸다가 폐쇄장치를 한꺼번에 쾅! 해서 타격을 가하는 거죠. 기존의 군체학습 이론을 거꾸로 뒤집어 보면, 도리어 불특정 다수의 지각체계와 접촉한 직후 가해진 타격이 반영구적 비활성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는 말도 되잖아요."

"으음, 글쎄다. 내가 이 자리에서 가타부타 확언할 만한 건 아닌 듯한데."

"그, 그래도… 형님이 격리반장 자리에 있었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요?"

"글쎄… 모르겠다. 꼭 그렇게까지 해 봐야 하나. 뭐 정 궁금하면 시뮬레이션을 봐야 알겠지만. 우린 아직 활성화 패턴에 대한 모델도 없어."

"만약에 이렇게 해 보게 된다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요?"

"내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 그렇게 궁금하면 한번 사고쳐 보든가."

"사실은… 감독관님 질문답변 게시판에다가 이거 올려 봤어요."

K는 이건 웬 쓸데없는 짓이냐는 투로 미간을 찌푸렸다.

"감독관님한테는 또 왜."

"시원한 답변이 오질 않으니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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