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진 무덤

제목이 생각이 안남;

"참 잘하는 짓일세."

남자의 목소리로 실험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늙은 남자 앞에 차렷 자세로 서 있는 여자의 얼굴으로 시선을 던졌다.
여자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시간에는 늦지 않았습니다."

여자의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그건 단순히 시작 시간에 늦지 않았다는거지. 자넨 준비 시간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네."

"이미 사전에 합을 맞춰보았습니다. 준비 시간의 제 역할은 단순히 감독이었을 뿐입니다."

여자, 루이즈 체호프Louise Chekhov는 찡그려지는 인상을 애써 피려고 노력했다. 그녀를 맹렬히 노려보고 있는 상관 제임스 터커 교수는 아마 모세 시기 이집트에 태어났으면 아마 꼭 맞았을 것이다. 어찌나 고대적이고도 투박하게 괴롭히는지, 그녀는 그와 이야기하다보면 이집트 치하에서 힘겹게 노동하는 유대인 노예들의 광경이 자꾸만 떠올랐다. 금빛 무언가를 두르고 가발을 쓴 교수가 수많은 노예들을 부리는 광경. 루이즈는 그가 제발 머리를 근현대즈음으로 업데이트해서 자신을 치밀하고 은밀하게 공격해 오길 빌었다. 그러면 그건 무시할 수라도 있을테니까. 어쩌면 너무 은밀해서 공격했다는 것도 모를수도 있고.

대략적으로 보았을 때 루 체호프의 인생은 30분 전에는 매우 순탄하게 흘러갈 것임에 분명했다. 그녀가 작성한 실험 기획서가 과학부와 공학기술지원부, 그리고 윤리위원회에 제출된 저번주 금요일에서부터 이는 이미 예견되었던 일이었다.

문제는 그 30분이 이미 지났다는 것이었다. 루는 기억을 돌이켜 보며 한숨을 쉬었다. 누가 자신이 기획한 실험에 늦을 생각을 할까.
그녀는 재빨리 외출복 위에 미리 실험복을 걸치며 어제 밤 늦게까지 달달 외운 계획서와 사고 실험 용지를 챙겨 가방에 넣었더랬다. 손발이 차가워지면서 머리 속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마치 중요한 준비물을 가지고 오지 않은 초등학생의 모습 같았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초등학생은 혼나면 되지만 그녀는 혼도 나면서 월급도 깎일 수 있다는 것, 루이즈는 욕지거리를 입에 담으며 방문을 박차고 나왔더랬다.
가뜩이나 욕을 먹을 게 분명한 상황을 거부하기라도 하듯이.

그리고 현재. 예견했던 대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는 내심 토스트를 한 개만 먹기로 한 자신의 선택에 쾌재의 조소를 지었다. 교수 앞에서라면 아무리 소화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체하고 소화불량에 걸릴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그녀는 아침을 든든히 먹은 상태에서 위에 욕이 더 들어갈 것같지도 않았다. 루가 원하는 것은 오직 교수의 꼬장이 속히 끝나고 실험 진행이 승인되는 것이었다. 정말이지 누가 이 사람에게 실험 진행 결정권을 준 건지.

"자네는 감독이 영화 안 찍고 늑장부리면서 오면서 일은 다른 사람이 다 하도록 시키는 거 봤나?"

"이건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일이 아닌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식이 아니더라도 자네는 늦으면 안 되지. 자넨 지휘자지, 관객이 아냐. 자네에게 중요한 건 뭔가? 다 끝내고 카페나 가서 빈둥거리기?"

루는 이를 악물다시피하며 대답했다.

"저한테 중요한 것은 언제 실험이 속히 진행될 수 있는가입니다. 터커 교수님, 실험을 진행하게 해주십시오."

"아직은 아니야, 샘 존스 기억하나? 그 친구가 아직 안 왔어. 자네처럼 그냥 펑크낸 게 아니라, 미리 전화도 했지. 곧 올거야."

루이즈는 뒤로 돌며 작게 욕을 내뱉었다.
그녀도 샘을 익히 알았다. 저 빌어먹을 교수의 후계자라도 되는 양 구는 밥맛이었다. 그녀와는 다르게 오늘이 좋은 날이 될 놈.


20분 뒤 존스가 식은 땀을 흘리며 문을 열고 들어오자 그제야 사람들은 마법이 풀린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주한 연구원들의 소음이 한데 뭉쳤다 흩어졌다.
루 역시 교수에게서 풀려나 실험실 한켠에 있는 자신의 책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루."

