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마포대교
"우리 다 와 가요?"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젠장, 와우. 재연은 순간적으로 창문을 깨고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박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저 개같은 질문.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날카롭게 벼려진 신경을 세우며 그녀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 첫째로, 이 차는 시동을 걸지도 않았다. 둘째로, 이 질문을 던지는 녀석들도 그것을 안다.
젠장.
겨울을 방불케하는 가을 바람이 대교를 휘감고 있었다. 강에서부터 일렁이는 추위가 바람에 가세한 듯싶었다. 그래서인지 차 안은 히터로도 막을 수 없는 한기가 가득 차 있었다. 물론 냉랭한 분위기도 한 몫 했겠지만. 재연은 자신이 추우면 더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제하려고 노력했는데, 결국은 짜증나게 하는군.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곤 백미러로 '녀석들'을 노려보며 짧게 혀를 찼다. 애써 죽이려던 짜증이 용암처럼 다시금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딴 걸 농담이랍시고 하는 건가?
"재밌어?"
재연이 묻자 그들은 복사-붙여넣기를 한 것처럼 똑같이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한 끗 다를 바없는 얼굴이긴 했다. 쌍둥이였으니까. 옆구리가 이어져있는 건 덤이고. 쌍둥이도 내심 이 분위기를 깨달았는지, 굉장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 명은 그랬다. 쌍둥이 중 왼쪽에, 그러니까 그들 기준으론 오른쪽에 있는 남자는 조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으레 나오는 표정이 남자의 얼굴에 어렸다. 일부러 신호를 주는 것 같은데, 반대편 남자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싱글거리고만 있는 양이, 동생 쪽은 아무래도 눈치가 더럽게 없는 모양이었다. 쌍둥이인데도 정말 다르긴 하군, 하고 재연은 일부러 더 인상을 찡그리고 백미러를 보았다. 재연과 눈을 마주친 첫째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미안해요 누나. 그만할게요."
"엥, 재미 없었어요? 긴장 좀 풀어주려 했더니만."
재연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내 긴장은 신경 안 써도 되는데요."
오른쪽에, 그러니까 그들 기준으로는 왼쪽에 있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얘 말은, 우리 긴장도 풀 겸해서… 하하." 말도 안 되는 걸 아는지, 그는 말하다 얼버무렸다. 그들은 동시에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흘낏 쳐다보았다. 재연은 갑자기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쓰잘데기 없는 장난만 치는 샴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앤더슨 로보틱스를 추격하라니. 그녀는 그들이 교전이나 가능할까 싶었다. 전생에 나라라도 팔아먹는데 일조했나 싶기도 했다. 재연은 자신이 왜 이렇게 된 건지 기억을 되살렸다.
2019년 8월 20일
서울특별시 제11K기지
"새 기특대요?!" 재연이 흥분에 가득 차 소리를 내질렀다. 그들은 제11K기지의 한적한 면담실 구석에 앉아있었다. 재연을 마주보고 있던 나이가 지긋해보이는 여성이 대답했다. "그래, 제타-7.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하고."
"아, 넵." 그래도 재연의 눈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기특대라니! 재단에 들어온 이후로 처음으로 입대하는 부대였다. 특히나 자신의 동기가 전부 다른 기동특무부대에 가 일할 때에도 홀로 개인 자격으로만 활동하는데 적잖은 자격지심을 느끼고 있던 터였다. 또, 취급도 훨씬 좋으니까. 이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지휘관님께는 언제 인사드리면 되죠? 아, 부대실은 어딘가요? 또, 부대원들은 누가 있나요?" 재연의 속사포같은 질문에 요원이 난색을 표하며 대답했다. "제타-7은 20년만에 재결성된 부대다. 대원들은 대충 물망에 오른 애들은 있는데, 일단 확정은 너. 그 외엔 없어. 그리고 지휘관은 나다."
재연의 얇은 턱이 확 벌어지며 다물줄 모르는 듯 한없이 입을 벌렸다. 방금 느닷없이 한 대 얻어맞은 사람 같았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다. 재연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한국 지부 최정예 요원이자, 최장 경력 인원인 박영희 요원 아닌가? 하지만 그 사람이 직접 재연에게 자신의 부대에 들어오라고 권유하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내심 경우의 수를 지워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분의 휘하에서 일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재연의 눈이 빛났다. 온몸에 피가 핑핑 돌았다. 입꼬리도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다. 재연은 마음을 추스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더했다.
"부대실은요?"
"없어."
이런. 그래도 재연은 아무렴 싶었다. 하루 빨리 제타-7의 부대원으로써 임무를 수행하길 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그녀는 핸들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겼다. 그래, 이 사람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느낌이 안좋았다고. 재연은 일주일 전쯤에서야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썩 믿음을 주는 인상들은 아니었다. 시도때도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다니는 쌍둥이하며(그들이 결합쌍생아라는 건 오늘 안 사실이었다. 젠장!), 얼굴에 털가죽을 뒤집어 쓴 남자에, 괴랄한 상징을 목에 건 남자, 그리고 웬 컴퓨터 중독 여자까지. 다른 사람들은 외양은 멀쩡해 보였지만, 글쎄, 그닥 믿음이 안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녀도 다른 사람들이 으레 그러듯 즐겁고 유쾌하게 지내고 싶었다. 마치 지금 쌍둥이들이 그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실력도 안 되면서 그러다간 큰코다친단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재연은 결심을 다지듯 이를 악물고 무전을 기다리다가… 창문에 비친 두꺼운 모피 얼굴에 놀라 손잡이에 등을 찍었다.
