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P-after

#0

"이번에 우수한 신입이 들어왔다 했던가?"

일이 말했다.

"예. 반응속도와 순간사고력, 대 SCP전에 특화되었습니다."

십이 일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래… 계속 해 주게."
"3년 전, 감마-7이 평행우주 14에서 영입한 인재입니다. 해당 인물은 D계급 출신으로서, 높은 실험 성공률과 100%의 생환률을…"
"그만. 칭찬은 이만 됐네."

십이 입을 다물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
"SCP들을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

일이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나무와 손톱이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다시 물어보겠네."
"네."
"그는,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인가?"

십은 잠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저는.."

#1

"그쪽의 SCP는 허벅다리 부근이 약점으로 추정됩니다. 총으로 대충 쑤셔박으면 될 겁니다."
"예!"

온 몸을 검은 갑주로 두른 남자가 등에 걸린 소총을 꺼내들었다. 푸른 대검을 든 인간형 개체에게 정조준 후 발사한다. 시끄러운 총성이 울렸다.

"이곳에 오기 전, 못 다 했던 브리핑을 이어 하겠습니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크흠.

"이 세계의 SCP들은 도구형, 건물형이 대부분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소수로 파견된 겁니다."

나는 멀리서 스르륵 다가오는 어둠에, 총에 부착된 플래시를 비추었다. 어둠은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번 목표는 이 세계의 대화 가능한 인간형 SCP와 재능 있는 사람들을 포섭하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만일 포섭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면 즉시 사살하십시오. 그럼, 임무 시행합니다."

나는 가지고 있는 SCP-177[11]. 지팡이형 SCP를 바닥에 내리찍었다. 동시에 내 관할 직원들의 위치, 사고 등이 머리 속으로 입력되기 시작한다.

"흩어지십시오."
"네!"

직원들이 빠르게 사방으로 달려갔다. 나는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약 10분간 산책하듯 움직이자, 직원 하나에게서 신호가 왔다. 투항의지를 보이는 SCP를 확보했다는 보고였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한 후, 해당 직원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복도의 반대편에 질척질척한 진흙으로 이루어진 파도가 나에게 밀려오는 것이 보인다.

"쯧.."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시계방향으로 돌리자 투명한 구체가 나를 감쌌다.

진흙의 파도는 그대로 나를 휩쓸었지만, 나를 기준으로 반경 1m의 내부로는 들어오지 못했다. 사방이 진흙으로 둘러싸여 있자니, 꼭 생매장을 당한 듯 한 기분이 들어 인상이 찌푸러진다.

이번에는 반지를 반시계방향으로 돌렸다. 나를 감싸던 구가 크기를 점점 키워갔다. 진흙은 구체에 점점 밀려나갔다.

"이제 조금 낫네."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발걸음을 이었다.

#2

"말도 안되는 소리!"

구가 소리쳤다.

"애초에 당신의 말은 그때부터 믿지 못했었소! SCP-2000?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번에는 구의 말에 동의합니다. 중범죄를 저질러 실험체로 들어온 자에게 무슨…"
"조용!"

십일이 동의하자 일이 소리쳤다. 짙은 정적이 깔렸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라도 있나?"

십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기본적으로 그가 소유하고 있는 도구형 SCP는 기록상 213개입니다. SCP-109[03]. 인벤토리를 포함해서요."

조용히 듣고 있던 05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일은 손을 올렸다.

"계속하게."

십이 일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가 직접 SCP 실험에 투입된 횟수는 대략 2500회, 도구형 SCP를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성공률은 78%."

십이 입가를 매만졌다.

"도구형 SCP를 사용한 경우, 96%입니다."
"뭐…?"

구는 처음 듣는다는 듯 한 소리를 냈다.

"그는 SCP들의 이용 방법을 압니다."
"그는 SCP들의 제압 방법을 압니다."
"그는 SCP들의 실험 방법을 압니다."

십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끝맺었다.

