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쇼맨

숲 속에서 어둠 속 인영이 일렁이며 그 앞에 자리한 거대한 저택으로 흘러가듯 걸어가고 있었다. 발치에 밟히는 나뭇가지의 우지끈 소리, 풀밭의 바스락 소리, 토양의 퍼적 소리, 하나 하나의 소리가 전부 칩입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하지만 이젠 상관 없다. 그의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기 때문이다.

칩입자의 눈초리가 담벼락 위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와 철조망에 가 머문다. 예상대로 감시가 삼엄했다. 다행인 것은 경비가 서지 않는 시각이었단 점이다. 그는 조심스레 품 안에서 긴 풍선 하나를 꺼내더니 후욱 불고는 감시카메라에 던졌다.

펑.

윽. 소리가 정적을 밀어내자 칩입자는 몸을 순간 움츠렸다. 소리가 그렇게 클 줄 몰랐던 탓이다. 하지만 풍선은 의도대로 터지면서 카메라의 촬영부를 덮어버렸다. 나이스. 그는 이내 빨간 풍선 하나를 꺼내서 미리 준비해 온 휴대용 가스로 채워넣었다.


저택 안에서 열심히 숙제를 하고 있던 작은 여자아이 하나가 담벼락 너머에서 빨간 풍선 하나가 둥실 떠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풍선. 지난 번 학교에서 잃어버린 것과 비슷한 색깔이었다. 자신의 풍선이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단 희망에 부풀며, 아이는 풍선이 이내 높게 떠오르는 모습을 보다가… 웬 남자가 거기에 딸려 날아오는 모습을 목격했다.

언제나 같은 미적지근한 오후였다. 에드윈은 곧 열릴 모임의 준비작업에서 잠시 풀려나 있었다. 그가 거의 주최하다시피한 이번 모임에서는 기필코 중요한 위치에 올라야만 했다. 그가 태어날 때부터 외팔이였다고 업신여긴 모두를 위해서라도….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현재는 텅 빈 욕실 안에 들어가 욕조에서 몸을 좀 담그고 싶은 마음 밖엔 없었다. 소냐가 차를 가져다주면 좋을텐데.

모임. 사람들. 그리고 더 중요한 사람들.

이번에는 크로이 씨가 직접 오실지도 몰라. 에드윈은 그 생각만으로도 소녀가 된듯이 기뻐졌다. 이번엔 내가 엄청난 일을 해내리라.

에드윈 브란트 4세Edwin Brandt IV는 몸을 쭉 폈다. 시야에 늘 봐왔던 구성의 집안이 들어왔다. 누구든지 그가 가난하다고 한다면, 혹은 중산층이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에드윈은 재력이 있었다. 에드윈은 재력이 있었고,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재력은 그에게 지성과 매력을 주었고,에드윈의 삶을 더 위로 끌어올렸다. 부르주아란. 에드윈은 기라델리 초콜릿을 한줌 크게 쥐어 입에 털어넣었다. 언제나 즐거울 수 밖에 없지. 에드윈은 매번 자신의 부를 십분 활용했다. 거실에 걸린 이 그림 역시 그렇게 얻은 것이었다. 이온께서 사도를 거느리고 행진하시는 저 그림. 작가가 누구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으나, 그래도 에드윈 자신에게 푼푼한 느낌을 주는 것은 변치 않았다.

에드윈 브란트는 문득 시계를 보았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심이 지났다.

"점심이 지났군."

그는 믿기지 않는 투로 말했다. 그는 한번 더 말하려다가 고개를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방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에드윈은 얼굴에 의아한 빛을 내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소냐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걸까? 그는 자그마한 유리탁자에 서류를 내던졌다. 그 바람에 초콜렛이 방으로 마구 튀었다. 에드윈 브란트는 신경쓰지 않았다. 평소처럼 잘 짜여진 생활이 어느샌가 어긋나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목구멍의 살점이 하나하나 도려지는 느낌이 들었다.

"소냐?"

에드윈은 자신이 젤의 검투 경기장에 내몰린 오로크가 된 것만 같았다. 이온Ion이시여, 내게 그의 힘의 반의 반만이라도 주소서. 이런 정적은 의식을 거행하기 직전에만 느껴볼 수 있는 것이었다. 딸의 아버지는 서둘러 서랍에서 의수를 찾아 끼우고는 조심스레 서재를 거닐었다. 에드윈은 이 침묵의 성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가정교사는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만가지 흉악한 미래를 떨쳐내려 애를 쓰며 서재를 나섰다. 그가 내딛는 그 모든 발걸음 앞에 무한한 압정이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울듯이 소냐의 이름을 외쳤다. 그는 재빨리 옆방에 기거하고 있던 경호원 두엇을 불러 딸의 방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