"아야…. 지금 뭐 하시는 거에요?"
밖에서 뭐라뭐라 떠들고 있는 모피의 모습에 순간 날아갔던 이성이 잽싸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창문도 안 열었는데. 어이없음을 뒤로 하고 창을 내리자 그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은 듯 남자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지금 시간이 많이 남아서 나와서 상황 지켜보다 들어가라네요. 어서 나오세요, 그쪽 분들도."
재연은 한숨을 쉬며 밖으로 나왔다. 아직 가을인데도 겨울처럼 강바람이 거셌다. 그들은 이 올림픽대로 위에서 몇 시간째 버티고 있었다. 나와있는 직원들도 추운지 전부 담요를 덮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샴쌍둥이와 모피 얼굴을 자세히 여겨 볼 수 있었다.
모피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풀거리는 털가죽 위에 안경을 쓰고 교전복 차림을 하고 있었다. 잠깐.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그의 하체를 연달아 보았다. 이 남자 지금 수면바지에 슬리퍼 신은 거야? 미친 것같았다. 꽁꽁 무장해도 무방할 이 판에, 저걸 입고 살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것과 똑같았다. 재연은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쌍둥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이쪽도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전복을 입기는 입었는데(어떻게? 조금 궁금하긴 했다.) 그래도 어떻게 싸운단거지? 게다가 그들은 재연보다 작았다. 보기에 170cm 안팎? 요원들의 평균 키가 거의 175cm에 가까운 것을 생각한다면 의아함도 무리가 아니었다. 일단 떡대가 커야 승산이 보이지. 샴쌍둥이는 원래 키가 작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기까지 따라올 이유는 없지 않나?
그런 생각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모피 얼굴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재연이 돌아보니 그는 '서울 크레이지 피자'라고 적힌 트럭에 기대 서 있었다. 왠지 재연은 모피 아래 얼굴이 방긋 웃고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 시간 괜찮아요?"
"뭐, 네. 왜요?"
"우리 같은 부대원인데 제대로 보는 오늘이 처음이잖아요. 통성명하자고요. 난 다니엘 권이에요."
재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난 차재연이에요. 아, 그런데 그쪽," 못들었는지, 다니엘은 멀리 '송악 커피 퐁퐁'이라고 적힌 트럭의 운전수와 이야기하고 있는 쌍둥이도 불러모았다. 아예 이 기회에 서로를 알아가자는 취지인 건지. 재연은 입꼬리를 언짢게 올리며 시계를 내려다 보았다. 아직 시간은 멀었다. 재연은 입을 꾹 다무며 저 멀리서 쌍둥이가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난 유정헌입니다. 아깐 미안했어요, 차재연 씨."라며 아까 먼저 사과했던 남자가 말했고, "난 유정원이에요. 역시 미안했어요, 차재연 씨."라며 아까 얼버무렸던 남자가 말했다. 둘의 사과를 받으며 재연은 두 사람이 꼭 트위들디와 트위들덤 형제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고보니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는 모습이 아주 딱이다. 꽤 유쾌한 상상이 아닐 수 없었다. 조금 긴장이 풀린 재연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니엘의 옷차림을 지적할 기회도 얻었다. 그러나 그는 껄껄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는 그래도 괜찮다는 투였다. 다시금 걱정이 치밀기 시작했다.
"그럼 무기라도 좀 잘 챙겨요."
다니엘은 다시 웃으며 알았다는 싸인을 보냈다. 철 없기는.
"그래서 제가 그걸 딱 배웠는데 —"
'전 요원에게 알립니다. 즉시 제 위치로 돌아가십시오. POI-3894가 접근 중입니다.'
갑작스럽게 이어폰에서 단아한 목소리의 무전이 전달되었다. 재연은 무전의 내용을 듣자마자 즉시 차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쌍둥이 역시 허둥지둥 자리에 착석했다. 재연은 긴장한 채 입을 열었다.
"통신 요원?"
"네, 통신 요원 무전 받았습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이어폰에 울렸다. 재연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꺾으며 말을 꺼냈다.
"트럭 실시간 위치정보 전송되고 있는지 확인 좀 해주세요. 지금 안 오는 것 같아서."
"어… 잠시만요."
재연은 곧장 이어폰으로 전달되는 쿠당탕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뭐야. 왠지 불안했다. 쿠당탕? 내 기억상으로는 통신 요원은 절대 소음을 다른 요원들 귀에 꽂아넣지는 않았는데.
"아, 이제 될 거에요."
재연은 감사를 표시하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창문으로 보니 다니엘이 트럭에서 무언갈 꺼내고 있었다. 오토바이. 재연은 내심 감탄했다. 혼자서 빠르게 움직이려면 오토바이가 훨씬 좋을 것이었다. 조금 불편한 감정이 일었지만, 다음부턴 오토바이를 선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서 앤더슨 로보틱스의 엔진음이 강렬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본래 광양 땅에서만 죽치고 앉아있던 그들이 서울로 왜 올라왔는가에 대해선 재연의 보안 등급으로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모종의 거래 때문일 거란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보나마나 안드로이드나 사이보그같은 거나 팔러 오겠지. 재연은 입술을 깨물며 추격조의 임무를 점검했다. 첫째, 목표를 지정된 장소로 몰아간다. 둘째, 위 사항이 실패하면 대상의 목적지를 알아내어 미행한다. 셋째, 공격은 타격조와 반드시 함께 할 것.
