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1

1.

— 헤어졌어요.

— 잘 됐네.

— …

— 진짜?

— 네.

— 왜.

김윤과 주명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붙는다. 윤이 먼저 시선을 내린다. 돼지 껍데기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불판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는 주명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는다. 독촉하는 듯한 주명의 시선이 꽂히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윤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는다.

시간은 새벽 3시. 둘은 임무를 공유할 겸하여 이곳, 명천포차로 왔다. 이곳으로 오자는 아이디어는 윤에게서, 소주를 마시고 고기를 먹자는 아이디어는 주명에게서 나왔다.

윤은 헤어졌어요, 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시간 좀 갖기로 했습니다, 라고 말하려고 했을 뿐이다. 윤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대해 모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당혹감이 섞인 책임감이다.

그는 시선을 돌려 술집 내부를 둘러본다. 새벽,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술을 마시고 투정을 부리고 있는 예술가들로 가득찬 식당은 어딘지 모르게 윤이 느끼고 있는 기분과 화음을 내고 있다. 축축한 기분과 새벽의 건조한 바람이 서로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격언이 여기서도 들어맞는군, 하고 그는 어느 정도 적당히 비참한 기분을 느낀다.

— 대답 좀 해봐. 거 사람 피말리게.

윤은 다시 소주를 들이킨다. 소주는 썼다. 그는 쓴 소주보다는 단 막걸리를 좋아했다. 쓴 맛은 이미 인생에서 많이 봐 왔고 앞으로도 맛 볼 것이란 것이 윤의 지론이었다. 하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쓴 맛을 보고 있으니. 지금 이 순간의 쓴 맛 — 지금 그가 마시고 있는 소주보다도 수백 배는 더 쓴 맛이라고, 윤은 생각한다.

술기운이 점점 온 몸으로 퍼져갔다.

— 야, 좀 대답하지? 이놈이 갑자기 귀가 안 좋아졌나… 아니면 충격을 너무 받았나…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윤은 얼굴을 찌푸린다. 그는 소주에 집중하기를 그만두고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은 주명을 쳐다본다. 윤은 이제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 눈썹을 추켜올린 그의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그래봤자 상황이 뭐가 나아지겠느냔 생각이 어느샌가 앞선다. 결국은 그에게 아무것도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선배님은 눈치가 정말로 없으십니다.

말투는 점점 느릿하게 변해간다. 윤은 흔들리는 중심을 부여잡으려고 애쓴다.

— 왜 그러는데?

윤은 깊게 한숨을 내쉰다.

— 그러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 사내연애한다고 안 했잖아. 이야… 나한테도 숨겼으니, 너 수완 좋다. 누구야? 연이? 김 요원? 아니면… 정 선생?

그는 텅 비어버린 제 컵을 바라보며 계속 말한다. 덕분에 윤의 표정이 어떤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줄곧 압력을 받아 온 윤이 점점 한계치에 치닫고 있는 것도.

— 야, 놀려서 미안하다. 응? 말 좀 해보이.

김윤은 말없이 주명을 노려보았다. 윤의 선배인 그는 누가 보더라도 사려 깊고 다정하다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었다. 주명을 정의하는 수식어는 그런 부류보다는 '경박하고', '능글맞다' 쪽이 더 옳았다. 주명의 입가에 바로 그런 능글맞은 미소가 걸려 있는 것을 보자, 윤의 짜증은 배로 치솟았다. 동시에 후회도 같은 속도로 솟구쳤다.

이 자식한테 말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는 다시 잔을 채우고 들이켰다. 씁쓸한 느낌이 목으로 전해졌다가, 위장으로 넘어갔다.

— 누구랑, 왜 헤어진 건데?

윤은 대답 대신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내 만지작거린다. 열쇠는 손때가 묻어 번들거리고 있다. 문득 서러움이 요동친다. 얼굴은 뜨겁고, 머리는 어질거린다. 윤은 두어번 눈을 깜빡인다. 이를 악문다.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가슴은 콱 막혀온다.

한 잔 더 들이킨다. 답답함은 가라앉는데 눈물은 계속 튀어나오려고 한다. 뱃속에서 알코올을 원하는 짙은 괴물의 목소리가 울려나온다. 윤은 병을 기울여 다시 잔을 채운다. 울렁이는 소주의 감촉이 쓰리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맑은 정신은 몽롱하게 가라앉고,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는 느낌만 자욱하다.

의식 저편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2.

— 너 어디다 걸었는지 기억해야 한다?


— 왜. 네가 기억 안 하고.


윤은 장난스럽게 지애의 어깨를 약하게 툭, 친다. 일부러 토라진 표정을 짓는 지애가 사랑스러워서, 그는 부러 더 장난을 부린다.


— 내가 까먹으면 어쩌려구. 너도 기억을 해야지.