"그는 SCP와 세상의 융합에 필수적인 존재입니다."

#3

"아…"

나와 부하 직원의 눈 앞에는 메이스를 땅에 쳐박아놓은 새하얀 갑옷이 꼿꼿이 서 있었다.

"음… 안녕하십니까? 현재, 당신의 시설에서 다량의 SCP가 탈출했습니다. 추정되는 이유로는 SCP-007이…"
"아뇨."
"…?"
"제가 그랬습니다."

나는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이 SCP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신께서 그러셨습니다. 이리 하면 곧 나의 사자가 올 것이니, 그를 따르면 너 또한 구원받으리라."

그것은 굳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그리 했을 뿐."

부하가 나를 향해 의문을 가득 담은 눈빛을 보냈다. 아냐, 신의 사자라니. 임마. 나는 인간이라고, 멍청아.

"저를 구원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가 나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이 경건했다.

"…아. 예. 제가 그 사자입죠. 저만 따라오시면 구원인지 뭔지, 해 드릴 테니…"
"감사합니다!"

SCP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나는 거짓말을 하느라 양심에 털이 났지만, 애저녁에 잃어버린 양심에 털이 난들… 버려진 쓰레기가 더 흉해질 뿐이다.

"그렇다면 저의 눈을 보세요."
"네!"

나는 눈에 이식된 SCP-079[84]를 사용했다. 나의 눈에서 희미하게 빛이 나고, 입에서 낯선 기계음이 섞여나왔다.

저는 당신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능력을 사용해주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제가 당신을 거두어주었으면 합니다.
신성한 계약의 율법에 따라, 상호가 원하는 것은 이루어집니다.

눈에서 빛이 사그라들었다. 만화나 애니같은 곳에서 보면, 계약이 성립되면 빛이 사방에 퍼진다든지, 어디에 문신이 생긴다든지 하는데… 이 SCP는 그런 것은 없다. 그냥, 서로가 하기로 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 그뿐이다.

"아아… 신성하기도 해라…"

그는 조용히 읊조렸다.

"대장."
"뭐요."

부하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쟤도 참 이상합니다. 그렇죠?"
"너는 닥쳐주세요 제발…"

#4

감마-7. 상부를 위하여.

해당 특무대는 대부분이 SCP로 이루어져 있다. SCP-049[01]과 그의 좀비로 이루어진 알파-01. SCP-035[01]이 혼자 활동하는 엡실론-08처럼.

사람 또한 존재하지만 SCP의 부하직원이 대부분이다. 아무리 운동을 열심히 하는 프로 운동 선수도, 평범한 SCP를 이기기는 힘드니까.

상부를 위하여를 제외한 다른 특무대는 대부분이 사람으로 이루어져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되도록 교육을 받고, 교육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SCP에게 한쪽에 특화되도록 훈련을 시키는 멍청이는 상부에 없었다. SCP-049[01]이 흙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보고 싶긴 했는데.

아무튼, 감마-7 특무대에서 우리 부대의 존재는 약간 이질적이다. 지휘관이 인간이기 때문이다.

후후… 눈치 챈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인간은 바로 나! D계급의 죄수에서 자수성가한 위대한 인물!

"대장은 왜 저런답니까?"
"가끔 저래. 마음의 병이야."
"인간이란…"

등 뒤에서 꼽을 주는 부하들을 잠시 노려봤다.

보통의 부대는 SCP 지휘관과, SCP 부하, 인간 부하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내가 이끄는 부대, 베타-4 부대는 인간 지휘관과, SCP 부하라는 반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상당히 이목을 끄는 상태이다.

"구원자님. 상부에서 이것을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오오. 뭐죠?"
"아헨 등급의 세계 발령서입니다."