재연은 자신이 실패하지 않기를 바랬다.
타이어음. 뒤에서 요원들이 멈춰선 앤더슨 로보틱스 트럭에다 대고 뭐라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 안은 팽팽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수십분 전만 해도 입을 쉬지 않고 나불거리던 쌍둥이도 긴장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전방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어느샌가 오토바이와 함께 옆에 와 서 있는 다니엘 권 역시 눈에 들어왔다. 수초 후면 일어날지도 모를, 아니, 일어나는 게 거의 확실시 된 추격전에 다들 긴장한 모습이었다. 재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많은 임무에 동원되었어도 이러한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지금은 목숨마저 잃을 수 있다.
재연이 운전대를 두들기던 바로 그때 뒷쪽으로부터 거대한 트럭이 날아올라 그들 앞에 착지했다. 그녀는 재빨리 악셀을 밟아 그 뒤를 쫓았다. 놈들은 엄청난 속도로 대로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재연도 더욱 속도를 내었다. 쌍둥이의 머리가 동시에 뒤로 젖혀질 정도였다. 주변 풍경이 상상도 못 할 속도로 뒤로 날아갔다.
갑작스레 트럭 뒤켠 문이 열리며 금속성 인영이 소형 물체를 던지기 시작했다. 폭탄. 앤더슨 로보틱스가 그럼 그렇지, 씨발. 재연은 여차하면 획 틀어버릴 요량으로 운전대를 굳게 움켜쥐었다. 그러나 폭탄은 재연의 운전 실력으로 피하기엔 너무도 가까웠다. 실시간으로 폭탄과 그들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꺾어도 대로의 난간을 치고 강 속으로 다이빙할 가능성이 높다. 재연은 급히 악셀을 더욱 세게 밟고는, 신이 그들을 도와주시길 빌었다. 죽음으로 돌진 중이라니.
둥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가 튕겨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와우, 폭탄이었네. 미리 좀 말씀하시지."
백미러로 뒷자석을 보니 쌍둥이가 똑같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뭐야… 뭐한 거에요?"
"그냥 튕겨냈는데요. 방어장으로요." 정헌이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 현조자인거 몰랐어요? 그러니까, 현실조정자요." 정원이 방긋 웃으며 거들었다. "현실 펑펑!"
"아." 재연은 놀람과 안도가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단 고마워요. 이제—"
굉음이 일며 공기가 밀려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재연은 본능적으로 악셀을 세게 밟았다. 정원은 또 다시 젖혀진 목을 문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정헌 역시 뒤를 흘낏 쳐다보았다. 한참동안 둘은 말이 없었다.
"뭔데요?"
재연이 백미러로 뒤를 보려 애쓰며 물었다. 쌍둥이의 말이 없어진 것이 이상하다. 그러다 재연의 시선이 압정처럼 미러에 붙박였다. 입에선 실소가 흘러나왔다.
"…미친." 그들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훅 꺼지고 있는 다리와 강물로 추락하고 있는 오토바이였다.
2019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마포대교
"권 요원!"
으윽, 씨발.
"권 요원! 일어나! 권 요원! 야!"
와우, 이런 빌어처먹을. 온몸이 욱신거렸다. 거대한 주먹이 어퍼컷을 날린 것만 같았다. 그 뿐만 아니라 쥐어짜진 것같기도 했다. 지휘관이 이렇게까지 부르지 않았더라면 그냥 누워 디비 잤으리라. 다니엘 권은 혼미한 정신에도 간신히 대답했다.
"살아있습니다. 이런 젠장. 아직 살아있어요. 곧 아파 뒤질 것같지만."
다니엘은 상체를 일으켜 자신이 지금 어디 누워있는지 보려다 신음을 흘렸다. 그의 발 끝이 거대한 땜빵에 딱 걸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부상당한 몸을 기다시피 움직이며 웬 물통같이 생긴 게 자신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떨어지던 것을 기억해냈다. 씨발, 그러니까 그게 폭탄이었던거지. 그는 말을 듣지 않은 몸을 애써 움직였다. 차츰 몸의 고통이 가라앉자 앞서가던 재연과 쌍둥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퍼뜩 궁금해졌다. 그러나 다니엘이 있는 곳에서는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로를 빠져나갔을까. 그는 손을 비비적대며 저 멀리 재단 트럭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제발 그들만이라도 계획대로되길.
"씨발!" 재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핸들을 이리저리 돌렸다. 투포환 선수라도 있는 건지, 1분에 10개 정도는 날아오는 것같았다. 이런 젠장.
"와우, 입도 걸으셔라." 반면에 쌍둥이들은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물론 아까의 실수를 잊지는 않았는지, 뭔가가 날아올때마다 긴장하는 모습은 있었다. 정헌이 폭탄을 강쪽으로 튕기고는 덧붙였다. "같이 게임하면 무섭겠는데요."
"운전해봐요, 열불 안 나나! 악! 저 개새끼들 또 던졌어. 준비해요!"
