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715-ko

"SCP-715-KO라니?" 책상 위에 걸터앉은 고양이가 코웃음쳤다. "정말 이름 짓는 센스 하나는 알아준다니까."

Cat With Eye는 거대한 서재 한가운데에 놓인 마호가니 책상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서재의 가구들은 평범해 보였으나,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일은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책들이 허공에서 둥둥 떠서 알아서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고, 고양이가 앞발을 조금씩 움직이면 앞뒤로 떠다니며 책상에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했다. 그 주위에는 비서 한 명이 서 있었다.

"네, 네. 위대하신 윤리위원회 의원님. 이제 일할 시간입니다. 그것도 출장이네요. 참 잘 됐죠?" 비서가 날아오는 책을 피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망할! 또 그 고양이용 케이지에 들어가서 비행기 선반에 들어가 있으라고 하면 가만 안 둬—" 고양이의 발이 딱 멈췄다. 책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더니 일제히 바닥으로 떨어졌다.

"네, 네. 평시 상황에서 윤리위원회 위원에게 전세기를 내주지는 않으니까요. 일등석에서도 케이지는 써야 하고 말이죠. 그게 마음에 안 드시면 동물 학대라고 주장하세요." 비서가 고양이의 말을 가로막았다. "최근 한국 기지 한 곳이 뱀의 손한테 공격받았다고 합니다. 관련해서 연구원들이 새로운 변칙 개체를 포착했고, SCP-715-KO로 지정했고요."

"그래, 그래. 열심히 일하네. 근데 그 일하고 내가 케이지 안에 수그리고 들어가서 6시간 동안 찍 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있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 있는 거지?" Cat With Eye가 책상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꼬리를 높이 들고 총총걸음을 치며 걸어갔다. 비서가 그 뒤에 따라붙었다.

"배신자가 있는 건 아닌지 우려하고 있어서요. 심지어 똑같은 기지가 두 번이나 공격받아서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도 의심이 들고. 그래서 내부보안부하고 합동 감사 나가라는 겁니다. 짐은 다 쌌으니까, 지금 당장 가면 됩니다. 아, 케이지도 새로 샀습니다. 깜찍한 걸로." 비서가 싱긋 웃으면서 옆에 있는 검은 봉투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분홍색 천 가방이었다.

"가끔 난 네가 이상한 페티쉬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 누가 상관인지 모르겠다니까." Cat With Eye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인상을 팍 쓰고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비서가 케이지를 집어들고 방을 나섰다.


방랑자의 도서관 한가운데, 육각형의 바닥 위에서 오소리와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개가 발치에 놓인 책을 덥석 베어 물었다. "안 돼! 미친 놈, 기어이 사단을 내는구나, 그걸 혼자서 꿀꺽하겠다고!" 개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소리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오소리는 허공 한가운데에서 멈춰서더니, 거꾸로 감기라도 한 것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버렸다. 개가 책을 한 번 더 물어뜯었다. "일어나야 할 일을 막을 수는 없다. 그건… 법칙이지. 이 책은 법칙을 새로 쓰는 책이다. 너희 중 나만이 이 책을 이해하는데, 이 일 역시 당연히 일어날 일이지." 그 말과 함께, 개는 책을 완전히 먹어치워 버렸다.

멀리서 으스스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귀중하디 귀중한 책들 중 하나를 강탈당한 도서관이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벽에서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은 점점 커져 수 미터를 넘어 천장을 덮어갔다. 도둑을 잡으려 사서들이 모이고 있었다. 오소리가 경고했다. "너도 나머지 두 권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지. 우리가 그걸 찾을 거다. 그리고 널 죽일 거고."

개는 웃었다. "그때가 되면 기적을 볼 수 있겠네."