나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SCP의 격리에 따라 SAFE, EUCLID, KETER 등급으로 나뉘듯, 세계의 SCP 위험도에 따라 FAIRY, TIW, AHEN 등급으로 나뉜다. 페어리 등급은 해당 세계의 모든 SCP들이 탈주한다면 최대 1년 이내로 모두 재격리가 가능한 경우. 티브 등급은 10년 이내로 재격리가 가능하지만 세상에 혼란을 일으키는 경우. 아헨 등급은 재격리에 수 세기가 요구되며, 해당 세계에 괴멸적인 피해를 입히는 경우이다.

…별 일 없을 것이다.

근데 그럴 리 없겠지.

시발…

#5

아헨 등급의 세계에는 SCP 이외에도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혼돈의 반란, Are we cool yet, 사르킥 숭배, 아무 것도 아닌 자… SCP들이 모든 차원에 존재하듯, 다양한 요주의 단체 또한 모든 차원에 존재한다.

특히 아헨 등급의 세계는 위험한 단체의 본거지가 있을 확률이 높다. 세상이 혼란스러운 만큼 모습을 숨기기 쉽기 때문이다.

내가 감마-7에 들어온 지난 3년간, 페어리와 티브 등급에서는 한번도 충돌하지 않았던 단체들이 아헨 등급의 세계에 들어설 때마다 마찰을 일으켰다는 점 또한 나의 걱정에 한 몫 했다.

"…그래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중지손가락의 끝 부분으로 찌푸려진 그곳을 꾹꾹 눌러댔다.

"발령은 언제이죠?"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3일 후입니다."
"뭐요 시발?"

보통 준비기간은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 정도 주는 편이다. 해당 세계의 SCP를 조사하고, 대응법을 미리 알아놓아야 하니까.

"하… 이런 미친 상부자식들이…"

3년 전부터 꾸준히 나를 싫어하는구만…

"다들… 준비해주세요."
"네!"

내 관할 부하직원은 총 넷이다. 간략히 말하자면

SCP-173[12] 백색 피부의 남자. 검은 갑주를 벗은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주로 총기류를 사용한다. 페어리 등급의 세계에서 영입하였다. 성실하지만, 장난기가 많다. 하얀 갑옷의 성기사를 발견한 직원도 이 남자이다.

SCP-023[44] 절제의 수녀. 자신의 임의로 모든 정신오염에 저항할 수 있으며, 원하는 자에게도 저항이 가능토록 만들 수 있다.

SCP-022[44] 파괴의 수도승. 수녀와는 각별한 사이이며, 상대가 특정한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괴력을 발휘한다. 무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 둘은 티브 등급의 세계에서 영입하였다.

마지막으로 SCP-741[50] 광기사. 최근에 영입된 SCP이다. 하얀 갑주를 입고 메이스를 무기로 사용한다. 가끔 들리는 '신의 목소리'를 무조건적으로 따르며, 수단은 가리지 않는다. 페어리 등급의 세계에서 이틀 전에 영입하였다.

그렇게 나까지 총 다섯. 소수로 편성된 팀이니만큼 간단한 임무, 혹은 협력 임무를 수행한다.

"…심지어 협력 특무대는 없어? 없다고!? 이런 또라이 새끼들!"

나는 발령서를 땅에 집어던졌다. 격렬한 몸짓과는 반대로 팔랑거리며 땅으로 떨어지는 종이조각이 화를 더 돋군다.

"…대장님 또 왜 저래요?"
"…저것이 마음의 병…"

한참동안 씩씩댄 나는 마음을 차분히 했다.

그래… 윗대가리가 뭘 알겠어… 푹신한 소파에서 향긋한 커피나 마시고 앉아있겠지…

시발 화나네?

"으아아아!! 아헨!? 아주 그냥 106[01]의 차원주머니를 탐험하고 오라 그래라!"
"인간이란…"

수도승이 중얼거렸다.

지령서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날짜는 3일 후.
협력 특무대 없음.
발령 세계는 99번 세계, 아헨.
목표는? 없음.
다음 지령이 내려올 때까지 대기라는 것.

다시 말해, 너희 좆됐어. 라는 뜻이다.

#6

"무사 귀환을 빌겠습니다!"