정헌과 정원은 재연의 반응이 우스운지 킬킬대었다. 정헌은 또다시 폭탄을 뚫어져라 노려보더니 강쪽으로 손짓했다. 둥(텅도 아니고 둥이라니, 재연은 내심 북소리같다고 생각했다.) 소리와 함께 폭탄이 수면에서 폭발했다. 물기둥이 치솟아 물이 튀겼다. 두 차량은 대로를 엄청난 속도로 가로지르는 중이었다. 재단의 사전 작업으로 차들은 없었지만, 그 때문에 자연적 퇴로 차단이 불가능하단 점은 있었다. 그래봤자 또 뛰어오름 땡이지만. 재연은 창문을 열고 총을 쏘았다가… 총알이 튕기는 모습을 보고 또다시 욕설을 내뱉었다.
로보틱스 트럭에서 또다시 무언가가 날아왔다.
"준비해, 어?"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날아오던 물체는 갑자기 빠르게 그들의 차로 내리꽃히듯이 달려들었다. 당황한 재연이 차를 틀었다. 동시에 정원과 정헌이 방어장을 펼쳤다. 그럼에도, 물체는 제 방향 그대로 차 보닛을 들이박았다. 통제불능이 된 차는 이내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난간에 꽃히고서야 멈추었다. 재연과 쌍둥이들은 재빨리 차 밖으로 나왔다. 보닛에서는 어느샌가 연기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허, 저긴 기적사가 있나."
정원이 기가 찬다는 듯이 내뱉었다. 재연은 굳은 표정으로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너무도 암담했다. 이제는 쫓아갈 수단마저도 없다. 그리도 다짐했던 성공을 한 순간에 놓친 것이다.
"아무래도 이거 순간 흄 준위 상승 시스템이 탑재 된 것 같—"
"당신들은 화도 안 나요?"
정헌과 정원의 시선이 동시에 재연에게로 가 닿았다. 둘의 표정에 똑같은 놀람이 자리했다. 재연이 다시 입을 열어 소리쳤다. "지금 분석해서 뭐가 나오냐고요!" 다른 때였다면 이 모든 걸 수습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재연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속에서 끓어나오는 분노가 이성을 좀먹고 있었다.
"애초에 당신들 진심으로 여기 온 것 맞아? 계속해서 농담 따먹기나하고, 말장난이나 하고! 이 일이 얼마나 큰 지 몰라요?" 재연은 자신이 얼마나 절박한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여기서 성공하는 것이 꼭 필요했으니까. 가져야만 하는 것이었으니까. 여기서 실패하면 또 언제 이런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몰랐다. 계속 개인 자격, 그따위 고까운 한직에서 계속 부러워만 할 수는 없었다. 재연은 자신이 앞에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는 이 현실조정자 쌍둥이같은 인재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정신 놓고 있다가 풀썩 쓰러질 것같은 이 등신들.
"교전은 할 수 있어요? 아 그래, 그 현실 조정이면 다 되나? 그 몸을 커버할 수 있으니까, 그렇죠?"
쌍둥이가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 "우리 몸이 뭐요?"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재연의 머리를 흩뜨리고 지나갔다. 분노로 잠식되었던 이성이 차츰 회복되었다. 아무리 그래도 신체적 특성까지 걸고 넘어질 필요는 없었는데. 네개의 눈동자를 동시에 마주하자니 여간 기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재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정공법을 택했다.
"샴쌍둥이잖아요. 다른 사람처럼 뛸 수 있어요? 총은 쏘나요? 여기는 생과 사가 나뉘는 곳이잖아요. 난 동료들이 죽어가는 거 보기 싫어요. 아무리 당신들같은 밥팅들이더라도요! 가뜩이나… 당신들은 몸도 불편한데."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오직 정적을 깨는 것은 살을 에는 괴팍한 바람이었다. 수십분 같은 수초가 지나고, 정헌이 입을 열었다.
"따라와요, 차재연 요원."
쌍둥이들은 뒤로 돌아 건너편 난간으로 걸어갔다. 재연이 순순이 뒤를 따라 그곳으로 가자, 아래엔 또 다른 강변도로가 나왔다.
"이제 곧 로보틱스 트럭이 저쪽 길가에 나타날 거에요." 정원이 설명했다. 그러자 정헌이 말을 받았다. "교전?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주죠." 정원과 정헌이 서로를 슬쩍 보며 히죽 웃었다. 그와 동시에 쌍둥이는 대로 아래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는… 때마침 나타난 트럭 위에 착지했다. 재연이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중얼거렸다.
"저런 미친."
뒤에서 오토바이 엔진음이 들려오자 재연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 아니 모피가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다니엘 권? 당신 어떻게 여기 온 거에요? 다치진 않았어요?"
그는 객쩍은 웃음소리를 내었다. "안 다쳤어요. 그리고… 일이 좀 있었죠.
"아니 그러니까 저 트럭 문 좀 열라고!"
"안 돼, 안 열어줘, 열어줄 생각 없어, 우리랑 그냥 같이 돌아가."
"아오 좀!"
다니엘은 괴성을 지르며 난간에 머리를 찧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한시가 급한데 그가 마주하고 있는 이 요원이란 놈은 그깟 원리원칙을 들이대고 있었다. 빌어먹을. 다니엘은 '서울 크레이지 피자' 트럭 앞에서 버티고 있었다. 여기에 오토바이든 뭐든 탈게 있으니까. 여차하면 트럭이라도 빌릴 심산이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난관인가. 그는 발을 딱딱 구르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굉음을 들었다.
"그게 우리였겠죠, 아마? 난간에 박을 때 볼만했겠는데."