루이즈는 고개를 들었다. 제리 스미스 요원이 눈인사를 날리고 있었다. 그는 위험한 작업에 투입될 때처럼 중무장하지 않고, 얇은 요원복 하나만을 입고 있었다.

"얼굴이 쥐색인데."

"터커, 아니 퍼커(Fucker)는 늘 그렇지. 난 해탈했어."

"불교도인 줄은 몰랐는데."

늘 그렇듯, 영양가 없는 대화는 삶의 원동력이었다. 루는 피식 웃으며 자신의 책상으로 걸어갔다. 제리가 그 뒤를 따랐다.

"무장은?"

"아직."

루는 책상에 기획서를 소리나게 쾅 놓았다. 제리가 재밌다는 듯이 낄낄거리자, 루는 그를 확 쏘아보았다가 한숨을 쉬고는 흐트러진 책상을 정리했다. 책상에는 온갖 필기구와 서류, 한 남자아이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혼잡하게 널려 있었다.

"안톤은 요새 어떻게 지낸대?"

"부모님 소식도 못 듣고 지내는데 안톤이 뭐야, 안톤이." 그녀는 허리에 손을 짚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마 지금쯤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텐데."

"이 꼬맹이가?" 제리가 눈을 크게 뜨며 액자를 집어들었다. "네 남동생이… 아, 니가 여기 들어왔을 때 13살이라고 했으니까."

"4년이 길긴 길어."

루는 씁쓸하게 두 손을 들어보였다. 그녀는 애상적인 기분에 벗어나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은 열심히 실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 루이즈는 그 안에 있는게 좋았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보지 못한다는 게 흠이었지만.

거기까지였다면 좋았으련만, 루의 시야에 존스가 기침을 들으라는 듯이 거세게 해대는 꼴이 들어오고 말았다. 그녀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돋았다.

"저 새끼는 뭐가 또 문제래?"

제리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M1911를 루에게 건네며 반문했다.

"누구?"

"저놈, 존스. 얼빠진 얼굴이 더 얼빠져 보이네. 바닥에 굴러다니는 거라도 주워먹었대?"

"글쎄, 어제 출근하면서 부랑자 노인에게 적선했는데 되려 손을 물렸다는 이야기를 어제 휴게실에서 말하는 걸 들었는데. 그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선도 하고, 아주 살판 났구만."

"아직까지 그 일에서 못 벗어난거야?"

루는 권총의 총알을 빼다가 제리의 얼굴을 가만 응시했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에다 대고 겨누었다.

"야, 야! 너 미쳤어?"

"닥쳐, 이 둔감한 자식아. 난 존나 무서웠다고."

그녀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네가 욕을 다 하다니."

"너 모스크바 와서 가족들하고 내가 어떻게 말하는지 보면 충격 먹을걸."

제리가 말하는 일은 루에게도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때 그녀를 좋다고 쫓아다녔던 존스가 주변인들에게 그들이 사귄다는 헛소문을 퍼트린 일, 그 일이 나중에는 기지 이사관의 귀에도 들어가 루는 몇가지 곤혹스러운 일에 시달렸었다.
그녀는 슬쩍 존스 쪽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스토커와 밥맛. 둘 중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아주, 아아주 매력적인 아이덴티티가 아닐 수 없었다.

제리는 위로의 뜻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조끼를 탁탁 펴서 건네주었다. 그리곤 장난스럽게 씨익 웃으며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루이즈와 같이 갈 것이었다.

정리를 끝낸 루이즈는 눈 앞에서 25 cm × 25 cm 크기의 금고가 옮겨지는 모습을 내심 놀라워 하며 보았다. 서류에서 볼때는 그냥 평범한 금고인줄 알았는데, 꽤 화려했다. 
사실 그녀로서는 꽤 두근거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서류로는 이쯤 되면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정도로 많이 만나보았지만, 실물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와 D계급 조금, 격리 기술자들과 요원들, 그리고 박사들이 모여있는 곳은 매우 큰 방이었다. 모든 면이 흰색으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곳을 연상시켰다. SCP-826을 활성화시키기엔 딱 좋은 곳이 아닐 수 없다.