SCP-001[14]의 보안 인가 04등급의 보안 책임자가 나에게 경례했다. 나는 경례를 마주 해 주었다.

다차원 여행 기계는 건물 한 채 정도의 크기이다. 내부는 완전히 비어있으며, 바깥의 패널을 통해 이동할 세계를 지정한다.

SCP-001에 수녀를 마지막으로 나의 부대가 전부 탑승하자, 문이 스르륵 닫혔다.

잠시 후에 SCP-001의 내부가 암전됐다. 이럴 때마다 구형 엘리베이터가 생각 나서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된다.

어둠에 눈이 차츰 익숙해지자, 주변으로 희미한 빛의 점이 생겨난다. 하나 둘씩. 마치 우주의 별처럼. 그리고는 내 방향으로 점점 이동한다. 내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인지, 내가 별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은 구분하기 불가능하다.

그저, 빛이 점점 선이 되어, 나의 주위를 감싸갈 뿐.

빛은 점점 거세져 눈을 뜨기 힘들 정도가 된다. 눈을 꼭 감는다. 미칠 듯 한 눈부심에 양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빛이 사그라든다.

양손을 눈에서 뗀다.

…아헨 등급의 세계에 도착이다.

#7

"여기는… 공기부터가 별로인데요?"
"후…"

SCP-001[99]를 격리하는 재단의 밖에 나서자, 세상이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세계의 SCP에게 영향을 받은 것인지, 이 세계는 원래 이런 것인지. 사람들은 아무런 관심을 주지 않은 채로 일상을 이어간다.

"여기는… 꽤 당당한 놈들이 많네요."

나는 짜증을 담은 손짓으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대문짝만하게 'Are We Cool Yet?'이라는 문자가 적힌 기계가 하나 있었다.

기계의 모양은 기묘했다. 휴머노이드처럼 사람의 형상인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부터 자동차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두 개로, 네 개로 분할하더니 순식간에 합쳐져 크기를 키웠다. 이내 증기를 내뿜으며 크기를 줄였다.

"…이런 미친."
"…불길한 건출물입니다."

광기사가 동조했다.

나는 허공에 손을 집어넣었다. 약간의 시간동안 뒤적거리다가, 투명한 병에 들어있는 파란색 액체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기계를 향해 집어던졌다.

"뚜껑은 안 엽니까!?"

백색 피부의 남자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안 열어도 되는 거니까 저기 저 뚜껑처럼 입 좀 닫아줄래요?"

그의 목소리는 톤이 높고, 크기가 크기 때문에 계속 듣다 보면 머리가 울려온다. 그런 주제에 말 수는 굉장히 많다.

"대장님은 나만 싫어해…"

남자가 중얼거렸다. 나는 가뿐히 무시한 채로 AWCY의 구조물을 지켜봤다. 기계는 약 3초 이후에 급작스레 작동을 중지했다. 10초가 더 지나자, 기계 부품 하나 하나가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인벤토리."

나는 문신 형식으로 이식받은 SCP를 이용하여, 기계의 부품들을 차례차례 차원 주머니 내부로 집어넣었다.

"…후."

Are We Cool Yet…? 망할 놈들이… 쿨하다 못해 얼어 죽도록 만들어줘야 하나…

마지막으로 남은 기계 부품을 집어들자, 하나의 유리병이 튀어나왔다. 유리병의 내부에는 수백 개의 눈알이 들어있었다.

충분한 사이즈가 아니었기에, 몇몇 눈알은 찌부러져 있었다. 반쪽이 된 눈동자와 남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비위가 약한 남자는 고개를 돌려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그 유리병마저 차원주머니의 내부에 집어넣었다.

백색 피부의 남자가 나에게서 거리를 벌렸다.

"…뭐요."
"그… 아닙니다."

나는 방금 차원주머니에 집어넣은 유리병을 꺼내 남자에게 던지는 포즈를 취했다.