"그렇죠, 뭐. 그래서…"
다니엘은 수면 바지 벨트에서 테이저건을 빼내어 요원의 눈앞에 들이밀었다. 일변 긴장된 공기가 흘렀다. 다들 당황한 빛이 얼굴에 어렸다. 그에겐 최적의 조건이 아닐 수 없다.
"너, 너 지, 지금 뭐하는 거—"
"닥치고 내 말 들어요. 지금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것같은데, 내가 정리해주죠. 저기서 굉음이 났는데, 그건 다시 말해 우리 계획이 어긋난거고, 시발 그래서 내가 오토바이 좀 타겠다고요! 전기 구이 신세나 면하고 싶으면 빨리 문 열고 오토바이 내놔요. 내 임무 방해 말고!"
요원이 손짓하자 인원들이 잽싸게 컨테이너에서 튼실한 오토바이 하나를 꺼내왔다. 다니엘은 잽싸게 테이저건을 제자리에 집어넣고 바이크를 일으켜 세워 탔다. 멀리서 보니 대충 철판으로 가려놓은 구멍은 아직도 건재했다. 오토바이의 시동을 걸고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앞으로 15m. 바람이 그의 털을 뒤흔들고 지나갔다.
앞으로 10m. 다니엘 요원은 불안하게 앞을 흘끗흘끗 바라봤다. 여차하면 강물에 그대로 다이빙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다면… 상상도 하기 싫은 일이다.
앞으로 5m. 이제 곧.
다니엘이 상체를 끌어올리자, 바이크가 구멍 위의 공간으로 도약하여 반대편으로 착지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인근 도로
"그렇게 나를 발견했군요?"
재연은 다니엘의 등에 매달려 자동차 사이를 휙휙 지나다니고 있었다. 사라진 트럭(과 쌍둥이)을 추적하는 중이었다.
"지휘조에서는 아직 아무런 연락 없어요?"
"네, 별다른 건요. 우리 조가 걔네한테 따라붙어야 타격조가 오든 말든 할테니까요."
"이런." 앞쪽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재연은 입술을 물어뜯었다. "쌍둥이들이 잘 버텨줘야 할 텐데."
"개같군." 객관적으로도 개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정헌과 정원은 줄곧 컨테이너 위에 매달려 있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순간적으로 흥분해 벌인 일이었다. 그딴 걸로 모욕당하는 건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그들은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댔다. 이대로만 가면 될 것이다. 정헌은 조심스레 지휘조에 위치정보가 수신되도록 해놓고는 오른손의 시계를 보았다. 정원은 조심스레 품에 넣어놓은 권총의 탄약을 확인하고는 왼손의 시계를 보았다. 15시 35분 41초.
42초. 끼익하는 소리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선다. 컨테이너 문이다. 둘은 재빨리 뒤로 돌아선다.
36분 01초. 컨테이너 위에 뭐가 있나 보려는 듯한 움직임이 인다. 정헌은 재빨리 정원의 속주머니에 손을 뻗는다.
03초. 총성. 고개를 내민 직원의 눈에 놀람이 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이마에 구멍이 난다. 정원의 눈에도 놀람이 인다. 시선은 연기가 나는 총구를 향해 있다.
04초. 직원의 박살난 중추신경에 칩입자들의 정보가 수신되지만, 더이상 말할 수 없다. 텅빈 육신이 도로로 튕겨나가면서 뒤따르던 차량에 받힌다.
"야! 너 미쳤어?" 정원이 소리치자 정헌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없앨 거였으면서."
"음… 그건 인정." 둘은 똑같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섰다.
정원은 정헌의 시계를 노려보았다. 37분 14초.
둘의 시선이 컨테이너 문 쪽을 향한다. 온몸의 신경이 다시 곤두선다. 둘이는 서로가 긴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옆구리쪽에서 오는 저릿함이 이를 반증한다. 바람을 찣는 소리. 신경 하나하나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 쌍둥이는 재빨리 트럭의 운전부 위로 뛰어내려간다. 동시에 컨테이너 위로 무언가가 떨어지며 금속음을 낸다. 조심스레 눈을 들어보니 컨테이너 위가 완전히 찌그러진 모습이다.
중력장 폭탄. 정원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저걸 여기서 보다니. 둘은 자세를 굽혀 형세를 관망했다. 총알을 아낄 필요가 있었다. 권총 한 정으로 할 수 있는 건 그닥 많지 않았으니까. 미친 사이보그 살인 기계들 앞에서는 더더욱. 정원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긴장되냐?"
"엉."
"저런, 나돈데."
"우리 둘 다 큰일났군."
"어휴, 그래도 뭐 지금 올라오는 애들이 레이저를 눈에서 뿜지만 않으면 우리에게 승산은 있으니까."
그리고 그 순간, 컨테이너 위로 올라온 사이보그의 눈에서 연보라빛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2019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제11K기지
"너무 승산이 없는 싸움이에요. 이게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들은 상황실에서 추격조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제인 야마다 박사, 정아지 연구원, 박영희 지휘관은 여러 인원들과 함께 벌써 상황이 전개된 시간부터 꼬박 6시간은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갇혀 있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래서인지 자꾸만 음울한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인은 생각해볼수록 이 작전에 회의감을 느꼈다. 사실 이건 애초에 말도 안되는 작전이었다. 만든지 한 달이 조금 안된 이 신생 조직에 이렇게 큰 임무를 주지? 게다가 단체 생활은 물론이고, 경력조차 안되는 사람들이 다수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박사는 거듭 물었다. "애초에 이게 우리한테 올 일이었어요?"