보안 기술자가 자물쇠의 비밀번호를 누르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용의 자태가 기이하게 꿈틀거렸다. 루이즈는 인상을 찌푸려가면서 책 받침대를 관찰했다. 거 되게 신경질적이게 생겼군.

"루이즈 체호프 박사님?"

그녀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부른 이를 바라보았다. SCP-826의 담당 보안 기술자였다.

"네."

그녀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만을 바랬다. 실험할 변칙 개체를 눈앞에 두고 떠는 연구원만큼 한심해보이는 것이 또 있을까? 그녀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일일 것이다.

기술자는 품 안에서 서류 뭉치를 꺼내더니 그 중 한 뭉치를 루에게 내밀었다.

"일단 이 서류에 사인해 주세요. 교차실험에 관한 1845개에 걸친 상세한 위험과 그에 따른 피해와 사례, 그리고 보험에 관한 조항이에요."

1845개라… 루는 미간을 찌푸리고 위에서부터 하나 하나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격리 기술자에게 바로 제압당했다.

"이야, 처음부터 읽는 사람은 처음이네. 그냥 줘요. 별거 없으니까 그냥 아래 있는 제일 큰거에 싸인하면 되니까. 내가 할게요."

루는 씨익 웃으며 그녀에게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기술자는 눈알이 빠져라 읽는 일에서 루를 건져 준 셈이었다. 그녀는 뭐라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으므로 그냥 '423'이라고 겉면에 적힌 작은 일기장 공책이 운반되어 오는 모습을 바라보기로 했다.

루는 이 실험이 어떻게 돌아갈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우선, SCP-423이 담긴 공책을 SCP-826 위에 올려 놓을 것이다. 그리곤 그녀를 포함한 보조 연구원 샘과 스미스 요원이 같이 공책 안으로 들어가, 프레드를 만날 것이다. 이때 프레드는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을까, 그들이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가도 프레드는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까? 향후 SCP-423의 격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실험이었다. 물론 입구부터 막혀버리면 이런 가정들도 전부 쓸모 없겠지만.


일련의 과정 끝에, 메타적 존재와의 조우는 그 시작이 보이기 시작했다. 탐사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가 떠난 방에서, 루는 《길지만 간략한 이야기》라는, 실험용으로 쓰여진 소설에 간단하게 제 존재를 집어넣은 프레드를 SCP-826 위에다 걸쳐 놓았다.

곧 방이 변이했다. 흰색은 점점 회색으로, 그것보다는 광택을 띄는 금속의 색깔로 변이했다.

"쩐다."

루는 옆에서 들려오는 끔찍한 목소리를 무시하려고 애썼다. 쩐다, 를 시작으로 존스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질 낮은 수식어를 읊조리고 있었다. 읊조릴 때마다 그는 몸을 떨었다.
저절로 으, 하는 소리가 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녀가 제리를 돌아보자 그는 단지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동작 하나만으로도 루이즈는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방은 어느새 책과 서가의 흐릿한 망령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방은 그들이 있는 기지, 제376기지의 도서실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중간에 고풍스러운 탁자와 붉은 벨벳 천으로 감싼 1인용 소파가 나타났다. 소파 위에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갈색 머리에, 건장하지도 왜소하지도 않은 체격,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키, 재단 인원의 평소 복장인 연구복과 가운.

그리고 가장 압권인, 정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

루이즈는 아연한 표정으로 SCP-423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난다지만, 이건 또 뭔가. 그녀는 프레드의 모습을 더 자세히 관찰했다. 그는 마치 자기가 재단 인원이라도 되는 것마냥 행동하고 있었지만, 미묘하게 어딘가 이상했다.
입체화된 상황에서도 특성은 동일한건가.
그녀는 마음을 가다듬고 프레드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려던 참이었다.

"환영하네, 먼 곳에서 온 방랑자들이여."

루는 입을 벌린 채로 프레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비슷하게 그녀의 귀에는 간간이 들리는 존스의 기침 소리를 제외하고는, 다른 두 사람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들 놀란 눈치인 것 같았다.

"내 그대들에게 제공할 정보가 있다지? 그래…"

프레드는 여전히 자기가 맡은 배역에 심취해 있었다. 루는 이제야 그가 어디선가 봤던 사람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간신히 제리에게 속삭였다.

"이거 쓴 사람… SCP-423을 대체 어떻게 묘사해 놓은 거야?"