"아…아…! 진짜 그러지 마십쇼!"
"에비~"
"아! 진짜! 대장! 싫어할 겁니다! 저주할 거에요!"
"수녀가 풀어주겠지."
"아! 진짜!"

시끄럽지만 놀리는 맛이 있다. 나는 낄낄 웃었다. 충분히 재미를 본 이후, 투덜거리는 남자를 뒤로 한 채 걸음을 옮겼다.

"이 세계에 온 직후에 신호가 왔어. 아마 도구형 SCP를 통해 보낸 것 같은데."
"어디서 말입니까?"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뱀의 손."

#8

뱀의 손.

본래 인터넷에서 봤던 SCP 재단 공식 사이트에선 재단과 적대 관계였다. 지능을 가진 SCP 개체, 혹은 인간형 SCP 개체를 탈출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집단이기에 격리를 목표로 하는 재단과는 충돌이 잦은 집단이었다.

하지만 SCP-001이 발견되고, 감마-7, 상부를 위하여가 조직이 되며, 재단에 협력적인 개체를 포섭하기 시작하자 어느 정도 중립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를 부른 사람은 그 수장이란 말이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뱀의 손이라는 단체는 상당히 권력 있는 단체이다. SCP 재단에게 대항할 수 있는 얼마 없는 단체이기도 하며, 인권주의자들과 동물 애호가들의 지지를 받는 단체이다.

해당 집단의 수장? 05 평의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봐야겠지.

"이동합니다."

나는 축 쳐진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영문을 모르는 부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가는 길에 무엇인가 스펙타클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별 일 일어나지 않았다. 광기사와 남자를 본 사람들이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냐며 사진 촬영을 요청했던 것 이외에는 말이다.

신호를 보낸 위치에 도착한 우리를 반기는 것은 한 주점이었다. 여러 주정뱅이들이 고성방가하며,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오랜만에 듣는 일상의 소리였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로비에서 서빙하는 종업원의 귓가에 속삭였다.

"뱀의 손 수장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종업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젠장. 엄한 사람에게 귓속말을 한 것인가? 굉장히 쪽팔리는 일인데.

-이봐. 그 녀석에게 '나는 슬픔을 아는 썬연료가 좋더라'라고 말해.

뭐요?

"나는 슬픔을 아는 썬연료가 좋더라?"

내가 중얼거리자 종업원의 표정이 달라졌다. 하지만 이내 표정을 풀고 싱글벙글 웃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안내드리겠습니다."

#9

-또각
-뚜벅
-또각
-뚜벅

종업원의 구두굽 소리와 나의 신발 소리가 규칙적으로 반복된다.

"너희들은 발소리가 안 나네요?"
"발소리를 줄이는 것은 전투의 기본입니다."
"동감입니다!"

아… 예. 그러십니까.

나는 짜게 식은 표정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약 30분 동안 걸음을 옮기자 하나의 거대한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네? 문은요? 저기요? …야!"

종업원은 돌아가 보겠다는 말을 남긴 채로 스르륵 사라졌다. SCP보다 더 신출귀몰하네… 아니, 문은?

내가 잠시 어이없다는 듯 문을 바라보고 있자, 문이 드르륵 소리를 내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자동문이었구나?

최첨단이네!

나는 종업원에게 소리쳤던 것이 민망하여 크게 헛기침을 하며 앞장서 걸었다.

크흠!

문의 뒤는 짙은 어둠이 깔려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도는 아니었다. 실루엣이 약간 보이는 정도?

넓은 길의 중앙에 의자처럼 생긴 윤곽이 드러났다.

"오셨나요?"
"덕분에요."

의자 방향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나른하지만, 힘이 실린 목소리.

"당신이 D계급 출신의 사령관 맞나요?"
"다 알아봤으면서 왜 물어보는 건가요."
"확인절차죠. 당당한 모습은 보기 좋네요."

순간적으로 나의 목을 독사가 핥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SCP-666[66]을 통해 전신에 불을 붙였다.