아까 대교를 붕괴시킨 사고, 다툼, 급작스러운 개인(아니, 엄밀히 개인은 아니지만.) 행동까지. 비교적 경력이 적은 제인도 확연하게 이건 잘못되었다라고 느낄 상황들이었다. 박사는 이 모든 일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다. 제타-7은 미숙하다. 젊다는 말도 부족할 지경이다. 그녀의 심중에 작은 의심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지휘관에게로 걸어가 재차 물었다.
"그럼. 제타-7의 부활인데."
"하지만… 보셨잖아요? 이 사람들 서로 손발 안 맞는거."
"처음엔 다 그래."
언짢은 기분이 중추신경계를 잠식했다. 거대한 벽을 두고 말하는 듯 했다. 제인은 마음을 애써 다스리며 진정 묻고 싶은 말을 꺼냈다.
"이거 우리 첫 임무에요. 지휘관님, 혹시 이거…"
영희의 시선이 제인의 망막에 와 닿았다. 고통스럽기 그지 없는 시선이다. 특히 자신의 상사가 그렇게 쳐다본다면 진짜 끔찍한 일일거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문제는 영희가 제인의 상사란 점이었다.
"혹시 뭐?"
정적이 실내를 휘감았다. 영희의 눈이 가늘어졌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그녀만의 표현법이었다. 영희라고 제인이 말하고 싶은 것이 뭐일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알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게 진짜. 그녀는 한숨을 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너 내가 지금 이 임무 억지로 땡강부려서 받아냈다고 생각하니?"
"아, 아뇨. 그…"
"내 개인적 바램때문에 이런 임무 시켰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내가 지휘관이니까. 그래, 다른 기특대보다 난이도야 높지. 하지만, 제인 야마다 박사, 자네야말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야. 이 친구들이 진짜 누구인지를 모르는 건 자네라고."
갑작스럽게 굉음이 일었다. 영희의 시선이 거둬지자 제인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된퉁 까이는 줄 알았네. 굉음의 진원지는 추격조 통신 채널이었다. 그들은 재빨리 수신자를 확인했다. 유정헌과 유정원이다. 마포구 도로를 달리면서 총격전을 벌이는 중이었다. 정아지 연구원이 채널을 열자 거대한 고함 소리가 상황실을 울렸다.
"여보세요? 차재연 요원 좀 바꿔, 으악! 야 저거 도로 녹인다 조심해라! 으악! 악! 뭐 저딴 걸 눈깔에다 붙여놔? 색깔은 예쁘네. 그러게! 총 어딨어! 니가 손에 들고 있잖아. 아 쏴리. 아 잘 좀 맞춰! 아 훈수질 니은니은. 숙여! 야 중심 잡아! 오매 씨발. 저기요? 차재연 요원 좀 연결해주세요! 차— 재— 연—. 오예 한 놈 처치! 총알은? …6발. 난죽택. 난죽택."
교신이 끊어진 후에도 상황실은 한동안 정적이 감돌았다. 제인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쟤네 또라이 아냐?
두 또라이는 컨테이너의 끄트머리를 방패 삼아 요리조리 공격을 피해다녔다. 당초 그들의 예상대로 직원들은 그다지 강한 난동을 피우지는 않았다. 컨테이너 안에 중요한 물품이 있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이었다. 몇분 지나지 않아 이어폰에서 잡음과 함께 재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재연 씨? 지금 어디에요?"
"공덕역 쪽으로 달리고 있어요!"
"네! 윽! 여기 벌써 배문고 근처에요! 빨리 와줘요! 우린 레이저로 레이저 뿜는 연보라빛 레이저! 괴물들이랑 대치중이란 말이에요!"
잠시 이어폰 너머로 어이 없다는 듯한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현실조정사라면서요?"
쌍둥이는 멈칫하며 서로를 노려보았다.
"앞으로 우리 부대 브레인은 재연 씨! 와아아!"
다시금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전신을 무장한 앤더슨 로보틱스의 직원들은 조금씩 흔들리는 컨테이너 위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물건을 망친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에게 좋은 날이란 영원토록 없을 것이다. 일의 보람이든, 봉급이든, 뭐든. 직원들은 폐기처분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보너스를 더 받기 위해서라도 저 쥐새끼같은 쌍둥이를 꼭 없애기로 다짐했다.
갑자기 컨테이너의 진동이 더욱 강해졌다. 그들은 자세를 낮추었다. 진동 감응 센서가 탑재된 그들의 CPU에도 영향을 주는 강한 흔들림이다. 맨 앞에 있던 직원의 눈에 똑같은 얼굴 둘이 사악하게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들어왔다. 승리자의 미소다.
첫번째 직원이 얼굴을 우그러트리더니 눈동자에서 레이저 빔을 뿜어낸다. 광선은 이내 쌍둥이에게로 직격한다. 쾅. 직원은 미소를 지으며 둘의 시체를 확인하려다… 도로 툉겨나온 자신의 레이저에 맞고 거꾸러진다.
두번째 직원이 흔들거림을 감수하고 그들에게로 돌진한다. 정헌과 정원은 재빨리 한 손씩을 컨테이너에 대고 정색한 표정으로 표면을 쏘아본다. 그러자 컨테이너의 표면에 서리가 일더니, 무서운 속도로 번지기 시작한다. 둘째는 그 속도 그대로 쌍둥이 위를 날아 도로 위에 내쳐졌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앙
덜컹.