"그, 글쎄… 나도 잘…"

소곤거리는 둘을 목격한 프레드는 한숨을 쉬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루는 놀라 뒤로 주춤 물러섰다. 존스가 거슬리게 기침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이 친구들아. 장단에 맞춰줘야지."

루는 간신히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럴 시간이 없어서 속히 진행하겠습니다, SCP-423. 존스 연구원, 질문지를 준비해 주세요."

"그래, 이런 게 너희 방식이지. 내가 실제로 너희 앞에 나타나도 변한 게 없네."

프레드는 토라진 듯한 어투를 쓰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웃음을 잃지 않았으므로, 루는 조금 마음을 놓았다. 그녀는 제리에게 다시 속삭였다.

"빨리 SCP-826의 위치를 확보해야해. 알지?"

존스의 기침 소리가 더 심해졌다.

"벌써 여기 있는데."

그렇게 말하면서 제리는 자신의 옆에 있는 용머리 책받침을 가리켰다. 루는 이제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브리핑 때 들은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앞으로 몇 시간은 면담할 시간이 주어질 것이었다.
퇴로도 확보, 시간도 충분.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존스의 기침 소리가 훨씬 심해졌다. 루와 제리는 프레드를 보다 말고 존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존스는 멍한 눈으로 그 앞의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따금 몸을 떨었다. 그의 눈에는 더 이상 어떠한 형태의 이성도 담겨 있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형태가 일지 않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는 쓰러졌다.


"존스! 존스!"

모두가 당황했다. 제리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가 맥을 짚어보고 인공 호흡을 실시했다. 심장 압박도 실시되었다.

존스는 깨어나지 않았다.

프레드조차 놀란 눈치로 엎어진 존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루는 어느샌가 옆으로 다가온 SCP-423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얼어붙어 있었다.
모든 게 잘못되어간다는 예감이 그녀의 뇌리에 일기 시작했다.

존스는 깨어나지 않았다.

제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루를 쳐다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깊은 절망감이 깃들어 있었다. 루는 입을 벌린 채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니었는데… 죽기까지 바라지는 않았다고.
프레드 역시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들의 얼굴을 훑었다.

침묵을 깬 건 프레드였다.

"설마… 저 사람, 죽은 거야?"

"…생명 활동이 정지했습니다. 루이즈 체호프 연구원, 실험 중단해야해요. 존스 연구원 살려야 합니다."

제리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루이즈는 옆에 서 있던 프레드를 흘끗 쳐다보고는 대답했다.

"네. 긴급 상황으로 교차실험-a 826-423 중단을 선언합니다. 이제 SCP-82 —"

루는 말을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었다. 혼수 상태에 빠져 있던 존스가 다시 몸을 일으킨 탓이었다. 그는 이를 드러내고, 입가엔 침을 흘리며, 멍청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루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생각했다.
다행이다. 살아난 거야. 진짜 다행이다.

적어도 존스가 제리 스미스 요원의 목을 물어뜯기 전까지는,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리는 비명을 지르며 왼쪽 주먹으로 존스의 콧잔등을 후렸다. 존스는 신음하며 뒤로 다시 엎어졌다. 그의 팔다리는 힘 없이 퍼덕이고 있었다.

"괜찮아?"

제리는 얼굴을 찡그리며 힘 없이 대답했다.

"왜 존스… 미친 놈처럼…"

그러더니 제리 역시 풀썩 쓰러졌다. 루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그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응답하는 건 존스였다.
코가 부러진 채로, 피조차 흘리지 않고 놈은 일어났다. 루는 그의 눈에 초점이 없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어, 이봐! 연구원! 이 사람들 왜 이러는 거야? 응?"

프레드가 불안한 목소리로 외쳤다.

"나도 몰라요! 이건… 이건 계획에 없었던 일인데."

루이즈의 목소리 역시 떨려나왔다. 울고 싶은 감정이 그녀의 마음을 휘저었다. 아침부터 이게 뭔가. 지각에, 갈굼질에, 이젠 미쳐버린 동료가 제리를…

그녀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려고도 했지만, 존스는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신음하며 달려와 루이즈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다. 루는 간신히 몸을 날려 피했다.
결국 형세는 프레드와 존스가 힘겨루기를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프레드는 간신히 존스의 코와 턱을 붙들고 버티고 있었다. 존스가 이를 딱딱거리려 할 때마다 프레드의 얼굴에는 땀이 솟아올랐다.
그가 간신히 말했다.
"연구원, 도와주지 않을래?"