"하지만 도가 지나치면 만용이랍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하하. 장난이 심하십니다."
"이런 장난, 좋아하시는 줄 알고."

여자의 목소리에 약간의 활기가 들어섰다. 분위기가 점차 풀어졌다.

"14 세계의 재단에서 파견되었다죠?"
"…네."
"협력 부대가 없다고 들으셨을 거에요."
"그렇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화가 난다. 몸의 주위에 붙은 불이 크기를 키웠다.

"진정하세요."

여자가 작게 웃었다.

"당신과 협력할 부대는 없겠지요. 저희 단체가 당신을 도울 텐데."

…세상에. 저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거람.

#10

나는 동요를 숨기고 대답했다.

"…저희 단체라면, 뱀의 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은."

말을 잠시 쉬었다.

"검은 여왕을 이야기하는 겁니까."

방의 어둠이 한층 더 짙어졌다. 이제는 흐리게 보이던 실루엣조차 확인이 불가능해졌다. 온 몸에 둘러싼 불꽃은 어둠에 먹혀버린 듯, 빛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어머."

시리도록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까지 알고 계시는 거죠?"
"어느 정도는 말입니다."

약간의 침묵이 지속되었다. 이내 그녀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저 떠 본 것이었군요?"

나도 마주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런 조크, 좋아하시는 듯 하여."

어둠이 옅어졌다.

"숙녀에게 실례되는 조크였네요."
"숙지하겠습니다."

그녀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요. 검은 여왕도 연관되어있지만… 대외적으로는 뱀의 손이 당신을 지원하는 역할이에요."
"지원이라면?"
"당신 부대의 호위. 필요 도구형, 이식형 SCP의 지원… 일단은 이 정도네요. 필요한 정보가 있으면 따로 드리도록…"
"아니죠."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직 가장 중요한 걸 말씀하시지 않으셨지 않습니까."

그녀가 말을 건넨 순간부터 지금까지 들었던 의문점.

"뱀의 손은 어째서 저희를 지원하는 겁니까."
"…"
"재단과 뱀의 손, 둘이 힘을 합쳐야 할 정도면 상대가 상당히 강한 세력일 터인데, 저희도 무엇인가 알아놓아야 대처를 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알아도 상관없는 일이에요."
"나중은 없습니다."

나는 씹어 뱉듯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은 그런 일이니까요. 타 부대 직원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SCP 또한 무적이 아닙니다. 당장 제 부하들만 해도 총알이 머리에 쑤셔박히면 죽는 것은 매한가지죠. 나중? 모두가 죽고 난 후에 허공에 떠들어댈 심산이신가요?"
"…"
"그렇기에 저는 요구합니다."

나는 그녀를 노려봤다. 그녀 또한 나를 마주보았다.

"저희의 적은 누구입니까."

#11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저는 동맹으로 조금 더 멍청한 아이가 오길 바랬어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매혹도 저항할 줄은 몰랐네요. 왠만한 아이들은 제 말이면 그냥 넘어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수녀의 실루엣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땡큐!

"…그래요. 알려드려야 하는 일이긴 하죠."

그녀가 체념한 듯 말을 이었다.

"혼돈의 반란."

예상 내의 단체였다.

"사르킥 숭배."

…뭐라고?

"부서진 신의 교단과 세계 오컬트연합."

잠시만.

"그리고 최근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 또한. 그들 전부가 우리의 적이에요."

나는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대체 무슨 짓거리를 하고 다니셨기에 적이 이리 많답니까?"
"숙녀에게 단어 선택이 지나치게 격하군요."
"정정합니다. 무슨 개짓거리를 하셨기에."

그녀가 설핏 웃었다.