쌍둥이는 서로를 향해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보이고는 마지막 직원이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꼴을 노려보았다. 직원은 달려오다가 문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컨테이너의 골이 뒤로 움직이는 까닭이다. 아니, 컨테이너가 움직이고 있다. 순간적으로 직원의 몸이 스톱모션으로 멈춘다
이내 컨테이너는 하나의 런닝머신이 되어 직원의 몸을 도로 저 밖으로 날려보낸다.
그리고 22세의 대학생 강아람은 이 모든 것을 찍고 있었다. 굉장한 일이었다. 세상에,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총격전이라니. 마치 영화를 찍는 것만 같았다. 아니, 영화 맞나? 그러기엔 카메라가 없는데. 이건 분명히 페북에 올려야해. 받을 좋아요 수를 상상해보자니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구든지 이 일을 보면 좋아할 것이다. 이 동영상만 다 찍치이이익
아람은 멍하니 소독차가 훙하니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니, 언제 동영상을 찍고 있었지. 아람은 동영상을 지워버리고 옆에 서있었던 모든 사람들처럼 제 삶을 살러 떠났다.
"소독차라니."
영희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소독차를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솔직히, 꿈에도 몰랐다. 그러니까, 제인이 뭘 좀 해내긴 한 것이다. 그녀는 한 쪽에서 뚱한 얼굴로 기획서를 뒤적이고 있는 제인을 슬쩍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닥 맘에는 들지 않았다. 그래도 뭐 한 건 해내긴 했으니, 덮어놓고 짜증내진 말아야겠어.
내심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영희의 눈에도 이 작전은 위험했다. 위험하고 말고, 완전 꼬맹이들만 보내놓은 상황인데. 다만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정도보다 훨씬 적었을뿐이었다. 견뎌낼 수 있는 시련, 고통. 모든 새는 제 껍질을 깨야한다. 그녀는 이들이 너무 쉬운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알은 견뎌낼 수 있을 정도로 두껍다. 그리고 지금 그들이 마주한 놈들 역시 적당히 강하고, 적당히 위험하다. 그런 신념이 무색하지 않게, 상황이 어느 정도 전개되고 있었다. 영희는 헛기침을 한번 한뒤 통신 채널을 열라고 지시했다. 타격조가 움직일 시간이었다.
어느새 트럭은 서울역을 지나쳐 의주로 1가로 들어서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차들의 클랙슨 소리가 순식간에 뒤로 재껴져 날아갔다. 간신히 머리를 지탱할 수 있었다. 그냥 컨테이너 벽면에 매달려 있었으면 벌써 내팽겨쳐졌을 것이다. 이러다 삼팔선 넘겠다. 분명 재연과 다니엘의 오토바이로는 절대 못 따라올 것이다. 정원과 정헌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찡그렸다. 둘은 어깨동무를 한 상태로 왼쪽으로 굽혔다. 순간적으로 풍경이 정지 화상의 연속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곧 교차로가 나올 것이다. 때가 오면 바로 해야한다. 그때가, 오면.
트럭이 교차로에 들어섰다.
정헌과 정원의 손에서 서리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 서리는 이내 길가를 뒤덮고,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트럭의 타이어를 붙잡아 터트렸다. 차체가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이 향하는 궤적마다 서리가 뿜어져 나와 흡사 겨울왕국을 보는 느낌이다. 얼음뿔이 우수수 생기며 사납게 트럭을 가리키고 있다. 쌍둥이는 서로를 꽉 붙잡고 컨테이너 끄트머리를 꽉 잡았다. 이러다 튕겨나가겠군.
예상과는 다르게 트럭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하필이면 지금 빨라질 건 또 뭔가. 샴쌍둥이여서인지, 아니면 모든 현실조정자가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실 조정을 쓴 이후엔 더럽게 속이 안 좋았다. 속이 일렁이고 있다. 달팽이관이 핑핑 도는 것 같다. 멀미 나나.
정헌은 컨테이너를 조금 녹여 옷에다 고정시키곤 옆에다 속을 게워냈다.
정원이 어이 없다는 듯이 제 형제를 바라보았다. "아니, 갑자기 멀미하는 건 또 뭐야. 호구같…우웩."
정원 역시 갑자기 구역질을 하더니 속을 게워냈다.
"…"
"뭐."
"등신."
"아, 니가 토해서 그러잖아! …우웩."
"뭐래. …으웩."
정헌은 얼굴을 찡그리며 온 몸의 감각이 다시 돌아오길 기다렸다. 아까부터 그렇게 많이 써댔는데도 아직은 여력이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정원 역시 조금 혈색이 도는 얼굴로 조끼에 붙어있는 컨테이너 조각을 떼어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두 형제는 입을 오므린 채 몸을 일으켰다. 마지막이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들은 눈을 부릅뜨고 트럭 앞의 콘크리트가 뿔 모양으로 불쑥 불쑥 자라나는 환상을 만들어냈다. 온몸의 혈류가 눈으로 집중되는 듯 하다. 트럭은 무언가를 감지했는지 더욱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0.5초 늦었다. 그쯤이면 뿔은 충분히 자라난다.
쾅.
바람이 아직 차갑다. 달리나? 아직도? 그럼에도 졸음이 밀려온다. 졸음은 언제나 그들의 적이다. 언제나… 중요할…때…그르치고… 유일한 위안은 바람의 속도가 조금은 줄어들었다는 사실이다.