루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서가에서 두꺼운 장서 하나를 꺼냈다. 프레드의 팔 힘은 점점 빠져나가고 있었고, 존스는 여전히 맹렬한 기세로 눈 앞의 목표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었다.

곧이어 존스의 머리에 유서 깊은 러시아 공작 가문의 비밀 변칙 물품 장부가 날아들었다. 연구원은 신음 소리와 함께 저편으로 나가떨어졌고, 루가 죄책감이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프레드가 그녀를 향해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 보게 되었다.

"잘 했어, 연구원. 제법인데."

"제 동료였어요. 그런데 왜…"

루이즈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자 프레드는 어깨를 으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한다는 제스처였다.

"자, 빨리 저 부상당한 사람 데리고 나가. 더 냅두면… 어."

프레드가 말을 멈추자 루는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제리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가 허리를 기괴하게 꺾으며 일어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기쁘게 웃으며 그를 안았을 것이었다.

제리는 마치 존스가 그랬듯이 멍청한 표정에 황량한 눈가를 하고는 그들에게로 돌진했다. 루는 재빨리 그의 입에 장서를 쑤셔 넣었다. 제리가 몸부림칠 때마다 루는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다. 프레드는 이를 악물고 제리의 명치에 발길질을 했다.
그가 나가떨어지자 프레드가 말했다.

"연구원, 빨리 나가. 이건 장난 아냐. 당신 죽을거야."

"당신도 죽을 수도 있어요, 당신은 지금 실존하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거라고요!"

"늘 세상 일이 맘대로 되는 건 아니지." 그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늘 그렇지 뭐."

프레드가 루의 손에서 장서를 빼앗아 들었다.

"나가서 당신들 친구들 데리고 와. 많이."

루는 항의하려고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떼려는 그 순간 프레드가 그녀를 옆으로 밀쳐버렸기 때문이었다.

프레드는 제리의 공격은 막아냈다. 제리가 달려드는 그 순간에, 그는 장서로 제리의 머리를 후려쳤고, 제리는 우드득하는 기괴한 소리와 함께 나가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존스의 공격은 막지 못했다.

고통에 찬 신음이 터져나왔다.
프레드는 자신의 옆구리를 물고 있는 존스의 흐리멍텅한 눈동자를 내려다 보았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공(空) — 프레드는 그 형태 속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느꼈다. 이야기 안에서는 알지 못하는 메타 외의 무정형의 미.

그는 재빠르게 장서로 존스의 얼굴을 찍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마침내 존스의 얼굴이 뭉개질 때까지.

존스의 이빨이 떨어져 나가자 프레드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루가 달려와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프레드가 고개를 들었다. 땀이 송글송글 맺힌 루이즈의 얼굴이 어딘가 익숙했다.

"연구원… 나가…"

"…꼭 의료진 데리고 올게요. 아, 아니, 당신은 메타적 존재잖아요. 꼭 나을 수 있어요. 나을 거에요."

"알았다… 나가라고, 빨리…"

루는 조심스럽게 프레드를 내려놓았다.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있었다. 간혹 기침을 하기도 했다.

루이즈는 앞으로 기침 소리만 나면 경기를 일으킬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에 휩싸였다.


SCP-826이 없어졌다. 그 용머리 받침대는 제 자취를 어디다가 숨겼는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거의 질질 짜면서 서가 사이 사이에서 SCP-826을 찾아다녔다.

결국은 SCP가, 826이 아닌 423이 그녀를 먼저 찾아냈다.

루는 등 뒤의 인기척을 느꼈다. 그녀가 돌아보기도 전에, 이미 프레드는 그녀의 등을 문 후였다.

끔찍한 격통이 엄습했다. 루는 비명을 지르며 팔꿈치로 프레드의 머리를 가격했고, 프레드는 이를 네 번즈음 더 받아낸 다음에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루이즈는 등을 돌려 울상이 된 얼굴로 프레드를 바라보았다. 이전의 둘과 같은 얼굴이 그에게도 서려 있었다. 루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했다. 프레드는 또 다시 그녀에게 이빨을 들이대며 질주했다.