"이번만은 넘어가드리죠. 사실 우리가 한 것은 없습니다. 원래부터 적이었던 자들이, 더 강세해졌을 뿐이죠."
"조금 더 자세히."
"우리와 재단의 목적은 전체적으로 '보호'의 성향을 띕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순한 정보 취합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들 단체의 개괄적 목표에 대한 성취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 것이죠."
"…"
"그래요. 사르킥 숭배를 예시로 들어볼까요? SCP-999[99]는 그들의 숭배 대상이에요. 왜곡된 신의 형상이라는 SCP로, 그들이 그리 원하던 '사르킥'이 세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게 해주죠. 최근에는 사르킥교의 창시자인 '카르시스트 이온'이 환생했다는 소문도 있네요."
"이런 미친…"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SCP-999[99]를 알게 된 그들이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당연하죠. 탈취에요. 아마 당신 부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부대는 99세계로 이동했을 거에요."
"그래서."
"그래서에요. 소수로 된 당신의 부대를 불러온 것은."

그녀는 대단한 비밀을 말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그들을 내부에서부터 깨뜨려 달라고요."

#12

"스파이 짓을 바라시는 겁니까?"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잠입 역할이겠죠."
"사르킥 숭배에 말입니까?"

실루엣이 입을 가리며 웃었다.

"후후. 아직 그곳은 일러요. 우선은 당신이 가야 할 곳은… 혼돈의 반란이네요."

혼돈의 반란… 상당히 저명한 단체다. 재단의 적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체이기도 하고.

"최근에 뭔가 사건이라도 있었습니까? 평소대로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다면, 굳이 부대를 파견할 필요까지는 없을 텐데요."
"사건이라… 아마 그쪽 재단의 언어로 하자면 [데이터 말소]라 해야 하나요. 당신에게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
"당신이 임무를 수행하는 것에 역사 공부는 필요 없잖아요?"
"…일단은 알겠습니다. 잠입 위치와 날짜, 잠입에 필요한 정보들과 혼돈의 반란 세력도를 준비해주시죠."

여자는 다시 웃었다.

"시원시원하네요."
"그것이 제 모토라."

여자가 양 손을 휘저었다.

"부탁은 이른 시일 내로 들어드리죠. 그럼, 미팅은 여기까지에요. 더 이상은 유료 서비스랍니다."

어둠이 짙어지는가 싶더니, 유형화된 암흑이 나의 몸을 밀어냈다. 부하들도 마찬가지인지, 광전사는 바닥에 메이스를 꽂아 버티려 시도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

광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몸이 문의 밖으로 내보내졌다.

-구우웅

이내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13

"아름다운 여성이었습니다."
"말하는 거 못 들었어요? 뱀 한 마리가 몸 속에 똬리를 틀고 있던 것 같은데."

광전사가 중얼거리자 수녀가 대꾸했다. '매혹에 씌인 것도 아닌데…'

"이것은… 신께서 만들어주신 사랑…!"
"지랄하네."

수도승이 툭 하니 말을 던졌다.

나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분명 내 옆에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으면서, 저런 반응들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우선은 대기. 다음 지령이 내려올 때 까지 자율행동입니다. 시끄럽게 굴다가 어디 가서 맞지 말고요."

나는 한 아저씨를 떠올리며 살풋 웃었다.

"소집 명령을 내리면 30분 이내로 모여야 하니, 멀리 떨어지진 말아주세요."

나는 박수를 짝 소리 나도록 쳤다.

"해산!"
"네!"

그들은 바닥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이 곳의 상당 건축 양식은 상당히 특이하더군요."
"식문화도 상당히 발달한 것 같던데?"
"여자에 한 눈 팔면 죽여버릴 겁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멀어져가는 부하들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도 같이 가자고 하질 않는군.

나는 온 길을 따라 발을 옮겼다.

#14

버터에 튀기듯 구워낸 작은 갑각류를, 숟가락으로 껍찔채 퍼먹는다. 갑각류 특유의 바다 향이 입을 감싸고, 향긋한 버터가 코를 자극한다.

한 마디로…

"비려!"

나는 주인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말했다.