2019년 10월 13일
?????????
"통신 왔습니까?"
"네. 슬슬 준비하라네요."
머리를 바짝 깎은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답한 여자는 한 쪽에서 마침 무장을 다 끝낸 듯한 또 다른 여자를 불렀다. 곧 작전의 막판이 다가올 것이었다. 제대로 끝내야한다. 김미영 요원은 제일 아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문자들을 살펴보았다. 실시간으로 대상의 정보가 수신되고 있었다. 충정로 1가라니, 벌써. 미영은 입술을 깨물고는 두번째 주머니에서 탭을 꺼내 페이스북 메세지가 온 것을 확인했다. 앤더슨 로보틱스 사상자는 대략 4명. 우리 편은 아직 없음. 그 쌍둥이가 잘해주고 있네. 미영은 다시 세번째 주머니에서 또 다른 탭을 꺼내 쪽지를 확인했다. 이상 없음. 그녀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버리세인 요원, 고유연 요원, 갑시다."
2019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서대문역 부근
"속도가 느려졌대요."
"뭐가요?" 다니엘은 흘낏 뒤를 바라보았다.
"트럭."
재연은 고개를 쭉 빼 앞을 바라보았다. 오토바이가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차의 속도를 다 따라잡긴 어려울 터. 게다가 차가 앤더슨의 물건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그딴 짓거리를 우리가 시도해냅니다. 하하. 속도가 느려졌다니 정말 다행인 일이다. 수분 전부터 무전이 오지 않았긴 했지만, 쌍둥이가 잘 해내고 있군. 재연은 내심 죄책감을 느꼈다.
"쌍둥이들은 어떻게 되었대요?"
"무전이 안 오고는 있는데… 으악!"
순간적으로 재연의 몸이 옆으로 쏠렸다. 몸의 중심이 밖으로 튕겨나갈듯 움직였다. 오토바이가 멈추자, 재연은 죽일 듯이 다니엘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건 뭐지? 아주 갑작스러운 엿인가?"
"아, 미안해요. 근데 여기 앞…" 재연은 다니엘의 말을 끊고 몸을 빼내 도로로 시선을 던졌다.
"… 이런 미친."
도로가 엉망진창이었다. 아니, 엉망진창이라는 말은 매우 예의바르다 해야겠다. 도로 한 복판에 땜빵이 우수수 나있고, 고철과 고깃덩이가 뭉쳐진 무언가가 서너개, 중간중간 얼어 빙판이 생긴 도로를 보고 예의바르게 불러주면 무엇하리오. 다니엘은 저 멀리서 기어오고 있는 무언가(아무래도 무슨 정장같은 걸 입고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니겠지.)에 테이저건을 한방 갈기고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 돌아가야겠는데요."
"젠장."
?????????
"이봐."
중얼중얼.
"야!"
중얼중얼. 나 좀 자게 냅둬.
"유정헌 이 새끼야!"
유정원? 잠깐, 여기가 어디지?
정헌은 잠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엄청나게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음을 깨달았다.
"여기가 어디야? 설마… 우리 진짜 월북했냐?"
"이 새끼가 과로했더니 회까닥했나."
정원이 짜증난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서울, 종로구야."
"그 속도로 아직?"
"아까 뿔로 찔렀더니 좀 망가진 것 같던데, 크, 나의 실력."
"옘병."
정헌은 몸을 일으켰다가 순간적으로 신음을 냈다. 왼 팔에서 끔찍한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팔이 대충 콘테이너 반죽에 눌러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 눈에 봐도 기괴한 자세였다.// 어디 부러지지는 않았으니 다행인가.// 정헌은 팔을 빼내 마사지했다.
"이것도 대충대충, 저것도 대충대충, 유대충씨, 밥은 왜 대충 안 드세요? 숨은 왜 대충 안 쉬세요? 이 원수 새끼야."
"에이씨, 니가 이모야?"
"지 형 팔이 날아가던 말건 삐던 말건 부러지건 말건 저리건 말건 걍 붙이는 놈한테는 이모가 약이지 이 자식아."
"형은 개뿔이."
말은 그래도 미안하긴 한 듯 정원은 귀 뒤를 긁적이며 말했다.
"싸울 애들이 더 없나? 왜 더 안 올라오지?"
"니 말대로 싸울 애들이 없거나… 아님 거의 다 와서 필요가 없거나."
저 멀리서 청동 투구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인근
스크롤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졌다. 버리세인은 무심한 눈길로 손톱을 물어뜯는 미영을 응시했다. 무언가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무정하게도 버리세인 요원의 추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트럭이 없어졌다. 마치 허공에 증발했다는 듯이, 목격담, 사진, 동영상 따위가 보내져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밈의 영향이 없어진 것도 아닐 터. 그들을 태운 밴은 어느새 북촌 즈음을 지나고 있었다. 당초 예상 목적지로 추정된 이곳에도 재단 요원들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들이 향하는 곳은 이곳이 아닐 터였다. 시간도, 거리도 알맞지 않다.
실시간으로 지휘부의 정보, 민간인들의 목격담 이 둘을 조합해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민간인들의 목격담이 뚝 끊겼다. 젠장, 그렇다고 지휘부에서 날아온 정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이지. 미영은 입술을 깨물며 위성 사진을 드래그했다. 적어도 궤도는 잡혔으니.
버리세인의 눈길은 다시 한쪽에서 MP3로 음악이나 듣고 있는 유연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