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맨

숲 속에서 어둠 속 인영이 일렁이며 그 앞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으로 흘러가듯 걸어가고 있었다. 발치에 밟히는 나뭇가지의 우지끈 소리, 풀밭의 바스락 소리, 토양의 퍼적 소리, 하나 하나의 소리가 전부 칩입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이젠 상관 없다.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기 때문이다.

칩입자의 눈초리가 담벼락 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철조망에 가 머문다. 예상대로 감시가 삼엄했다. 다행인 것은 경비가 서지 않는 시각이었단 점이다. 그는 조심스레 품 안에서 긴 풍선 하나를 꺼내더니 후욱 불고는 감시카메라에 던졌다.

펑.

윽. 소리가 정적을 밀어내자 칩입자는 몸을 순간 움츠렸다. 소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풍선은 의도대로 터지면서 카메라의 촬영부를 덮어버렸다. 나이스. 그는 이내 빨간 풍선 하나를 꺼내서 미리 준비해 온 휴대용 가스로 채워넣었다.


저택 안에서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던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담벼락 너머에서 빨간 풍선 하나가 둥실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풍선. 지난 번 학교에서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색깔이었다. 자신의 풍선이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단 희망에 부풀며, 아이는 풍선이 이내 높게 떠오르는 모습을 보다가… 웬 남자가 거기에 딸려 날아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라이오넬 특명전권대사는 천막 안으로 들어서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온갖 곳에 변칙성이 퍼져있었다. 그야말로 사방에 존재했다. 평범해보이는 악기에도, 작은 아이의 얼굴에도, 정갈해보이는 천막 안 구성에도 변칙은 있었다. 이 변칙이 연합이 추구할 수 있는 류의 것이 아니란 사실이 그의 혐오를 더욱 부추기게 했다. 그 말인 즉슨 더 질 낮고 천한 변칙성의 만연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라이오넬의 작은 눈에서 광채가 번뜩였다. 이미 초로의 나이에 가까웠음에도 그는 아직 혈기 넘쳤고 집요했다. 이런 자들을 상대하는데 혈기를 잃어서는 안될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대사는 옷깃을 매만지며 군인들이 제 뒤로 도열하기를 기다렸다. 이미 수백 번도 더 한 과정. 군인들과 대사의 호흡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었다. 그랬으니 수년간 크고작은 변칙단체들을 겁박할 수 있었으리라.

몇 군인들이 축 늘어진 단원들을 내던졌다. 천막 안에 있던 다른 단원들이 헉하고 숨을 들이켰다. 물론, 놀라라고 한 짓이었다. 라이오넬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몇은 화가 난 얼굴을, 몇은 공포에 질린 얼굴을, 몇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공통적으로는 침울한 분위기. 이쯤하면 되었다는 생각에 대사는 고개를 까닥이며 미소를 지었다.

천막 안으로 모든 단원들이 모이자 대사가 입을 열었다.

"좋은 오후입니다, 떡갈나무 극단 여러분. 오늘 이렇게 부득이하게 모이도록 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만, 귀 극단의 운영이 위법에 해당되는 사항이 있어 고지해드리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는 일부러 제스처를 크게하려 유쾌함을 가장했다. 이미 압력이 큰 상태에서 고압적으로 나가봤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다. 모든 경험이 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압력을 빼는거지. 그는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주위를 슥슥 둘러보았다. 여전히 침울한 분위기. 단지 화난 사람들이 조금 적어지고 불안한 눈빛의 사람들이 늘어났을 뿐이다. 이럴 때일수록 유하게 나가야만 물길이 트이는 법이다. 대사는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이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검증되지 않은 변칙적인 음악을 듣게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져야합니다."

"미안한데, 그쪽들은 누굽니까?"

대사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젊은 동양인 여자다. 이태껏 보았던 모든 표정과는 다른 양상을 띄고 있다. 분노와 닮았지만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 오히려 투지가 더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웃음을 풀지 않은 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