"튀김의 온도는 지나치게 낮아서 속까지 익지도 않았고, 버터가 내부에 스며들다 못해 푹 절여졌잖아…"

나는 먹던 것을 근처의 통에 뱉어놓고 입을 슥 닦았다. 그리고는 카운터의 직원에게 지폐 한 장을 툭 내밀며 말했다.

"잔돈은 필요 없습니다."

크으… 한 번은 해 보고 싶었어. 영화같은 곳에서 자주 나오잖아?

나는 간판에 '엠브로즈 레스토랑스'라고 적힌 가게를 나섰다.

-한가하시네요.
"당신이 연락이 없었잖습니까?"
-어머, 원래 그런 건 멋쟁이분께서 먼저 연락을 해 주셔야죠.
"저는 신사는커녕 되먹지 못한 사람이라."
-겸손도. 그건 그렇고 신사는… 아니에요.

나는 이쑤시개로 어금니에 낀 비릿함의 결정체를 떼어냈다.

"그래서… 정보는요?"
-지금 드리죠.
"어떻게 말입니까?"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정보의 파도가 휘몰아쳤다. 가지고 있는 지식과, 새로 들어온 지식이 맞물려간다.

-이렇게요.
"제발 이런 짓거리를 할 거면 말을 좀 미리 해주시겠습니까?"
-다음부터는 그러죠.
"…세상에. 내일 임무 돌입이라구요? 미치셨습니까?"
-남들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세간에선 그걸 미쳤다고 합니다."

나는 짜증이 섞인 손짓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연결 끊으세요."
-연락을 먼저 하지도 않으셨으면서 먼저 끊으시려 하시다니… 여자를 다루는 법을 잘 모르…
"끊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헛소리를 사전에 차단하고 멋대로 연결을 끊었다.

"후…"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바닥에 툭, 소리가 나도록 지팡이의 끝부분을 내리쳤다.

"집합입니다."
-자…잠시만…! 이것 좀 먹고!
"늦게 오면 SCP-049[01]이 이끄는 부대에 좀비로 넣어달라 요청하겠습니다."
-먹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많이 있죠! 바로 갑니다!
-거의 도착했습니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30분 이내로 모든 인원이 소집되었다.

#15

-수화물에 숨어 잠입이라니, 생각보다 고전적이네요.

정말 고전적인 것은 이들의 본거지가 아닐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인도의 지하에 기지를 만들다니…

제 3세계 국가들의 독재 정권을 이용하는 집단치곤 굉장히 외딴 곳에 기지를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 재단도 섬에 있는 격리실이 있잖아요? 그거랑 비슷한 거랍니다.

나는 수녀를 시켜 나의 정신을 읽는 발칙한 여자와의 연결을 끊었다. 도움을 더 줄 생각은 없으면서 떠들기만 하고. 정신이 산만해질 뿐이다.

'모이세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후 SCP-900[08]에 의해 복제된 SCP-268[01]을 모두에게 씌워주었다. 투구를 착용한 백남이와 광전사는 그 위에 얹었다. (백남이는 백색 피부의 남자를 줄인 말이다. 나름 애칭으로 부르고 있는데, 당사자는 상당히 싫어하는 듯 하다.)

모자를 쓴 순간 모두의 몸이 투명해졌다. 나는 지팡이를 소리 나지 않도록 바닥에 찍었다. 모두의 위치와 사고가 공유되기 시작한다.

-나를 따라오세요.

컨테이너가 열리는 순간,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이동을 시작했다.

L.S.에게 받은 정보를 토대로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카오스 시설의 내부는 재단 시설과는 사뭇 달랐다. 검은색과 회색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간간히 카오스의 심볼이 벽에 그려져있었다.

십자형 갈림길과 일자형 복도를 지나길 수 차례.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일이 생기면 카오스의 일원이 탈 때 한 명씩 순차적으로 이동했다.

카오스 시설 내부는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였다. 가끔 순찰을 도는 카오스의 군화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령관…?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무슨 개소리죠?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곧 복구를…

저기요? 야!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자마자,

"오랜만이야."

다소 경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