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샌드박스는 더이상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후속 샌드박스로 이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샌드박스 2호기

샌드박스 3호기

새로운 샌드박스에 초안 페이지를 생성한 뒤, 이 페이지의 설정 → 페이지 소스에서 내용을 복사해 옮겨붙이시면 됩니다.
이전에 어려움이 있다면 포럼이나 대화방에서 운영진에게 문의하세요.


눈이 번쩍 떠졌다.

입 안이 텁텁하다. 침이 쓰다. 땀이 흥건하다. 다리가 저려서 일어날 수가 없다. 머리가 어지럽고 오한이 든다. 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이러고 있었던 거지?

여기서 나가야 해.

힘겹게 일어나서 똑바로 서보려고 노력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힘이 안 들어간다. 벽에 쓰러지듯 기대고 어떻게든 걸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뭔가 미끄러운 덩어리를 밞고 넘어진다. 덩어리가 퍽하고 터진다. 바닥에 부딪히자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끔찍하게 아프다.

방금 소리를 듣고 누가 오면 어떡하지?

순간 엄습하는 공포감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오한으로 몸이 미친듯이 떨린다. 이가 딱딱 부딪힌다. 아직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간다. 내려다 보니 발에서 발목까지 아까 밞았던 것의 흔적으로 흥건하다. 구두가 미끌거린다. 다시 걷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이제 나는 기어가기 시작한다. 꼴이 말이 아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흐릿하다. 아내와 이혼하고 재산을 몰수당했다. 다 포기하고 파리로 건너왔다. 이곳에서 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하던 것처럼 영화를 보고 싼 집을 구할 때까지 묵고있는 싸구려 호텔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주 늦은 시각이었지. 잠깐, 무슨 영화였더라? 고전 코미디 영화였던가? 앞이 거의 안 보이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갔던 그때, 누가 내 뒤통수를 뭔가로 내리쳤다. 난 쓰러졌고, 지독히 아팠다. 발소리가 여러명 같았다. 그나마 가진 것들도 모두 털리고 살해당한 다음 시체는 쓰레기장에 버려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그놈들이 날 자루에 집어넣고 머리를 한 번 더 내려치고… 그 자루 진짜 거칠었지.

설마, 발소리가 들렸던 것 같은데. 아니야 아니야. 난 지금 극도로 불안하고 예민해. 분명 잘못 들은 걸거야. 계속 기어가. 곧 걸을 수 있을거야.

아직도 그때 얻어맞은 통증이 욱신욱신 느껴진다. 살고 싶다. 내 딸아이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싶다. 이혼한 후부터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보고싶어 미칠 것 같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눈물은 곧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 뺨을 타고 목까지 줄줄 흐른다. 난 계속 기어간다. 눈물까지 흐르니 꼴이 더 처절하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다시 온 몸이 비명을 지른다. 다리가 아직도 후들거리지만 이제 걸을 수 있다. 벽을 짚어가면서 최대한 빠르게 걷는다. 잠깐, 근데 출구가 어디지? 출구가 어딘지 짐작도 못 하면서 지금까지 무작정 움직였던 것인가? 하지만 내가 출구가 어딘지 어떻게 알고? 별 수 없다. 계속 걷는 수밖에.

아까부터 들리는 발소리는 무시한 채로.

걷는 동안 별별 생각이 다 든다. 왜 하필 파리였지? 철없던 시절 품었던 파리에 대한 막연한 환상 때문에? 그래, 그 시절에 아내를 만났었지. 아내도 그땐 나와 똑같은 철없는 예술가 지망생이었어. 내 딸은 왜 내가 보낸 이메일에 답장을 안 해주는거지? 내가 저지른 짓을 알았나? 아니야. 아내가 그걸 알려줬을 리가 없어. 딸은 나를 사랑해. 아내가 답장을 못 보내게 하는 걸거야. 딸을 앉혀놓고 나에 대한 매도로 가득한 훈계를 하며.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내 발걸음도 빨라진다.

이 새끼들은 날 대체 어쩌려는 거지? 왜 그때 죽이지 않고 날 이런 곳에 데려다 놓은거지? 잡히면 고문당하는 게 아닐까?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제 나는 달린다. 미친듯이 달린다. 가까워져 오던 발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미친듯이 달린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땀이 줄줄 흐른다. 눈물은 이제 다 말라붙은 게 느껴진다.

이제 더 이상 발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더 뛰는 건 불가능하다. 왠지 더 깊숙히 들어온 느낌이 든다. 불길하다. 하지만 이제 날 쫓아오는 사람은 없다. 따돌린 게 분명하다. 난 계속 움직여야 한다. 난 살아야 한다. 살아야만 한다. 살고 싶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잠깐.

누가 내 뒤에 있다.
.
.
.
.
.
.
.
.
.
.

기절. 놈들이 나를 다시 눕힌다. 머리가 부딪힌다. 또다시 기절. 놈들 중 하나가 칼을 들고있는 게 보인다. 또다시 기절. 놈들이 무슨 주문을 끊임없이 외우고 있다. 귀가 아프다. 또다시 기절. 입고있던 옷이 모두 없어져 있다. 전신에 미끌거리는 붉은 액체가 발라져 있다. 또다시 기절. 칼이 내 복부를 가른다. 피가 솟구친다. 칼을 든 놈이 피를 뒤집어쓰고는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내장이 바닥으로 쏟아진다. 철벅, 하면서.

또다시 기절.


이 샌드박스는 더이상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후속 샌드박스로 이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샌드박스 2호기

샌드박스 3호기

새로운 샌드박스에 초안 페이지를 생성한 뒤, 이 페이지의 설정 → 페이지 소스에서 내용을 복사해 옮겨붙이시면 됩니다.
이전에 어려움이 있다면 포럼이나 대화방에서 운영진에게 문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