루는 황급히 몸을 돌려 한 서가 옆으로 피했다. 관성의 법칙에 따라 프레드의 몸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루이즈는 그 서가 아래에 쓰러져 있었던 SCP-826을 찾아냈다.
루는 등에서부터 시작되는 끔찍한 고통과 밭은 기침에 고생하면서도 간신히 책을 떼어냈다. 이제 남은 건 그 방을 나가는 것 밖에는 없었다. 등거죽이 뜯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루는 이따금 그냥 바닥에 드러눕고 싶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나가야 제리, 존스, 프레드를 고칠 수 있었다.
지금 이 질병이 뭐든 간에.

그녀는 계속 걸었다. 체감상 30분즈음 지났을까, 기괴한 소음을 내는 프레드의 모습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루는 황겁하여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이끌고 어기적거리며 뛰었다. 문은 어느새 눈 앞에 있었다.
프레드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는, 어느새 루의 발이 그 문짝 위에 얹혀져 있을 때였다. SCP-423은 루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다.

루는 그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교차실험-a 826-423

개요: 위 실험의 주제는 SCP-423과 그 영향을 받은 서사적 텍스트가 재단과 SCP-826을 통해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었으나,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직원 간의 상해 사건으로 인하여 실패하고 말았다.

관련 면담 녹취록

면담자: Ge████ B███ 심리학 박사, 피면담자: 루이즈 체호프 연구원

Ge████ B███ 박사: 네, 그래서… 갑자기 새뮤얼 존스 연구원이 기침을 하더니 쓰러졌다.

루이즈 체호프 연구원 : 네, 그 전에 좀 멍하니 저희들을 보기도 했고요. 마치 처음 보는 사람 보듯.

B███ 박사: 그리고 제리 스미스 요원은 존스 연구원에게 CPR을 했고?

체호프 연구원: 맞아요.

B███ 박사: 그러더니 갑자기 존스가 스미스 요원을 물었다. 그리고 쓰러지고… 존스는 프레드와 당신에게 덤볐고. 스미스도 일어나서 덤비고, 종국에는 SCP-423도 그렇게 되고… [잠시 침묵] 솔직히, 체호프 연구원. 이렇게 증언하면 결국 범인이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체호프 연구원: …절 못 믿으시는군요.

B███ 박사: 믿을 만한 이야기를 해야죠. 믿을 만한. 아니, 전문적인 의료 소견서 하나 없이 이런 이야기를 믿으라 하는게… [벨소리] 아, 실례 좀. 어, 그래. 나야. 나왔어? [잠시 침묵] …진짜란 말야? 말도 안 돼. 이미 잠복 기간이 넘었는데…

체호프 연구원: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동료들을 낙오시킨 미친년이라 하던가요?

B███ 박사: 미안…합니다. …그 상처, 정말로 《4등급 인원 이상 열람 가능》더군요. 하지만… 그게 어떻게… 그렇게 빠른 시간 내에… 그리고, 왜…《4등급 인원 이상 열람 가능》

체호프 연구원: ….

B███ 박사: 일단은 여기 376기지 가설3동으로 거처를 옮기십시오. 주기적인 연구, 아니, “검사”도 치뤄야하니… 다른 필요한 거 있다면 제공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체호프 연구원: …배고파요.

B███ 박사: …D계급 인원을 충당할테니…

체호프 연구원: 아니… 들고 계신 그 종이… 좀 줘보실래요?

깨어진 무덤

Broken Gr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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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0+x

발신: 크리스토퍼 알론소Christopher Alonso
수신: 니암미세브 리Niammiseb Lee
RE: 상황 보고


독을 요람에다 풀었다.


니암미세브 리는 개인 태블릿으로 전송된 메세지를 천천히 읽었다. 전산망의 온갖 방어벽을 뚫고 온, 공백 제외 10자 정도의 짦은 메세지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리는 천천히 태블릿의 전원을 끄고 반으로 접었다. 액정이 으깨지는 소리가 손에서 들려왔다. 리는 힘을 주고 다시 반으로 접었다. 그리고는 쓰레기통으로 집어넣었다.

리는 이내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창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른 여름의 햇살과 바람이 밖에서 안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미주리의 여름은 이토록 안온했다. 그녀는 흩날리는 커튼을 한 쪽으로 치우고는 창틀에 팔꿈치를 괬다.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는 시체 냄새가 섞여 있었다. O5-9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1. 변이
  2. 개벽
  3. 탈출
  4. 조우
  5. 우연
  6. 포획
  7. 구조
  8. 작전
  9. 몽타주
  10. 비암

— 1부 종결