— 그러네. 너 되게 똑똑하다.


— 아니거든 바보야.


윤은 웃음을 터트리며 팔짱을 푼다. 풀려난 손이 그녀의 손에 가서 얹혀진다. 지애가 밝게 웃으며 윤을 바라본다. 그는 말없이 그 광경을 바라본다. 뇌리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광경이라고, 윤은 생각한다.


지애는 이내 주머니에서 새 열쇠 하나를 주머니에서 꺼내 윤에게 건넨다. 홈이 파인 간격은 3초를 주기로 계속 바뀌고 있다. 윤은 감탄하며 지애의 얼굴을 바라본다. 지애는 또 다른 주머니에서 다른 열쇠를 꺼내고 있다.


— 이게 뭐야? 네가 만들었어?


— 당연하지. 야, 내가 금속 세공사인데. 이런 거 하나 못 만들어?


— 대단하다…


윤은 씨익 웃으면서 연인을 바라본다. 칭찬에 우쭐해진 지애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다. 둘은 이내 철조망에 걸린 보라색 자물쇠에 시선을 돌린다. 자물쇠에는 두 개의 열쇠 구멍이 있고, 위에는 둘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 열쇠가 두 개가 있어야만 잠그고 풀리는 거야.


— 좋아… 그럼, 예술 천재. 이게 뭘 뜻하는 건데?


윤이 장난스럽게 묻자, 지애는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 우리 사이는 항상 둘이 있어야 한다는 거?


지애는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말한다.


— 우리 사이가 끝날 때에도 둘이 함께 끊어내야한다는 이야기기도 하고.


— 에이, 그런 걱정은 아직 이르다.


지애는 웃음을 터트리더니 윤의 팔을 때린다. 윤은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이 시간이 오래 가기를 빌 뿐이다.


3.

…네. 예술가와 연애했습니다.

그게 뭐 어때서요? 우리가 재단 요원인 거? 그래요, 우린 긍지 높은 재단 인원이다 이거에요? 선배님은 연애 한 번 안 해보셨습니까? 다 사내연애였다고요? 이거랑 뭐가 달라요. 우린 지금 잠입 임무 중인데.

선배님이 당황하는 거 처음 보는 것 같아요. 신기하네.

네, 맞죠. 징계감이죠. 재단의 기밀을 노리고 접근한 스파이, 요주의 인물, 어쩌면 절 죽일 수도 있었을 거고. 그런데요, 선배님. 제 말은 그게 씨발 하나도 안 중요하다고요. 제 말 알아 들으시겠어요? 그게 무엇이 중요한 일이라고 그래요.

선배님. 이게 뭔지 아십니까? 열쇠에요, 열쇠… 하하하. 열쇠…

변칙 개체 맞으니까 달라고 하지 마세요.

우리 이러고 놀았거든요. 애들마냥. 지나가다 보이는 철조망에 자물쇠 걸어놓고, 이름 쓰고. 그러면 우리가 안 깨질 줄 알았나 봐요. 등신 같이, 미신이나 믿고 있고.

그래… 예술가들은 다 또라이라면서요. 걘… 특이 케이스였나?

나 미안해서 어떡하지? 걔한테 일 주년 기념일은 되게 성대하게 챙길 거라고 장담해놨는데. 나 진짜 등신 같죠. 아니 등신이지. 등신이야… 내가…

그래요, 나갑시다. 나가요. 집에 가요. 창피하세요? 뭐 어떻습니까. 이럴 때도 있지.

이름이 뭐냐고요? 지애요… 황지애.

네, 맞아요. 명천구 요주의 크루 ‘K2RiS2ma' 보컬 그 사람이요. 난… 난 정말로. 정말로…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그런 일도 있더군요.

지애요, 키리시마 공연 때 처음 봤어요. 그런 사람이 있더래요. 노래를… 너무 잘 하더라고. 그 순간 내가 뭘 느꼈는지 아십니까?

카타르시스?

어쩌면 사랑일수도 있고. 어쩌면 카타르시스 사랑 둘 다일수도 있지만.

그 사람은 진짜 예술가에요. 알아요? 예술가라고. 지애가 부르는 가사와 음색, 둘이 뒤엉키는 꼴을 봐야해. 그건 예술이라고 밖에 못 불러요. 그런데 걔 주종목은 열쇠 세공이야. 재능이 얼마나 많은지, 그런 거 느껴봤어요? 사람이 가진 능력에 감탄하는 일?

나쁜 년.

아냐… 내가 나쁜 거지. 내가 미친 새끼지…

안 울어요. 토할 것도 아니고. 진짜라니까. 나 안 취했어요.

진짜라고.

이 길 가다가 보면 자물쇠 있어요. 지애랑 같이 살 때 해놨었어. 이 열쇠로 풀 수 있고…

같이 산 걸 지금 알았어요?

