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죽음이 속삭였다

길영숙 1919년생 1948년몰,
순천에서 나 무진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은 만세운동 때 왜경에 죽임 당한 할아비 제사 지내러 순천 큰댁으로 갔습니다
그러다 숲에서 영숙아 영수가아아 부르는 소리에 놀라고 겁먹어 멈춰섰습니다
반군도 토벌군도 그 소리 같이 듣고는 부슥부슥 풀 헤치고 달려왔는데
웬걸 그 소리는 간데 없고 길영숙 처녀만 덜렁 있습니다
수풀에 몸 숨길 새도 없이 군인들 억센 팔에 붙잡히어
그자리에서 유린당하고 죽었습니다
죽었으니 이야기도 거기서 끝났습니다

배개똥 1942년생 1948년몰,
광양에서 나 가족들 따라 순천으로 갔습니다
버선발 아장아장 재밌게도 걸으니 어미랑 형이랑 나들이를 갔습니다
어미 손 잡고 걸어갈 제 뚤레뚤레 고개 돌리며 묻는 것도 많습니다
엄니 엄니 저 요란한 소리는 뭐야요 물어볼 제
눈 먼 카아빈 총탄이 이마팍에 꽂혀 죽었습니다
죽었으니 이야기도 거기서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