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지다

고의가 아니었다.

방 안에 피냄새가 짙게 느껴지고, 갑작스래 오한이 내 몸을 덮친다. 몸이 미친듯이 떨리고, 이가 빠르게 맞부딪히고, 콧 속으로 기어들어온 피냄새가 뇌를 간질인다.

내 눈 앞에 쓰러진 남자와, 목에 박힌 소주병과, 바닥을 덮은 피웅덩이. 이 모든 것은 고의가 아니었다.

남자의 목에서 피가 더 흐르지 않는다. 병이 박혀있는 부분이 시뻘겋게 굳어있다. 피웅덩이가 퍼지기를 멈췄다.

얼마나 이러고 있던거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몇시간은 서있었던 것 같다. 나는 멈춰있던 숨을 쉬기 시작한다. 폐에 산소가 들어오자 머리가 맑아진다.

눈 앞에 상황이 머리 속에 들어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