몰라요… 어디로 갔을까. 아무 말도 안 하고 나갔거든… 일어나 보니까 없었어.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갔을까…

우리… 첫 전시회애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그거 있잖아. 잠입 후 첫 전시회. 나는… 참새로 그림 그렸지. 그거 기억 나요? 죽은 참새 모아다가 푹 썩히고… 그리고 그걸로 참새를 그렸잖아. 재밌었어요. 나는… 그런데 반응은 없고. 맞아, 사람들이 그냥 가버리더라고.

그런데 얼마쯤 지났을까, 그림 앞에 누가 서 있었어요. 청바지에 셔츠 차림이고, 머리는 한데 묶어 내렸고…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때 나를 보고 말하던 입술, 어조, 표정까지. 그러니까…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간 것처럼. 열쇠가 자물쇠 안으로 들어가듯.

지애가 말했죠. "그쪽 그림 마음에 들어요."

난 그게 너무 고마웠어요.


4.

— 왜 이리 늦게 오냐고. 벌써 새벽 2시잖아.



— 너는 알 필요 없어.



— 넌 왜 항상 숨기려는 게 많은 거야?



— 나를 못 믿어?



— 그런 거 아냐. 근데 왜 맨날 무슨 약속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나가는데. 적어도 누구를 만난다, 이런 이야기는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요 근래는 더 심하잖아!



— 누가 들으면 내가 바람이라도 피는 줄 알겠다?



— …왜 나한테까지 벽을 세우는데. 왜 너 혼자 그 안에 들어가서 문을 꽁꽁 잠그는데, 왜?



— 됐어. 피곤해. 다음에 이야기해.



— …


5.

우리 집은 이쪽. 좀 더 갑시다. 좀 더… 저어기 자물쇠 걸린 철조망 보이죠? 얼마 안 남았어요. 데려다만 주시면 제가 내일 점심 살게요. 감사합니다.

헤어진 거…

얼마 안 되었습니다. 같이 살던 집에서… 걔가… 언제 나갔더라. 한 이틀 되었을까요. 삼일인가? 하여간.

모르겠습니다. 우린 자그마치 두 달간 싸웠어요. 우린… 그 두 달 동안… 서로를 의심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반응했죠. 그러니까… 어, 맞아요. 등신 짓했다 이겁니다. 잘 아시네.

걘 내가 그리 어딜 싸돌아 다니는지 궁금해 했고 난 그런 지애한테 서운했어요… 내가 어딜 가든, 난 절대 배신할 일을 만들지 않을거라고 했지만….

전시회 직후부터요. 내가 먼저 만나자고 했고… 저절로 친해졌고… 그렇게 사귀었죠.

어디로 갔을까요? 지애는…




저게 뭐냐고요? 아니, 아까 말했잖아요. 말했나? 그… 그거. 자물쇠. 지애랑 만들어놨는데…

똑같은데 뭘……. 어, 있네….


열쇠가 있네요.

맞아요, 이거 지애 꺼야. 나하고 걔하고 하나씩 나눠 가졌어….


끼워놓고 갔나봐요.

아침엔 없었어요. 아까 나올 때도.


…….

얼굴이라도 비추고 가지.

진짜……….


지가 둘이 있어야한다면서, 왜… 자기 혼자만 끼워놓고 가는 건데, 왜.

왜…..

거 씨발 보면 몰라요 우는 거? 꼭 물어봐야 해?


미안해요 선배. 그냥… 그냥… 심란해.

네. 자물쇠 풀 거에요. 이제 내 자리만 남았어. 나만 끊어내면 되는거거든요. 내 열쇠만 남았네….



됐어요. 술 먹었더니 잘 안 들어가지네. 가질래요? 변칙 물체에다 넣어놓든 하세요. 이제 쓸데도 없는데…


네, 좀 진정됐어요.

…가끔은 말예요, 선배. 가끔은…

내가 자물쇠를 풀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난 사실 재단 요원이고, 나는 잠입했고… 나는… 거짓말을 했다. 지애에게 이런 걸 털어놓는 나를 상상합니다. 내 가장 큰 비밀을 여는 나를…


받아들여줬을까요? 재단 요원인 김윤도 황지애의 연인이 될 수 있었을까요?


아마 그랬을지도 몰라요. 지애는… 걘 나를 이해해줬을거야.



내가 씨발 무슨 짓을 한거지?


안 울… 안 운다니까요.


아오. 잠깐만… 냅둬봐요…




…이야기 했으면 좀 나았을까? 우리가 이야기를 했다면…




이런 이야기해서 뭐합니까. 결국 열쇠는 내가 가지고 있었는데요. 그걸 놓친 것도 나, 주울 생각도 안 한 것도 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