퀔삼의 샌드박스 3

파기는 생각보다 쉬웠어요. 아직까지는 그래요.

그러니까, 안전 등급 동은, 그렇게 대단한 보안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이겠죠. 사람 하나를 죽일 정도로 위험한 물건들이 모인 곳이지만 결국 사람을 죽이는 건 사람인 곳인 거예요.

하긴 어딘들 안 그러겠냐마는요. 작년 말의 사건 생각나나요? 큰일은 아니었어요. 4등급 인원이라지만 어쨌건 고작 사람 한 명이 죽은 거라면, 여기서는, 아마 그렇게 큰일은 아닐 거예요.

그 이상 자세히 공식 발표가 났다는 얘기는 그 뒤로 아직까지 들은 적이 없지만, 원래 말은 발이 없어야 천 리까지 가잖아요? 음, 말하고 보니 중의적인 뜻이기도 하네요. 혀가 잘린 시체라니 끔찍하죠. 아니 혀는 입을 닫으면 안 보이기라도 하지, 눈이 파인 시체가 더 끔찍할까요. 눈도 감으면 안 보이려나? 그래서 코와 귀도 함께 잘랐는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네, 멍청이가 아닌 다음에야 사람이 자기 얼굴을 저렇게 난도질을 해서 죽이는데 앉아서 비명만 지르지는 않겠죠. 전해 들은 얘기지만 위 분들이 대경실색을 했나 봐요. 혹시 변칙이 개입한 일인가? 아니면 변칙끼리 상호 작용해서 새로이 생긴 현상인가? 이 변칙이 높은 사람을 좋아하는 취향이 있나? 그럼 우리도 위험한 게 아닐까? 저런 상상에서 그친 게 다행이라고 할까요. 저도 월급쟁이 처지에 오만 변칙들 다시 검사하느라 집에 못 가고 싶진 않으니까요.

저런 얘기를 막 입사할 때의 제게 하면 에이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할 텐데. 지엄한 과학의 법칙에서 벗어난 현상들을 다룬다! 그 현상들을 다룸으로써 과학의 지평을 넓히는 선봉이 되자! 멋있는 대사죠. 어떤 과학도 건 저런 대사로 입사를 꼬시는데 감히 거절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솔직히, 거절했다가 죽거나 기억이 지워지거나 해서 저 대사를 잊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고요. 신입 연구원들 오는 때만 기다렸다가 저 대사 치는 맛에 연구원 자리 못 놓겠다는 사람도 몇 있다고요.

변태 같죠, 알아요. 하지만 사람은 다 변태에요. 그래도 저건 온건한 변태 축에 들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래요. 저는 아직 이 격리 동 복도를 걸을 때마다 심장이 뛰는데, 차라리 이게 무서워서 이런 거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여러 번이에요. 업무량에 비하면 박봉에, 편히 쉬지도 못하는데, 나는 무슨 영광과 명예를 꿈꾸며 현실 인간들이 양지의 클럽에서 떡치는 동안 음지의 연구실에서 죽어 가는지. 음 어쨌건 이것도 고작해야 자기 파괴적인 취미일 뿐이네요. 이게 더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녜요 역시 그래도 남을 파괴하는 게 취미인 사람보다는… 낫죠. 그리고 이건 몇 달 전부터 고민한 건데, 왜 그런 사람은 항상 저보다 위에 있는 걸까요? 어쩌면 위로 올라갈수록 자기를 중요하게 여기거나… 크게 보는 걸지도 모르죠. 사람을 수족처럼 부린다는 말 있죠? 그 사람에게는 수족이 그저 비유만은 아닌 거예요. 문제는 사람은 손으로 참 많은 짓들을 하는데… 밥을 먹거나… 똥을 닦거나… 자위를 하거나. 진짜 손도 아닌데.

네, 살아 있는 사람을 자위용으로 쓰다니 끔찍한 일이죠. 하지만 D계급은 사람이 아니고, 높으신 분들에게는 더 그런 존재라는 겁니다. 아니 어쩌면 사람으로 안 보는 인원들이 높으신 분들이 되기에 적합한 인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까 그 얼굴 난자당한 그 사람… 잘 살해당한 걸지도 모르겠어요. 아니 그분의 입장에서 다시 서술하자면 자살이라고 해야 하나? 저라면 그런 방법을 택하지는 않았을 텐데 멍청한 사람이에요.

잔인한 인간은 없고 잔인한 체제만 있다지만, 결국 그 체제도 사람이 만든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제 말은 4등급만 되어도 재단 자산에 대한 재량권이 지나치게 커진다는 거예요. 자산에 사람이 포함되는 건 끔찍한 생각이죠. 내가 그런 체제를 만든 건 아니라고요? 그렇군요, 그럼 솔직해질게요. 한 번에 엎는 것보다는 한 사람씩 엎는 게 제게는 더 편하거든요. 사람을 엎는다 긴 좀 그런가? 괜찮아요, 당신의 휘하 연구원들은 아마도 무사할 거예요. 당신의 그 손은 아마 더더욱 무사할 거고요. 제가 보장할게요.

왜 이 방은 안전 사이에 끼여서 혼자 유클리드인지 항상 궁금했었죠. 유클리드라는 단어가 그리스 수학자 에우클리데스의 영어 발음이라는 건 아세요? 원 발음이 훨씬 좋은데 왜 그렇게 줄였는가 몰라.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 멋진 말이에요. 혹시 몰라요 숫자에는 왕도가 있을지. 173이라는 숫자는 당신을 잘 대해 주길 바랄게요. 사실 저라도 옷이 다 벗겨진 중년 남자를 잘 대하고 싶지는 않을 것 같지만요. 하지만 몸으로 지은 죄니 죄를 보이려면… 옷을 벗어야 하지 않겠어요? 어쨌건 심판관은 제가 아니니까요.

저는 양지를 지킬게요, 당신은 음지에서 죽어 가세요. 안 죽는다면 유감이고요. 행운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