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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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필요로 하는 것은 뭘까? 사람이겠지. 아니, 반대인가? 사람이 집을 필요로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집은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사람을 지켜준다. 하지만 그런 집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자기 주인을 완전히 지켜주지는 못한다. 그걸 위해서 있는 게 자물쇠다. 열쇠는 집주인이 가진다. 집주인의 허락이 없는 한, 다른 이들은 집에 들어올 수 없다. 집과 자물쇠, 그리고 열쇠가 모든 것으로부터 주인을 지켜준다.

그리고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도, 그러한 집이다. 자물쇠로 잠겨 있는, 사람이 사는 집.


저 집은 어릴 때부터 봐 왔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도 바로 저 집 앞에서 토하던 것이었다. 상한 음식을 먹어서였는지, 과식해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저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또 저 집의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대문 앞에서 토를 했단 것뿐. 그 때 저 집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거나 걱정했었다. 아마, 그 집 대문의 열쇠를 가졌을 유일한 사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사람을 본 건 아마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가 마지막이었을 거다.

저 집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구조가 바뀌거나 하는 걸 많이 봐 왔었다. 언제는 천천히 공사를 했었고, 언제는 고작 하룻밤 자고 난 사이에 눈에 띌 만큼 바뀌어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어느 날부턴가 대문이 활짝 열리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인부랑 장비가 어떻게 드나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가끔은 누군가 무언가를 들고 집에 찾아오기도 했다. 물건은 매번 달랐다. 문은 정말 살짝 열렸고, 찾아온 사람도 정말 잠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가기만 했다. 또 정말 가끔은 아무도 없는데 갑자기 대문이 살짝 열리기도 했다. 어쩌면 거기 사는 사람이 목을 빼고 누군가를 찾았을지도 모른다. 얼마 못 가 다시 굳게 잠겨버렸지만. 그마저도 요 근래에는 문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었다.

가끔은 저 집에 사는 사람이 어떤지 궁금해 초인종을 눌러보기도 했다. 언제나 같은 사람의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었다. 기운은 없어 보였지만, 그걸 빼면 딱히 별 건 없었다. 하나 꼽자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단 점 정도. 혼자 사는 것 같긴 한데, 별로 외로워하진 않는 듯 보였다.

가끔은 대문 안쪽이 궁금하기도 했다. 정작 열려 있을 때는 다른 거에 정신이 팔려 안을 들여다 볼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정작 닫히고 나선 집이 그렇게 바뀌고 그러는 데도 안쪽을 볼 수가 없으니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일단 마지막으로 기억하던 건 마당에 키 작은 풀들이 자라나고 있었다는 거다. 그거랑 집 말고 달리 기억이 나는 건 없다. 기억하기로는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직접 초인종을 누른 다음에 들어가봐도 되냐고 물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대문 안으로, 그 집 안으로 들어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거절당했었나? 아니, 분명 난 거절당한 기억이 없다. 그래, 열쇠가 없었다. 잠깐, 열쇠가 없었다니? 저 집에서 살지도 않는 내가 열쇠가 없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렇다면 저 집에 사는 사람이 열쇠를 갖고 있겠지. 그렇다면 왜 열어주지 않았던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확인할 방법은 단 하나다. 나는 집에 사는 이와 대화하기 위해 초인종을 누른다.

대답이 온다. 누군지 묻는다. 나라고 대답하니, 정말 기뻐하면서 반겨 준다. 어째서? 물론 전에 대화 몇 번이야 해본 적은 있지만, 내가 그렇게 반길만 한 사람인가? 막상 저렇게 반기니, 오히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 사람도 내 혼란스러운 마음을 이해한 건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내가 저 집과, 저 입주민과 어떤 인연이 있기라도 했던 걸까. 그렇게 이상할 수가 없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저 집을 본 것 뿐이다. 하지만 집주인과는 마주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저 초인종만을 통해 저 집의 입주민과 몇 번 대화를 나눈 것 뿐. 그것도 별 영양가 있는 대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내가 뭔갈 잊은 걸까?

혹시, 집 안에 뭔가 내가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에 대한 뭔가가 있지 않을까? 저 굳게 닫힌 대문 안으로 들어가, 마당과 집을 보고, 그리고 집주인과 긴 대화를 나누면 뭔가 알게 될까? 하지만 저번에도 시도했던 기억이 있는데, 왜 그 땐 실패했던 거지?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렇게 혼란스러워진 김에, 이번에 다시 저 입주자에게 문을 열어달라 해보자. 저렇게 나를 반기는 이라면, 기꺼이 나를 들여보내 주겠지.


자, 이제 가보자. 나는 다시 초인종을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