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U. Faud의 메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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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 태어난 내가 가장 큰 충격을 느낀 전자제품은 단연 스마트폰이다. 2007년 아이폰이 출시되면서 시작된 일반인용 스마트폰 시장은 mp3, 게임기 시장 등등을 전부 잡아먹으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했고, 출시 5년만에 국민의 2/3이 스마트폰을 소유하게 되었다. 당시 나 역시 인터넷과 게임을 좋아하던 초중학생이었기에 부모님을 졸라 스마트폰을 받았고 즉시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스마트폰은 내게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 자체는 분명히 휴대용 온라인 컴퓨터라고 할 수 있는 대단한 문명의 이기지만, 나는 그것으로 인터넷 서핑과 게임에 빠져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내 독서량도 집중력도 성적도 하향곡선을 그렸음은 당연하며, 심지어 그토록 빠져들었던 게임을 잘 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강력한 기술을 얻었는데, 오히려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역효과를 낸 것이다. 당시에는 전혀 이런 생각을 못 했지만, 몇 년이 지나서 대학생이 되고, 지하철에 탄 사람들이 전부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과연 기술을 무작정 개발하고 통제 없이 판매하는 것이 옳은가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도 이 정도일진대, 인공지능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그에 의존하며 수동적으로 변해가리라는 것이 당연한 예측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심지어 증기기관이 신기술일 당시에도 끊임없이 해오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기술과 현재 개발되고 배포되는 기술들은 그 능력에 있어 정말 큰 차이가 있다. 당시의 기술은 사람의 작업을 돕는 정도에 그쳤다. 판단 자체는 사람이 하되, 판단의 결과로 나온 행동을 보조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의 기술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과 통계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프로그램은 점점 사람에게 유용한 판단을 해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필요 없이 ‘~~동 맛집’ 이라고 검색해서 식당을 찾을 수 있고, 새로 나온 노래를 들어보며 취향에 맞는 곡을 모으는 대신 스트리밍 사이트에 취향을 등록한 뒤 골라져 나오는 노래만 들을 수 있다. 가계부를 짜는 대신 카드를 토스에 등록하면 자동으로 사용내역이 정리되어 나오고, 조금만 있으면 운전도 인공지능이 대신 하기 시작할 것이다. 짧게 말하자면, 기술은 사람의 행동을 돕는 것에서 벗어나 사람의 판단을 돕고 있으며, 더 나아가 판단을 점점 대신 내려주고 있다. 놀라운 점은 이것이 예상보다 유용하고 효율적으로 느껴지며, 그래서 사람들이 사소한 판단이나마 점점 더 인공지능에 맡기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에 개봉했던 픽사의 애니메이션 ‘Wall-E’에서, 순화된 모습이지만 이러한 경향이 계속될 경우 가능한 하나의 미래를 볼 수 있다. 영화의 시점은 수백 년 뒤이며, 인간은 역시 수백년동안 우주선에서 인공지능의 시중을 받으며 살고 있다. 우주선 안에서 몇 세대가 흐르자, 사람들은 24시간 자동으로 움직이는 안락의자에 앉은 채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고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옷을 입고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화면에서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오락거리를 즐긴다. 매일같이 수영장 옆 파라솔에서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 모두가 홀로그램 화면만 들여다보느라 아무도 그 곳에 수영장이 있는 줄 몰랐던 장면이 인상 깊다. 그러나 이들은 물론 전혀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 애초에 태어난 이후로 스스로 판단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는 몇 번의 계기로 결국 모두 제 발로 일어서지만, 실제로 비슷한 상황이 일어날 경우 상당수는 스스로 판단하는 고통을 떠안는 대신 기계의 보살핌 속에 안주하리라는 예상은 억측이 아닐 것이다.