천장을 덮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형체를 갖추고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긴 팔이 그들을 잡으려고 달려들었다. 개의 주변에서 푸른 불길이 일어나 소용돌이쳤고, 그림자들을 에워싸 흩어버렸다. 오소리가 허공에서 창을 몇 개씩 만들어내 쏘았으나 그것 또한 불길에 삼켜졌다. 불길이 방을 완전히 휩싸기 직전, Cat With Eye가 길을 열고 나타나 오소리를 붙잡고 뛰었다. 다시 길에 들어가기 직전 뒤를 잠시 돌아보자, 화마에 먹히고 있는 방 한가운데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개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지가 열렸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에 고양이는 잠에서 깼다. 잽싸게 케이지에서 나와 책상 위로 뛰어올라 보니, 커다란 휑한 컨테이너 안에 들어와 있었다. 조명과 책상, 컴퓨터 몇 개 말고는 단촐했으며, 사람들이 여기저기로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나 이거 어디서 봤어. 어디 수해가 났을 때 피난민들이 임시로 들어와 있던 그런 덴데." 여자 한 명이 어깨를 으쓱하고 다가왔다. "맞습니다. 지금 여기 시설이 박살이 나서 현장 지휘소를 임시로 꾸렸죠. 근처에 딱히 징발할 건물도 없어서요. 처음 뵙겠습니다. 무진시 특무부대 뮤-39 소속 유리 요원입니다. 제가 위원님 지원 업무를 맡았습니다."

고양이가 수상쩍은 걸 바라보듯이 요원을 쳐다보았다. "내가 알기로 여긴 무진시에서 60km는 떨어진 기지인데. 왜 나와 있는 거지?"

"지원 나왔죠. 두 번째 습격으로 여기 기지가 완파되었고, 부상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가장 가까운 기지가 제64K기지여서요. 내부보안부 분들은 오후는 되야 도착한다고 하는데, 먼저 둘러보실 겁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감찰에 필요하니까 내 숙소는 1인실로 마련해주고, 비서 방도 1인실로 마련해주면 고맙겠어." 고양이가 책상에서 뛰어내려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유리 요원이 다시 어깨를 으쓱하고 뒤따라갔다.

제209K기지는 원래, 여러 민감한 자료와 변칙적인 문서들을 보관하고 격리하는 곳이었다. 종이가 걸어서 도망칠 수는 없었기에 애초에 그리 크거나 경비가 삼엄한 곳은 아니었으나, 지금은 기지가 있었다는 흔적조차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천장은 거인이 주먹으로 내려치기라도 한 듯이 완전히 내려앉아 있었고, 모든 문서는 불타고 찢겨서 알아볼 수 없었다. 고양이가 혀를 차며 유리 요원을 따라 다른 컨테이너로 들어갔다. 그 컨테이너 안에는 수십 개의 모니터들과 컴퓨터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 초소 근무일지하고 감시카메라 자료 있지? 그것도 다 주고."

"위원님, 현재 영상 분석을 통해서 무효화된 변칙개체가 뭐고, 도주한 건 뭔지 파악하는 중입니다. 해당 초소 감시카메라 영상을 전부 다 복원하는 건 우선순위에서—"

"요원." Cat With Eye가 유리 요원의 말을 잘랐다. "피해 수습이나 확보, 격리, 그런 건 내 업무가 아니야. 그런 건 현장 실무진하고 한국 사령부가 할 일이지. 그리고 배신자를 찾아내는 것도 내가 할 일은 아니야. 내부보안부가 할 일이지. 윤리위원회가 왜 합동으로 감사를 진행해야 하는가? 왜 윤리위원회가 이 일에 끼라는 지시가 떨어졌는가? 난 그걸 알아야겠어. 뭔가 구린 게 있단 말이지."

"구린 거라면 하나 있죠." 유리 요원이 살짝 욱한 표정으로 말했다. "습격을 한 게 당신처럼 말하는 동물이라는 거."

"뭐?" 고양이가 머리를 홱 돌렸다. "당장 틀어봐."

유리 요원이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가, 모니터 앞에 앉아있던 오퍼레이터에게 지시를 내렸다.

책에 대한 책 : 모든 지식과 책, 문서를 찾아내고 그 내용을 옮겨낼 수 있는 책
러셀의 역설 (이발사는 제 머리를 이발할 수 있는가?)
불완전하게 존재 or 책이 아닌 상태로 존재 - 자신에게 생명을 준 것을 찾아 떠남 - 한국 고오오오옹격 (한 번은 얘가 한 번은 그거 찾아온 개가) - 그래서 관련 사건 조사하던 플렉시테리언 프로젝트 담당자들이 얘 불러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