닐 포스트먼이 그의 저작 테크노폴리에서 주장하는 바도 이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다. 그는 테크노폴리의 발생 원인을 판단 기준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술이 점점 발달하면서 수백 년간 유지되었던 도덕관념 및 상징체계의 허점이 드러나고 권위가 무너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새로운 판단 기준을 원했는데, 그 자리를 기술과 데이터, 수치가 차지하였고 이것이 테크노폴리이다. 기술이 사람의 판단기준을 정하게 되었고, 그는 이것을 기술의 신격화라 부른다. 그런데 이 대체물들은 보기에만 그럴듯할 뿐 실제로는 도덕적이거나 인간적인 판단에 매우 부적절한 기준이기 때문에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과거 도덕관념의 역할을 되새기며 자주적 판단력을 기르는 것이 기술에 의존하고 결국 잡아먹히지 않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의 해답은 매우 이상적이라 실현되기 힘들다. 이미 정착된 교육-사회 진출의 구조를 갈아엎어야 하는 방법이기에, 그의 관점에 감명 받은 지도자가 다스리는 독재 국가라면 혹시 몰라도 민주주의 및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과거 가치체계의 결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도한 단순화가 어떤 긍정적인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그의 관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그는 선과 악, 남성성과 여성성 등의 단순화가 정보를 거르는 체라고 보았으며, 이를 통해서 범람하는 정보를 줄여 각자가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기준에 결함이 있으니 판단에도 결함이 있겠으나, 모든 정보에 파묻혀 유의미한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보다는 일부분 그릇되더라도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여 그는 일신한 교육을 통한 각자의 판단력의 상승을 해답으로 내놓았다.

내가 생각했던 방안은 개인의 발전을 주창했던 그와 같은 축 상에 있지만 반대 방향이었다. 테크노폴리를 읽으면서 생각이 정리되었는데, 내 해답은 기술의 발전을(이는 생산되고 전달되는 정보의 증가와 직결된다) 사회적으로 제동하자는 것이다. 어떤 기술이 개발되면, 국가기관 혹은 초국가기관에서 그 기술을 심사하고, 심사 결과 지나치게 강력하다고 생각되면 적절한 활용 규약을 만든 후에 대중에 허용하는 식이다. 즉 개인 역량의 발전보다는 기술을 다루는 사회구조적 역량을 기르자는 것이다. 역시 비현실적이지만, 이미 기술이 우리 삶의 상당부분을 차지했기에 어쩔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밀려나는, 효율성이 제1덕목인 사회에 속해 있다. 당장의 효율성을 얻고 생존하려면 이미 신기술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자는 대책에는 비록 실현되기 어렵더라도 효율성의 포기, 즉 사회구조의 변화가 포함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가 스마트폰에서 얻은 것이 없듯이, 새로운 기술을 열심히 도입해봤자 그 기술을 활용하는 주체가 활용 목적을 가지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장기적으로 보면 기술을 지배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도 사회적 환경도 확보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도입한다면, 결국 사람은 수많은 기술이 제공하는 수많은 정보를 감당하지 못하고 판단의 권리마저 기계에게 넘기게 될 것이다. 마치 Wall-E에 나오는 미래인들처럼.

대한민국의 교육은 대학 입시를 위한 것으로 상당히 변형되었지만, 근본적으로 학교에서 일견 쓸모없어 보이는 기초수학을 그토록 열심히 가르치는 이유는 그것을 익히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논리력이 길러지기 때문이다. 공상일 뿐인 듯한 소설을 아이들에게 읽히는 이유는 그것이 창의력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내려온 수많은, 그리고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들은 그것을 행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기에 지켜져 온 것이다. 혹은, 만약 과거에 수학과 소설을 선택할 때 그런 판단이 없었다면, 애초에 사람은 어떤 일을 하던 간에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찾아내는 능력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최근의 기술발전 양상은 과정을 기계에 위임하고 결과만을 더 빠르게 얻는 방향으로 보인다. 나는 사회 차원에서의 기술 통제를 대안이랍시고 내놓았고, 닐 포스트먼은 교육을 통한 각자의 판단력 증진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핵심은, 기술은 그 기술을 자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유용하다는 것이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한 상태에서 그것을 이루기 위해 스마트폰을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그저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사고 보는 사회가 된다면, 사람들은 자기 취향의 노래를 찾아 듣는 대신 제공된 노래에 취향을 맞추며 살게 될 것이다.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기술을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가진 기술만 효율적일 뿐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낼 판단력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효율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